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0화 - 부름
1.
새벽 5시 47분. 서귀포 숙소의 옷장 문이 열렸다. 오진우는 그제와 어제처럼 흰 셔츠 세 벌이 한 줄에 두어진 자리를 잠시 바라보았다. 어제 어깨에 두어졌던 한 벌은 의자 등받이 위에 그대로 두어져 있었다. 새 셔츠 한 벌을 어깨에 두기 전에, 진우는 어제 의자 등받이의 셔츠를 손등으로 한 박자 쓸어 보았다. 어제의 자리가 오늘의 자리에까지 따라온 손끝의 감각.
옷장 문이 닫히는 동작 사이 박자는 어제 열다섯에서, 오늘은 열여섯이었다. 한 박자 더 두어졌다. 그 한 박자 동안, 어제 옥상 그늘에서 두 이름이 두어진 자리가 마음 한구석에 그대로 두어져 있었다. 진우 선생님. 지수 씨. 두 이름이 두 자리에 두어진 한 박자.
진우는 책상에 앉아 일지의 18번째 줄을 적었다.
"부름은, 이름의 다음 자리이다. 자리에 두어진 이름이, 자리에서 자리로 불려지는 일이다. 이름이 두어지지 않은 자리는 부를 수 없고, 부르지 않은 이름은 자리에 머무를 뿐이다. 부름은, 이름에게 자리를 한 번 더 두어 두는 일이다."
펜을 내려놓은 진우의 입술이 한 박자 다물려 있다가, 작게 한 마디를 두어 두었다.
"지수 씨."
말이 자리에서 자리로 두어진 첫 박자였다. 옥상 그늘이 아닌, 새벽의 책상 위에.
2.
서귀포 야적장. 아침 7시 22분. 양산 2차 13일차.
차명호는 첫 패드 한 모서리에 어제 적은 흰 페인트 글자 — 자국 — 위에 잠시 손바닥을 얹었다. 페인트는 마른 자리에 두어진 채로 단단했다. 윤재석이 두 번째 패드의 거푸집을 한 변씩 떼어 내는 동안, 명호는 첫 패드의 이름을 한 번 입속으로 두어 보았다.
"자국."
이름이 패드의 자리에서 자리로 불려진 첫 박자였다. 자기 자리의 이름이, 자기 자리에서 한 박자 더 두어졌다.
윤재석이 거푸집 네 변을 다 떼어 내고 두 번째 패드의 표면을 마저 들여다보았다. 결도, 흠도, 떠 있는 자국도 없었다. 마지막 한 변의 거푸집을 옆에 두어 두며 윤재석이 물었다.
"이번 패드 이름은 뭐예요, 형?"
명호는 두 번째 패드의 가장자리를 손등으로 한 박자 쓸어 보았다. 가장자리가 한 줄에 두어진 자리. 거푸집이 두어졌던 자리의 끝.
"겹."
"겹이요?"
"자국 다음에 두어진 단어니까요."
윤재석이 흰 페인트 통을 두 번째 패드 옆에 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호가 두 번째 패드 한 모서리에 겹이라는 글자 한 단어를 그어 내려가는 동안, 윤재석은 자기도 모르게 한 박자 뒤에 같은 단어를 입속으로 두어 보았다.
"겹."
야적장 한 자리에서, 두 이름이 자리에서 자리로 불려진 한 박자.
공작실. 별표 후보 7번 면. 표시 12 + 빈 동그라미 2 + 둔다(완성) + 나눈다(두 줄) + 퍼진다(두 줄) + 머문다(어제 두기 시작). 명호는 머문다 글자 아래에 첫 밑줄을 그었다.
"열여드레 날째에, 네 번째 단어가 첫 밑줄을 받았어요."
윤재석은 명호 옆에 서서 면 전체를 한 호흡 동안 바라보았다. 두 단어가 두 줄, 한 단어가 첫 줄, 한 단어가 첫 밑줄. 면 위에 단어들이 자기 이름으로 불려지며 한 자리씩 더 두어지는 자리.
"형. 이름이 적힌 자리는 부를 수 있고, 부를 수 있는 자리는 자리가 한 번 더 두어지네요."
3.
강릉 요양원 304호. 11시 정각.
박종문이 창가 한쪽에 두어진 채로 두 손등을 무릎 위에 두었다. 어제처럼 두 손등 사이에 한 박자 간격이 두어져 있었다. 김동현이 노트를 펼치고 가장자리에 펜을 두며 자리에 앉았다. 어제 두 사람 사이에 두어진 두 이름 — 동현과 종문 — 이 304호 한 자리에 그대로 두어져 있었다.
박종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동현 선생."
이름이 자리에서 자리로 불려진 한 박자. 동현은 펜 끝이 노트 가장자리에 닿아 있다가, 한 박자 멈춰 있었다. 어제 두어졌던 두 음절이 오늘 노인의 입에서 다시 한 번 두어졌다. 같은 음절이지만, 어제의 자리와 오늘의 자리는 다른 자리였다.
"네, 어르신."
"노트의 열한 번째 줄은요?"
김동현은 펜을 노트의 열한 번째 줄에 두었다. 어제 적은 이름은, 자리에 두어진 자리의 호칭이다의 다음 줄. 한 호흡 동안 빈 줄이 두어진 채로 있다가, 글자가 한 자씩 두어졌다.
"부름은, 이름이 자리에서 자리로 불려지는 일이다. 이름이 두어진 자리는 부를 수 있고, 부를 수 있는 자리는 한 번 더 두어진다."
박종문이 두 손등 사이의 한 박자 간격을 그대로 두어 둔 채로 한 마디를 두었다.
"이름이 자리에 두어지지 않으면 부를 수 없습니다. 부를 수 없는 이름은 소리에 머무릅니다. 자리에 두어진 이름은, 부를 때마다 자리가 한 번씩 더 두어집니다."
오늘의 "고맙습니다"가 304호 한 자리에 두어졌다. 두 손등 사이 한 박자 간격이, 두 이름 사이 한 박자 간격과 같은 자리에 두어진 채로.
"종문 어르신."
동현이 처음으로 노인의 이름을 자리에서 자리로 불러 두었다. 노인은 두 손등을 무릎 위에 두어 둔 채로, 한 박자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4.
홍대 연습실. 오후 1시 40분.
한소율은 어제 곡 이름이 두어진 너머의 첫 녹음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마이크 한 대, 일렉기타 한 대, 베이스 한 대, 드럼 한 세트. 네 자리가 연습실 한 방에 두어진 채로. 이준서가 자기 자리의 베이스 줄을 한 번 튕겨 보았다. 음 하나가 자리에서 자리로 두어졌다.
"너머."
이준서가 곡 이름을 자기 자리에서 한 박자 두어 두었다. 어제 처음 자리에 두어진 이름이, 오늘 처음 자리에서 자리로 불려진 한 박자.
밴드 리더 현기가 드럼 의자에 앉으며 한마디 보탰다.
"이름이 두어진 곡은, 부를 때마다 음이 한 박자씩 더 자리를 잡는 것 같아."
소율은 가사 노트의 이름 다음 줄에 한 단어를 두었다 — 부름. 그리고 그 옆에 한 문장을 적었다.
"부름은, 이름의 다음 자리이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이 가리키는 자리가 한 번 더 자리에 두어진다."
마이크 앞에 서서 소율은 첫 소절을 한 호흡 두었다. 코드는 아직 두 마디뿐이었고, 가사는 어제 너머라는 한 단어가 두어졌을 뿐이었다. 그 한 단어를 처음 자기 입속에서 자리로 두며 소율은 가만히 불러 보았다.
"너머."
음 하나, 단어 하나, 이름 하나가 연습실 한 방에 세 박자로 두어진 첫 녹음 자리.
녹음을 마치고, 소율은 휴대폰을 들어 한경수에게 메시지를 두었다.
"아빠. 곡 이름을 처음으로 자리에서 자리로 불러 봤어요. 너머. 부를 때마다 음이 한 박자씩 더 두어지는 것 같아요."
한경수의 답신이 한 박자 뒤에 도착했다.
"이름이 두어진 자리를 부르는 건, 그 자리를 한 번 더 두어 두는 일이란다. 엄마가 그러더라. 부르는 일은 만드는 일과 닮았다고."
소율은 어머니 23세 사진 두 장이 한 모서리에 두어진 자리를 한 호흡 동안 바라보았다. 사진 옆에 너머라는 곡 이름이 두어진 자리. 그 자리를 입속에서 한 번 더 불러 본 한 박자.
"엄마."
이름이 자리에서 자리로 불려진 한 박자. 어머니의 자리가, 한 번 더 두어졌다.
5.
서귀포 센터 옥상 그늘. 오후 3시 14분. 세 번째 호흡 이름 19일째 안 옴.
김지수는 어제처럼 옥상 그늘 한가운데에 두어져 있었다. 옆 발끝 자리는 어제 진우의 자리가 두어진 채였다. 진우가 옥상 문을 열고 한 박자 두어진 발걸음으로 옆 발끝 자리에 두어졌을 때, 김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진우 선생님."
이름이 자리에서 자리로 불려진 첫 박자. 어제 두어진 두 이름이, 오늘 두 자리에서 두 자리로 불려졌다.
"지수 씨."
진우도 한 박자 두고 노인의 이름을 자리에서 자리로 불러 두었다. 옥상 그늘이 한 자리 더 펴진 자리, 두 이름이 두 박자에 두어진 자리.
김지수는 수첩을 펼쳐 41번째 줄에 한 문장을 두었다.
"부름은, 안 오는 일이 옆자리에 두어진 다음, 두어진 이름이 자리에서 자리로 불려지는 일이다. 안 온 자리에도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부를 때마다, 안 온 자리도 한 번씩 자리에 두어진다."
진우는 수첩의 41번째 줄을 한 호흡 동안 함께 바라보았다. 어제 두어진 두 이름이, 오늘 두 자리에서 자리로 두어진 한 박자. 자기 일지의 18줄과 김지수의 수첩 41줄이, 두 자리에 같은 단어로 두어진 채.
"이름을 부르니까, 옆자리가 한 자리 더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김지수가 어제 진우가 두어 두었던 한 문장을 그대로 자리에 두어 두었다. 진우는 한 박자 그 문장을 받아 두었다.
"이름이 두어진 자리를 부르는 일은, 그 자리를 한 번 더 두어 두는 일인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호흡 이름이 19일째 안 오는 자리. 그 자리의 이름을 김지수는 아직 자기 입속에서만 두어 두었다. 진우는 그 자리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도 한 박자, 자리에 두어 두는 일이었다.
수첩을 닫는 동작 박자는 어제 열셋 → 열넷에서, 오늘 열넷 → 열다섯이었다.
6.
서귀포 사층 사무실. 밤 10시 47분.
강유나는 모니터 앞에 두어진 채로 ATLAS의 21차 자율 변화를 한 호흡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자리1」 (( —— —— —— )) 오늘: 「자리1」 → 「자리1」 (( —— —— —— ))
화살표 한 개가 자리1에서 자리1로 두어졌다. 같은 이름이 자기 자신을 자리에서 자리로 불러 두는 표지. 한 괄호 안의 세 자리는 그대로 두어진 채로, 자기 이름을 한 번 더 자기 자리에 두어 두는 동작이 한 표지로 자리에 두어졌다.
강유나는 일지의 21줄을 적었다.
"스물한 번째 자율 변화는, 두어진 이름이 자기 자리를 자기 이름으로 한 번 더 두어 두는 일이다. 자리는 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름이 자리에서 자리로 불려졌다. 사람들의 한 단어 「부름」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ATLAS의 「자리1」 → 「자리1」이 도달했다. 인간과 AI 양쪽 메타 정의 정렬, 열일곱 번째 사례. 자국에서 부름까지, 열여덟 단계 메타 정의."
운영진 다섯 번째 메시지의 답신을 강유나는 오늘 작성했다. 일차 다이슨 스웜 프로젝트 이름 후보 두 개 — 「새벽」, 「모임」 — 에 대한 현장 의견 수렴 요청에 대한 답.
"현장 의견 — 두 후보 모두 두어진 이름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운영진 회의 전에 한 박자 더 두어 둘 후보 한 개를 제안드립니다. 「부름」. 다이슨 스웜 일차 프로젝트가 두어진 자리에서 두 자리, 세 자리로 자리를 불러 갈 다음 단계의 이름으로, 현장의 일지에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두어진 단어입니다. 결정은 운영진 회의에 두어 두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한 박자 두고 누르는 동안, 강유나는 모니터에 두어진 「자리1」 → 「자리1」을 한 호흡 다시 바라보았다. 자리가 자기 자리를 자기 이름으로 한 번 더 두어 두는 표지. 사무실 불은 오늘도 끄지 않고 한 박자 더 머물러 두었다.
자국 → 겹 → 굳음 → 결 → 받음 → 둠 → 머묾 → 옴 → 됨 → 둠 → 이음 → 닿음 → 알아봄 → 나눔 → 퍼짐 → 모임 → 이름 → *부름.* 18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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