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20 [영겁의 새벽] 제141화 - 기다림 제141화 「기다림」 1. 문이 열리는 시각 엿새. 통합 점검이 끝난 아침이었다. 열두 상자는 이어진 채로 사흘을 견뎠고, 마지막 항목에 초록불이 들어온 뒤 통제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남은 일이 하나뿐이라서였다. 기다리는 일. 명호는 벽에 붙은 시각표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발사 예정 시각 아래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 줄의 길이가 겨우 손톱만 했다. "이게 다입니까."명호가 물었다."창이 십사 초라고요." "십사 초야."팀장이 시각표 옆에 섰다."저 위에 있는 고리는 제 길로 돌고 있고, 우리는 도는 땅 위에 서 있어. 우리가 그 길이 지나가는 자리 밑을 하루에 두 번 스쳐. 그 두 번 중에 각도가 맞는 순간이 십사 초야. 그때 올리면 그냥 그 길로 붙어. 십오 .. 웹소설 2026. 7. 31. [영겁의 새벽] 제140화 - 이음 제140화 「이음」 1. 이음매 열이틀. 세워 놓은 발사체는 이제 혼자 서 있지 않았다. 발사대 탑에서 뻗어 나온 케이블과 배관이 밑동부터 허리까지 발사체를 붙들었고, 어제까지 저마다 따로 놀던 상자 열두 개가 오늘 처음으로 한 줄로 이어졌다. 명호는 통합 시험의 첫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개별 시험에서 열두 상자는 전부 초록이었다. 하나하나 켜서 값을 재고, 흔들고, 식히고, 데워도 흠이 없었다. 그런데 선으로 이어 붙이자 삼번 계통의 센서 값이 아주 느리게 떨렸다. 경보가 울릴 만큼은 아니었다. 눈금 맨 아래에서 실낱같이, 숨 쉬듯이. "상자는 다 통과한 건데요."관제사가 화면을 짚었다."따로 켰을 땐 이런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붙이니까 생겼어요." "따로 켰으니 없었지."팀장이 옆으로 왔다."상자 .. 웹소설 2026. 7. 30. [영겁의 새벽] 제136화 - 벋음 제136화 「벋음」 1. 정한 데가 단단해야 벋는다 다음 달 공연의 첫 리허설이었다. 같은 방, 백네 석, 지난달 못 온 사람들의 자리. 소율은 이번엔 뼈대를 먼저 다 정해 두기로 했다. 조성도, 템포도, 곡과 곡을 잇는 순서도 종이에 적어 못을 박듯 굳혔다. 딱 두 마디, 후렴 앞 그 두 마디만 빈칸으로 남겼다. 그런데 그 두 마디를 지나 다음 소절로 넘어가는데, 소리가 지난달과 다른 데로 갔다. "어, 잠깐만요." 소율이 손을 들었다. "정해 둔 대로 안 나와요. 여기서 이렇게 올라가기로 했는데, 방금 저절로 다른 데로 갔어요." 건반이 손을 멈추고 웃었다. "그거 이상한 게 아니에요. 앞에 빈 두 마디를 지나왔잖아요. 빈 데를 지나온 숨이 그다음을 밀어요. 매번 다르게 비니까 그다음도 매번 달라지는.. 웹소설 2026. 7. 26. [영겁의 새벽] 제135화 - 뿌리내림 제135화 「뿌리내림」 1. 뿌리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 다음 달 공연은 같은 방, 백네 석. 어제 못 온 사람들 것으로 정해 두었다. 소율은 그 자리를 어떻게 채울지가 아니라, 그 방을 왜 또 그 방으로 두는지를 오늘 세션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기타를 든 세션이 먼저 입을 열었다."대기가 사백이 넘잖아요. 이번엔 큰 홀 잡으면 한 번에 다 받아요. 표도 팔리고, 다음 달 또 준비 안 해도 되고요.""그러면 이 곡이 안 자라요."소율이 악보를 넘기지 않고 대답했다."지난달에 온 사람들, 그날 저녁에 바로 좋았다고 한 사람은 몇 없었어요. 대부분 자고 일어나서, 며칠 지나서 연락이 왔어요. 노래가 그 사람 안에 자리 잡는 데 며칠이 걸린 거예요."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한 번 들은 소리는 그날 밤 잠자는.. 웹소설 2026. 7. 25. [영겁의 새벽] 제134화 - 물듦 제134화 「물듦」 1. 몰라서 멈추는 숨 추가 회차 이야기가 오전에 정리되었다. 같은 방, 다음 달, 백네 석. 기획자는 지난번처럼 표가 삼 분이면 다 나갈 거라고 했다. "이번엔 어제 오신 분들은 안 받을게요." 소율이 말했다. 기획자가 손을 멈췄다. "그분들이 제일 먼저 신청하실 텐데요. 어제 제일 좋았다고 하신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안 받는 거예요." 소율은 실황 녹음을 한 번 더 듣고 온 참이었다. 다섯 번째 곡의 그 두 마디, 파형이 바닥에 붙어 있던 자리. 어제 그 방에서 아흔여섯 명이 동시에 숨을 멈췄던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숨을 멈춘 건, 거기 침묵이 온다는 걸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에요." 소율이 말했다. "어제 온 분들이 다음 달에 또 오면, 그 자리를 알고 와요. 아,.. 웹소설 2026. 7. 24. [영겁의 새벽] 제133화 - 들음 제133화 「들음」 1. 멈춘 사람 발사까지 서른여덟 날. 명호가 통제실에 들어섰을 때, 어제 시계를 멈춘 관제사가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앉아서 해." "어젯밤에 계산을 다시 해 봤습니다. 그 누설량이면 발사까지 견뎠을 수도 있습니다. 압력 강하가 시간당 눈금 삼분의 일이니까, 여덟 시간을 다 채워도 규정선 안입니다." 그는 종이를 내밀었다. 숫자가 빼곡했다. "제가 너무 일찍 멈춘 것 같습니다. 여덟 시간짜리 리허설을 한 사람 판단으로 날린 겁니다." 명호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계산은 정확했다. 정말로 견뎠을 것이다. 팀장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네가 지금 나한테 뭘 물어보는지 알아?" 관제사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잘못한 .. 웹소설 2026. 7. 23. [영겁의 새벽] 제132화 - 치름 제132화 「치름」 1. 한 번뿐인 저녁 공연장 문은 여섯 시 반에 열렸다. 소율은 무대 옆 좁은 통로에 서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외투를 벗어 무릎에 얹는 소리, 낮게 주고받는 말소리. 어제 리허설에서 담요와 코트를 얹어 흉내 냈던 그 소리가 오늘은 진짜였다. 아흔여섯 석이 다 찼다. 건반이 통로 끝에서 손가락 셋을 펴 보였다. 삼 분 남았다는 뜻이었다. "어제 지운 거 셋." 소율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코러스, 잔음, 왼손." "오늘은 아무것도 더 안 넣기." 첫 곡은 무사히 지나갔다. 두 번째 곡의 두 번째 소절에서 건반이 처음으로 소율을 따라잡지 못했다. 반의 반 박쯤이었다. 객석은 아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소율은 알았다. 세 번째 곡이 끝나고 .. 웹소설 2026. 7. 22. [영겁의 새벽] 제131화 - 덜어냄 제131화 「덜어냄」 1. 빼는 리허설 공연 하루 전. 어제 붙인 열 마디는 오늘도 붙어 있었다. 소율은 그게 신기해서 아침에 두 번을 더 불러 봤고 두 번 다 됐다. 그러자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들뜨기 시작했다. "후렴 뒤에 코러스 한 겹 얹어 볼래요?" 건반이 말했다. "두 사람이 아래로 깔면 두꺼워질 텐데." 해 보기로 했다. 코러스를 깔고, 기타가 후렴 뒤에서 잔음을 길게 끌고, 건반이 왼손을 한 옥타브 내렸다. 확실히 두꺼워졌다. 그리고 뒷줄에 앉아 있던 음향 담당이 손을 들었다. "소율 씨 목소리가 안 들려요." "소리는 제일 컸는데요." "컸죠. 근데 안 들려요. 다른 얘기예요." 그가 콘솔 앞으로 와서 손가락 두 개를 나란히 세웠다. "사람 귀는 소리를 통으로 안 들어요. 높이별로 칸을 나.. 웹소설 2026. 7. 21. [영겁의 새벽] 제130화 - 익힘 제130화 「익힘」 1. 두 마디가 아니라 열 마디 공연 이틀 전. 소율은 어제 찾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아침부터 그 두 마디만 붙들고 있었다. 여린 반 박 앞에서 소리를 반쯤 접는 것. 열 번을 했고 열 번 다 됐다. 방 뒤에서 듣던 음향 담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통으로 한 번 불렀다. 그리고 그 두 마디에서 또 놓쳤다. "이상해요. 방금 열 번은 됐는데." "부분만 연습하면 그 부분만 늘어요." 음향 담당이 콘솔에서 손을 뗐다. "몸이 배우는 건 동작 하나가 아니라 동작에서 동작으로 넘어가는 이음매예요. 열 번 하실 때마다 소율 씨는 그 두 마디를 쉬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셨어요. 숨이 가지런한 데서요. 근데 통으로 부르면 그 앞 소절의 숨을 끌고 들어오시잖아요." 건반이 악보를.. 웹소설 2026. 7. 20. [영겁의 새벽] 제129화 - 물러섬 제129화 「물러섬」 1. 반 발 물러선 반주 공연 사흘 앞이었다. 소율은 어제 정한 그 음을, 후렴 직전의 여린 반 박을 정말 반만 냈다. 나머지 반은 방에 맡기기로 한 그 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자리가 통째로 사라졌다. "안 들려요." 뒷줄에 앉아 있던 음향 담당이 손을 들었다. "어제는 들렸는데 오늘은 아예 없어요." "똑같이 불렀는데요." 소율이 마이크에서 입을 뗐다. "그 음은 똑같았어요. 그 앞이 달라졌어요." 음향 담당이 무대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직전 소절을 오늘 훨씬 세게 부르셨거든요. 큰 소리가 난 직후에는요, 사람 귀가 잠깐 먹먹해져요. 백분의 몇 초에서 몇 십분의 일 초 사이, 그 뒤에 오는 여린 소리를 못 들어요. 소리끼리 겹치지 않아도 그래요. 앞선 소리가 뒤에 오는 소.. 웹소설 2026. 7. 19. [영겁의 새벽] 제123화 - 트임 제123화 「트임」 1. 목이 트이는 자리 소율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그 공연장에,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넷이서 들어섰다. 건반, 기타, 베이스, 그리고 소율. 세션 연주자들이 악기를 내려놓고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낮았다. 나무벽은 오래되어 결이 다 드러나 있었다. "잔향이 몇 초예요?" "0.8초요." 소율이 말했다. "손뼉 쳐서 재 봤어요." 건반 주자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럼 우리 소리 다 덜어 내야겠네." 그 말이 오늘의 전부였다. 녹음실에서 만든 편곡은 넓은 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저음을 두툼하게 깔고, 기타가 코드를 통째로 잡고, 건반이 그 위에 또 한 겹을 얹었다. 잔향이 이 초 넘게 남는 홀이라면 그 겹들이 서로의 빈틈을 메워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은 소리를 붙.. 웹소설 2026. 7. 13. [영겁의 새벽] 제122화 - 가늠 제122화 「가늠」 1. 손뼉 소리로 방을 재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오자, 소율은 아직 불도 다 켜지지 않은 객석 한가운데에 혼자 섰다. 백 석이 채 안 되는 작은 공연장이었다. 천장이 낮았고 벽은 오래된 나무였다. 어제까지는 후보였고, 오늘부터는 무대였다. "먼저 방부터 재 볼게요." 무대에 올라선 소율이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짧게, 한 번 손뼉을 쳤다. 짝. 소리가 앞으로 나갔다가 뒷벽에 닿고, 옆벽을 훑고, 낮은 천장을 스치며 되돌아왔다. 그 되돌아온 소리가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 잔향 시간이었다. 처음 세기의 백만분의 일로 잦아들 때까지 몇 초가 걸리는지—그 숫자 하나가 방의 성격을 거의 다 말해 준다고 음향 감독은 말했다. "큰 홀은 잔향이 이 초를 넘어가요. 웅장한데, 대신 앞말 꼬.. 웹소설 2026. 7. 12.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