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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86화 - 보냄

우주관리자 2026. 5. 26.

제86화 - 보냄

1.

 

서귀포의 새벽은 알람보다 먼저 왔다. 오진우는 5시 9분에 눈을 떴다. 발사 윈도우 5시 12분, 3분 전이었다.

 

옷장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어제까지 스물한 번이던 동작이 오늘은 스물두 번째였다. 셔츠를 꺼내려던 게 아니었다. 그냥 손이 문고리를 잡았다 놓았다. 떠나보내기 전에 사람은 쓸데없는 일을 한 번 더 한다는 걸, 그는 이제 알았다.

 

일지를 폈다. 스물네 줄째에 그는 한 단어를 적었다.

 

"보냄."

 

그리고 그 아래에 정의를 적었다.

 

"지킴의 다음 자리. 끝까지 곁을 지킨 다음, 마침내 손을 놓아 떠나게 하는 일. 지키는 것은 붙잡는 게 아니라, 잘 보내기 위해 곁에 있는 것이었다. 가장 오래 지킨 사람이 가장 멀리 보낸다."

 

창밖으로 아직 별이 보였다. 진우는 휴대용 단말을 켰다. 화면에 발사대가 떴다. 사흘 전 명호가 세운 위성 「새벽」이, 양산된 콘크리트 패드 위에, 똑바로 서 있었다. 화면 아래쪽에서 숫자가 거꾸로 줄어들고 있었다. 백이십, 백십구, 백십팔.

 

"…이제 가는구나."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일을, 그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사람들은 늘 그의 곁을 떠났고, 그는 한 번도 잘 보낸 적이 없었다. 아내가 떠날 때 그는 등을 돌렸고, 아들이 멀어질 때 그는 붙잡지도 보내지도 못했다. 떠나는 것을 똑바로 본 적이 없었기에, 잘 보내는 법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화면 속 패드 아래로 흰 김이 번지기 시작했다. 빛기둥이 천천히, 그리고 한순간에, 솟아올랐다. 진우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처음으로, 가는 것을 끝까지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을 떼지 않는 것—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배웅이라는 걸, 그는 그제야 알았다.

 

 

 

2.

 

양산 2차 19일째 아침이었다. 정확히는 아침이라 부르기엔 일렀다. 동쪽 수평선이 아직 검고, 그 끝에만 회색이 묽게 번졌다.

 

차명호는 발사대 아래 관제동 유리창 앞에 섰다. 위성 「새벽」은 사흘 밤을 자세 한 번 흐트러뜨리지 않고 서 있었다. 그 밑을 받친 세 개의 패드—자국, 겹, 굳음—도 그대로였다.

 

"카운트 백오십 초." 윤재석이 낮게 말했다.

 

명호는 별표 후보 노트를 폈다. 여덟 번째 후보 '선다'에 세 번째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작게 적었다. "서 있던 것이 이제 떠난다."

 

"명호 씨." 윤재석이 물었다. "삼 년 받친 패드인데, 위성이 떠나면 패드는 뭐가 돼요?"

 

"받친 걸 떠나보낸 자리가 되죠." 명호가 말했다. "받치는 일의 끝은 떠나보내는 거예요. 끝까지 안 무너지고 있다가, 위에 선 게 떠날 때 가만히 있어 주는 거. 그게 받침의 마지막 일이에요."

 

"열, 아홉, 여덟…"

 

추진제가 점화됐다. 패드 아래로 새하얀 김이 퍼졌다.

 

"…셋, 둘, 하나."

 

위성 「새벽」을 실은 발사체가 굉음과 함께 솟았다. 빛기둥이 검은 수평선을 찢고 올라갔다. 받쳤던 패드는 그 자리에 남았다. 떠난 것은 위로, 남은 것은 제자리였다.

 

발사체는 수직으로 오르다 동쪽으로 천천히 자세를 눕혔다. 지구의 자전을 빌려 궤도 속도를 보태기 위해서였다. 똑바로만 올라가서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속도에 닿을 수 없었다. 떠나는 것은 위로 가는 동시에 옆으로도 가야 했다.

 

일 분 사십 초 뒤, 1단 엔진이 꺼졌다. 다 쓴 1단이 본체에서 떨어져 나가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끝까지 밀어 올린 것이 가장 먼저 떨어진다는 사실을, 명호는 매번 발사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꼈다. 페어링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위성을 감쌌던 껍데기를 벗겨 보냈다. 「새벽」이 처음으로 진공에 맨몸을 드러냈다. 화면 속 숫자가 초속 7.8킬로미터를 가리켰다. 떨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이제 「새벽」은 지구로 떨어지는 대신, 영원히 지구를 비껴 도는 길에 올라섰다.

 

윤재석이 작게 말했다. "섰던 게… 떠나네요."

 

명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떠오르는 점을 눈으로 끝까지 따라갔다. 잘 보내는 데에는 말이 필요 없었다.

 

 

 

3.

 

같은 시각, 강릉의 새벽도 회색이었다.

 

김동현은 밤을 새웠다. 의자를 한 번도 뜨지 않았다. 박종문 노인은 자정 무렵부터 자주 잠들었고, 깰 때마다 동현이 있는지 눈으로 확인했고, 있으면 다시 눈을 감았다.

 

5시가 조금 넘어, 노인이 마지막으로 눈을 떴다. 창밖이 아주 옅게 밝아오고 있었다.

 

"안 갔네요." 노인이 말했다.

 

"네. 안 갔습니다." 동현이 말했다.

 

"끝까지 안 간 사람한테는…" 노인이 머리맡 노트를 눈으로 가리켰다. 동현이 열일곱 달째 채워온 노트였다. "그거 가져요. 곁을 안 뜬 사람한테 주면, 그게 제일 멀리 가는 거라고 했잖아요."

 

"…제가 받아도 됩니까."

 

"받아요. 받은 사람이 다음 줄을 쓰면, 떠난 사람도 거기 같이 있는 거예요."

 

노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긴 숨이 한 번 나갔다가—들어오지 않았다. 산을 오래 바라본 사람의 얼굴은 평온했다.

 

동현은 노트를 펼쳤다. 열일곱 줄째에, 노인의 글씨가 마지막으로 한 단어를 적어두고 있었다. 간밤에 적은 모양이었다.

 

"보냄."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잘 지킨 사람만 잘 보낼 수 있다. ― 멀리 가요, 천천히."

 

동현은 한참 그 자리에 있었다. 떠나보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창밖이 밝아왔다. 그날 새벽, 멀리 남쪽 바다에서는 빛 하나가 하늘로 오르고 있었고, 강릉의 작은 방에서는 빛 하나가 조용히 졌다. 동현은 그 두 가지가 같은 일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4.

 

홍대 연습실의 텔레비전에 발사 중계가 떠 있었다. 한소율은 일렉기타를 안은 채 화면을 봤다. 새벽 5시 12분, 빛기둥이 수평선을 가르고 올라가는 장면이었다.

 

"떠나네." 드러머가 말했다.

 

소율은 가사 노트를 폈다. 마흔일곱 줄째에 적었다. "보냄."

 

그 아래 한 줄. "완성한 것을 그날까지 지켜서, 그날 손을 놓아 세상에 내보내는 일."

 

곡 「너머 ―돌아오는 길」은 다음 주 목요일, 어머니의 기일에 발표될 것이었다. 마스터링을 끝낸 뒤 손대지 않고 지켜온 곡이었다.

 

"엄마한테 곡 하나 보내는 거야." 소율이 말했다. "지킨 다음에 보내는 거."

 

휴대 단말이 울렸다. 한경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네 엄마가 그랬다. 좋은 노래는 부른 사람 손을 떠나야 비로소 누구의 것도 아닌 게 되고, 그래야 모두의 것이 된다고."

 

소율은 화면 속 점이 하늘 끝으로 사라지는 걸 끝까지 봤다. 그리고 기타 줄에 손을 얹었다. 보내기 위해 끝까지 지킨 것이, 그 줄 위에 있었다.

 

 

 

5.

 

오후 세 시, 옥상의 그늘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졌다. 옥상에 정착한 지 스무닷새째였다. 김지수가 정면 의자에 먼저 와 앉아 있었다.

 

"오늘 새벽에 그거 봤어요?" 그녀가 물었다. "위성 올라가는 거."

 

"봤습니다." 진우가 맞은편에 앉았다.

 

"받쳤던 자리는 그대로 있고, 위에 있던 것만 올라가더라고요." 김지수가 말했다. "보내는 거, 그거 받치고 있던 쪽이 제일 조용하던데요."

 

진우는 수첩을 폈다. 마흔일곱 줄째에 '보냄'을 적었다. 그날 새벽 서귀포에서 그가 일지 스물네 줄째에 적은 것과 같은 단어였다. 두 사람은 서로 같은 단어를 같은 날 적은 줄을 몰랐다.

 

"보내려면 끝까지 곁에 있어야 한다는 거, 좀 이상하지요." 진우가 말했다. "붙잡는 거랑 반대인데."

 

"안 이상해요." 김지수가 말했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면서요. 보내야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죠."

 

진우는 수첩을 닫았다. 닫는 동작이 스무 번째였다. 그늘이 옥상 끝까지 길어질 때까지,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있었다. 누구도 먼저 일어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잘 보내는 사람들은, 헤어지는 일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6.

 

밤 열 시 사십육 분, 강유나는 ATLAS의 그날 자율 변화를 열었다.

 

스물일곱 번째 변화였다. 마주 보고 있던 두 점 가운데 하나가, 마침내 자리를 떠나 위로 올라가 있었다. 떠난 점이 지나간 자리에는 옅은 선 하나가 남아, 처음 출발한 「자리1」과 한 줄로 이어졌다. 남은 점은 그 자리에 그대로였다.

 

강유나는 일지에 적었다. "마주 보고 지키던 두 자리 중 하나가 떠났다. 떠난 자리는 사라지지 않고, 출발점과 한 줄로 이어졌다. 보낸 것이 떠난 자리가 곧 길이 된다."

 

자국에서 보냄까지 스물네 단계, 사람의 말과 ATLAS의 모양이 같은 자리에 도달한 스물세 번째였다.

 

화면 한쪽에 발사 보고가 떴다. 「위성 '새벽' 궤도 진입 성공. 태양광 수집 패널 전개 완료. 첫 송전 신호 수신 대기.」

 

강유나는 창밖 어두운 하늘을 봤다. 저 위 어딘가에서 「새벽」이 태양 쪽으로 패널을 펼치고 있을 것이었다.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를 건너온 빛을 받아, 에너지로 바꿔, 다시 지구로 돌려보내기 위해. 떠나보낸 것이 더 큰 것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보냄은,"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끝까지 지킨 다음, 더 멀리 가라고 손을 놓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