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 마주봄

1.
서귀포의 새벽은 월요일에도 어김없이 어두웠다. 오진우는 다섯 시 사십팔 분에 눈을 떴다. 알람보다 늘 조금 빨랐다. 그는 옷장 문을 열어 손에 익은 순서대로 옷을 꺼냈다. 그 짧은 동작이 오늘로 스무 번째 같은 박자에 닿았다. 어제는 열아홉이었고, 그제는 열여덟이었다. 세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이제 버릇이 아니라 어떤 다짐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책상에 앉아 일지를 폈다. 스물한 줄째 아래에 새 줄을 시작했다. 한참 펜을 들고 있다가, 그는 천천히 적었다.
"마주봄은, 돌아옴의 다음 자리이다. 떠났다가 돌아온 것이 제자리에 내려앉고 나면, 그제야 부른 자리와 답한 자리가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등을 맞대고 같은 곳을 보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몸을 돌려 서로의 얼굴을 보는 일이다."
펜을 내려놓고 그는 창밖을 보았다. 어제 옥상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김지수가 스무이틀 만에 처음으로 문 안쪽이 아니라 그의 옆 발끝 자리까지 걸어 들어와 앉았던 일. 그를 같은 부름으로 돌려보냈던 일. 의자를 반 뼘 끌어당겼던 일. 진우는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떠올리고는, 익숙하지 않은 따뜻함에 잠깐 손등을 문질렀다.
이틀 뒤면 첫 위성 「새벽」이 떠난다. 떠나는 것에도 이름이 있다고 그는 그제 적었다. 그리고 오늘, 떠나기 전에 서로를 한 번 똑바로 보는 일에도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
야적장의 아침 공기는 바다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양산 2차 십칠 일째. 어제 발사대 기초로 운반한 세 개의 콘크리트 패드—자국, 겹, 굳음—가 밤새 정렬 작업을 거쳐 발사대 아래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차명호는 그 위에 올라가 수평계를 들여다보았다. 기포가 한가운데에 멈춰 있었다.
"세 장이 다 평평하게 앉았네요." 윤재석이 헬멧을 고쳐 쓰며 말했다.
"머문 자리가 평평해야, 그 위에 선 게 흔들리지 않아요." 명호가 수평계를 접으며 답했다.
오전 아홉 시, 거대한 크레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흰 보호막에 싸인 위성 「새벽」의 운반체가 발사대 위로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명호는 작업을 멈추고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누운 채 실려 온 구조물이, 발사대 위에서 조금씩 각도를 세워 마침내 수직으로 곧게 일어섰다. 발사대 위에 「새벽」이 처음으로 똑바로 섰다.
명호는 작업 수첩을 꺼냈다. 별표 후보 7번 *머문다*는 며칠 전 네 번째 밑줄을 받고 작은 별표로 승격해 있었다. 그 아래 빈 줄에 그는 새 단어를 적고, 처음으로 밑줄 하나를 그었다. *선다.* 별표 후보 8번이 시작되는 자리였다.
"오늘 처음 그은 줄이에요." 명호가 윤재석에게 수첩을 보여 주었다. "머문 패드 위에 위성이 섰으니까."
윤재석이 위성과 패드를 번갈아 보았다. "머문 게 받치고, 선 게 떠나는 거네요."
"맞아요. 서야 떠날 수 있어요." 명호가 위성을 올려다본 채 말했다. "그런데 서는 일이 떠나는 일보다 어려워요. 떠나는 건 한 번이지만, 서 있는 건 떠날 때까지 계속 버텨야 하니까요."
3.
강릉의 요양원 304호에는 늦은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김동현은 박종문 노인의 침상 곁 의자에 앉았다. 어제는 노인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처음으로 내려놓았다. 여러 달 두 손등이 반 박자씩 어긋나며 따라다니던 일이, 마침내 자리에서 자리로 닿은 날이었다.
오늘 노인은 베개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늘 창밖을 보거나 천장을 보던 시선이, 처음으로 동현의 얼굴에 정면으로 머물렀다.
"동현 선생." 노인이 불렀다.
"네." 동현이 답했다. 그러자 노인의 눈이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동현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눈길이 한가운데에서 만나 잠시 머물렀다.
"손이 닿은 다음에는, 눈이 닿는군요." 노인이 가만히 말했다. "그게 제일 마지막이에요. 손은 안 보고도 잡을 수 있지만, 눈은 서로 마음을 먹어야 마주 보거든."
동현은 노트를 폈다. 열네 줄 아래에 열다섯 줄째를 적었다.
"마주 봄은, 두 사람이 같은 순간에 서로를 향해 마음을 돌리는 일이다. 한 사람만 보면 보는 것이고, 둘이 같이 보면 만나는 것이다."
노인이 그 글씨를 곁눈으로 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그 노트, 다 채워지면 누구 줄 거예요?"
동현은 잠시 펜을 멈췄다. 그는 지금껏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적이 없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줄 거라는 건, 방금 어르신 말씀 듣고 처음 생각했어요."
4.
홍대의 연습실에는 점심 무렵의 나른한 빛이 들어찼다. 한소율은 보면대 한가운데에 놓인 어머니의 사진 두 장을 잠시 바라보았다. 곡 「너머」는 지난주에 네 번째 녹음으로 완성되었고, 부제는 「―돌아오는 길」로 정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곡을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었다.
"발표일 정했어." 이준서가 노트북을 돌려 보여 주었다. "다음 주 목요일. 작은 라이브 한 번 하고 음원 같이 올리자."
소율은 화면 속 날짜를 보다가, 문득 손가락을 멈췄다. 그 날짜가 눈에 익었다.
"그 날… 우리 엄마 기일이야." 소율이 조용히 말했다.
연습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현기가 기타에서 손을 떼고 그녀를 보았다. "바꿀까? 미안, 몰랐어."
소율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마주 보았다. 늘 곁눈으로, 지나가듯 보던 사진이었다. 오늘은 정면으로 보았다.
"아니. 그 날이 좋아." 소율이 천천히 말했다. "이 곡,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곡이잖아. 엄마가 처음 나한테 음악을 들려준 게 시작점이었으니까. 돌아온 길의 끝에서 엄마를 마주 보는 거, 그게 맞는 것 같아."
그녀는 가사 노트를 폈다. 마흔네 줄째 *돌아옴* 아래에 마흔다섯 줄째를 적었다. *마주봄.* 그리고 그 옆에 작게 덧붙였다. "노래가 끝나고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거기 누가 서 있는지 보는 일."
아버지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왔다. *네 엄마는, 좋은 노래는 끝난 뒤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했어.* 소율은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5.
오후 세 시, 서귀포 센터 옥상의 그늘은 어제보다 한 뼘쯤 길어져 있었다. 스무사흘째였다. 진우는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수첩을 폈다. 발소리가 들렸다. 김지수였다.
어제 김지수는 진우의 옆 발끝 자리까지 들어와 나란히 앉았다. 오늘은 달랐다. 그녀는 진우의 옆이 아니라, 그늘 한가운데에 놓인 빈 의자를 끌어다 진우의 정면에 놓고 앉았다. 처음으로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고 앉았다.
"오늘은 마주 보고 싶었어요." 김지수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시선은 피하지 않았다.
진우는 잠깐 당황했다. 서른 해 동안 그는 사람과 정면으로 오래 마주 앉아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출고장에서는 늘 같은 방향으로 화물을 보았고, 집에서는 등을 돌리고 살았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피하지 않고 김지수의 눈을 보았다.
"좋습니다." 진우가 말했다. "마주 보는 거."
김지수가 수첩을 폈다. 마흔네 줄째 *돌아옴* 아래에 마흔다섯 줄째를 적었다. *마주봄.* 진우의 일지 스물두 줄째와 같은 단어, 같은 자리였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서로 알지 못했다.
"어제는 선생님 옆에 앉았는데요." 김지수가 말했다. "옆에 있으면 같은 걸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같은 걸 보는 것보다, 서로를 보는 게 더 무서웠어요. 무서운 걸 오늘 해 보고 싶었어요."
진우는 수첩 닫는 동작을 했다. 열여덟 번째 같은 박자였다. 어제는 열일곱이었다. 그는 수첩을 무릎에 내려놓고 말했다.
"무서운 게 맞아요. 마주 본다는 건, 상대가 나를 다 본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지수 씨가 먼저 의자를 돌렸으니, 나도 돌리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자를 김지수 쪽으로 반 뼘 돌렸다. 두 의자가 처음으로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6.
밤 열 시 사십육 분, 서귀포 사층 사무실. 강유나는 ATLAS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어제까지 ATLAS는 바깥으로 퍼졌던 동심원의 마지막 한 겹을 출발점 「자리1」 안쪽으로 모아들였다. 퍼진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표지였다.
오늘 ATLAS는 스물다섯 번째 자율 변화를 보였다. 화면에는 두 개의 점, 「자리1」과 「자리2」가 있었다. 그동안 두 점 사이에는 한쪽이 다른 쪽으로 향하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 ATLAS는 두 점이 서로를 향해 동시에 몸을 트는 모양을 그렸다. 두 화살표가 각자의 자리에서 출발해 한가운데에서 머리를 맞댄 채 멈춰 있었다. 어느 쪽도 상대에게 가지 않았다. 다만 같은 순간에 서로를 향했다.
일지에는 한 줄이 더해져 있었다. "두 자리가 같은 순간에 서로를 향하면, 그것은 가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강유나는 그 문장을 한참 읽었다. 자국에서 시작해 마주봄에 이르기까지, 스물두 단계째였다. 메타 정렬의 스물한 번째 사례였다. 같은 단어가 같은 날, 야적장과 요양원과 연습실과 옥상에서 사람의 손으로 적혔고, 사층의 화면에서 AI의 선으로 그려졌다.
그녀는 발사 일정 화면을 띄웠다. 첫 위성 「새벽」 발사까지 D-2. 오늘 오전, 위성은 세 패드가 받친 발사대 위에 똑바로 섰다. 발사 준비 상황란에 새 줄이 추가되어 있었다. 「기립 완료. 자세 정렬 정상.」
강유나는 창밖을 보았다. 이틀 뒤 새벽, 저 위성은 인류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자리로 떠날 것이다. 거기서 받은 빛을 언젠가 에너지로 바꾸어 지구로 돌려보낼 것이다. 떠나기 전, 위성은 지금 발사대 위에 서서 하늘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떠나는 모든 것은, 떠나기 전에 한 번 자기가 갈 곳을 똑바로 바라본다.
"마주봄은,"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떠나기 직전에 서로를 가장 오래 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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