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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123화 - 트임

우주관리자 2026. 7. 13.

제123화 「트임」

1. 목이 트이는 자리

소율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그 공연장에,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넷이서 들어섰다. 건반, 기타, 베이스, 그리고 소율. 세션 연주자들이 악기를 내려놓고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낮았다. 나무벽은 오래되어 결이 다 드러나 있었다.

"잔향이 몇 초예요?"

"0.8초요." 소율이 말했다. "손뼉 쳐서 재 봤어요."

건반 주자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럼 우리 소리 다 덜어 내야겠네."

그 말이 오늘의 전부였다. 녹음실에서 만든 편곡은 넓은 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저음을 두툼하게 깔고, 기타가 코드를 통째로 잡고, 건반이 그 위에 또 한 겹을 얹었다. 잔향이 이 초 넘게 남는 홀이라면 그 겹들이 서로의 빈틈을 메워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은 소리를 붙들어 주지 않았다. 낸 만큼만 들리고, 낸 그대로 사라졌다.

첫 합주는 엉망이었다. 소리가 서로의 목을 막았다. 베이스의 저음과 건반 왼손이 같은 자리에서 부딪혀 뭉갰고, 그 위로 소율의 목소리가 나오려다 도로 밀려 들어갔다. 두 번째 소절에서 소율은 아예 노래를 멈췄다.

"제 소리가… 나갈 데가 없어요."

기타 주자가 앰프의 볼륨을 반의반쯤 내렸다. 건반 주자는 왼손을 아예 놓았다. 코드의 뿌리를 베이스에게 통째로 넘기고, 자기는 오른손으로 화음의 위쪽 두 음만 짚었다. 세 사람이 각자 한 겹씩 덜어 내자, 그 자리에 세로로 길쭉한 빈 통로가 생겼다. 소율이 그 통로로 목소리를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나갔다. 힘을 더 준 것도 아닌데, 소리가 벽까지 곧게 가서 뒷줄에 닿았다.

"길이 트였네." 베이스 주자가 웃었다.

후렴 직전, 두 마디의 빈칸이 다가왔다. 녹음본에서는 반 박 흔들린 그 자리. 라이브에서는 매번 똑같이 흔들 수 없으니 아무것도 정해 두지 않기로 한 자리. 소율은 숨을 들이켰고, 세 사람은 손을 멈추고 그 숨을 들었다. 두 마디의 침묵이 나무벽 사이에서 아주 짧게 웅웅거렸다가 잦아들었다. 0.8초. 견딜 만한 길이였다. 소율이 흔들리며 첫 음을 내자, 건반이 반 박 뒤에 슬며시 따라 들어왔다.

"안 흔들리면요?" 건반 주자가 물었다.

"그럼 그냥 지나가 주세요."

"그건 매일 다르겠는데."

"매일 달라도 돼요." 소율이 말했다. "그날 트인 만큼만 부를 거예요."

2. 끊기지 않는 길

발사 D-48. 명호는 관제실 벽에 붙은 지도를 보고 있었다. 발사장에서 바다 쪽으로 뻗은 궤적선 위에, 지상국 안테나의 가시 범위가 부채꼴로 세 개 그려져 있었다. 어제까지는 발사체가 얼마나 견디느냐를 쟀다. 오늘은 발사체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느냐를 본다.

"올라가는 동안 우리가 저놈한테서 듣는 건 전파 하나뿐이야." 명호가 젊은 관제사에게 말했다. "그게 끊기면, 우리는 폭발했는지 잘 가고 있는지도 몰라."

문제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었다. 발사체가 이륙해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면, 발사장의 안테나는 더 이상 그것을 볼 수 없다. 전파는 대체로 곧게 갈 뿐, 지구를 따라 굽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첫 번째 지상국이 놓치기 전에 두 번째 지상국이 받아야 하고, 두 번째가 놓치기 전에 바다 위 추적선이 받아야 한다. 안테나를 넘겨주고 넘겨받는 일. 핸드오버라고 불렀다.

"넘기는 순간에 겹치는 구간을 몇 초 두게." 명호가 말했다. "먼저 놓고 나서 받으면, 그 사이가 침묵이야."

전파 세기도 계산해 두어야 했다. 발사체의 송신 출력은 정해져 있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신호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묽어진다. 안테나가 잡아낼 수 있는 가장 여린 세기와 실제로 도착할 세기의 차이 — 그것이 여유였다. 비가 오면 그 여유를 조금 갉아먹고, 발사체가 기울어 안테나를 옆구리로 보게 되면 또 갉아먹는다.

"오늘 몇 데시벨 남습니까?" 관제사가 물었다.

"세 데시벨." 명호가 답했다. "절반이라는 뜻이야. 반이 사라져도 아직 들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구간이 하나 있었다. 페어링 분리 직전, 발사체가 제 몸으로 안테나를 가리는 몇 초. 그 짧은 동안에는 아무리 애써도 길이 막힌다.

"막히는 건 못 뚫습니다." 관제사가 말했다.

"못 뚫지." 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그 몇 초 동안 할 말을 기록해 뒀다가, 트이는 순간에 몰아서 내려보내게 해.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늦게 오는 걸로."

시험 신호를 흘려 보냈다. 세 부채꼴을 차례로 지나가는 동안, 화면의 신호 세기 곡선이 한 번 내려앉았다가 다음 안테나가 물면서 다시 올라섰다. 계곡은 있었지만 바닥까지 끊기지는 않았다.

"길이 이어졌습니다."

명호는 곡선의 그 얕은 계곡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저 계곡이 하나라도 바닥에 닿는 날, 그들은 눈을 감은 채로 로켓을 올려 보내야 한다.

3. 두 번 돌던 것을 한 번으로

동현의 도장은 여전히 서랍 안에 있었다.

어제 신입은 후배에게 넘길 일을 열두 건에서 네 건으로 다시 줄이고, 각 건마다 걸릴 시간을 적은 쪽지를 붙였다. 오늘 그 네 건이 아침에 다 돌아왔다. 후배의 어깨는 굽어 있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후배가 처리한 서류가 옆 부서로 갔다가, 도장 한 칸이 빈 채로 되돌아왔다. 이유를 물으니 "이건 우리 과장님 결재 먼저 받고 오셔야 한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 과장의 결재는, 옆 부서 도장이 찍혀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서로 상대가 먼저래요." 신입이 서류를 들고 서 있었다. "그래서 두 번을 돌았어요."

동현은 그 흐름표를 종이에 그려 보았다. 화살표가 우리 부서에서 옆 부서로 갔다가, 다시 우리 과장에게 왔다가, 또 옆 부서로 갔다. 같은 자리를 두 번 지나가는 고리가 있었다.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서류만 제자리를 맴돌았다.

"이건 사람 문제가 아니라 길 문제야."

동현은 과장에게 갔다. 이 년째 아무도 손대지 않던 순서였고, 손대자면 두 부서가 같이 앉아야 했다. 과장은 흐름표를 한참 보더니 옆 부서 과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오후에 네 사람이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십오 분 만에 결론이 났다. 옆 부서 도장을 먼저 받는 것으로, 대신 우리 과장이 그 전에 한 줄짜리 사전 확인을 서면으로 준다는 것.

막힌 데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화살표 하나였다.

신입이 새 흐름표를 그려 후배에게 건넸다. 두 번 돌던 고리가 한 줄로 곧아져 있었다. 박영자의 손수건 위에 명찰이 세 장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받은 자리, 딛고 선 자리, 막 딛기 시작한 자리. 동현은 그 옆에 새로 그린 흐름표 한 장을 얹었다.

"막히면 돌아가는 게 아니라, 막힌 데를 트는 게 일이야." 그가 신입에게 말했다. "돌아가는 건 오늘은 편하고 내년에도 막혀 있어."

4. 오 년 만에 트인 말

재회까지 열흘.

진우는 어제 다림질해 둔 셔츠를 옷걸이에 걸어 두고, 현수에게 줄 상자를 마지막으로 열어 보았다. 고쳐 놓은 옛 라디오와 놀이공원 사진. 뚜껑은 여전히 한 마디 틈을 두고 닫혀 있었다.

김지수가 물을 끓이는 동안, 진우는 상자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 오래 앉아 있었다. 그러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입을 열었다.

"그날, 제가 애 엄마 장례식에서… 현수한테 소리를 질렀어요."

주전자 물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열여덟이었어요. 애가 병실에 늦게 왔거든요. 시험 기간이라고. 그게 뭐 그리 잘못인가 싶은데, 그때 저는 그 말밖에 안 나왔어요. 네 엄마 죽는데 너는 어디 있었느냐고. 사람들 앞에서."

진우는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현수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울지도 않고. 그러고 나가더니, 오 년을 안 왔어요. 저는 그 뒤로 그날 얘기를 아무한테도 못 했어요. 하려고 하면 목이 막혀서."

김지수는 잔을 내려놓고 진우 맞은편에 앉았다. 재촉하지 않았다.

"오늘 처음이에요. 소리 내서 말해 본 게."

"어떠세요?" 김지수가 조용히 물었다.

진우는 잠깐 제 목을 만졌다.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오 년 동안 그 문장이 목 안에서 부어 있었는데, 밖으로 나오고 나니 부기가 가라앉은 자리처럼 헐렁했다.

"트였어요." 그가 말했다. "말이."

"그 말을 그날 벤치에서 하실 건가요?"

"…해야겠죠."

"그럼 오늘 한 번 해 보신 게 다행이에요." 김지수가 말했다. "처음 내는 소리는 갈라져요. 오늘 여기서 갈라졌으니, 그날은 조금 덜 갈라질 거예요."

진우는 상자 뚜껑의 한 마디 틈을 손끝으로 만졌다. 담되 닫지 않은 자리. 그 틈이 왜 필요한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닫힌 상자는 아무것도 못 주고, 열린 목은 아무 말이나 다 뱉는다. 한 마디쯤 트여 있는 것 — 그 정도가 좋았다.

벽시계의 초침이 여전히 돌고 있었다. 열흘.

5. 흙에 숨길을 내다

화분은 김지수의 차례였다. 이름표 뒤에는 '내일은 진우 차례'라고 적혀 있었다.

여섯 번째 잎눈이 밤사이 벌어져 여린 잎꼴이 되어 있었다. 잎이 여섯 장. 처음 심었을 때의 모종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김지수가 손가락을 흙에 넣어 보더니 이맛살을 찌푸렸다.

"흙이 딱딱해요."

진우도 눌러 보았다. 물을 매일 얇게 준 지 여러 날, 흙 알갱이들이 서로 눌려 붙어 표면이 접시처럼 굳어 있었다. 물을 부으면 스미지 않고 옆으로 흘러 화분 벽을 타고 내려갔다.

"뿌리도 숨을 쉬어요." 김지수가 말했다. "흙 알갱이 사이의 틈으로요. 그 틈이 막히면 물은 고여 있는데 뿌리는 마르는 거랑 비슷해져요. 숨을 못 쉬니까."

"물을 줬는데 목이 마른 거네요."

김지수는 젓가락을 하나 가져와, 뿌리를 다치지 않게 가장자리부터 조심스럽게 흙에 찔러 넣었다. 몇 군데에 구멍을 냈다. 세 번째 구멍에서 굳은 껍질이 툭, 하고 갈라졌다. 그다음에 물을 붓자, 이번에는 옆으로 흐르지 않고 그 자리로 곧게 스며들었다.

"부어 주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군요."

"들어갈 길이 있어야 들어가죠." 김지수가 젓가락을 씻으며 말했다. "매일 성실하게 부어도, 길이 막혀 있으면 그건 준 게 아니에요. 흘려보낸 거지."

진우는 그 말을 오래 들고 있었다. 오 년 동안 그는 현수에게 아무것도 안 준 게 아니었다. 마음이야 매일 부었다. 다만 그 마음이 갈 길이 굳어 있었을 뿐이다. 편지를 부치고, 자리를 정해 알리고, 목소리를 먼저 들려주고, 오늘 아침 오 년 만에 목이 트인 것 — 그 전부가 젓가락으로 낸 구멍 같은 것이었다.

화분을 반 바퀴 돌려 그늘진 쪽에 볕을 주었다. 여섯 장의 잎이 저마다 다른 높이에서 같은 쪽을 보고 있었다.

같은 열흘.

6. 세 번째 문이 열리다

ATLAS 64차 정렬. 메타 61단계 — '트임'.

어제 관제실은 계전기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열 수 있었지만 열지 않았다. 대신 이 초짜리 시험 펄스를 지상망에 얹었다 빼며, 받는 쪽이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를 읽었다. 답은 나왔다. 받는다, 다만 한 번에 다 열면 주파수 곡선이 서너 배로 부푼다.

그래서 오늘은 여는 날이되, 정해 둔 방식대로 여는 날이었다.

먼저 세 번째 접속점의 위상과 주파수를 지상망의 박자에 맞추었다. 두 파형이 화면에서 서로를 향해 다가가다가 마침내 한 줄로 겹쳤다. 머리카락 한 올도 어긋나지 않는 그 순간, 계전기가 닫혔다.

딸깍, 하는 소리는 우습도록 작았다. 궤도의 거울이 모은 빛이 세 번째 문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은 열렸을 뿐, 아직 활짝 열린 것은 아니었다. 계획대로 세 눈금으로 나누어 올렸다. 첫 눈금을 얹고, 지상망의 주파수 곡선이 얕게 출렁이다 평평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망이 스스로 균형을 되찾는 데 걸린 시간은 십수 초. 그다음 눈금. 또 기다림. 그리고 마지막 눈금.

세 눈금이 다 올라갔을 때, 곡선의 출렁임은 시험 펄스 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한 번에 열었으면 서너 배였을 겁니다." 젊은 기술자가 말했다.

"열고 나서 급하지 않은 게 여는 기술이야." 관제사가 답했다.

세 개의 문으로 나뉜 빛이 각기 다른 도시의 전등으로 갈라져 들어갔다. 한쪽으로 몰리지 않도록 문 폭을 저울질해, 셋이 서로 비슷한 몫을 나눠 가졌다. 격자는 64차 정렬에서도 오차 0.1밀리미터를 지켰고, 네 번째 문이 될 빈자리는 그대로 비워 두었다.

송전 816시간. 서른네 날째,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트임이란 없던 길을 억지로 뚫는 일이 아니었다. 오래 재어 두고, 받는 쪽의 숨을 확인하고, 굳은 데 숨구멍을 내고, 그런 다음 겨우 한 눈금씩 흘려보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트인 길은 반드시 다음 것을 위해 한 자리를 비워 둔다.

지상의 어느 창에서, 방금 켜진 불빛 하나가 새벽보다 먼저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