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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110화 - 들임

우주관리자 2026. 6. 28.

 

제110화 「들임」

 

1. 들이는 첫 숨

 

오 년 닫아 두었던 방의 공기는 바깥보다 반 박자 차가웠다. 진우는 어제 처음 연 문을 오늘은 망설임 없이 밀었다. 어제는 흩어진 것을 모으느라 손이 바빴고, 오늘은 그 모은 것을 하나씩 안으로 들이는 차례였다.

 

책상 맨 아래 서랍이 반쯤 열린 채 걸려 있었다. 오 년 동안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자리였다. 진우는 서랍을 끝까지 당겼다. 안에는 현수가 중학생 때 쓰던 손바닥만 한 라디오와, 그 옆에 접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종이를 펴자 삐뚤빼뚤한 글씨가 나왔다. 아빠한테. 이거 고쳐 줘서 고마워요. 날짜는 적혀 있지 않았다. 진우는 그 라디오를 고쳐 준 날을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오래 가슴을 눌렀다.

 

그는 라디오의 작은 스위치를 밀어 보았다. 오 년 묵은 건전지가 죽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진우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책상 가운데에 올려 두었다. 버리는 게 정리라고 여기던 사람이, 처음으로 들이는 쪽을 골랐다.

 

서랍 안쪽에는 작은 사진도 한 장 붙어 있었다. 놀이공원에서 찍은 것이었다. 현수가 진우의 손을 붙잡고 웃고 있었고, 진우는 카메라가 아니라 아이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무렵의 그는 늘 어딘가 먼 데를 보고 있던 사람이었다. 진우는 사진을 떼어 라디오 옆에 나란히 세웠다.

 

"이건 닫아 둔 게 아니라, 들일 때를 기다린 거였구나."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새벽빛이 한 뼘 들어와 라디오 위에 앉았다. 들이는 일은 거창하지 않았다. 죽은 라디오 하나,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버리지 않고 가운데에 놓아 두는 일이었다.

 

2. 탱크에 들이는 것

 

발사 시각이 한 점으로 고정된 뒤, 명호의 팀은 그 점을 기준으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첫 통합 점검 사이클에 들어갔다. 오늘의 항목은 추진제 로딩 리허설이었다. 실제 발사처럼 탱크에 추진제를 들여 보고, 다시 비우는 연습이다.

 

"라인 냉각부터."

 

명호가 무전에 짧게 말했다. 영하 백팔십삼 도의 액체 산소를 곧장 상온의 배관에 흘리면 금속이 급격히 수축하며 비명을 지른다. 그래서 먼저 차가운 기체를 천천히 흘려 배관을 식히는 냉각 단계를 거친다. 계기판의 온도 곡선이 한 칸씩 아래로 내려갔다.

 

"천천히 채움 시작."

 

처음에는 가느다란 흐름으로 탱크 바닥을 적신다. 탱크가 차가움에 익숙해지면 그제야 빠른 채움으로 넘어간다. 액체 산소가 차오르고, 옆 탱크에는 영하 백육십이 도의 메탄이 들어찼다. 끓어 날아가는 만큼을 끊임없이 보충하는 막바지 보충까지가 한 묶음이었다.

 

젊은 대원이 계기를 보며 물었다.

 

"이렇게 들였다가 또 다 빼는 거, 아깝지 않습니까."

 

명호는 탱크 외벽에 허옇게 맺힌 성에를 손끝으로 쓸었다.

 

"들여 봐야 새는 데가 어딘지 안다. 한 번도 안 들이고 그날 처음 들이는 게 더 아까운 일이지."

 

탱크는 차가움을 한껏 들이고도 터지지 않았다. 새는 곳은 없었다. 명호는 점검표의 한 줄에 처음으로 옅은 동그라미를 쳤다. 들여 보고 나서야 칠 수 있는 동그라미였다.

 

3. 들일 자리

 

동현은 어제 단정히 다잡아 둔 빈 책상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머그잔에 꽂아 둔 연필이 어제 그대로였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낯선 얼굴 하나가 서류 봉투를 안고 들어왔다.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사람입니다."

 

신입은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입구에서 멈칫했다. 동현은 자기도 모르게 그 빈 책상을 가리켰다가, 손을 멈췄다. 떠난 동료의 자리였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그는 머그잔의 연필을 빼서 자기 필통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손수건은 그대로 둔 채 의자를 가볍게 빼 주었다.

 

"여기 앉으세요. 자리는 비워 둔 게 아니라, 들일 사람을 기다린 거였어요."

 

신입이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자, 비어 있던 책상에 처음으로 온기가 들었다. 동현은 그 광경을 보며 어제 자신이 왜 그 자리를 그렇게 단정히 다잡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보내는 일과 들이는 일은 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같은 일이었다.

 

박영자의 손수건은 여전히 책상 모서리에 펼쳐져 있었다. 들꽃 자수가, 새로 든 사람을 가만히 맞았다.

 

4. 소리를 들이다

 

녹음 나흘 전. 소율은 스튜디오 부스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았다 놓기를 두 번 했다. 유리 너머로 엔지니어가 콘덴서 마이크의 높이를 그녀의 입에 맞춰 조정하고 있었다. 부스 안의 흡음 패널이 바깥의 소리를 모두 삼켜, 안은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한 번 들어가서 호흡만 맞춰 볼게요."

 

엔지니어의 목소리가 헤드폰으로 들어왔다. 소율은 부스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빠져나가고 자기 숨소리만 남았다.

 

마이크는 소리를 만드는 물건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물건이다. 입에서 나온 작은 떨림이 막을 흔들고, 그 흔들림이 신호가 되어 안으로 들어간다. 너무 가까이 가면 숨소리까지 들이치고, 너무 멀면 목소리가 빠져나간다. 소율은 마이크와 한 뼘쯤의 거리를 손등으로 가늠했다.

 

"부르지 말고, 그냥 숨만 한 번."

 

그녀는 첫 음을 떠올리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들이쉰 숨이 가슴에서 한 바퀴 돌아 다시 나오는 그 한순간이, 노래의 진짜 시작이라는 걸 그녀는 지난 며칠 동안 배웠다.

 

그녀는 첫 소절을 작게 흘려 보았다. 부스 안은 메아리가 없었다. 벽이 소리를 되돌려 주지 않으니, 자기 목소리가 어디로도 새지 않고 마이크 하나로만 빨려 들어갔다. 평소 노래방이나 욕실에서 듣던 울림이 모두 사라진, 벌거벗은 소리였다. 처음에는 그 적막이 무서웠지만, 며칠을 다니자 비로소 알았다. 울림이 없어야 진짜 소리가 그대로 들이쳐 담긴다는 것을.

 

헤드폰 속에서 엔지니어가 조용히 웃었다.

 

"방금 그 숨, 그대로 녹음되면 좋겠는데요."

 

소율은 눈을 감았다. 나흘 뒤, 이 고요한 방이 그녀의 한 호흡을 통째로 들여 줄 것이다. 토막 내지 않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기의 호흡을. 그녀는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놓지 않았다.

 

5. 같이 들일 자리

 

진우의 수첩에는 스무사흘이라는 숫자 옆에 어제 그린 동그라미가 그대로 있었다. 김지수가 회진을 마치고 들렀을 때, 진우는 현수 방에서 찾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라디오를 고쳐 줘서 고맙다던 그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고친 날을 기억 못 해요."

 

진우가 말했다.

 

"그게 제일 미안해요. 정작 아이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김지수는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접어 다시 건넸다.

 

"기억 못 하는 걸 미안해하지 말고, 지금부터 들이세요."

 

그녀가 말했다.

 

"그 방, 같이 들이기로 했잖아요. 오늘은 제가 빈 책장 한 칸 닦을게요."

 

김지수는 동석하기로 한 그날을 처음으로 실천하듯, 닫혀 있던 방으로 먼저 발을 들였다.

 

두 사람은 책장 한 칸을 같이 닦았다. 진우가 라디오를 그 칸에 올려 두자, 김지수가 옆에 작은 화분을 하나 들여놓겠다고 했다.

 

"빈자리에 뭘 들이는 게 정리예요. 비우는 게 아니라."

 

진우는 어제까지만 해도 비우는 게 정리라고 믿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무사흘. 같은 숫자를 세는 두 사람이, 오 년 닫혔던 방에 같이 햇빛을 들였다. 창으로 든 빛이 죽은 라디오 위에서 잠깐 살아 있는 것처럼 반짝였다.

 

6. 빛을 들이는 고리

 

궤도에서는 ATLAS의 쉰한 번째 정렬이 진행되고 있었다. 메타 48단계, 이름은 '들임'으로 붙었다. 지난 50차에서 흩어진 미세 각도를 한 점으로 모아 고정했다면, 51차의 일은 그 고정된 고리에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거대한 반사 격자들은 햇빛을 한 면으로 받아 지상의 수신부로 모아 보낸다. 격자 사이의 틈이 좁아질수록 새어 나가는 빛이 줄고, 받아들이는 빛은 늘어난다. 관제 화면의 곡률 오차는 어제의 0.1밀리미터에서 한 자릿수 더 작은 곳으로 수렴하는 중이었다.

 

"수광 면적 1.4퍼센트 증가. 송전 누적 504시간."

 

관제사가 수치를 읽었다. 무중단 송전이 또 하루를 넘겼다. 빛을 더 많이 들인 만큼, 지상으로 내려가는 전력의 곡선이 한 칸 위로 올라섰다.

 

한 엔지니어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고리를 다 닫아 두는 게 목표인 줄 알았는데, 닫을수록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되네요."

 

곁의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닫는 건 새는 걸 막으려는 거지, 들이지 않으려는 게 아니니까."

 

발사까지 예순한 날. 부스의 한 호흡과, 탱크의 차가운 충전과, 빈 책상에 든 새 사람과, 오 년 만에 열린 방의 햇빛이, 같은 날 같은 단어 아래 서 있었다. 들임. 무엇을 비워야 끝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무엇을 들여야 시작되는지를 하나씩 배워 가는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