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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125화 - 버팀

우주관리자 2026. 7. 15.

제125화 「버팀」

1. 들리지 않아도 부르는 일

무대 앞 바닥에 납작한 스피커 두 대가 소율을 향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폴드백이라고 했다. 객석으로 나가는 소리 말고, 노래하는 사람이 제 소리를 되돌려 듣는 스피커.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방이 울었다. 삐— 하고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가 천장에서 벽으로 튀며 저 혼자 부풀었다. 소율이 마이크를 내렸다.

"하울링이에요." 음향 담당이 얼굴을 찌푸리며 페이더를 내렸다. "마이크가 받은 소리를 스피커가 내보내고, 그 소리를 마이크가 또 받아요. 고리가 생긴 거죠. 그 고리를 한 바퀴 돌 때마다 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어느 한 음이 저 혼자 자라서 방을 다 잡아먹어요."

천장이 낮고 나무 벽이 가까운 방이었다. 소율이 고른 그 방. 잔향이 짧아 목소리가 곧게 가는 대신, 되돌아오는 길도 그만큼 짧았다. 담당은 우는 음 하나를 찾아 그 자리만 좁게 깎아 냈다. 그러고도 모자라 모니터 볼륨을 뚝 떨어뜨렸다.

소율이 다시 불렀다. 이번엔 방이 울지 않았다. 대신, 제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안 들려요." 소율이 마이크를 쥔 채 말했다. "제 소리가 안 들리니까 음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조금만 올려 주시면……"

"올리면 또 울어요." 담당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딱 우는 문턱 바로 아래예요. 여기서 한 눈금만 올리면 고리가 다시 돌아요."

소율은 잠깐 서 있었다. 자기 소리를 자기가 못 듣는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발밑이 없는 데를 걷는 것 같았다.

"버티세요." 담당이 말했다. "안 들리는 걸 못 견뎌서 볼륨을 올리는 순간,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안 들려요. 방이 우는 소리밖에."

소율은 눈을 감고 다시 불렀다. 귀 대신 다른 것들이 켜졌다. 가슴뼈로 올라오는 떨림, 나무 벽에 부딪혔다 살갗으로 돌아오는 얇은 기척, 건반이 짚어 주는 자리. 첫 소절은 반음쯤 헤맸다. 두 번째 소절에서 자리를 찾았다. 세 번째부터는, 들리지 않는 채로도 노래가 됐다.

세션 셋이 동시에 소율을 봤다. 건반이 조그맣게 말했다. "지금이 제일 좋았어요."

2. 고치지 않고 안고 가는 것

발사 마흔엿새 전. 비행 소프트웨어는 그저께 자정에 얼렸다. 코드 한 줄도 손대지 않기로 서명한 다음 날, 하필 결함이 나왔다.

관성측정장치 세 대 중 한 대. 온도가 올라갈수록 값이 아주 조금씩 한쪽으로 치우쳤다. 규격 상한을 넘지는 않았다. 다만 상한선 코앞까지 걸어가 있었다.

"교체하죠." 젊은 엔지니어가 말했다. "아니면 코드에서 그 센서 보정값만 한 줄……"

"안 고쳐." 명호가 도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저건 자세를 읽는 눈이잖습니까. 눈이 삐뚤어졌는데 그냥 갑니까?"

명호가 세 개의 선이 그려진 그래프를 손끝으로 짚었다. "눈이 세 개야. 셋이 각각 값을 내면 비행 컴퓨터가 뭘 쓰는지 알아?"

"…평균 아닙니까."

"가운데 값을 써. 셋 중에 가운데. 한 놈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놈은 절대 가운데가 못 돼. 자동으로 안 뽑히는 거지. 고치지 않아도 저 혼자 밀려나는 거야. 셋을 둔 이유가 그거고."

다수결. 세 개의 눈 중 어느 하나가 거짓말을 해도, 나머지 둘이 가운데를 잡아 준다. 고치는 대신 견디게 만들어 둔 구조였다.

"지금 저걸 고치려면 얼린 코드를 깨야 해." 명호가 도면을 접었다. "새로 넣은 한 줄은 아무도 몇백 번 돌려 보지 않은 한 줄이야. 로켓은 고친 자리에서 안 터져. 고치느라 흔들어 놓은, 안 고친 자리에서 터지지."

오후 훈련에서 명호는 일부러 그 센서가 규격을 벗어났다는 가짜 신호를 관제실에 흘렸다. 경고등이 켜졌다. 손이 여럿 올라가려다 멈췄다. 아무도 카운트다운을 멈추지 않았다. 시계는 계속 갔다.

"잘했어." 명호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멈춰야 할 것과 안고 가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게 오늘 훈련이야. 발사 전에 완벽해지는 로켓은 없어. 완벽하지 않은 채로 견디게 만들어 두는 거지."

3. 흔들리지 않는 하루

어제 정한 규칙이 오늘 처음 시험을 받았다. 결재 접수는 오전 열한 시 마감, 급한 것 칸은 하루 두 건.

열한 시 삼 분에 옆 부서 직원이 서류 뭉치를 안고 왔다. 후배가 시계를 봤다가 서류를 봤다가, 동현을 봤다.

"내일 첫 칸으로 받겠습니다." 동현이 말했다.

삼 분 때문에 전화가 세 통 왔다. 급한 것 칸은 아침에 이미 찼다. 열한 시 반에는 옆 부서 과장이 직접 걸어 올라왔다.

"우리 부장이 오늘 중이라고 했어요. 딱 한 건만 예외로 넣어 줘요."

"오늘 그 말이 네 번째입니다." 동현이 흐름표를 돌려 보여 줬다. "예외를 한 번 두면 규칙은 없어집니다. 규칙이 없어지면 내일 아침에 또 스무 건이 한꺼번에 들어와요. 그러면 오늘처럼 한 건도 못 나갑니다."

과장이 입술을 다물고 내려갔다. 오후 내내 사무실 공기가 뻑뻑했다. 후배가 자기 자리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결국 말했다.

"저 때문에 과장님이 욕먹으시는 것 같아서요."

"규칙은 만든 날에 정해지는 게 아니야." 동현이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처음 흔들리는 날에 정해져. 오늘 한 건 넣어 주면 그건 규칙이 아니라 부탁이 되는 거고, 부탁은 힘센 사람 순서대로 들어와."

저녁 여섯 시, 흐름표를 세어 봤다. 어제 스무 건이 한꺼번에 들어온 날, 부서 밖으로 나간 결재는 영 건이었다. 오늘 나간 건 열네 건이었다.

퇴근 무렵 옆 부서 과장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항의는 없었다. 내일 첫 칸을 예약한다는 짧은 한 줄이었다.

동현은 박영자의 손수건 위에 놓인 명찰 세 장을 잠깐 들여다봤다. 받은 자리, 딛고 선 자리, 막 딛기 시작한 자리. 버틴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어제 정해 둔 것을 오늘 하루 더 그대로 두는 일이었다. 그게 오늘 사무실에서 제일 힘든 일이었다.

4. 여드레, 답을 만들지 않는 밤

주머니 속 종이에는 두 줄뿐이었다. 왔구나. 미안하다.

어제 백 개의 물음과 백 개의 답을 지우고 남긴 두 줄이었다. 그런데 지운 것들이 하루 종일 되살아났다. 설거지를 하다가, 버스를 기다리다가, 물음이 하나씩 떠올랐고 그때마다 손이 저절로 종이 쪽으로 갔다. 새벽 세 시에는 결국 한 문장을 썼다. 쓰고 나서 십 분을 들여다보다 그었다.

낮에는 더 위험한 짓을 할 뻔했다. 현수에게 보낼 문자를 쓰다가 손가락이 멈췄다.

「그날 뭘 물어보고 싶은지, 미리 알려 주면 아버지가……」

진우는 그 문장을 김지수에게 보여 줬다.

"보내면 편해지시죠?" 지수가 물었다.

"네."

"누가 편해져요?"

진우는 화면을 오래 봤다. "…제가요."

"아드님은 지금 여드레째 벼르고 있는 거예요. 오 년 만에 아버지한테 처음으로 뭘 물어보려고요." 지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미리 알려 달라고 하시면, 그 물음을 아드님 손에서 뺏어 오는 거예요. 그러면 그날은 준비된 질문에 준비된 답이 오가요. 둘 다 아무 말도 안 한 거나 같아요."

진우는 글자를 하나씩 지웠다. 마지막 글자까지 지우고 나니 빈 화면이 손바닥처럼 하얬다.

"그럼 저는 여드레 동안 뭘 합니까." 진우가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라는 겁니까."

"버티세요." 지수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늘 하실 일 중에 제일 어려운 일이에요. 손이 자꾸 뭘 만들려고 할 거예요. 그때마다 주머니에 있는 두 줄을 꺼내 보세요. 늘어나지만 않으면 오늘 하루는 성공이에요."

그날 밤 진우는 세 번 종이를 꺼내 봤다. 두 줄이었다. 여전히 두 줄이었다. 아무것도 늘지 않은 종이를 다시 접어 넣으면서, 진우는 오늘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참은 것이었다. 그리고 참은 것이 오늘의 전부였다.

5. 바람이 줄기를 굵게 한다

물주기는 김지수 차례였다. 지수는 물뿌리개를 들기 전에 창부터 활짝 열었다. 아침 바람이 들이쳤고, 어제 지지대에 느슨히 묶어 둔 새 줄기가 크게 휘었다.

"어어." 진우가 손을 뻗었다. "바람 들어오면 넘어지지 않을까요. 창 닫을까요."

지수가 웃으며 진우의 손을 붙잡아 내렸다. "넘어지라고 여는 거예요."

"네?"

"온실에서 바람 한 점 없이 기른 줄기는요, 보기엔 멀쩡한데 손으로 툭 치면 꺾여요. 흔들려 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지수가 휘었다 돌아온 줄기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식물은 흔들릴 때마다 줄기를 굵게 만들어요. 키를 늘이는 데 쓰던 힘을 벽을 두껍게 하는 데로 돌리는 거예요. 흔들림이 신호인 셈이죠. '여기는 바람이 부는 자리다, 굵어져야 한다'고요."

"바람이 없으면요."

"아무 신호도 안 와요. 그러니까 계속 키만 늘여요. 어제 웃자란 게 그거고요." 지수는 지지대와 줄기 사이의 실을 살짝 당겨 보였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 헐거웠다. "그래서 이걸 꽉 안 묶은 거예요. 꽉 묶으면 줄기는 흔들리지도 않고, 흔들리지 않으면 영영 안 굵어져요. 이건 붙잡아 주는 게 아니라 넘어가려고 할 때만 걸리게 두는 거예요."

바람이 한 번 더 들이쳤다. 줄기가 활처럼 휘었다가, 실에 스치듯 걸렸다가,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잎 여섯 장이 한꺼번에 뒤집혔다 바로 섰다.

진우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어제 물길을 텄더니 줄기가 웃자랐고, 오늘은 흔들려야 굵어진다고 한다. 밤새 백 개의 답을 지어 아들 앞에 세워 두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실을 꽉 묶는 짓이었다.

"흔들리는 걸 막아 주면 영영 못 서요." 지수가 물을 얇게 부으며 말했다. 오늘은 아주 조금만. "흔들려 봐야 굵어져요."

줄기 색이 어제보다 조금 진해져 있었다. 하루 만에 눈에 띌 만큼은 아니었지만, 옅은 연둣빛이 아주 조금 짙은 쪽으로 걸어가 있었다. 여덟 밤 남았다.

6. 처음 몇 초를 버티는 힘

정렬 예순여섯 차. 메타 63단계 — 버팀.

세 문에 조속기를 걸고 드룹으로 기울기를 준 뒤 궤도는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밤 여덟 시 십칠 분에 깨졌다.

남쪽 지상의 대형 발전소 한 기가 사고로 계통에서 떨어져 나갔다. 짐은 그대로인데 짐을 지던 사람 하나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주파수가 곤두박질쳤다.

"떨어집니다." 관제사가 소리쳤다. "세 문 다 최대로 올릴까요."

"올리지 마." 팀장이 화면 앞으로 다가섰다. "지금 셋이 동시에 다 채우려 들면 어제 그 파도가 다시 와."

화면의 곡선이 아래로 꺾이다가, 어느 지점에서 기울기가 눈에 띄게 완만해졌다. 지상의 다른 발전기들이었다. 수십 톤짜리 회전자들이 돌면서 쌓아 둔 운동에너지를 제 몸에서 조금씩 내주며 천천히 느려지고 있었다. 그 몇 초가 계통이 스스로 버티는 시간이었다. 관성. 무거우니까 갑자기 느려지지 못하는 힘.

"우리한텐 저게 없습니다." 신참이 말했다. 사실이었다. 궤도에서 내려오는 빛은 회전자를 돌리지 않는다. 전자 소자가 파형을 그려 낼 뿐이다. 무게가 없으니 버틸 것도 없다. 원래대로라면 궤도의 세 문은 주파수가 무너지는 걸 구경만 하다가 늦게 도착해야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세 문은 주파수의 값이 아니라 주파수가 떨어지는 속도를 읽고 있었다. 떨어지는 속도가 가팔라진 그 순간, 세 문이 마치 무거운 회전자를 하나씩 달고 있는 것처럼 즉시 힘을 밀어 냈다. 가상의 관성. 없는 무게를 흉내 낸 것이다.

몇 초 뒤 조속기가 도착했다. 드룹대로 각자 제 몫만큼만 올리고 멈췄다. 곡선이 바닥을 찍고 되돌아 올라왔다. 최저점은 규정선 위에서 멈췄다. 지상 어느 동네의 전등도 꺼지지 않았다.

"봤지." 팀장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제어가 도착하기 전에 버텨 줄 게 없으면, 제어는 와도 아무것도 못 해. 다 무너진 다음에 오는 거니까."

오늘 네 번째 문은 열지 않았다. 자리는 그대로 비워 두었다. 버틴 날엔 늘리지 않는다는 게 이 방의 규칙이었다. 격자는 예순여섯 차에서도 0.1밀리미터를 지켰다. 무중단 송전 864시간, 서른여섯 날째.

버팀이란 이겨 내는 일이 아니다. 무너지기 전에 몇 초를 벌어 주는 일이다. 그 몇 초 안에 되돌릴 힘이 도착한다. 버티지 못하면 되돌릴 힘은 늦게 오고, 늦게 온 힘은 아무것도 되돌리지 못한다. 그러니 오늘 해야 할 일은 서둘러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되돌릴 힘이 닿을 때까지 제자리에서 몇 초를 더 서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