
제134화 「물듦」
1. 몰라서 멈추는 숨
추가 회차 이야기가 오전에 정리되었다. 같은 방, 다음 달, 백네 석. 기획자는 지난번처럼 표가 삼 분이면 다 나갈 거라고 했다.
"이번엔 어제 오신 분들은 안 받을게요."
소율이 말했다.
기획자가 손을 멈췄다.
"그분들이 제일 먼저 신청하실 텐데요. 어제 제일 좋았다고 하신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안 받는 거예요."
소율은 실황 녹음을 한 번 더 듣고 온 참이었다. 다섯 번째 곡의 그 두 마디, 파형이 바닥에 붙어 있던 자리. 어제 그 방에서 아흔여섯 명이 동시에 숨을 멈췄던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숨을 멈춘 건, 거기 침묵이 온다는 걸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에요."
소율이 말했다.
"어제 온 분들이 다음 달에 또 오면, 그 자리를 알고 와요. 아, 여기서 조용해지는구나, 하고요. 알고 멈추는 숨은 몰라서 멈추는 숨이랑 달라요."
같은 소리를 두 번 들으면 두 번째는 처음만큼 크게 들리지 않는다. 귀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뇌가 다음에 올 것을 미리 알아서, 놀랄 준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된 자극은 예상된 만큼 작아진다. 놀람은 모르는 데서만 온다.
"그럼 그 두 마디는 매번 처음 듣는 사람한테만 되는 거네요."
기획자가 천천히 말했다.
"네. 그래서 다음 달은 어제 못 오신 분들 거예요. 아직 그 자리를 모르는 분들이요."
소율은 어제 온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를 몇 개 읽었다. 대부분이 어젯밤이 아니라 오늘 아침에 온 것이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그 노래가 자꾸 떠올라요. 그 조용했던 데가 계속 생각나요.
공연은 어제 끝났는데, 사람들 안에서는 오늘부터 물이 들고 있었다. 그건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의 것이었고, 소율이 다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큰 데로 옮기자는 얘기 또 나오면요?"
"어제 제일 좋았던 게 녹음이 안 됐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그날 거기 있던 사람들한테만 물든 거예요. 옮기면 그게 안 물들어요."
소율이 악보를 덮었다.
"안 물들어서, 다음 달에 또 하는 거예요."
2. 없음이라고 적다
발사까지 서른일곱 날.
아침 리허설에서 시계가 두 번 멈췄다.
한 번은 삼번 라인이었다. 어제 같은 묶음의 실링을 네 군데 갈았는데, 뜯어 보니 한 군데가 더 남아 있었고 그것도 눌려 있었다. 다섯 번째였다. 명호는 그 자리도 갈았다.
두 번째로 시계를 멈춘 관제사는 젊은 쪽이었다. 사번 밸브 압력이 이상하게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뜯어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밸브는 멀쩡했고 수치도 규정선 한가운데였다.
그가 자리로 돌아와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괜히 사십 분 날렸습니다."
"뭐가 나왔지?"
명호가 물었다.
"…없습니다."
"그럼 없음이라고 적어."
그는 관제사를 보았다.
"어제 절차서 앞장에 적었잖아. 멈춘 판단은 사후에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멈춘 뒤에 무엇이 나왔는지만 적는다. 오늘 자네가 멈춘 뒤에 나온 건 없음이야. 그러면 없음이라고 적으면 돼. 그게 실패가 아니야."
젊은 관제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없는 걸 있다고 본 거잖아요."
"없는 걸 있다고 보는 건 익히면 줄어. 있는 걸 없다고 넘기는 건 못 고쳐. 그 두 개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면 나는 오늘 자네 쪽을 골라."
명호는 어제까지 하루에 시계가 한 번 멈추던 것을, 오늘은 두 번 멈춘 것을 수첩에 적었다. 어제는 한 사람이 멈췄고 오늘은 둘이 멈췄다. 그중 하나는 진짜였고 하나는 아니었다.
멈춤이 늘어난 것은 발사체가 나빠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어제 한 사람이 멈추고도 나무람을 듣지 않는 것을 다들 보았기 때문이었다. 처벌하지 않는 것을 한 번 본 사람은 다음에 자기도 손을 든다. 조직에서 보고가 늘어나는 것은 사고가 늘어나는 것과 정반대의 신호다. 잠겨 있던 입들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발사 당일에 몇 사람이 손을 들 것 같아?"
팀장이 지나가며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손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어제보다 하나 늘었습니다."
명호가 말했다.
"그거 하나가 오늘 다섯 번째 실링을 찾았습니다."
3. 옆으로 도는 색
점심 무렵에 낯선 사람이 또 동현의 자리로 왔다. 어제 온 육층 사람이 아니었다.
"칠층인데요. 신청 양식 때문에 왔습니다."
"누가 보내서 오셨어요?"
동현이 물었다.
"육층에서요. 거기 가면 물어보는 법을 알려 준다고 하던데요. 사람을 붙여서 봐 주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어떻게 했는지 알려 준다고요."
동현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육층 사람에게 건넨 종이는 세 줄짜리였다. 먼저 가서 앉는다. 묻고 기다린다. 그쪽 손으로 하게 만든다. 그 세 줄이 하루 만에 육층을 지나 칠층으로 돌고 있었다.
"저희도 그 종이 주세요."
칠층 사람이 말했다.
동현은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세 줄을 적어 건넸다.
"이러다 온 층이 다 오겠는데요."
후배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오는 게 아니야."
동현이 말했다.
"저 사람들이 여기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저기 안 가도 되는 거야. 육층이 칠층한테 알려 줬으면, 다음에 팔층은 육층한테 가. 나한테 안 와."
가르쳐 본 사람은 배운 것을 더 단단히 쥔다. 남에게 설명하려면 자기 안에서 한 번 더 정리해야 하고, 그 정리가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굳힌다. 육층은 칠층을 가르치면서 어제 배운 세 줄을 제 손에 완전히 새겼다. 색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옆으로 옆으로 도는 것처럼, 순서가 층을 건너며 물들고 있었다.
동현은 서랍을 열었다. 박영자의 손수건 위에 명찰이 다섯 장 놓여 있었다. 다섯 번째는 어제 올린 육층 사람이었다. 그는 여섯 번째 자리에 칠층 사람의 이름을 적어 올렸다.
어제 그는 자리를 미리 비워 두는 걸 그만두겠다고 흐름표에 적었다. 자리는 이제 저쪽에서 만들어서 왔다. 그가 비워 둘 필요가 없었다.
흐름표 맨 아래에 그는 한 줄을 더했다.
"오늘 나는 아무 부서에도 안 갔다. 그런데 두 층이 서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4. 하루가 지나서 오는 것
진우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기가 울고 있는 것을 알았다.
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찻집에서 두 시간 반을 앉아 있었고, 아들과 다음 주 약국 약속을 잡았고, 저녁에 김지수의 집에서 밥을 먹었고, 종이를 서랍에 넣고 잤다. 그동안 그는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에, 아무 일도 없는 자리에서 그것이 왔다.
낮에 김지수가 잠깐 들렀다. 진우는 눈이 부은 것을 감추지 못했다.
"어제는 멀쩡했는데, 오늘 아침에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어제는 하실 일이 있었으니까요."
김지수가 말했다.
"큰일이 있는 날에는 몸이 그 일을 해내는 데 다 써요. 슬퍼할 자리까지 미뤄 두고요. 그러다 다음 날, 이제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는구나 하고 몸이 알면, 그제야 미뤄 뒀던 게 한꺼번에 올라와요. 어제 못 운 게 오늘 오는 거예요."
"이게 정상이에요?"
"제일 정상이에요. 그날 다 우는 사람보다 다음 날 우는 사람이 그날을 더 잘 견딘 거예요."
진우는 창밖을 보았다. 어제 지나온 약국이 이 근처 어디쯤 있을 것이다. 유리문에 붙은 영업시간이 예전과 같았다.
"이제 세는 걸 그만둬야 하나요."
그가 물었다. 스무 날 넘게 그는 날을 세어 왔다. 재회까지 며칠. 어제로 그 숫자가 영이 되었고, 오늘부터는 셀 것이 없었다.
"셀 게 없어서 허전하세요?"
"허전한 건지 무서운 건지 모르겠어요. 그날만 보고 왔는데 그날이 지나갔으니까요."
김지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음 주에 약국 가시잖아요. 그것도 날이에요. 하나 지나가면 다음 게 생기는 거예요. 세는 게 끝난 게 아니라, 이제 큰 하나가 아니라 작은 여러 개를 세게 되는 거예요."
진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그 약국, 다음 주에 같이 안 가실래요?"
김지수가 그를 보았다. 나흘 전에 그는 재회 자리에 같이 가 달라고 청했고, 그때 그는 안 간다고 했다. 셋이 앉으면 오 년을 건너뛰는 말이 반쯤 다듬어져 나온다고, 그 자리는 둘일 때만 되는 자리라고.
"그날은 안 갔죠."
김지수가 말했다.
"그건 아버님하고 아드님, 둘이 오 년을 건너야 하는 자리였으니까요. 그런데 약국은 달라요. 그건 건너는 자리가 아니라 다음으로 가는 자리예요. 다음으로 가는 자리에는 셋이 앉아도 돼요."
"그럼 가시는 거예요?"
"갈게요."
진우는 오랜만에 자기가 웃는 것을 느꼈다. 어제 하루 종일 미뤄 두었던 것 중에는 슬픔만 있는 게 아니었다.
5. 색은 며칠 걸려요
물주기는 진우 차례였다. 화분은 김지수의 집 창턱에 있었다.
일곱 번째 잎이 하룻밤 새 조금 달라져 있었다. 어제까지 노르스름한 연둣빛으로 종이보다 얇았던 것이, 오늘은 잎맥을 따라 아주 옅게 초록이 돌기 시작했다. 아직 다른 다섯 장의 짙은 잎과는 한참 달랐지만, 어제와 오늘은 분명히 달랐다.
"색이 들기 시작했어요."
김지수가 말했다.
어린잎은 처음부터 초록이 아니다. 잎이 다 펴진 다음에야 빛을 받으면서 엽록소를 만들기 시작하고, 색은 하루가 아니라 며칠에 걸쳐 천천히 짙어진다. 그래서 새 잎은 늘 연한 채로 나온다. 연한 것은 아픈 것이 아니라 아직 색을 다 받지 못한 것이다.
"어제 다 펴졌잖아요. 오늘은 색을 받는 거예요. 며칠 더 있으면 굳고요. 순서가 그래요. 펴지고, 받고, 굳고."
진우는 그 순서를 어제 찻집에서 본 것 같았다. 아들의 말도 그렇게 나왔다. 먼저 반쯤 펴지듯 나오다 멈췄고, 침묵을 그냥 두었더니 나머지가 나왔고, 그러고도 색은 아직 다 안 든 채였다. 어제 나온 말은 오늘도 여전히 연했다.
진우는 흙에 손가락을 넣어 보았다. 한 마디쯤까지 말라 있었다. 그는 물뿌리개를 들어 밑구멍으로 물이 배어 나올 때까지 천천히 부었다.
"저한테 안 물으시고요."
김지수가 말했다.
"흙한테 물었어요."
진우가 손끝의 흙을 닦지 않고 잠깐 두었다.
"얘는 어제 펴진 게 다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까 어제가 시작이었네요."
"큰일이 그래요. 그날 다 안 와요. 그날은 펴지기만 하고, 색은 며칠 걸려요."
진우는 옅게 초록이 돌기 시작한 얇은 잎을 오래 보았다. 만지지 않았다. 오늘은 만지는 날이 아니라 색이 드는 걸 그냥 보는 날이었다.
6. 고르게 드는 빛
어제 판단 기준점을 도시 끝으로 옮긴 뒤로, 통제실 큰 화면에는 열두 개의 선이 울퉁불퉁하게 떠 있었다. 그중 둘은 저녁마다 아래쪽 규정선에 붙었다. 도시 남쪽 끝, 가장 먼 두 골목이었다.
"올려요? 발전단에서 전압을 조금만 올리면 저 둘도 규정선 안으로 들어옵니다."
관제사가 물었다.
"올리면 가까운 데는 어떻게 되는데."
팀장이 말했다.
"넘칩니다."
전기는 선을 타고 가면서 깎이기 때문에, 보내는 자리에서 세게 밀면 가까운 끝이 먼저 넘치고 먼 끝은 여전히 모자란다. 한쪽 끝을 맞추려고 세기를 올리면 다른 쪽 끝이 상한다. 세기로는 양쪽 끝을 동시에 맞출 수 없다.
그날 그들이 한 일은 발전단의 세기를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선이 지나는 길 곳곳에서, 깎인 만큼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가장 먼 두 골목 가까이에 무효전력을 받쳐 줄 자리를 두어 그 끝에서 전압을 끌어올리고, 중간에는 눈금을 조금씩 되짚는 조정기를 걸었다. 가까운 끝은 건드리지 않았다. 먼 끝만 깎인 만큼 되살렸다.
저녁 여섯 시, 도시가 한꺼번에 불을 켰다.
화면의 열두 선이 이번에는 가라앉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선도 가장 먼 선도 규정선 한가운데에 나란히 떠 있었다. 어제까지 판판해 보였던 것은 발전단 한 곳에서만 잰 거짓 평평함이었고, 오늘의 평평함은 열두 곳에서 재고도 평평한 것이었다.
"이번엔 진짜로 판판합니다."
관제사가 말했다.
"그렇지. 세게 밀어서 판판한 게 아니라 고르게 받아서 판판한 거야."
열아홉 번째 거울은 어제 제자리로 돌아온 뒤 오늘도 얼룩 없이 밝았다. 고리는 일흔두 장 그대로였다. 격자 정렬 75차, 오차 0.1밀리미터. 무중단 송전 1,080시간, 마흔닷새째. 도시 끝 열두 곳 규정선 안 안정.
그날 밤 팀장의 기록에는 이런 문장이 남았다.
물듦이란 한 곳에서 세게 밀어 넣는 일이 아니다. 세게 밀면 가까운 데가 먼저 넘치고 먼 데는 여전히 모자라다. 물듦은 지나는 길 곳곳에서 깎인 만큼을 되살려, 가장 가까운 곳과 가장 먼 곳이 같은 빛을 받게 하는 일이다. 색은 세기로 드는 것이 아니라 고르기로 든다. 어제 우리는 저쪽 자리의 값을 처음 들었고, 오늘 우리는 그 값이 우리 값과 같아지게 했다. 듣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들은 다음에는, 그 자리까지 물이 들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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