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영겁의 새벽] 제120화 - 오름

우주관리자 2026. 7. 9.

제120화 「오름」

소율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폰을 켜지 않았다. 대신 창을 열고 물 한 컵을 마셨다. 어제 자정에 문을 연 곡이 밤새 저 혼자 어디까지 걸어갔는지, 숫자를 먼저 보면 그 숫자에 마음이 매일 것 같아서였다. 커피를 내리고 나서야 화면을 열었다. 재생수는 밤사이 조용히 올라 있었다. 폭발하듯이 아니라, 물이 그릇 벽을 타고 천천히 차오르듯이. 그보다 눈이 오래 머문 것은 코멘트 아래로 새로 달린 줄들이었다.

"후렴 직전에 반 박 흔들리는 데서,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어요." "그 흔들림이 위로가 될 줄 몰랐어요." 낯선 이름들이, 하나같이 같은 자리에서 멈춰 서 있었다. 마스터링에서 큰 봉우리를 눌러 살려 둔 그 작은 숨, 미리듣기로 먼저 열어 보인 그 자리였다. 그 자리를 감추지 않고 먼저 내보인 것이, 낯선 이들에게는 가장 먼저 손을 잡을 데가 된 모양이었다.

저녁에는 처음 보는 계정에서 짧은 문의가 왔다. 작은 공연장에서 이 곡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느냐고. 소율은 답장을 바로 쓰지 않고 창밖을 오래 봤다. 며칠 전만 해도 이 곡은 제 방 안에서만 울리던 소리였는데, 이제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걸 두 발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오르는 건 숫자가 아니라, 그 한 소절을 붙들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숫자보다 훨씬 천천히, 그러나 훨씬 높이 올라오고 있었다.

1. 조용히 차오르는 것

소율은 다음 곡의 첫 소절을 흥얼거리다 멈췄다. 아직 이 곡이 다 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음을 재촉하는 건, 올라오는 사람들 손을 놓아 버리는 일 같았다. "천천히 올라오게 두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라이브 문의에 처음으로 답을 적었다. 아주 작은 자리라도 좋다고. 흔들린 반 박을, 이번엔 숨소리까지 들리는 거리에서 같이 들어 보자고. 답장을 보내고 나니, 재생수 숫자를 하루에 몇 번씩 새로 고치던 손이 조금 잠잠해졌다. 숫자를 세는 대신, 그 자리에 찾아올 얼굴을 세게 될 것 같았다. 오르는 것은 결국 그런 쪽이 좋았다.

2. 올라가는 길을 미리 그리다

발사 D-51. 명호는 통합 리허설에서 잡아 낸 반 박 지연을 반영한 뒤, 이번엔 발사체가 실제로 하늘을 오르는 그 길을 미리 그렸다. 상승 궤적 시뮬레이션이었다. "가는 것보다 오르는 게 어렵다." 그가 신입 관제사에게 말했다. 이륙 직후엔 연료가 가득 차 무겁고, 공기는 두껍다. 속도가 붙을수록 기체가 받는 공기 압력이 커지다가, 어느 한 점에서 최대가 된다.

"이걸 최대 동압, 맥스 큐라고 불러." 화면의 곡선이 이륙 후 일 분 남짓한 지점에서 봉우리를 그렸다. 그 순간 기체엔 가장 큰 굽힘 하중이 걸린다. 속도의 제곱에 공기 밀도를 곱한 값, 그게 기체를 떠미는 힘이었다. 속도는 계속 오르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는 얇아지니, 둘이 맞물려 어느 한 점에서 정점을 찍고 다시 내려간다. "너무 세게 밀면 이 봉우리에서 몸이 휜다." 그래서 그 구간에선 일부러 엔진 출력을 잠깐 눌렀다가, 공기가 얇아지면 다시 올린다. 스로틀 다운, 그리고 다시 스로틀 업. 세게 오르되, 가장 힘든 곳에선 숨을 고르는 것.

"올라가는 내내 힘을 똑같이 주면 안 되는 거예요?" 신입이 물었다. "그럼 딱 저 봉우리에서 부러져." 명호가 곡선의 정점을 손끝으로 짚었다. "제일 세게 밀고 싶은 순간이, 사실은 제일 조심해야 할 순간이야." 소율이 큰 봉우리를 눌러 작은 숨을 살렸듯, 오르는 길에도 눌러야 할 봉우리가 있었다. 곡선이 그 지점을 넘어서자, 그다음부터는 공기의 저항이 급격히 줄며 매끄럽게 위로 뻗어 올라갔다. 명호는 그 완만해진 상승 곡선을 오래 들여다봤다. 가장 좁은 문을 지나고 나면, 나머지 길은 오히려 트여 있었다.

3. 제 발로 올라서는 사람

동현은 오늘 도장을 아예 쥐지 않았다. 어제 신입이 스스로 전화를 걸어 연 옆 부서 창구가, 하루 만에 답을 보내온 것이다. 막혀 있던 세 갈래 중 두 개가 풀렸고, 신입은 그 회신을 제 손으로 정리해 결재를 올렸다. 서류엔 동현의 이름 대신 신입의 이름만 있었다. "혼자 올린 첫 결재네요." 동현이 도장 칸을 가리키며 말했다. "떨렸어요?" "어제보다는요." 신입이 웃었다. 어제 수화기를 들었다 놓기를 두어 번 하던 손이, 오늘은 서류를 곧게 쥐고 있었다.

박영자의 손수건은 여전히 책상 모서리에 있었고, 그 위에 얹어 둔 새 명찰도 그대로였다. 동현은 되돌아온 회신 중 옆 부서 과장이 손수 덧붙인 메모를 봤다. "다음엔 더 일찍 물어봐도 됩니다." 걸려 있던 문 하나가 열리자, 그 너머에서도 문 하나가 마주 열린 셈이었다. 동현은 그 메모를 신입에게 건넸다. "이건 자네가 올라선 자리에 온 답이야. 내가 대신 받을 게 아니고."

신입은 메모를 두 손으로 받아 한참 들여다봤다. "처음엔 결재 한 장 올리는 게 그렇게 무거울 줄 몰랐어요." "무거운 게 맞아. 그게 가벼워 보이면 그게 더 위험한 거고." 동현은 자기 5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도 누군가 도장을 대신 눌러 주다가, 어느 날 슬며시 손을 뗐다. 그 빈자리가 무서웠지만, 그 무서움을 딛고서야 제 발로 올라섰다. 지금 신입이 딛고 선 계단이, 그때 자신이 딛던 그 계단과 같은 높이였다. 오르는 건 밀어 올려 주는 게 아니라, 딛을 자리를 비워 주고 한 발 물러서는 일이었다.

4. 오 년 만에, 목소리

재회까지 열사흘. 진우는 이틀 전 자리와 시각을 먼저 알렸고, 오늘은 그보다 어려운 걸 하려 했다. 만나기 전에, 목소리로 한 번. 오 년 동안 글자로만 오간 사이였다. 김지수가 옆에 앉아 물었다. "전화, 오늘 걸 거예요?" 진우는 폰을 손에 쥔 채 한참을 있었다. 숫자를 누르는 손가락이, 계단을 하나씩 오르듯 무거웠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리고, 현수가 받았다. "…여보세요." 오 년 만에 듣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진우는 준비해 둔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그냥 이름을 불렀다. "현수야." 잠깐의 침묵. 그리고 저쪽에서 짧게, "네." 긴 말은 없었다. 그날 벤치에서 보자는 것, 길 잃지 말라는 것, 그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진우의 심장이 아직도 계단 위에 올라선 것처럼 뛰고 있었다. "목소리를 먼저 들으니," 그가 김지수에게 말했다. "그날이 이제 진짜 오는 것 같아요." 마음이 한 층 더 위로 올라와 있었다.

5. 키가 오르는 잎

화분은 오늘 진우 차례였다. 이름표 뒤엔 '내일은 김지수 차례'라고 적혀 있었다. 그저께 처음 잎꼴로 벌어진 세번째 잎이, 이틀 새 눈에 띄게 키를 올려 첫 잎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 사이로 네번째 잎눈이 좁쌀만큼 맺혀 있었다. "올라오는 게 보이네요." 진우가 화분을 반 바퀴 돌려 그늘진 쪽에 볕을 주며 말했다.

물은 한쪽으로만 붓지 않고 골고루 얇게 여러 번 돌려 주었다. 뿌리가 한쪽으로 기울면 키가 비뚜로 오른다고, 김지수가 일러 준 대로였다. "잎이 오르려면 뿌리부터 곧아야 한다더니." 진우는 곧게 선 줄기를 손끝으로 가만히 받쳤다. 세번째 잎이 자리를 잡으니, 네번째가 그 위에서 안심하고 고개를 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같은 열사흘이, 화분에서도 한 마디씩 오르고 있었다.

6. 출력을 끌어올리다

ATLAS 61차 정렬, 메타 58단계 '오름'. 두 접속점으로 빛을 반씩 나눠 흘린 지 하루가 지났다. 두 파형은 지상망의 박자에 여전히 머리카락 한 올도 어긋나지 않고 물려 있었다. 안정을 확인한 관제는 이제 조심스레 출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수도꼭지를 단번에 활짝 여는 게 아니라, 한 눈금씩 돌리며 지상망이 그 늘어난 힘을 무리 없이 받는지 지켜보는 방식이었다.

한꺼번에 밀어 올리면, 받는 쪽 전압이 봉우리를 그리며 튄다. 명호의 발사체가 맥스 큐에서 잠깐 출력을 눌렀듯, ATLAS도 늘어나는 구간마다 잠깐씩 램프를 완만히 눕혔다. 두 문으로 나뉜 흐름이 조금씩, 그러나 나란히 올라갔다. 격자 61차의 오차는 여전히 0.1밀리미터 안에 붙들려 있었고, 세번째 문을 열 빈자리도 그대로 비워 두었다. 송전 744시간, 서른한 날째 무중단. "오른다는 건 힘껏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관제 기록의 끝에 이런 문장이 적혔다. "받는 쪽이 함께 오를 수 있을 만큼만, 한 눈금씩 올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