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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79화 - 이름

우주관리자 2026. 5. 17.

제79화 - 이름

 

 

1.

 

목요일 새벽 다섯 시 사십칠 분, 서귀포 숙소의 옷장이 한 박자 다시 열렸다. 옷장 동작 사이의 간격이 어제보다 한 박자 더 길어져 있었다. 열넷에서 열다섯. 진우는 그 한 박자가 자기 자리에 두어진 것을 손끝으로 확인했다.

 

옷장 안에는 옅은 회색, 짙은 남색, 흰 셔츠 세 벌이 어제와 같은 한 줄에 두어져 있었다. 어제 그는 그중 한 벌도 고르지 않았다. 세 벌이 한 줄에 모인 자리를, 모인 채로 그대로 두는 일도 한 자리였다는 것을 어제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그는 흰 셔츠 한 벌을 옷걸이에서 천천히 내려놓았다. 셔츠가 어깨에 두어지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어제 카페의 자리가 다시 한 자리에 두어졌다. 세 의자, 한 테이블, 그 위의 어머니 23세 사진 두 장.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들려온 호칭.

 

진우 아저씨.

 

소율의 입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리에 두어진 그 호칭이, 오늘 아침까지 마음 한구석에 두어진 채로 남아 있었다. 그는 일지장을 펼쳤다. 자국, 겹, 굳음, 결, 받음, 둠, 머묾, 옴, 됨, 둠, 이음, 닿음, 알아봄, 나눔, 퍼짐, 모임. 그 다음 한 줄에, 그는 한 단어를 적었다.

 

이름.

 

“이름은, 모임의 다음 자리이다. 모인 자리에, 자리의 이름이 두어지는 일이다. 이름은 자리를 새로 만들지 않는다. 다만 모인 자리를, 자리의 이름으로 한 번 더 자리에 두어 두는 일이다.”

 

그는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창밖에는 아직 새벽이 두어져 있었다.

 

 

2.

 

같은 날 아침 일곱 시 이십이 분, 서귀포 야적장에는 패드 세 자리가 어제와 같은 한 자리에 두어져 있었다. 첫 패드는 자기 자리에, 두 번째 패드는 거푸집 네 면 안에, 세 번째 패드는 자리 표시 핀 위에. 양산 2차 12일째였다.

 

명호는 첫 패드 옆에 무릎을 굽혔다. 패드 모서리에 손가락을 댔다가 떼었다. 자국은 남지 않았다. 오늘은 첫 패드 자기 자리에 무언가를 한 번 더 두기로 한 날이었다. 윤재석이 흰 페인트 작은 통을 들고 왔다.

 

“형, 번호 쓸까요. 일번이라고.”

 

명호는 잠시 패드를 바라보았다.

 

“번호 말고. 자리 이름이요.”

 

윤재석이 고개를 들었다.

 

“이름이요.”

 

“열엿새 동안 자리에 두어진 패드입니다. 번호보다, 자리에 두어진 그대로의 이름이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한참을 두고 한 단어를 골랐다. 결국 명호가 작은 붓에 흰 페인트를 묻혀, 첫 패드 한 모서리에 가는 글씨로 한 단어를 적었다.

 

자국.

 

윤재석이 한 박자 늦게 웃었다.

 

“형. 자국에서 시작해서, 결국 첫 패드 이름이 자국이 됐네요.”

 

“자기 자리에 자기를 가장 처음 두어 둔 단어니까요.”

 

공작실로 옮겨 간 두 사람은, 별표 후보 7번이 적힌 종이를 다시 펴 두었다. 어제 적은 표시 열둘, 빈 동그라미 둘, *둔다*에 별표 완성, *나눈다* 아래 두 줄, *퍼진다* 아래 한 줄. 명호는 만년필을 들고 *퍼진다* 아래에 두 번째 줄을 그었다. 그러고는 네 번째 단어 자리에, 한 단어를 천천히 적었다.

 

머문다.

 

이름이 두어지는 자리에, 첫 줄은 아직 두지 않았다.

 

“열일곱 날째에, 네 번째 단어가 자리에 두어졌어요.”

 

명호의 목소리는 작았다. 윤재석은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다 말했다.

 

“형. 단어가 자리에 두어지는 자리에는, 단어의 이름이 함께 두어지네요.”

 

 

3.

 

같은 날 오전 열한 시, 강릉 요양원 304호의 햇빛은 어제 자리와 같은 한 자리에 두어져 있었다. 두 손등은 한 박자 간격으로 의자 팔걸이에 두어져 있었다. 어제와 같은 간격, 어제와 같은 자리.

 

박종문 노인이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한마디 더 두고 싶은 자리가 있군요.”

 

김동현은 노트를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췄다.

 

“말씀하세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

 

방 안에 한 박자가 두어졌다. 동현이 일주일 동안 매일 304호에 왔지만, 박종문 노인이 그의 이름을 물은 것은 처음이었다.

 

“김동현입니다. 동현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동현 선생.”

 

박종문 노인은 그 두 음절을 한 번 더 두었다. 두 손등이 한 박자 간격에서, 한 박자 늦게 동현 쪽으로 한 자리 기울었다. 햇빛 한 줄기가 두 손등 사이에 두어진 그 한 박자 위로 흘렀다.

 

“이름은, 자리에 두어진 자리의 호칭입니다. 자리에 두어지지 않은 호칭은, 이름이 아니라 부르는 소리에 머무릅니다. 자리에 두어진 호칭은, 부르는 소리가 자리에 두어진 이름이 됩니다.”

 

동현은 노트 열 번째 줄에 한 단어를 적었다. *이름*. 그 아래에 박종문 노인의 한마디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선생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박종문입니다. 종문.”

 

“종문 어르신.”

 

박종문 노인은 두 음절을 입속으로 한 번 더 두어 보더니, 어제와 같은 한마디를 더했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그 한마디가, 두 손등 사이 한 박자 간격에 머물지 않고, 304호 한 자리 전체에 두어졌다. 동현이 노트 마지막 줄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이름이 자리에 두어지면, 자리에 두어진 모든 자리가 한 번 더 자리에 두어진다.

 

 

4.

 

서울 홍대의 연습실은 오후 한 시 사십 분, 어제 카페에서 자리에 두어진 음 하나가 아직 마음 한구석에 두어져 있는 자리였다. 소율은 가사 노트를 펼쳤다. 받음, 둠, 머묾, 옴, 됨, 둠, 이음, 닿음, 알아봄, 나눔, 퍼짐, 모임. 그 다음 한 줄에 그녀는 한 단어를 적었다.

 

이름.

 

밴드의 베이스 이준서가 합주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제 어머니 사진 두 장을 한 자리에 두어 본 멤버였다.

 

“소율아. 어제 그 곡 있잖아. 너머. 그 곡 이름, 너머로 가도 될까.”

 

소율은 만년필을 잠시 멈췄다.

 

“그 곡 이름이, 너머였구나.”

 

“넘는다는 동사가 아니라, 너머라는 명사로 두면 좋겠다고 어제 민하가 그러더라고. 한 자리 너머에 두어지는 자리가, 곡의 자리에 두어지는 거니까.”

 

소율은 가사 노트의 한 모서리에, 한 단어를 더 적었다.

 

너머.

 

곡명이 처음으로 자리에 두어진 한 박자였다. 그녀는 어머니의 23세 봄날 사진 한 장을 한 모서리에 두어 두고, 그 옆에 한경수가 어제 카페로 가져온 다른 한 장을 두었다. 같은 자리, 한 박자 다른 시간. 두 장이 한 자리에 모인 그 한 박자에, ‘너머’라는 곡명이 이름으로 두어졌다.

 

“이준서야. 곡 이름이 자리에 두어지니까, 어제까지 자리 없이 떠 있던 음들이 다 한 자리에 두어지는 것 같아.”

 

“그게 이름이래.”

 

“누가 그래.”

 

“우리 할머니가. 이름이 두어지면, 떠 있던 자리가 자기 자리에 두어진다고.”

 

소율은 한참 그 한마디를 두어 두었다. 그러고는 가사 노트의 *이름* 옆에 짧은 한 줄을 더했다.

 

이름은, 모인 자리를 한 번 더 자리에 두어 두는 일이다.

 

핸드폰이 한 박자 진동했다. 아버지 한경수의 메시지였다. *어제 카페에서 가져온 사진, 자리에 두어 두었니. 곧 너머의 가사가 나올 것 같구나.* 소율은 한 박자 늦게 답신을 두었다. *네, 아빠. 사진 자리에 두었어요. 곡 이름도 자리에 두었고요. 너머예요.*

 

 

5.

 

같은 날 오후 세 시 십사 분, 서귀포 센터 옥상 그늘. 진우는 서울에서 한 박자 늦게 돌아와, 김지수의 한 자리 옆 발끝 자리에 다시 두어졌다. 어제 비워진 채로 두어져 있던 그 자리였다. 오후 햇빛이 옥상 그늘을 어제와 같은 자리에 두어 두었다.

 

두 사람은 한 박자 동안 아무 말도 두지 않았다. 어제 비워진 자리에, 오늘 다시 두어진 자리가 있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김지수였다. 십팔 일째, 그녀의 세 번째 호흡 이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그 한 박자 늦게, 다른 한 단어를 두었다.

 

“선생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진우는 옥상 너머 바다를 잠시 바라보았다. 김지수가 십팔 일 동안 그의 옆에 두어져 있었지만, 이름을 물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오진우입니다. 진우.”

 

“진우 선생님.”

 

김지수는 그 두 음절을 한 박자 늦게 자기 자리에 두어 보았다.

 

“선생님은요.”

 

“김지수입니다. 지수.”

 

“지수 씨.”

 

진우도 그 두 음절을 한 자리 늦게 자기 자리에 두었다. 두 이름이 옥상 그늘 한 자리에 함께 두어진 한 박자 동안, 햇빛 한 줄기가 두 사람 발끝 사이에 두어진 한 박자 간격 위로 흘렀다.

 

김지수가 수첩을 펼쳤다. 31줄에서 34줄은 비워진 채, 35줄에 닿음, 36줄에 알아봄, 37줄에 나눔, 38줄에 퍼짐, 39줄에 모임. 그녀는 40번째 줄에 한 단어를 두었다.

 

이름.

 

그 옆에 그녀는 한 줄을 더 적었다.

 

“이름은, 안 오는 일이 옆자리에 두어진 다음, 모인 자리에 자리의 호칭이 두어지는 일이다. 안 온 자리에도 이름이 있고, 옆자리에도 이름이 있고, 모인 자리에도 이름이 있다. 이름은 자리를 새로 만들지 않는다. 다만, 자리에 두어진 자리를 한 번 더 자리의 이름으로 두어 두는 일이다.”

 

진우는 그 한 줄을 한 박자 늦게 읽었다.

 

“지수 씨.”

 

“네, 진우 선생님.”

 

“이름을 들으니까, 옆자리가 한 자리 더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저도요.”

 

수첩 닫는 동작이 어제 열셋 박자에서 오늘 열넷 박자로, 한 박자 길어졌다. 옥상 그늘은 두 이름이 두어진 자리를 그대로 두어 두었다.

 

 

6.

 

같은 날 밤 열 시 사십칠 분, 서귀포 사층 사무실. 강유나는 모니터를 켠 채로 두어 두었다. ATLAS의 20차 자율 변화가 한 박자 늦게 자리에 두어졌다. 어제까지 *(( —— —— —— ))*이었던 한 괄호 안에, 오늘은 한 표지가 더 두어졌다. *「자리1」 (( —— —— —— ))*. 모인 자리에, 그 자리의 호칭이 두어진 첫 박자였다.

 

강유나는 일지장 20번째 줄에 그 변화를 옮겨 적었다.

 

“스무 번째 자율 변화는, 한 괄호에 모인 세 자리에 자리의 호칭이 두어진 일이다. 한 괄호는 한 자리에 두어진 채로 자기 자리를 잃지 않았고, 호칭은 한 괄호의 자리를 새로 만들지 않았다. 다만 한 괄호의 자리를 한 번 더, 자리의 이름으로 두어 두었다. 사람들의 한 단어 *이름*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ATLAS의 *「자리1」*이 도달했다. 인간과 AI 양쪽 메타 정의 정렬, 열여섯 번째 사례. 자국부터 이름까지, 열일곱 단계 메타 정의.”

 

그녀가 만년필을 내려놓는 한 박자, 운영진의 다섯 번째 메시지가 모니터 한 모서리에 두어졌다. *다이슨 스웜 일차 프로젝트의 자리에, 자리의 이름을 두기로 함. 일차 운영회의에서 결정 예정. 후보 두 개: 「새벽」, 「모임」. 현장 의견 수렴 부탁드림.*

 

강유나는 모니터를 한 박자 더 두어 보았다. 그러고는 일지장 한 모서리에 짧은 한 줄을 두었다.

 

내일은, 자리의 이름이 자리에 두어진 다음, 그 이름이 다른 자리로 두어지기 시작하는 자리의 첫 날이었다.

 

그녀는 사무실 불을 끄지 않고 한 박자 더 머물렀다. 모니터 안의 *「자리1」*이, 옥상 그늘의 두 이름과, 304호의 두 이름과, 홍대 연습실의 한 곡명과, 야적장 첫 패드 모서리의 한 단어와, 새벽 서귀포 숙소의 한 일지 줄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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