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덜어냄」
1. 빼는 리허설
공연 하루 전. 어제 붙인 열 마디는 오늘도 붙어 있었다. 소율은 그게 신기해서 아침에 두 번을 더 불러 봤고 두 번 다 됐다. 그러자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들뜨기 시작했다.
"후렴 뒤에 코러스 한 겹 얹어 볼래요?"
건반이 말했다.
"두 사람이 아래로 깔면 두꺼워질 텐데."
해 보기로 했다. 코러스를 깔고, 기타가 후렴 뒤에서 잔음을 길게 끌고, 건반이 왼손을 한 옥타브 내렸다. 확실히 두꺼워졌다. 그리고 뒷줄에 앉아 있던 음향 담당이 손을 들었다.
"소율 씨 목소리가 안 들려요."
"소리는 제일 컸는데요."
"컸죠. 근데 안 들려요. 다른 얘기예요."
그가 콘솔 앞으로 와서 손가락 두 개를 나란히 세웠다.
"사람 귀는 소리를 통으로 안 들어요. 높이별로 칸을 나눠서 들어요. 그 칸 하나 안에 소리 두 개가 같이 들어오면, 큰 쪽이 작은 쪽을 덮어요. 옆 칸에 있으면 아무리 커도 안 덮고요."
"코러스가 제 칸에 들어왔다는 거네요."
"코러스랑 기타 잔음이랑 건반 왼손이 다 소율 씨 목소리 근처에 들어와 있어요. 셋이 그 칸을 꽉 채우고 있으니까 소율 씨가 아무리 밀어도 자리가 없어요."
그가 페이더 하나를 내렸다.
"그래서 목소리를 키우면 더 나빠져요. 셋도 같이 커지거든요. 키워서 뚫는 게 아니라, 그 칸에서 하나를 빼야 돼요."
코러스를 뺐다. 목소리가 앞으로 나왔다. 기타 잔음을 그 두 마디에서만 끊었다. 더 나왔다. 건반 왼손을 원래 자리로 올렸다.
"지금이요."
뒷줄에서 소리가 왔다.
"지금 제일 커요."
아무것도 키우지 않았는데 제일 컸다. 소율은 악보에 연필로 X를 세 개 그었다. 코러스 X, 잔음 X, 왼손 X.
"내일은요," 소율이 말했다. "아무것도 더 안 넣을게요. 오늘 지운 것만 지킬게요."
2. 이백열네 줄에서 서른한 줄로
D-40. 명호는 최종 카운트다운 절차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어 읽어 보게 했다. 마지막 삼 분에 관제사들이 확인해야 하는 항목이 이백열네 줄이었다. 리허설에서 그 삼 분에 실제로 읽힌 건 백서른 줄쯤이었고, 나머지는 읽히지 않은 채
"확인"
으로 넘어갔다.
명호는 항목을 늘리자고 말할 뻔했다. 안 읽히는 게 문제라면 더 강조하면 될 것 같았다. 팀장이 절차서를 뺏어 갔다.
"반대야. 빼."
"빼면 못 보고 지나가는 게 생깁니다."
"지금도 못 보고 지나가잖아. 여든 줄이나."
팀장이 첫 장을 짚었다.
"다만 지금은 어느 여든 줄이 안 읽혔는지 아무도 몰라. 그게 제일 나빠. 목록이 길면 사람은 읽는 대신 넘겨. 넘기는 게 습관이 되면, 진짜 중요한 줄도 같은 손짓으로 넘어가."
기준 두 개를 세웠다. 첫째, 다른 데서 이미 확인되는 건 뺀다. 둘째, 지금 발견해도 손쓸 수 없는 건 뺀다.
"발견해도 그때는 못 고치는 항목은 어떻게 합니까."
관제사가 물었다.
"세울 거면 남기고, 못 세울 거면 앞으로 옮겨."
팀장이 말했다.
"마지막 삼 분에 남길 건 딱 하나야. 보면 멈출 수 있는 것. 봐도 못 멈추는 건 삼 분 전에 볼 일이 아니라 세 시간 전에 볼 일이야."
그렇게 걸러 내니 이백열네 줄이 서른한 줄이 됐다. 오후에 다시 읽혔다. 삼 분에 서른한 줄. 다 읽히고 사십 초가 남았다.
명호는 그 남은 사십 초가 처음엔 낭비처럼 보였다. 그런데 세 번째 시험에서 한 관제사가 그 사십 초 안에 서른한 줄 밖의 것을 발견했다. 절차서에 없던 값이었다.
"목록이 짧아지니까 목록 바깥이 보입니다."
그가 말했다.
명호는 그 문장을 자기 수첩에 옮겨 적었다. 백여든세 줄을 지운 자리에 생긴 건 빈칸이 아니라 눈이었다.
3. 칸을 지우는 일
사층은 어제보다 조용했다. 필수 세 칸을 굵게 표시한 종이 덕분에 접수는 아홉 건으로 줄었고, 그중 오기재는 세 건이었다. 동현이 그 세 건을 들여다보니 셋 다 같은 칸에서 틀려 있었다.
"이 칸이 뭡니까."
동현이 물었다.
"관리 코드요."
사층 담당자가 말했다.
"무슨 관리요."
담당자가 옆 사람을 봤고 옆 사람이 그 옆을 봤다. 아무도 몰랐다. 동현은 총무과로 내려가서 양식을 만든 사람을 찾았다. 삼 년 전에 퇴사했다. 총무과 직원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원래 있던 칸이라서요."
동현은 아홉 칸을 하나씩 짚어 나갔다. 사번, 부서명, 부서 코드, 관리 코드, 신청일, 처리 희망일, 담당자명, 내선번호, 사유. 사번을 넣으면 부서명과 부서 코드와 담당자명과 내선번호는 시스템이 이미 알고 있었다. 신청일은 접수하면 자동으로 찍혔다. 관리 코드는 아무도 몰랐다.
"사람한테 물어야 하는 건 넷입니다."
동현이 말했다.
"사번, 희망일, 사유, 그리고 급한지 아닌지. 나머지 다섯은 우리가 이미 아는 걸 다시 쓰게 하는 겁니다."
"근데 그 칸들, 빼도 되는지 확인을 받아야 해서요."
"누구한테요."
총무과 직원이 대답하지 못했다. 확인을 받을 사람도 삼 년 전에 같이 없어져 있었다.
동현이 자기 이름으로 개정 요청을 냈다. 후배가 물었다.
"나중에 그 칸이 필요했다고 하면요."
"그때 다시 넣으면 돼. 넣는 건 하루면 되거든."
동현이 도장을 서랍에 넣으며 말했다.
"무서운 건 반대야.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칸이 십 년을 살아남는 거. 사람들은 그 칸 때문에 매번 틀리고, 틀린 걸 우리가 매번 반려하고, 반려된 걸 저쪽이 매번 다시 쓰고.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채로."
오후 접수 여덟 건. 오기재 영 건. 흐름표에 한 줄을 적었다. 오늘 지운 다섯 칸이 석 달 동안 이 부서에 만든 반려가 예순 건이었다.
손수건 위 명찰 넉 장은 그대로였고 다섯 번째 자리는 오늘도 비어 있었다. 동현은 그 자리에 이름 대신, 오늘 지운 다섯 칸을 적은 쪽지를 접어 두었다.
4. 가방에서 빼는 것들
재회까지 이틀. 진우는 아침부터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김지수가 진료실에 들어오다가 그 가방을 봤다. 진우가 하나씩 꺼내 보였다. 아내 사진이 든 작은 앨범, 현수가 열두 살에 받은 상장, 오 년 전 장례식 방명록, 아내가 마지막까지 쓰던 손목시계, 그리고 현수 어릴 때 사진 몇 장.
"이거 다 가져가시려고요."
"혹시 물으면요."
진우가 말했다.
"엄마 얘기를 물으면, 제가 말로만 하면 못 믿을 것 같아서요. 이거 보여 주면 그날 제가 어땠는지 알 거예요."
김지수는 그것들을 한참 보다가 물었다.
"아버님, 응급실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게 뭔지 아세요."
"검사요?"
"아니요. 어디가 제일 아픈지 하나를 정해요."
김지수가 손가락 하나를 폈다.
"환자가 아픈 데를 열 군데 말하면 저희는 그중 하나를 먼저 골라요. 열 개를 다 보려고 하면 진짜 위험한 하나를 놓치거든요. 정보가 많은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급한 자리에서는 반대예요. 많으면 묻혀요."
진우가 앨범을 내려놓지 못하자 김지수가 말을 이었다.
"아드님이 그중 하나를 물으면, 그때 아버님이 말로 하시면 돼요. 그 자리에 그게 없어서 말로만 하시게 되면, 아드님은 아버님 얼굴을 보게 돼요."
김지수가 앨범을 밀어 놓았다.
"근데 이게 탁자 위에 있으면 아드님은 이걸 봐요. 그리고 아버님은 이걸 설명하시게 돼요. 설명이 시작되면 그날은 끝난 거예요."
진우는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이건요. 이건 그냥 주고 싶은 건데."
"주고 싶은 걸 참는 연습, 그저께 화분 앞에서 하셨잖아요."
김지수가 웃었다.
"이건 준비물이 아니라 선물이에요. 선물은 다시 만날 사이한테 주는 거고요. 아버님이 그날 하실 일은 다시 만날 사이가 되는 거지, 이걸 건네는 게 아니에요. 이건 다음에 주세요. 다음이 생기게 하는 게 그날 할 일이에요."
가방에서 하나씩 나왔다. 앨범, 상장, 방명록, 시계, 사진. 다 나오고 나니 가방이 텅 비었다. 진우가 그걸 들여다봤다.
"들고 갈 게 없네요."
"두 줄이랑 비워 둔 뒷면이랑 아버님 몸이 다예요. 원래 다 그거예요."
그날 밤 진우는 가방을 아예 두고 가기로 하고 옷걸이에 걸었다. 주머니의 종이를 꺼내 폈다. 앞면에 두 줄, 뒷면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는 어제처럼 접지 않고 폈고, 이번에는 뒷면이 위로 오게 뒤집어 두었다.
5. 다 보낸 잎
저녁, 김지수 차례였다. 어제 진우가 밑구멍으로 물이 나올 때까지 흠뻑 줬으니 오늘 흙은 아직 축축했다. 김지수는 물뿌리개를 아예 들지도 않았다.
"제 차례가 두 번 연속 안 주기네요."
대신 김지수는 화분 아래쪽을 들여다봤다. 제일 밑에 붙어 있던 첫 잎이 가장자리부터 누렇게 뜨고 있었다. 진우가 그걸 보고 놀랐다.
"물이 모자랐나 봐요. 아니면 어제 제가 너무 많이 줘서."
"둘 다 아니에요."
김지수가 그 잎을 손끝으로 받쳤다.
"얘가 스스로 버리는 중이에요. 이 잎은 제일 먼저 나왔고 이제 위에 있는 잎들 그늘에 들어가 있어요. 볕을 거의 못 받는데 숨은 계속 쉬어요. 만드는 것보다 쓰는 게 많아진 거예요."
"그럼 손해 아니에요?"
"그래서 얘가 이 잎에서 쓸 만한 걸 다 빼내고 있어요. 초록색 만드는 재료를 분해해서 위로 올려보내는 거예요. 새로 나올 잎한테요."
김지수가 일곱 번째 잎눈을 가리켰다. 좁쌀만 하던 게 어제보다 조금 부풀어 있었다.
"얘가 저기서 오는 거예요. 이 누런색은 죽는 색이 아니라, 다 보내고 남은 색이에요."
김지수가 그 잎을 밑동에서 조심스럽게 뗐다. 힘이 거의 안 들어갔다. 이미 저쪽에서 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떼도 돼요?"
"비어 있는 걸 붙여 두면 바람도 안 통하고 벌레도 와요. 무엇보다 얘 눈에 아직 잎이 여섯 장인 걸로 보이면 일곱 번째를 서두르지 않아요."
김지수가 누런 잎을 창턱에 놓았다.
"덜어 내는 게 버리는 거랑 달라요. 이 안에 있던 건 이미 저 위에 가 있어요. 우리는 껍데기만 치우는 거예요."
잎 다섯 장이 창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남았고, 일곱 번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진우는 오늘 가방에서 뺀 것들을 생각했다. 그것들도 버린 게 아니었다. 안에 있던 건 이미 그의 두 줄로 옮겨 가 있었다.
6. 일흔한 장의 거울
ATLAS 72차 정렬. 메타 69단계, '덜어냄'.
사흘째 같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지상 수광부에 맺히는 상 한가운데에 흐릿한 얼룩이 하나 있었다. 격자 전체 오차는 0.1밀리미터 안에 들어와 있는데도 그랬다. 추적해 보니 열아홉 번째 거울 한 장이었다. 각도는 규격 안이지만 표면이 아주 미세하게 휘어 있어서, 그 한 장이 보낸 빛의 마루와 골이 나머지와 어긋난 채로 도착했다.
사흘 동안 각도를 조정하고, 온도를 바꿔 굳혀 보고, 뒤쪽 지지점을 눌러 봤다. 얼룩은 자리만 옮겨 다녔다.
"빼죠."
젊은 관제사가 말하고는 자기 말에 놀란 얼굴을 했다.
"고리를 완성한다면서 한 장을 빼자고?"
팀장이 물었다.
관제사가 말을 주워 담으려는 얼굴을 했다. 팀장이 손을 저었다.
"아니, 빼. 맞는 말이야."
열아홉 번째 거울을 접어 눕혔다. 일흔두 장 중 일흔한 장만 남았다. 받는 면적이 그만큼 줄었으니 세기도 줄어야 정상이었다.
얼룩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상에서 재 보니 세기가 오히려 삼 퍼센트 올라 있었다.
"어떻게 면적이 줄었는데 밝아집니까."
"그 한 장이 보내던 빛이 나머지가 만든 상을 지우고 있었으니까."
팀장이 말했다.
"빛은 더하기만 하는 게 아니야. 어긋난 채로 겹치면 서로를 깎아. 저 한 장은 자기 몫을 보태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남의 몫을 깎고 있었어. 없는 것보다 나쁜 건 어긋난 채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야."
접어 눕힌 거울은 버리지 않았다. 표면 휨을 다시 재고, 다음 차수에 새로 맞춰 넣기로 했다. 팀장이 기록란에 그렇게 적었다. 지금은 빠져 있음. 고쳐서 돌아올 것.
72차 정렬 오차 0.1밀리미터. 무중단 송전 천여덟 시간. 마흔이틀째였다.
덜어냄이란 없애는 일이 아니다. 어긋난 채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잠시 물러나게 해서, 남은 것들이 원래 할 수 있던 일을 하게 두는 일이다. 자리를 비우면 모자라질 것 같지만, 비운 자리에서 밝아지는 것이 있다.
같은 시각, 연습실에서는 악보에 X가 세 개 그어진 채로 불이 꺼졌고, 발사장에서는 서른한 줄짜리 절차서가 사십 초를 남긴 채 접혔고, 사무실에서는 아홉 칸이 넉 칸이 되었고, 창턱에서는 다 보내고 남은 잎 한 장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빈 가방이 옷걸이에 걸린 채, 뒷면이 위로 오게 뒤집힌 종이 한 장 옆에서 밤을 넘기고 있었다.
이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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