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55 [영겁의 새벽] 제58화 - 자리 제58화 - 자리 1.새벽 여섯 시, 공작 파트의 형광등이 한 번 깜빡이고 제자리를 찾았다. 윤재석은 어제 잘라 둔 두 번째 사파이어 원판을 조심스럽게 지그에 올렸다. '마중'이라 이름 붙은 첫 장은 별도의 보관 케이스에 놓여 있었고, 이제 두 번째 장 '배웅'의 엣지 폴리싱이 시작될 차례였다. 명호는 블레이드 각도를 확인했다. 어제보다 0.02도 좁힌 상태, 모서리 경로는 안쪽으로 1밀리미터 들어가 있었다. 첫 장에서 내부 개재물이 드러난 지점을 지도로 삼은 결과였다. "여기부터 시작하면 돼요?" 윤재석이 물었다. "응. #3000부터. 어제랑 같은 순서로." 연마기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명호는 공책을 펼치고 새 줄에 기록을 시작했다. 6시 07분. 두 번째 장 '배웅' #3000 엣지. 블레이.. 웹소설 2026. 4. 24. [영겁의 새벽] 제57화 - 배합 제57화 - 배합 1. 새벽 여섯 시. 서귀포 센터 공작실. 사파이어 두 번째 원판이 플라텐 위에 얹혔다. 윤재석이 냉각수를 뿌리고 다이아몬드 블레이드의 각도를 0.02도 더 좁혔다. "어제 첫 장은 모서리에서 얼룩이 나왔죠." "네. 내부 개재물이었어요." "두 번째는 모서리 경로를 안쪽으로 1밀리 당깁니다. 개재물이 같은 위치에 있을 확률은 낮지만, 있어도 우리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 두면 되니까요." 명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책을 꺼내 29번째 줄에 적었다. 두 번째 장은 첫 장의 얼룩을 피해 간다. 피한 자리에는 첫 장의 모양이 남는다. 블레이드가 돌기 시작했다. 사파이어의 결이 숨을 들이마시듯 쪼개졌다. 윤재석은 여전히 번호를 매기지 않았다. 명호는 자신의 공책 귀퉁이에 연필로 '배웅'이라.. 웹소설 2026. 4. 23. [영겁의 새벽] 제56화 - 첫 장 제56화 - 첫 장1. 목요일 새벽 여섯 시, 서귀포 센터 공작 파트의 불이 켜져 있었다. 윤재석은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는 작업대 앞에 서서 팔을 접었다 펴기를 몇 번 반복했다. 차명호가 들어서자, 그는 고개만 까딱했다. "시작합시다." 작업대 위에는 어제 절단된 사파이어 원판 다섯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제일 왼쪽이 '마중', 그 옆이 '배웅', 나머지 셋에는 3, 4, 5라는 숫자가 잉크로 쓰여 있었다. 이름과 숫자가 나란히 있는 공정이 좋다, 라고 명호는 공책에 적어두었다. "첫 장은 #3000부터 갑니다. 단계 올리면서 #8000까지. 중간에 얼룩 나오면 말해 주세요. 저는 숫자 안 세니까." 윤재석이 다이아몬드 페이스트를 꺼내며 말했다. 그의 폴리싱 패드는 마치 안경 렌즈를 닦는 천처럼 오.. 웹소설 2026. 4. 22. [영겁의 새벽] 제55화 - 배웅 제55화 - 배웅 1. 수요일 새벽 여섯 시. 제주의 하늘은 회청색에서 연분홍으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차명호는 공작 파트 작업실로 걸어 들어갔다. 방 안은 서늘했고, 작업대 위에는 사파이어 원판 다섯 장이 얇은 초록색 보호지에 싸여 나란히 놓여 있었다.윤재석이 이미 와 있었다. 안경을 한 번 닦고, 작업복 단추를 채우는 중이었다."일찍 오셨네요.""첫 장을 자르는 날은, 저는 늘 한 시간 먼저 옵니다."명호가 공책을 폈다. 22번째 줄에 오늘 날짜를 적었다. 줄 아래에는 공정표가 붙어 있었다. 1번 공정: 사파이어 원판 절단 → 엣지 폴리싱 → CVD 다이아몬드 층 접합 → 박막 증착. 하루에 한 공정씩. 다섯 장 동시 진행이지만, 첫 장은 기준이 되는 장이었다."첫 장은 제일 느리게 자르겠습니다." 윤.. 웹소설 2026. 4. 21. [영겁의 새벽] 제54화 - 파도 제54화 - 파도 1. 아침 일곱 시 오십 분, 소나무숲 어귀에는 아직 바람이 차게 남아 있었다. 소율은 회색 후드를 머리 끝까지 올리고 숙소 쪽에서 걸어 나왔다. 기타는 가져오지 않았다. 가방은 가벼웠다. 가벼운 가방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느리게 걷게 했다. 벤치 옆에 진우가 먼저 서 있었다. 등산 점퍼를 반쯤 여민 채, 두 손은 주머니에 꽂고, 바다 쪽을 보고 있었다. 소율이 다가가는 소리에 진우가 고개를 돌렸다. "왔어?" "왔어요." 어제 공항 기둥 옆에서 한 말과 같은 두 마디가 다시 반복되었다. 소율은 같은 말이 이틀 연속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이상하게 다행스러웠다. 숲길은 좁고 솔잎이 두껍게 쌓여 있어 걸음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진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제 가사 쓴 거 있어?" ".. 웹소설 2026. 4. 20. [영겁의 새벽] 제53화 - 마중 제53화 - 마중 1. 수요일 새벽 다섯 시. 제주도 서귀포 ATLAS 시뮬레이션 센터 자료실은 아직 조명을 절반만 켜둔 채였다. 차명호는 어제 공식 승인을 받은 '창 버전 A'의 제작 세부 설계도를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사파이어 3.0mm, CVD 다이아몬드 0.4mm, 다층 박막 14층, 미러 코팅 0.08mm. 총 두께 4.05mm, 무게 8.4킬로그램, 방사선 차폐율 82퍼센트, 가시광 투과율 88퍼센트. 숫자는 확정되었다. 이제 그 숫자를 물건으로 바꾸는 단계였다. 명호는 공책 열다섯 번째 줄을 적었다. 설계는 숫자로 끝나지만 제작은 손으로 시작한다. 그는 화성팀 공작 파트의 책임자 윤재석에게 전달할 사양서를 점검했다. 접합 방식, 열팽창 계수 오차 허용 범위, 검사 기준. 회복실용 창 60.. 웹소설 2026. 4. 19. [영겁의 새벽] 제52화 - 너머 제52화 - 너머1. 오전 열 시, 센터 본관 3층 회의실. 창밖으로 서귀포 바다가 가늘게 보였다. 명호는 '창 제안서' 38페이지짜리 PDF를 위원장과 다섯 명의 심사위원에게 순서대로 설명했다.사파이어 3.0mm. CVD 다이아몬드 0.4mm. 다층 박막 열네 층. 미러 코팅 0.05mm. 네 층이 겹쳐 하나의 창이 되었다. 방사선 차폐 76.2퍼센트, 가시광 투과 91.5퍼센트, 중량 7.8kg. 세 기준을 모두 넘었다.위원장이 말했다."방사선 차폐 기준은 원래 80퍼센트였습니다.""알고 있습니다. 저는 76.2퍼센트입니다. 넉 퍼센트 모자랍니다. 대신 중량이 기준보다 0.2kg 가볍습니다. 미러 코팅을 0.08mm까지 두껍게 하면 차폐를 82퍼센트로 올릴 수 있습니다. 대신 중량은 8.4kg으로 늘.. 웹소설 2026. 4. 18. [영겁의 새벽] 제51화 - 투과 제51화 - 투과 1. 새벽 네 시. 명호는 시뮬레이션 센터 지하 자료실에 있었다. 운영위는 어제 통합 설계안을 승인했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위원장이 마지막에 한 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창은 별도 제안서로 받겠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그러니까 닷새. 닷새 안에 인류가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창의 설계 근거를 정리해야 했다. 명호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자료를 펼쳤다. 첫 번째는 합성 사파이어. 산화알루미늄 단결정. 가시광선의 팔십 퍼센트 이상을 통과시키면서도 모스 경도 9.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한 광물이었다. 두 번째는 CVD 다이아몬드. 화학기상증착으로 만드는 합성 다이아몬드 윈도우. 천만 분의 일 미터 단위까지 두께를 조절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다층 박막... 웹소설 2026. 4. 17. [영겁의 새벽] 제50화 - 창 제50화 - 창1. 명호는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다. 시뮬레이션 센터 숙소 침대 위에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아직 어둠이 남아 있었지만, 수평선 너머로 옅은 남빛이 번지고 있었다. 제주도의 새벽은 서울과 달랐다. 빛이 오기 전에 먼저 바다 냄새가 왔다. 공책을 펼쳤다. 열한 줄이 채워져 있었다. 첫 번째 줄, 벽. 두 번째 줄, 바닥. 세 번째 줄, 지붕. 네 번째 줄, 문. 다섯 번째부터 열한 번째까지, 각각의 이음새와 접합부와 전이 구간들. 여덟 번째 줄만 아직 줄이 그어지지 않았다. 거기에는 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창. 명호는 그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건설 현장에서 이십 년 넘게 일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었다. 벽과 바닥과 지붕이 집을 세우지만, 창이 집을 살게 한다는 것. 빛이 .. 웹소설 2026. 4. 16. [영겁의 새벽] 제49화 - 온기 제49화 - 온기 1. 명호의 접합부 그레이디언트 코팅 시뮬레이션 결과가 도착한 것은 아침 여섯 시였다. 열 주기 1만 회 — 수성 표면에서 낮과 밤이 1만 번 반복되는 조건. 벽과 바닥의 경계에서 SiC 220μm가 SiC 280μm로, 15mm 구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두꺼워지는 설계. 결과: 91.7%. 명호는 숫자를 세 번 읽었다. 85%가 기준이었고, 지붕 89.4%보다도 높았다. 그레이디언트 — 갑자기 바뀌지 않게 하는 것. 건설 현장에서 20년간 보아온 균열들은 언제나 경계에서 시작했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만나는 곳, 구조물과 지반이 만나는 곳, 온도가 급변하는 곳. "갑자기 바뀌면 갈라져."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서 명호는 중얼거렸다. 공책을 펼쳤다. 열한 번째 줄. '접합부 열 주기 91.7.. 웹소설 2026. 4. 15. [영겁의 새벽] 제48화 - 이음 제48화 - 이음 1. 새벽 다섯 시 이십 분. 한강 반포 둔치의 가로등이 물 위로 길게 번지고 있었다. 소율은 두 번째 8킬로미터를 뛰고 있었다. 어제 51분 23초. 오늘의 목표는 50분. 반포대교 아래를 지나 동작대교 방향으로 꺾는 구간에서 팔꿈치 각도를 좁혔다. 진우가 알려준 대로였다. 마지막 2킬로미터 전에 속도를 낮추고, 600미터 지점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200미터를 남기고 밀어붙인다. 강물 위로 새벽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서울의 4월은 아직 차가웠지만 뛰고 나면 따뜻했다.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마지막 200미터. 소율은 이를 악물지 않았다. 대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다리를 놀렸다. 몸이 앞으로 기울고, 발이 아스팔트를 치는 리듬이 빨라졌다. 스마트워치가 진동.. 웹소설 2026. 4. 14. [영겁의 새벽] 제47화 - 문 제47화 - 문 1. 명호는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다. 시뮬레이션 결과가 아침 일곱 시에 나올 예정이었지만,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벽 220μm, 바닥 280μm. 그리고 지붕. 내층을 100μm 두 겹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0.5mm 열 완충 갭을 넣는 구조. 2차에서 87.3%였다. 병목은 열 피로였고, 이중 구조가 답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제주도의 새벽 공기가 차갑게 밀려들었다. 바다 냄새가 섞인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공책을 펼쳤다. 여덟 번째 줄. '형이 바꾸지 않은 말을 소율이한테 직접 하기.' 수진이가 어젯밤에 보낸 메시지가 떠올랐다. "문만 남았다?" 벽과 바닥과 지붕을 만들면 집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수진이 말이 맞았다. 문이 없으면 집이 아.. 웹소설 2026. 4. 13. 이전 1 2 3 4 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