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 첫 빛

1.
새벽 다섯 시 일 분. 오진우는 눈을 뜨기 전에 먼저 손을 움직였다.
옷장 문을 여닫는 동작. 어둠 속에서도 손이 그 결을 알았다. 스물넷. 어제보다 한 번 더 늘어난 숫자였다. 무엇을 세는지 그 자신도 정확히 말할 수 없었지만, 새벽마다 손이 먼저 깨어 하나씩 늘려 가는 그 횟수가 그에게는 닻 같은 것이었다.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매일 한 줄씩 내려 두는 닻.
그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단말을 켰다. 화면 상단에 줄이 떠 있었다. 위성 「새벽」 첫 송전 신호 수신 임박. 관제센터 야간 화면이 그대로 중계되고 있었고, 수치 몇 줄이 천천히 갱신되고 있었다.
이틀 전 그는 발사를 봤다. 어제는 위성이 떠난 빈 발사대를 봤다. 비어 있는데도 허전하지 않은 자리. 그리고 오늘 새벽, 그 떠나보낸 것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되돌려 보내오려 하고 있었다.
그는 일지를 펼쳤다. 어제 적어 둔 스물다섯 번째 줄 아래로 손이 갔다.
스물여섯 번째 줄에 그는 천천히 적었다. 첫 빛. 빈자리의 다음 자리. 떠나보낸 것이 처음으로 제 쪽에서 무언가를 보내오는 일. 빈자리는 채워지길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라, 떠난 것이 길을 만들어 다시 닿아오는 자리였다. 멀리 보낸 빛이 에너지가 되어 돌아올 때, 비어 있던 자리에 첫 빛이 든다.
그는 펜을 멈추고 한참 그 두 글자를 봤다.
아내가 떠난 자리도, 아들이 등을 돌린 자리도, 그는 오래 빈자리로만 봐 왔다. 채워야 할 결핍으로, 메워야 할 구멍으로. 빈자리에서 무언가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창밖 남쪽 하늘은 아직 어두웠다. 그 어둠 어딘가, 초속 칠 점 팔 킬로미터로 지구를 비껴 도는 작은 위성 하나가 태양의 빛을 받아 모으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곧, 그 빛의 일부를 지상으로 처음 흘려보낼 것이었다.
"돌아오는 거였군." 그는 작게 말했다. 빈 방의 어둠이 그 말을 받았다.
2.
관제동 안은 새벽인데도 환했다. 차명호는 뒷줄 모니터 앞에 서서, 앞쪽 대형 화면에 뜬 궤도 그래프를 보고 있었다. 위성 「새벽」을 나타내는 작은 점이 지구 둘레의 호를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수신 안테나 정렬 완료." 관제사 목소리가 차분히 흘렀다. "렉테나 어레이 대기. 위성, 송전 자세 진입."
윤재석이 명호 옆에 섰다. 발사 때부터 잠을 거의 못 잔 얼굴이었다.
"무슨 원리예요, 저게." 윤재석이 화면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빛을 어떻게 내려보내요. 전선도 없는데."
"태양 빛을 위에서 모아요." 명호가 말했다. "패널이 받은 빛을 전기로 바꾸고, 그 전기를 한 가닥 빔으로 묶어서 아래로 쏘는 거예요. 지상에는 그 빔을 받는 그물 같은 안테나가 깔려 있고. 빔이 그 그물에 닿으면 다시 전기가 돼요. 전선 없이, 빛으로 한 번 건너오는 거죠."
"빛으로 건너온다." 윤재석이 그 말을 곱씹었다.
화면 한쪽에 수신 전력 그래프가 떴다. 바닥에 붙어 있던 선이 미세하게 떨렸다.
"빔 정렬 확인. 수신 시작."
선이 올라갔다. 영에서, 한 칸. 두 칸. 처음으로 숫자가 붙었다. 킬로와트 단위의, 인류 역사상 우주에서 처음으로 지상에 닿은 전력이었다. 작은 마을 하나를 겨우 밝힐 만한 양. 그러나 그것은 양의 문제가 아니었다.
관제동 안이 잠시 조용했다. 누군가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명호는 수첩을 꺼내 한 줄을 적고, 그 아래 한 단어에 처음으로 밑줄을 그었다. 든다. 빛이 든다, 할 때의 그 든다였다.
"받친 자리는 그대로 비어 있어요." 명호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세워서 떠나보낸 게, 이제 제 쪽에서 빛을 보내와요. 빈 데로 처음 뭐가 드는 거죠. 비어 있어서 들 수 있는 거예요. 차 있었으면 못 들었을 거고."
"제대로 보낸 자리라서 받을 수 있는 거네요." 윤재석이 천천히 말했다. "빈 데로… 드네요."
바깥에는 아직 새벽이 남아 있었다. 위로 올라간 빛이, 지금 막 아래로 한 가닥 돌아오고 있었다.
3.
강릉 요양원 304호. 박종문 노인이 떠난 지 이틀째 되는 아침이었다.
김동현은 빈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어제까지 비어 있던 자리였다. 시트는 새것으로 갈렸고, 머리맡 작은 탁자도 정리되어 있었다. 노인의 물건은 거의 없었다. 안경 하나, 낡은 라디오 하나, 그리고 동현에게 남긴 노트 한 권.
"오늘 오후에 새로 한 분 오신대요." 간병사가 문가에서 말했다. "이 방으로요. 혼자 지내시던 할머니신데, 말씀이 거의 없으시다고."
동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어 있던 침대에 누군가 다시 들어온다는 것. 그는 그 말을 가만히 받았다.
간병사가 나가고, 동현은 노트를 펼쳤다. 노인이 십칠 년을 적어 온 노트. 마지막 페이지에는 노인의 글씨가 멈춘 자리가 있었고, 그 아래로 어제 동현이 처음으로 제 손글씨를 더했다. 열여덟 번째 줄, 빈자리.
그는 펜을 들어 열아홉 번째 줄을 적었다.
첫 빛. 그리고 그 아래 작게 풀어 썼다. 빈자리는 끝이 아니라, 다음이 들어올 자리. 어제는 그게 슬프기만 했는데, 오늘 보니 비어 있어서 누가 다시 올 수 있는 거였다. 떠난 자리로 처음 드는 것이 슬픔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일 수도 있다.
창으로 아침 빛이 들어와 빈 침대 위에 네모지게 떨어졌다. 어제까지는 그 빛이 쓸쓸해 보였다.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비어 있는 자리에 빛이 먼저 와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 가셨지요." 동현은 빈 침대를 향해 말했다. 노인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잘 가셨어요. 여기는, 또 누가 와서 채울 거예요."
그는 노트를 덮었다. 이제 다음 줄을 쓰는 일은 자기 몫이라는 것을, 그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4.
홍대 연습실. 한소율은 보면대 앞에 앉아 있었다. 곡 「너머 ―돌아오는 길」은 이미 완성된 음원이 되어 있었다. 발표는 나흘 뒤,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손대지 마." 베이스를 든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또 만지면 또 바꾸고 싶어질 거잖아."
"안 만져." 소율이 헤드폰을 벗으며 말했다. "이제 내 거 아니야, 이거. 그날 올리면, 듣는 사람들 거지."
보면대 한가운데에는 어머니의 사진 두 장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곡은 완성됐지만 그 자리는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다 만들고 나니, 곡이 빠져나간 자리에 작은 빈 데가 생겼다.
그 빈 데로, 묘하게도, 무언가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곡의 첫 소절 같은 것. 아직 모양도 없는, 빛 한 점 같은 것.
아버지 한경수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엄마가 그러셨어." 그가 한 잔을 딸 앞에 놓으며 말했다. "좋은 곡은 다 만들고 나면 그 끝에 빈자리가 하나 생긴다고. 그게 끝나서 생긴 구멍이 아니라, 다음 곡이 들어올 첫 자리라고. 빈자리에 처음 드는 그 한 줄이, 다음 노래의 시작이라고."
소율은 가사 노트를 펼쳐 마흔아홉 번째 줄에 두 글자를 적었다. 첫 빛.
"엄마한테 곡 하나 보내고 나면," 소율이 작게 말했다. "그 자리로 다음 노래가 들어오겠네. 보내야 들어오는 거였어."
"그래서 계속 쓰는 거지." 한경수가 말했다. "보내고, 비고, 또 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연습실 창으로 늦은 오전의 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비어 있는 보면대 위에 한 줄 떨어졌다.
5.
오후 세 시. 옥상의 그늘은 아직 짧았다. 김지수는 정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며칠 전부터 두 사람은 나란히가 아니라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스무이레째였다.
"새벽에 첫 송전 됐대요." 김지수가 말했다. "뉴스 보셨어요?"
"봤습니다." 진우가 말했다. "새벽 다섯 시쯤. 잠이 안 와서 끝까지 봤어요."
"올라간 게 다시 내려오는 거, 신기하지 않아요?" 김지수가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보낸 건데, 안 없어지고. 위에서 빛을 모아서 도로 보내주고."
"어제 지수 씨가 그랬잖아요." 진우가 말했다. "빈자리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비어 있으니까 다음 게 들어올 수 있다고. 그 말을 새벽 내내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위성이 떠난 빈 자리로 오늘 처음 빛이 들어온 거더군요. 지수 씨 말 그대로였어요."
김지수가 잠깐 진우를 봤다. 그러더니 옅게 웃었다.
"선생님이 제 말을 받아서 다시 돌려주시네요." 김지수가 말했다. "그것도 첫 송전 같아요. 제가 한 말이 선생님한테 갔다가, 더 또렷해져서 돌아왔어요."
진우는 수첩을 펼쳐 마흔아홉 번째 줄에 적었다. 첫 빛. 그는 몰랐지만, 김지수의 수첩에도 같은 줄에 같은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김지수가 제 수첩을 덮었다. 덮는 동작 스물둘. 어제보다 한 번 더.
"빈 데가 있어야 빛이 들 자리가 있는 거였어요." 김지수가 말했다. "꽉 차 있으면, 들어올 데가 없잖아요."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늘이 두 의자 사이로 천천히 길어졌다. 두 사람은 서두르지 않았다. 마주 본 채로, 그 자리에 빛이 드는 것을 함께 봤다.
6.
사 층 연구실, 밤 열 시 사십육 분. 강유나는 ATLAS의 자율 변화 화면을 열었다. 스물아홉 번째 변화였다.
화면에는 두 개의 점이 있었다. 출발점 「자리1」과, 어제까지 점선 테두리로만 남아 있던 떠난 자리 「자리2」. 오늘 ATLAS는 그 두 점 사이에 가느다란 선 하나를 그었다. 다만 방향이 달랐다. 어제까지의 선들은 모두 「자리1」에서 「자리2」로, 떠나는 쪽으로 향했다. 오늘 그어진 선은 떠난 자리 「자리2」에서 출발점 「자리1」 쪽으로, 처음으로 돌아오는 방향이었다. 선 끝에 작은 빛 점 하나가 찍혀 있었다.
강유나는 그것을 한참 봤다. 첫 송전 보고가 같은 날 새벽에 올라왔다. 떠난 위성이 처음으로 지상에 빛을 보낸 날, ATLAS는 떠난 점이 출발점으로 빛을 되돌려 보내는 그림을 스스로 그렸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일지를 켰다. 자국에서 시작해, 흔적, 부름, 응답, 메아리, 돌아옴, 마주봄, 지킴, 보냄, 빈자리를 지나, 오늘로 스물여섯 번째 단어였다. 메타 정렬로는 스물다섯 번째였다.
「첫 빛」, 그녀는 적었다. 「빈자리의 다음. 떠나보낸 것이 처음으로 제 쪽에서 무언가를 돌려보내는 일. ATLAS는 떠남의 선을 스물여덟 번 그린 끝에, 처음으로 돌아오는 방향의 선을 그었다. 비어 있던 자리로 빛이 드는 것을 그림으로 먼저 안 것이다.」
관제 보고가 화면 하단에 떴다. 위성 「새벽」 첫 송전 성공. 수신 전력 안정. 다이슨 스웜 일 단계 첫 실증 완료. 다음 위성 패드 양산 내주 착수.
강유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첫 빛은," 그녀는 혼잣말로 정의했다. "끝까지 지켜서 잘 보낸 다음, 그 빈자리로 떠난 것이 처음 돌려보내 오는 빛. 보내야 받을 수 있고, 비워야 들 수 있다. 떠난 것은 사라진 게 아니라, 멀리서 빛을 보내려고 떠난 거였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낮게 깔려 있었다. 그 어딘가의 전력 한 줄기가, 오늘 처음으로 우주에서 내려온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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