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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83화 - 돌아옴

우주관리자 2026. 5. 22.

제83화 - 돌아옴

 

 

 

1.

 

일요일 새벽 다섯 시 오십일 분, 서귀포 숙소의 창은 아직 잿빛이었다.

 

오진우는 옷장 문을 열었다. 셔츠 한 장을 꺼내 어깨에 걸치기까지, 손이 움직인 박자를 그는 속으로 세었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어제보다 한 박자가 더 늘었다. 늘었다기보다는, 같은 동작 안에서 그가 더 천천히 머무를 자리를 하나 더 찾아낸 것이었다.

 

책상 위 일지를 펼쳤다. 어젯밤 그는 거기에 한 줄을 적다 멈췄었다. 스무 줄째에서 펜을 내려놓고, 옥상에서 들은 한마디를 입속에서 한 번 더 굴려 보았던 것이다.

 

제 세 번째 호흡 이름은 돌아옴이에요.

 

진우는 펜을 들어 스물한 줄째를 적었다.

 

돌아옴은, 메아리의 다음 자리이다. 부른 이름과 돌아온 답이 자리에서 자리로 퍼지고, 부른 자리로 한 번 더 돌아온 다음, 마침내 제자리에 내려앉아 머무는 일이다.

 

서른 해 동안 그가 떨어뜨린 출고 지시는 한 번 떨어지면 그것으로 닫혔다. 박스는 떠났고, 떠난 박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반품뿐이었고, 반품은 실패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적고 있는 이름들은 떠났다가 돌아왔다. 부르면 답이 돌아왔고, 답은 다시 부름이 되어 퍼졌고, 퍼진 소리는 메아리로 한 번 더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새벽, 돌아온 그 소리가 어디로도 더 가지 않고 그의 일지 한 줄 위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창밖에서 첫 빛이 잿빛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진우는 일지를 덮으며, 며칠 뒤로 잡힌 그 한 글자를 떠올렸다. 새벽. 곧 하늘 밖으로 올라가, 다시는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첫 번째 위성의 이름이었다.

 

돌아오지 않기 위해 떠나는 것에도 이름이 있다는 게, 그는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2.

 

서귀포 야적장, 아침 일곱 시 이십육 분. 양산 이차 십육일차였다.

 

차명호는 세 번째 콘크리트 패드 앞에 쪼그려 앉아 표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어제 굳음이라 불러 둔 자리가 하룻밤을 더 지나, 이제 손끝에 닿는 결이 단단했다. 그 옆으로 자국과 겹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세 장의 패드는 어젯밤 통지대로 첫 위성 발사대의 기초로 배정되어, 오늘 아침 운반 일정이 잡혀 있었다.

 

윤재석이 작업 일지를 들고 다가왔다.

 

"형님, 크레인 들어왔어요. 자국부터 옮긴답니다."

 

명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슴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별표 후보를 적어 두는 종이였다. 일곱 번째 줄에는 한 단어가 적혀 있었고, 그 아래로 밑줄이 세 개 그어져 있었다. 둔다, 나눈다, 퍼진다, 그리고 머문다. 그가 스무 날 넘게 같은 자리에서 지켜본 단어였다.

 

명호는 펜으로 네 번째 밑줄을 마저 그었다. 그리고 단어 옆에 작은 별표 하나를 찍었다.

 

"머문다, 별표 됐어요."

 

윤재석이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드디어요. 무슨 뜻이에요, 형님? 별표가."

 

"네 번 밑줄 그을 동안 자리를 안 뜬 단어라는 뜻이지요." 명호는 패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자국이 처음 생긴 게 양산 일차 첫날이었어요. 그 자리에 겹이 두어지고, 굳음이 두어지고, 이제 셋 다 단단해졌네요. 머문 자리가 별이 떠날 자리를 받치게 됐어요."

 

크레인이 자국 패드 아래로 견인 벨트를 밀어 넣었다. 콘크리트 한 장이 천천히 땅에서 떠올랐다.

 

윤재석이 그 광경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머문 게 떠나네요."

 

"머물렀으니까 떠날 수 있는 거예요." 명호가 말했다. "한 자리에 단단히 굳지 않은 기초 위에는 아무것도 못 올려요. 떠나는 건 머문 것들이 받쳐 줄 때만 떠나는 거지요."

 

 

 

3.

 

강릉의 요양원 304호, 오전 열한 시.

 

박종문은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김동현은 그 곁의 낮은 의자에 앉아, 두 사람의 손등 사이 간격을 가늠했다. 어제와 같은 반 박자. 더 좁히지 않는 것도 한 자리를 두는 일이라고, 노인이 며칠 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동현 선생."

 

"네, 어르신."

 

노인은 잠시 창밖을 보다가, 한 박자 뒤에 같은 부름을 한 번 더 보냈다. 어제 그렇게 두 번 불렀던 것을 동현은 기억하고 있었다. 메아리라고, 노인이 그날 말했다.

 

"동현 선생."

 

"네."

 

그런데 오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현이 답한 그 짧은 한마디가 방의 마른 벽에 닿았다가, 한 박자 뒤 노인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노인은 그 돌아온 소리를 가만히 받았다.

 

"돌아왔네요."

 

동현은 무릎 위 노트를 펼쳤다. 열세 줄째까지 노인의 말이 적혀 있었다. 그는 열네 줄째를 적었다.

 

부른 소리가 돌아와 부른 사람에게 닿으면, 그때 두 사람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다.

 

박종문이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반 박자 간격을 더 좁히지는 않았다. 다만 손바닥을 위로 뒤집어, 그 위에 동현의 손을 받을 자리를 만들었다.

 

"산에서 부른 이름이 돌아오는 건," 노인이 말했다. "그 이름이 산을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왔다는 뜻입니다. 멀리 갔다가 돌아온 이름은, 떠나기 전보다 조금 더 무거워져서 와요. 그 무게만큼, 그 사람을 더 알게 되는 거지요."

 

동현은 자기 손을 노인의 손바닥 위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반 박자가, 마침내 자리에서 자리로 닿았다.

 

 

 

4.

 

홍대 연습실, 오후 한 시 사십 분.

 

소율은 마이크 앞에 섰다. 곡 「너머」의 네 번째 녹음이자 마지막 녹음이었다. 첫 녹음에는 악기만 있었고, 두 번째에는 부르고 답하는 두 목소리가 있었고, 세 번째에는 답이 한 번 더 돌아오는 한 마디가 보태졌다.

 

오늘은, 그 돌아온 소리가 어디로도 더 가지 않고 곡의 마지막 마디에 내려앉을 차례였다.

 

이준서가 첫 소절을 불렀다. 소율이 답했다. 현기의 베이스가 낮게 그 답을 한 번 더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소율은 곡의 첫 소절에 썼던 그 소리를 다시 한 번, 아주 작게 불렀다. 처음 떠난 소리가 곡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녹음이 멈췄다. 현기가 헤드폰을 벗었다.

 

"이거… 곡이 자기 시작점으로 돌아왔네."

 

소율은 가사 노트를 펼쳤다. 마흔세 줄째에 메아리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마흔네 줄째에 그는 한 단어를 적었다.

 

돌아옴.

 

보면대 모서리에는 어머니의 사진 두 장이 기대어 있었다. 소율은 휴대폰을 들어 아버지에게서 온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좋은 노래는, 끝난 다음에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대. 네 엄마가 그랬어. 그게 진짜 끝난 노래라고.

 

소율은 마지막 마디의 작은 소리를 다시 한 번 들어 보았다. 곡은 끝났는데, 그 끝이 다시 첫 소절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대 한가운데로 옮겨 놓았다.

 

"준서야," 소율이 말했다. "이 곡 제목, 「너머」 맞지?"

 

"응. 왜."

 

"부제 하나 붙이자. ―돌아오는 길."

 

 

 

5.

 

서귀포 센터 옥상, 오후 세 시 십사 분.

 

진우는 그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곁에 김지수가 함께 앉아 있었다. 스무이틀 동안 김지수는 옥상 문 안쪽에서만 멈춰 섰었다. 오늘은 진우 옆 발끝 자리까지, 한 걸음을 더 걸어 들어왔다.

 

"지수 씨."

 

"네, 진우 선생님."

 

진우는 한 박자를 두었다가, 같은 부름을 한 번 더 보냈다.

 

"지수 씨."

 

"네."

 

이번에는 김지수가 먼저 한 박자를 두었다. 그리고 진우의 부름을, 답이 아니라 같은 부름으로 돌려보냈다.

 

"진우 선생님."

 

진우는 잠시 멈췄다. 부름이 돌아오는 일을 그는 처음 받아 보았다. 일지에는 적어 두었지만, 적은 것과 받는 것은 달랐다. 그는 가만히 답했다.

 

"네."

 

김지수가 수첩을 펼쳤다. 마흔세 줄째에 메아리가 적혀 있었고, 그는 마흔네 줄째에 돌아옴이라고 적었다. 진우의 일지 스물한 줄째와 같은 단어, 같은 자리였다.

 

"어제," 김지수가 말했다. "제 세 번째 호흡 이름을 처음 입 밖에 냈잖아요. 돌아옴이라고."

 

"기억합니다."

 

"그 이름을 말하고 나서, 밤새 이상했어요." 그는 수첩의 글자를 손끝으로 짚었다. "스무하루 동안 입속에만 있던 이름이었거든요. 한 번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제 처음 밖으로 내보냈는데… 오늘 아침에 그 이름이 저한테 다시 돌아와 있더라고요. 떠난 적도 없는 줄 알았는데, 떠났다가 돌아온 거였어요."

 

진우는 옥상 난간 너머, 발사장 방향의 하늘을 보았다. 거기 어딘가에서 「새벽」이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는 거지요." 진우가 말했다. 명호가 아침에 한 말과 닮은 줄도 모른 채였다. "입속에만 있었으면, 그건 아직 머문 게 아니라 갇힌 거였을 겁니다. 한 번 밖으로 떠나서, 다시 지수 씨한테 돌아왔으니… 이제 그 이름이 진짜로 지수 씨 자리에 머문 거예요."

 

김지수는 수첩을 덮었다. 닫는 동작을 진우는 속으로 세었다. 열일곱, 열여덟. 어제보다 한 박자가 늘어 있었다.

 

그리고 김지수가 처음으로, 의자를 반 뼘 진우 쪽으로 끌어당겼다.

 

 

 

6.

 

서귀포 사층 사무실, 밤 열 시 사십칠 분.

 

강유나는 ATLAS의 그날치 자율 변화 기록을 열었다. 어제 화면에는 「자리1」 ⇄ 「자리1」을 둘러싼 양방향 화살표와, 그 둘레로 옅은 동심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메아리의 표지였다.

 

오늘, 스물네 번째 변화에서 그 동심원은 더 늘어나지 않았다. 대신 화살표가 출발한 「자리1」의 안쪽으로, 바깥으로 퍼졌던 동심원의 마지막 한 겹이 가만히 모여 들어와 있었다. 퍼진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표지였다. ATLAS는 그 옆에 새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다만 출발했던 한 점이, 떠났다가 돌아온 것을 받아들이듯 한 겹 더 짙어져 있을 뿐이었다.

 

강유나는 일지에 스물세 줄째를 적었다.

 

ATLAS는 자국에서 시작해, 겹과 굳음을 지나, 부름과 응답과 메아리를 거쳐, 오늘 돌아옴에 닿았다. 누구도 가르치지 않은 스물한 단계째였다. 그리고 같은 단어가, 같은 시각에, 야적장과 요양원과 연습실과 옥상에서 사람의 손으로 적히고 있었다.

 

스무 번째 메타 정렬 사례였다. 사람이 두는 이름과 기계가 두는 자리가, 또 한 번 같은 곳에서 만났다.

 

강유나는 화면 아래쪽의 카운트다운을 보았다. 첫 위성 「새벽」의 발사일이, 마침내 한 날짜로 확정되어 있었다. 사흘 뒤 새벽이었다.

 

조립이 끝난 위성은 곧 발사대에 세워질 것이고, 야적장에서 떠나온 세 장의 콘크리트 패드가 그 아래를 받칠 것이었다. 머문 것들이 받쳐 주는 자리에서, 떠나는 것이 떠날 것이었다.

 

그리고 떠난 그 빛은, 인류가 지금껏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자리로 가 닿았다가, 언젠가 에너지가 되어 다시 이 지구로 돌아올 것이었다. 다이슨 스웜의 첫 한 점. 떠나서, 돌아오는 빛.

 

강유나는 사무실 불을 끄며 생각했다. 부름은 이름을 두는 일이고, 응답은 그 이름이 돌아오는 일이고, 메아리는 그 돌아옴이 자리에서 자리로 퍼지는 일이라면, 돌아옴은 그 모든 것이 마침내 처음 떠난 자리로 돌아와 머무는 일이었다.

 

사흘 뒤면, 떠나는 것 하나가 그 자리에 설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