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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85화 - 지킴

우주관리자 2026. 5. 25.

제85화 - 지킴

1.

 

서귀포의 새벽은 화요일에도 어김없이 어두웠다. 오진우는 다섯 시 마흔일곱 분에 눈을 떴다. 알람은 여전히 그보다 조금 늦게 울렸다. 그는 옷장 문을 열어 손에 익은 순서대로 옷을 꺼냈다. 그 짧은 동작이 오늘로 스물한 번째 같은 박자에 닿았다. 어제는 스물이었고, 그제는 열아홉이었다. 세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 이제는 다짐을 넘어 어떤 기도처럼 느껴졌다.

 

책상에 앉아 일지를 폈다. 스물두 줄째 아래에 새 줄을 시작했다. 어제 적은 "마주봄" 바로 밑이었다. 그는 한참 펜을 들고 있다가 천천히 적었다.

 

"지킴은, 마주봄의 다음 자리이다.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본 다음에는, 그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지켜 주는 일이 남는다. 보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지키는 것은 떠날 때까지 곁을 비우지 않는 일이다."

 

펜을 내려놓고 그는 창밖을 보았다. 어둠 너머 야적장 쪽으로 발사대의 윤곽이 희미하게 서 있었다. 내일 새벽이면 첫 위성 「새벽」이 저 자리를 떠난다. 오늘 하루, 떠나기 전의 마지막 밤이 남아 있었다. 진우는 문득, 떠나보내기 전에 가장 오래 곁을 지키게 되는 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그 마음을 잠깐 손바닥으로 눌러 보았다.

 

 

 

2.

 

야적장의 아침 공기는 어제보다 차가웠다. 양산 2차 십팔 일째. 위성 「새벽」은 어제 오전 세 패드가 받친 발사대 위에 똑바로 선 뒤로, 밤새 그 자세를 한 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첫 밤을 났다. 차명호는 발사대 아래에서 기립 상태를 점검하는 작업자들 틈에 섰다. 흰 보호막 너머로 위성의 수직선이 새벽빛을 받아 한 줄로 곧게 뻗어 있었다.

 

"밤새 한 번도 안 기울었어요." 윤재석이 계기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자세 정렬, 밤새 정상."

 

"서 있는 게 제일 어렵다고 했잖아요." 명호가 위성을 올려다본 채 말했다. "떠나는 건 내일 한 번이지만, 오늘 밤까지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건 하루를 통째로 버티는 일이에요."

 

오전 작업은 시스템 점검과 추진제 충전 준비로 채워졌다. 발사 윈도우는 내일 새벽 다섯 시 십이 분으로 확정되어 있었다. 그 시각이 지나면 궤도가 어긋나 다음 기회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명호는 작업 수첩을 꺼냈다. 별표 후보 8번 *선다*는 어제 첫 밑줄을 받은 자리였다. 그 아래에 그는 오늘 두 번째 밑줄을 그었다.

 

"밤새 선 채로 버텼으니, 한 줄 더 그어야지요." 명호가 윤재석에게 수첩을 내밀었다.

 

윤재석이 위성과 패드를 번갈아 보았다. "패드는 받치고, 위성은 서고, 우리는 지키고. 다 각자 자리가 있네요."

 

"맞아요. 지키는 게 우리 자리예요." 명호가 점검표에 사인을 하며 말했다. "떠나는 건 위성이 하지만, 떠날 수 있게 끝까지 곁에 있는 건 사람이 해요. 그게 우리가 여기 서 있는 이유고요."

 

 

 

3.

 

강릉의 요양원 304호에는 그날따라 햇살이 늦게 들었다. 박종문 노인은 아침부터 기력이 없었다. 간밤에 열이 조금 올랐다가 내렸다고 했다. 김동현은 평소보다 일찍 와서 침상 곁 의자에 앉았다. 어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눈을 마주 보았다. 손이 닿은 다음에는 눈이 닿는다고, 그게 제일 마지막이라고 노인은 말했었다.

 

오늘 노인은 자주 잠에 들었다 깼다. 깰 때마다 동현이 곁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여태 안 갔어요?" 한 번은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네. 안 갔습니다." 동현이 답했다.

 

노인은 잠시 천장을 보다가 가만히 말했다. "마주 본 다음에는, 곁을 지키는 거예요. 본 사람이 가 버리면 마주 본 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거든. 끝까지 안 가고 있어 주는 게, 마주 본 걸 진짜로 만드는 일이에요."

 

동현은 노트를 폈다. 열다섯 줄째 *마주봄* 아래에 열여섯 줄째를 적었다.

 

"지킴은, 마주 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곁에 머무는 일이다. 보는 것은 마음을 한 번 먹는 것이고, 지키는 것은 그 마음을 시간 위에 길게 펴 놓는 것이다."

 

노인이 곁눈으로 그 글씨를 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어제 그 노트, 누구 줄 거냐고 물었지요. 오늘 보니 알겠네. 끝까지 곁을 안 뜬 사람한테 주면 돼요. 그게 제일 멀리 가는 거니까."

 

동현은 펜을 멈췄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노인이 다시 잠들 때까지 의자를 떠나지 않았다.

 

 

 

4.

 

홍대의 연습실에는 오후의 흐린 빛이 들어찼다. 한소율은 보면대 한가운데에 놓인 어머니의 사진 두 장을 마주 보았다. 곡 「너머 ―돌아오는 길」은 완성되어 있었고, 발표일은 다음 주 목요일,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이제 그날까지 곡을 안고 기다리는 일이 남아 있었다.

 

"음원 마스터링 다 끝났어." 이준서가 헤드폰을 벗으며 말했다. "이제 발표 날까지 건드릴 거 없어. 그냥 가지고 있다가 그날 올리면 돼."

 

소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성된 곡을 발표 전까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는 일이, 어쩐지 무언가를 지키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냥 두는 것도 일이네." 소율이 말했다. "더 고치고 싶고, 자꾸 만지고 싶은데, 안 만지고 그대로 지키는 거."

 

현기가 기타 줄을 가만히 짚으며 웃었다. "원래 다 만든 다음이 제일 손이 근질거려."

 

소율은 가사 노트를 폈다. 마흔다섯 줄째 *마주봄* 아래에 마흔여섯 줄째를 적었다. *지킴.* 그리고 그 옆에 작게 덧붙였다. "완성한 것을 그날까지 흔들지 않고 그대로 안고 있는 일." 그녀는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그날까지 이 곡을,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이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왔다. *네 엄마는, 좋은 노래는 만든 다음에 가만히 품고 있는 시간이 제일 길다고 했어.* 소율은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5.

 

오후 세 시, 서귀포 센터 옥상의 그늘은 어제보다 또 한 뼘 길어져 있었다. 스무나흘째였다. 진우는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수첩을 폈다. 발소리가 들렸다. 김지수였다.

 

어제 김지수는 빈 의자를 끌어다 진우의 정면에 놓고 처음으로 마주 보고 앉았다. 오늘도 그 자리 그대로였다. 다만 그녀는 평소보다 오래 앉아 있었다. 해가 그늘을 한 뼘 더 밀어낼 때까지, 두 사람은 별말 없이 같은 자리에 함께 있었다.

 

"오늘은 별로 할 말이 없는데요." 김지수가 먼저 말했다. "그냥 좀 더 앉아 있고 싶었어요."

 

"괜찮습니다." 진우가 말했다. "말 안 해도 곁에 있는 거, 그것도 하는 일이에요."

 

김지수가 수첩을 폈다. 마흔다섯 줄째 *마주봄* 아래에 마흔여섯 줄째를 적었다. *지킴.* 진우의 일지 스물세 줄째와 같은 단어, 같은 자리였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여전히 서로 알지 못했다.

 

"내일 그 위성 떠난다면서요." 김지수가 멀리 야적장 쪽을 보며 말했다. "떠나기 전날엔 다들 곁에 있어 주나 봐요. 명호 선생님도 밤새 옆에 계실 거라던데."

 

"그럴 겁니다." 진우가 말했다. "떠나는 게 정해진 것일수록, 떠나기 전 마지막 곁을 더 오래 지키게 돼요."

 

진우는 수첩 닫는 동작을 했다. 열아홉 번째 같은 박자였다. 어제는 열여덟이었다. 그는 수첩을 무릎에 내려놓고, 평소보다 조금 오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지수가 일어설 기색이 없자, 그도 일어서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늘이 옥상 끝까지 길어질 때까지 마주 앉은 채 그 자리를 지켰다.

 

 

 

6.

 

밤 열 시 사십육 분, 서귀포 사층 사무실. 강유나는 ATLAS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어제 ATLAS는 「자리1」과 「자리2」 두 점이 서로를 향해 동시에 머리를 맞댄 모양을 그렸다. 마주봄의 표지였다.

 

오늘 ATLAS는 스물여섯 번째 자율 변화를 보였다. 두 점은 여전히 서로를 마주한 채였다. 그런데 오늘은 어느 쪽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화살표도, 새로운 선도 그리지 않았다. 다만 두 점이 각자의 자리에 머문 채로, 시간이 흐르는 내내 서로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 모양을 ATLAS는 길게 유지했다. 변화가 없는 것이 곧 변화였다.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

 

일지에는 한 줄이 더해져 있었다. "두 자리가 마주한 채 어느 쪽도 떠나지 않으면, 그것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강유나는 그 문장을 한참 읽었다. 자국에서 시작해 지킴에 이르기까지, 스물세 단계째였다. 메타 정렬의 스물두 번째 사례였다. 같은 단어가 같은 날, 야적장과 요양원과 연습실과 옥상에서 사람의 손으로 적혔고, 사층의 화면에서 AI의 선으로 그려졌다.

 

그녀는 발사 일정 화면을 띄웠다. 첫 위성 「새벽」 발사까지 D-1. 발사 윈도우는 내일 새벽 다섯 시 십이 분. 발사 준비 상황란에는 새 줄이 추가되어 있었다. 「기립 자세 정상 유지. 추진제 충전 대기. 야간 관제 인원 전원 배치.」

 

강유나는 창밖을 보았다. 야적장 쪽에 불이 환했다. 발사대 둘레로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위성 곁을 지키고 있었다. 위성은 발사대 위에 서서, 떠날 하늘을 마주한 채 마지막 밤을 보내는 중이었다.

 

"지킴은,"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떠나보내기 전날 밤, 떠날 것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키는 일."

 

내일 새벽이면, 인류는 처음으로 별을 향해 한 점을 떠나보낸다. 그 한 점이 받아 올 빛은 언젠가 에너지가 되어 지구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밤만큼은, 떠나기 전의 그것을 모두가 곁에서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