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4화 「다스림」
1. 백 석이 열리고, 닫히다
티켓은 정오에 열렸다. 소율은 그 시각에 일부러 화면을 보지 않았다. 세션 셋과 함께 연습실 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기타를 치는 정후가 자꾸 시계를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켰다.
"…삼 분이요."
"뭐가요."
"삼 분 만에 다 나갔어요. 아흔여섯 석."
소율은 컵을 든 채로 잠깐 가만히 있었다. 기뻐야 할 순간인데 먼저 온 것은 기쁨이 아니라 얕은 어지러움이었다. 저녁에 기획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대기표가 사백 명이에요. 지금 큰 홀로 옮기면 다 받아요. 아직 안 늦었어요."
소율은 창밖을 봤다. 옮기면 표는 다 팔린다. 사백 명이 들어온다. 그건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인데, 지난주에 손뼉을 쳐서 재 본 그 방이 떠올랐다. 잔향 팔백 밀리초. 소리가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서, 앞말의 꼬리가 뒷말의 머리에 겹치지 않는 방. 대신 못한 데를 덮어 주지도 않는 방. 그 방에 맞추려고 지난 며칠 동안 셋이서 각자 한 겹씩 덜어 냈다. 기타는 볼륨을 반의반 내렸고, 건반은 왼손을 놓고 코드의 뿌리를 베이스에게 넘겼다.
"큰 홀로 가면요," 소율이 천천히 말했다. "그 방을 위해서 덜어 낸 걸 전부 다시 채워 넣어야 해요. 잔향이 이 초 넘는 데서 우리가 지금 이 편곡으로 서면, 목소리는 어디에도 안 닿아요. 표는 사백 장 팔리고, 소리는 한 명한테도 안 가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럼 대기표 사백 명은요."
"다음 달에 같은 방에서 한 번 더 해요. 두 번이면 이백 석이에요. 나머지는… 나머지는 못 받는 거고요."
말해 놓고 소율은 자기가 방금 무언가를 거절했다는 걸 알았다. 밀려오는 것을 다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넘칠 것 같은 걸 막아 세운 게 아니라, 넘칠 만큼을 다음 칸으로 흘려 둔 것이다.
그날 밤 리허설에서 두 마디 빈칸이 또 돌아왔다. 후렴 직전, 아무것도 정해 두지 않고 서로의 숨만 듣는 자리. 어제는 소율의 목소리가 반 박 흔들렸고 건반이 따라 들어왔다. 오늘은 흔들리지 않았다. 건반은 따라오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곡이 끝나고 건반을 치는 유나가 미안한 얼굴을 했다.
"오늘은 안 흔들리셔서, 저는 그냥 지나갔어요."
"그게 맞아요." 소율이 웃었다. "지나가 준 것도 합이에요. 매번 따라오면 그건 듣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거잖아요."
2. 스스로를 되돌리는 힘
발사 D-47. 명호의 오늘 일정표에는 한 줄뿐이었다. 비행 소프트웨어 최종 동결.
동결이라는 말은 무섭도록 단순했다. 오늘 자정 이후로는 발사체를 조종하는 코드를 한 줄도 고치지 않는다. 그 이후에 발견되는 것은 고치는 대신 안고 간다. 젊은 제어팀 연구원이 물었다.
"더 좋게 만들 수 있는데도요?"
"고칠 데가 없어서 얼리는 게 아니야." 명호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고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서 얼리는 거지. 손대고 싶은 마음까지 절차 안에 넣어 두는 게 동결이야."
얼리기 전 마지막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자세 제어 루프였다. 발사체는 가만두면 저 혼자 뒤집히려는 물건이다. 공기가 미는 힘의 중심이 무게 중심보다 앞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기울면 그 기울기가 저절로 커진다. 손끝에 연필을 세워 놓은 것과 같다. 세워 두는 게 아니라, 넘어지려는 걸 끊임없이 되돌려 세우는 것이다.
되돌리는 손이 엔진의 짐벌이다. 기체가 왼쪽으로 기울면 엔진을 아주 조금 왼쪽으로 틀어, 밀어 올리는 힘의 방향으로 기체를 오른쪽으로 되민다. 문제는 얼마나 세게 되미느냐다.
화면에는 세 개의 곡선이 떠 있었다. 되돌리는 힘을 세게 준 것, 약하게 준 것, 그 사이. 세게 준 곡선은 어긋난 걸 순식간에 잡았다가 그대로 반대편으로 넘어갔고, 넘어간 걸 또 급하게 되돌리다가 좌우로 점점 크게 흔들리며 화면 밖으로 나갔다. 약하게 준 곡선은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바람에 밀린 채 끝내 제자리로 못 돌아왔다.
"세 항이 있어." 명호가 연구원에게 짚어 주었다. "지금 얼마나 어긋나 있는가. 어긋난 게 얼마나 오래 쌓였는가. 그리고 지금 얼마나 빠르게 어긋나는 중인가. 앞의 둘만 보면 반드시 지나쳐. 세 번째가 브레이크야. 벌써 되돌아오고 있으면, 힘을 미리 빼 주는 것."
그날 오후 내내 시뮬레이션이 돌았다. 이륙 직후의 돌풍, 최대 동압 구간의 굽힘, 단 분리의 반 박 지연까지 넣어 몇백 번을 날렸다. 곡선은 매번 흔들렸다가, 흔들린 폭보다 작은 폭으로 다시 흔들렸다가, 결국 가운데로 잦아들었다. 자정에 명호는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코드는 얼었다.
3. 열린 길에 문지기를 두다
동현이 어제 튼 결재 고리는 오늘 제대로 굴렀다. 서류가 두 번 돌지 않고 한 번에 갔다. 옆 부서 도장이 먼저 찍히고, 우리 과장의 사전 확인 한 줄이 붙어서 왔다. 흐름표대로였다.
그런데 점심 무렵 후배의 책상이 서류로 덮이기 시작했다.
길이 트였다는 소문이 옆 부서에 퍼지자, 그동안 막혀서 서랍에 넣어 두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온 것이다. 오전에 여덟 건, 오후 세 시까지 스무 건. 후배는 오늘 처음으로 혼자 결재를 올리기로 한 날이었는데, 그 한 건에 손도 못 대고 있었다.
동현은 흐름표를 다시 봤다. 길은 뚫려 있었다. 뚫린 길에 차가 한꺼번에 들어와서 길 한복판에서 서로 못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막힌 걸 트는 게 절반이었네." 동현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튼 걸 다스리는 게 나머지 절반이고."
그는 흐름표 아래에 두 줄을 더 그렸다. 접수는 오전 열한 시까지. 그 뒤에 오는 것은 오늘 것이 아니라 내일 첫 칸에 놓는다. 그리고 정말 급한 것을 적는 칸을 따로 하나 만들되, 하루에 두 건까지만 쓸 수 있게 했다. 칸이 무제한이면 모두가 급해지고, 모두가 급하면 아무도 급하지 않다.
옆 부서 과장이 전화로 투덜거렸다. "튼다더니 왜 다시 잠그나."
"잠그는 게 아니라 폭을 정하는 겁니다. 스무 건이 한 번에 들어오면 오늘 나가는 건 영 건이에요. 여덟 건씩 나눠 들어오면 사흘이면 스물넷이 나갑니다."
저녁에 후배는 자기 몫의 한 건을 혼자서 올렸다. 도장 자리를 두 번 확인하고, 손을 한 번 닦고, 그리고 눌렀다. 동현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박영자의 손수건 위에는 명찰 세 장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받은 자리, 딛고 선 자리, 막 딛기 시작한 자리. 동현은 그 옆에 새 흐름표를 접어서 얹었다.
4. 아흐레, 커지는 말
진우는 어제 트인 그 말을 오늘도 되뇌었다. 되뇌면 편해질 줄 알았다.
처음엔 한마디였다. 미안하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앞에 한 줄이 붙었다. 그때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말해 주고 싶어서. 또 하루가 지나자 그 앞에 두 줄이 더 붙었다. 네 엄마가 마지막 사흘 동안 무슨 말을 했는지, 아버지가 그날 병실에서 몇 시간을 어떻게 앉아 있었는지.
종이는 어느새 반 장이 되어 있었다. 진우는 그걸 김지수 앞에 내려놓았다.
"사흘 만에 한마디가 반 장이 됐어요."
김지수는 종이를 오래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조용히 물었다.
"여기서, 아드님한테 하는 말이 몇 줄이에요?"
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늘어난 것은 전부 자기를 설명하는 말이었다. 커진 건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었다.
"커진 건 말이 아니에요." 김지수가 말했다. "두려움이에요. 무서우니까 자꾸 뭘 붙이는 거예요. 붙이면 덜 미안해질 것 같아서."
그날 저녁, 진우의 휴대폰에 문자가 하나 왔다. 현수였다.
그날,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진우는 그 한 줄을 마흔 번쯤 읽었다. 밤이 되자 물어볼 것들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불어났다. 왜 그랬느냐고 물을까. 그때 정말 그렇게 생각했느냐고 물을까. 어머니가 마지막에 나를 찾았느냐고 물을까. 하나가 떠오르면 그에 대한 답을 짓고, 답을 지으면 그 답에 대한 되물음이 또 떠올랐다. 새벽 두 시에 진우는 백 개쯤 되는 물음과 백 개쯤 되는 답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아침에 김지수는 그 얘기를 듣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말했다.
"답을 백 개 준비해 가시면요, 그날 아드님은 그 백 개에 없는 걸 물어요. 반드시 그래요."
"그럼 저는 뭘 해야 합니까."
"오늘 하실 일은 답을 만드는 게 아니라, 마음이 자꾸 넘어가지 않게 붙드는 거예요. 넘어가려고 할 때마다 조금씩만 되돌리세요. 세게 되돌리면 반대편으로 넘어가요. 밤새 백 개를 지어 놓고 아침에 다 부수시잖아요. 그게 넘어갔다 돌아오는 거예요."
진우는 그날 오후에 종이를 한 장 새로 꺼냈다. 반 장짜리를 옆에 두고, 거기서 자기를 설명하는 문장을 하나씩 지웠다. 지우고 나니 두 줄이 남았다.
왔구나.
미안하다.
그 두 줄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사과는 길수록 사과에서 멀어진다는 걸, 오 년 만에 알았다. 재회까지 아흐레.
5. 곧게 세우는 일
화분은 오늘 진우 차례였다. 이름표 뒤에는 내일은 김지수 차례가 그대로 적혀 있었다.
어제 젓가락으로 숨구멍을 낸 뒤로 물은 곧게 스며들었다. 표면에서 옆으로 흘러내리던 것이 이제는 흙 속으로 곧장 내려갔다. 뿌리가 좋아한 게 분명했다. 하룻밤 사이에 여섯 장 중 가장 새로 난 줄기가 눈에 띄게 키를 올렸으니까.
그런데 진우는 물뿌리개를 든 채로 멈췄다.
그 줄기는 길어지긴 했는데, 가늘었다. 색도 다른 잎보다 옅었다. 그리고 창 쪽으로 눈에 띄게 기울어 있었다. 잘 자란 게 아니라 어딘가 급해 보였다.
"웃자랐네요." 뒤에서 김지수가 말했다.
"웃자라요? 물이 잘 들어가서 잘 큰 거 아닙니까."
"물이랑 거름은 넉넉한데 볕이 모자라면 그래요. 식물은 빛이 부족하면 빛을 찾아서 줄기부터 늘여요. 굵어질 겨를 없이 키만 늘어요. 그래서 가늘고 색이 옅어져요. 잘 크는 게 아니라, 급해서 크는 거예요."
진우는 그 말을 듣고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그럼 물을 더 주면 안 되겠네요."
"오늘은 조금만요. 대신 볕이 오래 드는 쪽으로 옮기고, 화분을 반 바퀴 돌려 두세요. 그리고…"
김지수는 어제 숨구멍을 낸 그 가는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흙에 꽂아 지지대로 세우고, 웃자란 줄기를 실로 느슨하게 묶었다. 실과 줄기 사이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틈을 남겼다.
"꽉 묶으면 줄기가 상해요. 넘어지지 않을 만큼만이에요. 붙잡아 주는 게 아니라, 넘어가려고 할 때만 걸리게 두는 거예요."
진우는 그 느슨한 매듭을 오래 봤다. 어젯밤 백 개의 답을 짓던 자기 머리가 떠올랐다. 물길을 텄더니 웃자란 것이다. 말길을 텄더니 말이 웃자란 것이다.
"빨리 크는 게 늘 좋은 건 아니군요."
"겁이 나서 크는 걸 수도 있어요." 김지수가 화분을 창가로 옮기며 말했다. "그럴 땐 더 주는 게 아니라, 덜 주고 볕에 두는 거예요."
같은 아흐레.
6. 세 문을 다스리다
ATLAS 65차 정렬. 메타 62단계 — 다스림.
세 접속점을 연 지 이틀째. 세 문은 여전히 지상망의 박자에 머리카락 한 올도 어긋나지 않게 맞춰 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관제실의 관심은 궤도가 아니라 지상이었다.
받는 쪽의 수요가 하루 동안 가만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에는 도시가 자고 있어서 쓰는 힘이 줄고, 해 질 무렵에는 불이 한꺼번에 켜지면서 급격히 늘었다. 궤도의 거울은 성실하게 같은 양의 빛을 내려보내는데, 받는 쪽이 오르내리니 남거나 모자랐다. 남으면 망의 주파수가 조금 올라가고, 모자라면 조금 내려간다. 거대한 회전체가 밀리고 끌리며 박자를 놓치는 것이다.
"사람이 그때그때 손으로 맞추면 안 됩니까." 신참 관제사가 물었다.
"자네가 화면을 보고 손을 뻗는 데 몇 초 걸리지?" 팀장이 되물었다. "그 몇 초 사이에 망은 이미 다른 데로 가 있어. 사람이 따라잡을 수 있는 박자가 아니야."
그래서 세 문에 조속기를 걸었다. 사람이 아니라 장치가 스스로 되돌리게 하는 것이다. 망의 주파수가 규정보다 내려가면 — 즉 받는 쪽이 힘을 더 쓰고 있다는 뜻이면 — 세 문의 출력을 자동으로 조금 올린다. 주파수가 올라가면 내린다. 명호의 발사체가 기울면 짐벌로 되미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어긋난 만큼 되돌리는 손.
다만 여기서는 되돌리는 손이 셋이었다. 그리고 셋이 모두 완벽하게 되돌리려 들면, 반드시 다툰다.
첫 시험에서 그 일이 일어났다. 주파수가 살짝 떨어지자 세 문이 동시에 "내가 다 채우겠다"며 출력을 올렸고, 셋이 한꺼번에 올리니 이번엔 넘쳐서 주파수가 위로 튀었고, 그러자 셋이 동시에 내렸다. 세 문의 출력이 서로 밀치며 파도처럼 오르내렸다. 헌팅이었다.
해법은 완벽함을 조금 버리는 것이었다. 조속기에 일부러 기울기를 남긴다. 주파수가 떨어져도 문 하나가 그것을 전부 메우지 않고, 자기 몫만큼만 올리고 멈춘다. 그러면 남은 어긋남은 다른 두 문이 각자 제 몫으로 나눠 가진다. 셋이 조금씩 모자라게 되돌리기 때문에, 셋을 합치면 알맞게 되돌아온다.
"완벽하게 맞추려는 문이 하나라도 있으면 세 문이 다 흔들려." 팀장이 말했다. "제 몫만큼만 되돌리는 게 셋이 같이 사는 법이야."
기울기를 넣고 하루를 돌렸다. 저녁의 그 가파른 봉우리에서도 주파수 편차는 어제의 절반 아래로 내려앉았다. 세 문의 출력 곡선은 나란히, 조금씩, 서로를 밀치지 않으면서 올랐다가 내렸다. 격자는 65차 정렬에서 오차 0.1밀리미터를 지켰고, 네 번째 문의 빈자리는 그대로 비어 있었다. 송전 840시간. 서른닷새째 무중단.
다스림이란 힘을 쥐는 일이 아니다. 되돌리는 힘의 크기를 정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되돌리면 반대편으로 넘어가고, 덜 되돌리면 끌려간다. 그 사이 어디쯤, 넘어가지도 끌려가지도 않는 눈금이 있다. 그 눈금을 찾은 사람은 끝내 알게 된다. 다스려야 할 것은 늘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자꾸 커지려 하는 쪽이었다는 것을.
'웹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겁의 새벽] 제126화 - 고요 (0) | 2026.07.16 |
|---|---|
| [영겁의 새벽] 제125화 - 버팀 (0) | 2026.07.15 |
| [영겁의 새벽] 제123화 - 트임 (0) | 2026.07.13 |
| [영겁의 새벽] 제122화 - 가늠 (1) | 2026.07.12 |
| [영겁의 새벽] 제121화 - 디딤 (0) | 2026.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