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다잡음」
발사까지 예순두 일.
흩어진 것을 모으다
진우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제 정한 것을 떠올렸다. 말을 갈지 말고, 하루를 갈 것.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식탁 위에 펴 둔 빈 종이부터 치웠다. 어제까지 그 종이 위에서 적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첫 문장은, 더 이상 거기 없어도 되었다.
대신 그는 흩어진 것들을 한자리로 모으기 시작했다. 며칠째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둔 외투를 옷걸이에 걸고, 싱크대에 쌓아 둔 잔을 씻고, 오래 미뤄 둔 약봉지를 날짜 순으로 정리했다. 큰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흩어진 것을 하나씩 제자리에 다잡아 두자, 마음 한구석도 같이 가지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스무나흘 뒤에 현수가 온다. 진우는 아들이 올 그날, 이 집이 흐트러져 있지 않기를 바랐다. 무슨 말을 할지보다, 어떤 자리에서 맞이할지가 먼저였다. 그는 현수가 어릴 적 쓰던 방문을 오랜만에 열었다. 오 년 동안 닫아 둔 방은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그는 창을 열고, 그 방부터 다잡기로 했다.
"아침부터 대청소예요?"
회진을 마치고 잠깐 들른 김지수가 문가에서 물었다.
"갈 데를 잘못 골랐었나 봐요. 말이 아니라, 여기를 갈았어야 했어요."
진우는 걸레를 쥔 채 웃었다. 김지수는 팔을 걷고 방으로 들어왔다.
"같이 다잡아요. 혼자 하면 또 딴생각하느라 종이만 만질 거잖아요."
한 점에 못 박은 시각
명호는 그날 아침, 발사일을 못 박았다.
지난 며칠 미세조정을 거치며 발사창은 몇십 분까지 좁혀졌다. 이제 그 좁은 창 안에서, 발사체가 가장 적은 연료로 궤도의 고리에 합류할 단 한 점의 시각을 고를 차례였다. 명호는 팀을 회의실에 모았다. 흩어져 각자의 화면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오랜만에 한 탁자에 둘러앉았다.
"오늘부로 발사 시각을 고정합니다."
명호는 칠판에 분과 초까지 적었다. 그 한 줄을 적는 순간, 그동안 막연하던 '언젠가'가 정해진 한 점으로 다잡혔다. 누군가 작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고정하면, 이제 못 바꾸는 거죠?"
젊은 기술자가 물었다.
"바꿀 수는 있어. 그런데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바꾸는 게 아니라, 이 한 점에 모든 걸 맞춰 다잡는 거야."
명호는 그날부터 매일 점검할 항목을 한 장의 목록으로 정리했다. 추진제 충전 절차, 유압 기립 순서, 네 기 엔진의 점화 시점, 좁은 발사창의 양 끝 시각. 따로 흩어져 있던 수십 가지 점검을, 발사 시각 한 점을 기준으로 줄 세웠다. 흩어진 일정은 불안을 키우지만, 한 점으로 다잡힌 일정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발사 시각이 정해지자, 그동안 막연히 '준비 중'이던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막연한 기한은 미루게 만들지만, 못 박힌 시각은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어떤 점검을 며칠째 미뤄 왔는지, 어떤 부품을 아직 두 번 확인하지 못했는지가, 그 한 점을 기준으로 단번에 드러났다. 명호는 그것을 책망하지 않았다. 다만 흩어져 있던 그 일들을, 시각이라는 못에 하나씩 걸어 줄을 세웠다.
"예순두 일."
명호는 목록 맨 위에 그렇게 적었다. 남은 날이 줄어들수록, 할 일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또렷해졌다. 흐릿하던 것이 또렷해지는 것, 그것이 다잡는다는 말의 뜻이었다.
단정해진 빈자리
동현은 사무실 책상 위의 들꽃 손수건을 며칠째 바라보았다.
약국에서 받아 온 그 손수건은, 늘 비어 있던 책상 한 칸을 가만히 채우고 있었다. 그 자리는 본래 함께 일하던 동료가 쓰던 자리였다. 동료가 회사를 떠난 뒤로, 동현은 그 빈 책상을 치우지도 채우지도 못한 채 두고 있었다. 비워 두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빈자리를 어떻게 다잡아야 할지 몰라서였다.
손수건을 거기 펼쳐 둔 날부터, 그 자리는 더 이상 텅 빈 자리가 아니었다. 들꽃 한 송이가, 비어 있음을 쓸쓸함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표시로 바꿔 놓았다. 동현은 그 작은 변화에 마음을 한 번 다잡았다.
그는 서랍을 정리하다, 떠난 동료가 두고 간 머그잔을 발견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동현은 그 잔을 버리지 않고 깨끗이 씻어 손수건 옆에 두었다. 그리고 거기에 연필 몇 자루를 꽂았다. 비어 있던 자리가, 이제는 누군가 곧 다시 앉아도 될 것처럼 단정해졌다. 받은 온기를 자기 안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그렇게 자기 자리를 다잡는 데 썼다.
한 호흡으로
소율은 녹음을 닷새 앞두고,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부르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동안은 마디를 따로 떼어 다듬었다. 걸리는 한 박을 줄이고, 군더더기 음을 깎고. 그러나 녹음 부스에서는 곡을 토막 내어 부를 수 없었다. 첫 음에서 마지막 음까지, 한 호흡으로 흐트러짐 없이 가야 했다. 부분이 아무리 좋아도, 전체가 흩어지면 노래는 무너졌다.
그녀는 연습실에 서서, 들숨 한 번으로 마음을 다잡고 첫 소절을 냈다. 처음엔 후렴 직전에서 호흡이 가빠 흔들렸다. 두 번째에는 가사 한 줄을 놓쳤다. 그녀는 매번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갔다. 중간이 흔들려도 멈추지 않는 연습. 그게 녹음에서 가장 필요한 힘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다섯 번째였다. 첫 음부터 마지막 음까지, 곡이 한 줄기로 이어졌다. 줄였던 한 박이 매끄럽게 넘어갔고, 깎아 낸 음의 빈자리가 오히려 노래를 가볍게 했다. 다듬어 둔 부분들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다잡혔다. 소율은 마지막 음을 끝내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이제 됐어."
그녀는 작게 말했다. 부분을 벼리는 일이 지난 며칠이었다면, 그 부분들을 한 호흡으로 다잡는 일이 남은 닷새였다.
같이 다잡을 자리
저녁, 진우와 김지수는 청소를 마친 집에서 마주 앉았다. 현수의 방은 창이 열려 환기가 되어 있었고, 식탁 위에는 빈 종이 대신 두 잔의 차가 놓였다.
"오늘 며칠이에요?"
"스무나흘."
진우는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김지수는 수첩을 펴 같은 숫자를 보여 주었다. 두 사람의 숫자는 오늘도 같았다.
"방까지 치우니까 어때요?"
"이상하게, 말이 덜 무거워졌어요. 아직 무슨 말 할지는 모르는데, 그날 이 방을 보여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진우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흩어져 있던 게 자리를 잡으니까, 겁이 좀 줄었어요."
김지수는 잠깐 자기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다잡을 게 하나 있어요."
"뭔데요?"
"그날, 옆에 있어도 되는지. 현수 씨가 처음 보는 사람이 같이 있으면 부담스러울까 봐, 며칠째 마음을 못 정하고 있었어요."
진우는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줘요. 그 자리도, 같이 다잡고 싶어요."
김지수는 수첩의 스무나흘 옆에, 어제처럼 작은 점을 찍었다. 그리고 그 점 옆에 처음으로, 작은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렸다.
한 점으로 모이는 고리
그 시각, 궤도 위에서 ATLAS는 쉰 번째 정렬에 들어가 있었다.
쉰 번째였다. 처음 격자 두 장을 맞댄 날로부터, 고리는 쉰 번을 거듭 다잡으며 여기까지 와 있었다. 이번 정렬은 새로 격자를 더하는 일이 아니었다. 지난 마흔아홉 번 동안 미세하게 틀어 둔 각도들을, 한 번에 한 기준으로 모아 고정하는 일이었다. 흩어진 미세 오차를 따로따로 두지 않고, 고리 전체가 하나의 곡률로 다잡히는 단계였다.
지상의 관제 화면에 한 줄이 떠올랐다. '메타 47단계 — 다잡음. 격자 전체 곡률 오차 영 점 일 밀리미터 이내로 수렴. 송전 사백팔십 시간 무중단.'
오차는 영 점 삼에서 영 점 일 밀리미터로 줄어, 이제 흩어짐 없이 한 점으로 모였다. 따로 놀던 격자들이 마침내 하나의 매끄러운 곡선으로 합쳐졌다. 모은 햇빛은 그러는 동안에도 한순간 끊기지 않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사백팔십 시간. 그 빛이 동현의 책상 위 손수건과 머그잔을 비추고, 소율이 한 호흡으로 이어 부른 악보를 비추고, 명호가 분과 초까지 못 박은 발사 시각을 비추고, 진우와 김지수가 함께 치운 방의 열린 창으로 들어왔다.
발사 시각은 그날 한 점으로 고정되었다. 예순두 일 뒤, 그 고정된 한 점에서, 발사체는 흩어짐 없이 다잡힌 모든 것을 싣고 땅을 떠날 것이다.
저마다 흩어져 있던 것을, 오늘 한곳으로 다잡았다. 진우는 집을, 명호는 일정을, 동현은 빈자리를, 소율은 흩어진 마디를, 고리는 흩어진 각도를. 벼린 것들을 이제 한 점으로 모아 두는 일. 그게 다잡음이었다.
내일이면, 그 한 점에서 하루가 또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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