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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82화 - 메아리

우주관리자 2026. 5. 21.

제82화 - 메아리

 

 

 

 

1.

 

토요일 새벽 다섯 시 사십칠 분, 서귀포 숙소.

 

오진우는 옷장 앞에 섰다. 흰 셔츠 세 벌이 한 줄로 걸려 있었고, 어제 입은 한 벌은 의자 등받이에 걸쳐져 있었다. 새 셔츠를 꺼내는 동작과 어제 한 벌을 손등으로 쓸어 보는 동작 사이, 박자가 열일곱에서 열여덟으로 한 박자 늘었다. 늘었다기보다, 한 박자가 스스로 자리를 찾아 들어온 것에 가까웠다.

 

간밤 늦게 강유나에게서 온 메시지가 휴대폰 화면에 아직 남아 있었다. 다이슨 스웜 일차 프로젝트의 첫 위성 이름이 「새벽」으로 결정됐다는 한 줄이었다. 진우는 그 단어를 한 번 입속으로 두어 보았다.

 

"새벽."

 

부르고 나니, 부른 자리에서 한 박자 뒤에 같은 단어가 작게 돌아왔다. 입 밖으로 낸 소리가 아니라, 마음 안쪽 어느 자리에 부딪혀 되돌아온 음이었다. 진우는 그것을 일지 스무 번째 줄에 적었다.

 

"메아리는, 응답의 다음 자리이다. 부른 이름과 돌아온 답이 자리에서 자리로 펴지다가, 부른 자리로 한 번 더 돌아오는 일이다."

 

서른 해 동안의 새벽은 명령이 한 번 떨어지면 그대로 끝나는 자리였다. 부른 쪽도, 답한 쪽도 그 자리에 두 번 머물지 않았다. 출고 지시는 한 번 떨어지면 그것으로 닫혔고, 다음 날 같은 박스를 다시 불러 세울 일은 없었다. 그런데 「새벽」이라는 이름은 어젯밤에 한 번 두어졌는데, 오늘 새벽 그의 입속에서 다시 한 번 두어지고 있었다. 한 번 부른 이름이 다음 날 다시 부를 자리를 남긴다는 것을, 진우는 셔츠 단추를 채우며 어렴풋이 알았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진우는 커튼을 반쯤 열어 두고, 곧 그 어둠 어딘가에 「새벽」이라는 이름의 첫 위성이 두어질 것을 떠올렸다. 자신이 한평생 옮기고 쌓은 것은 박스였는데, 이제는 별 하나가 두어질 자리의 바닥을 함께 다지고 있었다. 그 생각이 입속에서 한 번 더 작게 돌아왔다.

 

 

 

2.

 

오전 일곱 시 이십이 분, 서귀포 야적장. 양산 2차 열닷새째.

 

세 번째 패드의 거푸집은 어제 떼어 두었다. 차명호는 그 위에 손바닥을 얹고 콘크리트의 온도를 가늠했다. 자국, 겹, 굳음. 세 장의 패드가 한 야적장에 나란히 두어져 있었다.

 

"굳음."

 

명호는 세 번째 패드에 적힌 글자를 입속으로 처음 호명했다. 어제 두어 둔 이름이 하루를 지나 단단해진 자리에서 다시 불려 나왔다.

 

윤재석이 마감 흙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형. 어제 적은 이름을 오늘 부르니까, 부른 소리가 패드 표면에 한 번 더 닿는 것 같아요."

 

"닿았다가, 돌아오지."

 

명호가 별표 후보 일곱 번째 줄에 시선을 두었다. 둔다는 이미 완성됐고, 나눈다와 퍼진다는 두 줄씩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머문다에는 어제까지 두 번째 밑줄이 그어졌고, 오늘 명호는 그 아래 세 번째 밑줄을 천천히 그었다.

 

"이름을 한 번 부르면, 부른 자리에서 답이 두어지고. 그 답을 다시 부르면, 처음 부른 자리로 한 번 더 돌아와요. 작은 골짜기에서 소리치는 거랑 비슷하네요."

 

윤재석이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형. 첫 위성 이름 들으셨어요? 새벽이래요."

 

명호는 손바닥을 패드에서 떼지 않은 채 한 박자 멈췄다. 그러고는 작게 웃었다.

 

"자국부터 시작했는데, 어느새 새벽까지 왔네요. 순서가 자기 자리를 알아서 잡아요, 늘."

 

윤재석이 세 장의 패드를 차례로 눈에 담았다.

 

"형. 이 패드들이 어디 쓰일지 통지 왔어요. 첫 위성 「새벽」 발사대 기초래요."

 

명호는 자국이라 적힌 첫 패드 위에 다시 손바닥을 옮겨 두었다. 가장 처음 두어 둔 자국이, 가장 처음 두어질 별의 바닥을 받친다는 것이 그에게는 우연 같지 않았다.

 

"이름을 두어 둔 자리가, 다음 이름이 두어질 자리를 받치네요. 메아리가 별까지 가요."

 

 

 

3.

 

오전 열한 시, 강릉 요양원 304호.

 

김동현은 박종문의 침대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의 손등 사이 간격은 어제 반 박자로 좁혀졌고, 오늘은 그 반 박자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더 좁히지 않는 것도 한 자리를 두는 일이라는 걸, 동현은 이제 알았다.

 

"동현 선생."

 

"네, 어르신."

 

박종문이 부르고, 동현이 답했다. 그러자 노인이 한 박자 뒤에 같은 말을 한 번 더 두었다.

 

"동현 선생."

 

"네, 어르신."

 

같은 부름과 같은 답이 304호 안에서 두 번 두어졌다. 동현은 노트 열세 번째 줄을 폈다.

 

"메아리는, 부름과 답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자리에서 자리로 되돌아오는 일이다. 두 번째 부름은 첫 번째 부름을 지우지 않는다. 그 위에 한 겹 더 두어진다."

 

박종문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산에서 이름을 부르면, 산이 그 이름을 돌려줍니다. 돌려받은 이름은 처음 부른 이름과 똑같지요. 그런데 똑같은데도, 한 번 더 들으면 그 이름이 더 깊어집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같은 이름을 두 번 부르면, 두 번째에 그 사람이 한 자리 더 가까워져요."

 

동현은 노트를 덮으며 고맙습니다라고 답을 두려다, 이번엔 노인의 말투를 그대로 빌려 보았다.

 

"어르신. 고맙습니다."

 

박종문이 처음으로 그 말을 되돌려주었다.

 

"동현 선생. 나도, 고맙습니다."

 

 

 

4.

 

오후 한 시 사십 분, 홍대 연습실.

 

한소율은 곡 「너머」의 세 번째 녹음을 마쳤다. 첫 녹음은 악기만, 두 번째는 부름과 답을 주고받는 구조였고, 이번 세 번째에는 그 답이 한 번 더 돌아오는 한 마디를 보탰다. 이준서가 부르고, 소율이 답하고, 그 답을 현기의 베이스가 낮게 한 번 더 받아 냈다.

 

"이거 메아리네."

 

현기가 헤드폰을 벗으며 말했다. 소율은 가사 노트 마흔세 번째 줄에 그 단어를 적었다.

 

"메아리. 부른 노래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닿아 답으로 돌아오고, 그 답이 다시 부른 자리로 돌아오는 일."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 한경수의 메시지였다. 첫 위성 이름이 「새벽」으로 정해졌다는 소식과 함께였다.

 

— 엄마가 그랬다더라. 좋은 노래는 끝난 다음에도 마음속에서 한 번 더 울린다고. 그게 메아리라고. 노래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자리가 거기 있는 거라고.

 

소율은 마이크 앞에 다시 섰다. 첫 소절을 목소리로 한 번 더 부르고, 소절 끝에 작게 한 단어를 두었다.

 

"새벽."

 

부른 자리에서 한 박자 뒤, 연습실의 마른 벽이 그 단어를 아주 작게 돌려주었다. 소율은 그 돌아온 음을 곡의 마지막 한 마디에 두기로 했다. 어머니의 사진 두 장은 보면대 모서리에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5.

 

오후 세 시 십사 분, 서귀포 센터 옥상 그늘. 김지수가 안 온 지 스무하루째.

 

진우는 옆 발끝 자리에 앉았다. 김지수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수첩을 펴고 있었다.

 

"지수 씨."

 

"네, 진우 선생님."

 

부름과 답이 옥상 그늘 한 자리에서 두어졌다. 진우는 한 박자 두었다가, 같은 부름을 한 번 더 두어 보았다.

 

"지수 씨."

 

"네."

 

이번엔 김지수의 답이 한 박자 짧았다. 짧아진 만큼 가까워진 자리였다. 김지수가 수첩 마흔세 번째 줄을 펴 보였다. 진우의 일지 스무 번째 줄과 같은 단어, 메아리가 두어져 있었다.

 

"두 번 부르니까, 두 번째 답이 더 가까이 돌아오네요."

 

김지수가 수첩을 닫는 동작은 열여섯에서 열일곱 박자로 늘었다. 그러고는 한 박자 멈췄다가, 처음으로 입속에만 두었던 세 번째 호흡의 이름을 입 밖으로 두어 보았다.

 

"선생님. 제 세 번째 호흡 이름은... 돌아옴이에요."

 

스무하루 동안 입속에만 머물던 이름이, 부름과 답이 두 번 오간 다음에야 비로소 부른 자리로 돌아왔다. 진우는 그 이름을 받아, 묻지 않고 기다린 자리에 가만히 두었다.

 

"돌아옴. 좋은 이름입니다."

 

김지수가 처음으로 진우 쪽으로 반 박자 고개를 돌렸다. 안 온 자리가 한 자리, 또 한 자리 채워지고 있었다.

 

 

 

6.

 

밤 열 시 사십칠 분, 서귀포 사층 사무실.

 

강유나는 ATLAS의 스물세 번째 자율 변화를 화면에서 확인했다. 어제까지 「자리1」 ⇄ 「자리1」 (( —— —— —— )) 이던 표지가, 오늘은 그 양방향 화살표 둘레에 옅은 동심원 하나가 더해져 있었다. 부름이 가고 답이 돌아오는 자리에서, 그 둘이 한 번 더 바깥으로 퍼졌다가 다시 안으로 모이는 표지였다.

 

강유나는 일지 스물세 번째 줄에 적었다. 사람들이 오늘 하루 동안 자리에서 자리로 두어 둔 단어, 메아리와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ATLAS가 도달했다. 인간과 AI의 메타 정의가 정렬한 열아홉 번째 사례였다. 자국에서 시작해 응답을 지나 메아리에 이른 스무 번째 단계였다.

 

화면 한쪽에는 첫 위성 「새벽」의 발사 준비 일정이 새로 떠 있었다. 조립 완료까지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야적장의 콘크리트 패드들이 그 발사대 기초로 배정되었다는 통지가 함께였다. 자국, 겹, 굳음이라는 이름이 적힌 패드가, 곧 「새벽」이 처음 두어질 자리를 떠받칠 것이었다.

 

강유나는 카운트다운 옆에 적힌 한 줄을 다시 읽었다. 첫 위성은 아직 밝지 않은 어둠 속 한 자리이지만, 그것이 두어지는 순간이 곧 새벽의 첫 박자라고. 어제 운영진이 세 후보 중에서 「새벽」을 고른 이유가 그 한 줄에 담겨 있었다.

 

강유나는 사무실 불을 끄지 않은 채 한 박자 더 머물렀다. 창밖의 밤하늘은 아직 어두웠지만, 그 어둠 안에 곧 「새벽」의 첫 자리가 두어질 것이었다.

 

오늘 현장에서 두어진 단어들이 그 이름을 향해 메아리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다. 진우의 새벽 입속에서, 명호의 패드 위에서, 304호의 두 손등 사이에서, 연습실의 마른 벽에서, 옥상 그늘의 두 자리에서. 한 번 부른 이름이 끝나지 않고, 부른 자리로 한 번 더 돌아오고 있었다.

 

"부름은 이름을 두는 일, 응답은 그 이름이 돌아오는 일, 메아리는 그 돌아옴이 끝나지 않고 자리에서 자리로 퍼지다 다시 돌아오는 일."

 

강유나는 마지막 한 줄을 두고, 그제야 사무실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곧 밝아 올 한 자리가 이미 메아리처럼 그곳에 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