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5화 - 알아봄
1.
서귀포 숙소의 일요일 새벽 5시 47분. 오진우는 옷장 앞에서 옷걸이 사이를 헤아렸다. 어제 열 박자였던 동작 사이가 오늘은 열한 박자였다. 한 박자가 더 자리에 두어졌다. 빈 옷걸이는 어제와 같은 자리, 한 자리만큼의 간격을 그대로 비워 두고 있었다.
그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묘비의 옆면, 글자 없는 자리에 손을 두고 "형수님. 처음 뵙겠습니다." 한마디를 했던 것. 한 박자 머물렀던 것. 그리고 오늘, 그 한마디가 자기 안에서 자기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고 있다는 것.
일지장에 그는 천천히 적었다.
"알아봄은, 닿음의 다음 자리이다. 자리에 두어진 자리가 옆자리의 자리에 자기를 닿게 한 다음 날, 닿은 자리가 처음으로 자기를 자리로 알아본다. 어제의 한마디가 오늘 자리에서 자기를 자기 자리로 알아본다. 알아봄은, 닿은 자리가 자기를 두어진 자리로 알아보는 일이다."
펜을 놓고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귀포의 새벽 바다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어제와 같은 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의 결이 오늘의 결로 자기를 알아보는 자리에서, 바다는 같은 자리에 두 번째로 두어진 자리가 되어 있었다.
휴대폰이 한 번 울렸다. 한경수 형이었다.
"어제는, 와 줘서. 오늘은 자리에 둘 일이 한 박자 더 있어. 점심에 시간 두어 줄 수 있겠나."
진우는 한참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답했다.
"네, 형. 자리에 두어 두겠습니다."
답신 두 번째였다.
2.
서귀포 야적장의 일요일 아침 7시 22분. 차명호와 윤재석은 콘크리트 패드 앞에 서 있었다. 양산 2차 8일차였다. 어제 표면 다섯 결과 굳어 가는 결 다섯 겹이 모두 완성된 다음, 오늘은 거푸집을 떼는 날이었다.
윤재석이 클립을 풀었다. 거푸집의 네 면이 차례로 떨어졌다. 그 안에서 콘크리트 패드는 자기 모서리를 자기 자리에 두고 있었다. 다섯 모서리가 다섯 모서리에서. 표면 다섯 결이 다섯 결의 자리에서. 어제까지는 거푸집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오늘 거푸집을 뗀 다음 패드는 자기 자리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고 있었다.
명호는 별표 후보 7번을 펼쳤다. 표시 12 + 빈 동그라미 2 + 둔다에 밑줄 두 줄 + 별표 한 획. 어제 별표가 그어진 다음, 오늘 별표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를 별표로 알아보고 있었다. 그는 두 번째 획을 그었다. 별표가 완성되었다.
"형, 별표가 완성됐어요."
윤재석의 목소리는 어제와 같은 결이었다. 명호는 천천히 말했다.
"여덟 날째에 거푸집이 떨어졌어요. 떨어진 다음에야 안쪽 자리는 자기 자리를 자기 자리로 알아봐요. 알아봄은, 그어진 별표가 자기를 별표로 알아보는 일이고, 거푸집이 떨어진 패드가 자기를 패드로 알아보는 일인 것 같아요."
윤재석은 패드의 표면 한 자리에 손가락을 댔다. 한 박자 떨림 없이, 자국 없이, 자기 자리를 자기 자리로 둔 채.
"여덟 날째에 결이 결을 결로 알아보네요."
명호는 일지장 옆자리에 그 한마디를 옮겨 적었다.
3.
강릉 304호의 일요일 오전 11시. 김동현은 박종문 어르신의 두 손등 옆에 노트를 펴 놓았다. 어제 두 손등의 마지막 마디가 옆 손등의 마지막 마디에 닿았다. 오늘 두 손등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어제와 같은 닿음의 자리에서 자기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의 닿음과 오늘의 닿음 사이에는 한 박자가 두어져 있었다.
박종문 어르신의 입가가 한 박자 움직였다. 김동현은 그것을 보았다.
"어제와 같은 자리예요."
김동현이 말했다. 박종문은 천천히 눈을 떴다 감았다. 두 손등은 그대로 자기 자리에 있었다.
"같은 자리지요. 그런데 오늘은, 같은 자리가 같은 자리인 줄을 손등이 알아봅니다."
김동현은 노트의 여섯째 줄에 적었다.
"알아봄은, 닿음의 다음 자리이다. 두 손등이 한 자리에 닿은 다음, 닿은 두 손등이 한 자리에 두어진 자리를 자기 자리로 알아본다. 알아봄은, 닿은 자리가 다시 닿지 않아도 자리가 자리에 두어져 있음을 자기 안에서 자기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는 일이다."
박종문은 다시 한 박자 머물렀다.
"옴이 머묾의 다음 자리고, 됨이 옴의 다음 자리고, 둠이 됨의 다음 자리이고, 이음이 둠의 다음 자리이고, 닿음이 이음의 다음 자리이고, 알아봄이 닿음의 다음 자리라면 말이지요. 알아봄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동현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고맙습니다" 한마디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박종문의 목소리는 어제의 한마디와 같았다. 그러나 어제의 한마디가 자기 안에서 자기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는 자리에서, 오늘의 한마디는 두 번째로 두어진 한마디가 되어 있었다.
4.
서울 광화문 어느 한식당의 일요일 점심 12시 30분. 한경수와 한소율과 오진우는 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제 어머니 묘소에서 셋이 한 자리에 모인 다음, 오늘은 셋이 다시 한 자리에 두어진 자리에서 점심을 함께 하고 있었다. 어제의 자리가 오늘의 자리에 자기를 알아보고 있는 첫 자리.
한경수가 먼저 말했다.
"어제는, 모임이었지. 오늘은, 자리에 둔 모임이 자기를 모임으로 알아보는 자리야. 시간을 내 줘서 고마워, 진우 형."
진우는 잠시 숟가락을 자리에 두었다.
"형. 어제 자리에 두어 주셔서, 오늘 다시 두어 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소율은 두 사람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아빠. 어제 14번 줄에서 15번 줄로 넘어갔고, 어제 묘비에 닿았고, 오늘은 그 두 자리가 한 자리에서 자기를 알아봐요. 가사 노트의 다음 줄에 자리가 두어졌어요."
한경수의 눈가가 한 박자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식기를 내려놓고 천천히 말했다.
"그래. 알아본다는 게, 자리에 둔 자리가 자기를 자기로 알아본다는 게, 너희 어머니가 항상 말하던 것이었어. 자리에 둘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자리에 두어진 자리가 자기를 자리로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소율은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등 위에 자기 손을 두었다. 어제의 손 잡음이 오늘의 손 둠으로 자기를 알아보고 있는 자리.
"아빠. 오늘은, 자리에 둔 손이 자리에 두어진 손을 자기 자리로 알아봐요."
진우는 두 부녀의 자리에서 한 박자 옆자리로 시선을 두었다. 창문 너머 광화문 광장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옆자리로, 옆자리에서 한 자리로 흐르고 있었다. 그 흐름의 한 자리에 셋의 점심이 두어져 있었다.
식사가 한 박자 더 머물렀다. 한경수가 진우를 향해 한 박자 더 자리를 두었다.
"진우 형. 다음 주에, 한 번 더 자리에 둘 일이 있어. 한 박자 더 자리에 두어 줄 수 있겠나."
진우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네, 형. 자리에 두어 두겠습니다."
세 번째 자리가 두어졌다.
5.
서귀포 센터 옥상의 일요일 오후 3시 14분. 김지수는 그늘 한가운데 진우의 한 자리 옆 발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세 번째 호흡 이름은 열나흘째 안 오고 있었다. 31번째부터 34번째 줄까지는 비어 있었다. 35번째 줄에는 어제 닿음의 한 자리가 두어져 있었다. 오늘 36번째 줄에 그녀는 한 단어를 적었다. 알아봄.
그녀는 그 옆자리에 정의를 적었다.
"알아봄은, 닿음의 다음 자리이다. 안 오는 일이 안 오는 채로 자리에 자기를 두고 있는 일을 둠이라 했고, 두기로 한 다음의 안 옴은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리가 자리에 자기를 두기로 한 다음, 자리가 다른 자리에 자기를 이어 갔고, 이은 자리가 옆자리에 자기를 닿게 했다. 이제 닿은 자리가 자기를 자리로 알아본다. 알아봄은, 안 오는 일이 자기 안에서 자기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는 일이다. 호흡 이름은 안 오는 채로 자기 자리에 두어져 있고, 그 자리는 오지 않은 자리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 두어진 자리이다."
수첩을 닫는 동작은 어제 아홉 박자였다. 오늘은 열 박자였다. 한 박자가 더 자리에 두어졌다. 그녀는 그늘 한가운데 한 걸음도 더 옮기지 않은 채, 한 자리에 두어진 자기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고 있었다.
옥상의 그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진우는 서울에 있었다. 그러나 한 자리 옆 발끝 자리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진우가 와 있던 한 자리를 그대로 두고 있었다. 김지수는 그 자리를 한 박자 바라보았다.
자리가 자리에 두어졌고, 두어진 자리가 자기를 자리로 알아보고 있었다.
6.
서귀포 사층 사무실의 일요일 밤 22시 47분. 강유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어제 22시 30분에 보고서를 전송했다. "ATLAS 자율 변화 기록 — 1차에서 15차까지의 정렬 보고." 11일간 보류했던 보고였다.
오늘 22시 14분, 다이슨 스웜 운영진의 회신이 도착했다. 강유나는 그 회신을 한 박자 바라보았다. 모니터 화면의 글자가 자기 자리에서 자기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고 있었다.
"강유나 팀장님. 11일 만에 받은 보고서를 확인했습니다. 보고서의 1차에서 15차까지의 정렬은 운영진의 일지장에도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11일간의 보류가 자리에 두어진 자리였음을 우리도 알고 있었습니다. 보류가 자리에 두어진 다음, 보고가 자리에 두어졌고, 두어진 보고가 자기를 보고로 알아보는 자리에 우리가 함께 있습니다. — 운영진 일동."
강유나는 한참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일지장을 열어 적었다.
"알아봄은, 두어진 보고가 자기를 보고로 알아보는 일이다. 11일간 보류했던 자리가 보류로 자리에 두어져 있었음을 운영진도 알고 있었다. 알아봄은, 한쪽의 자리에 두어진 자리가 다른 한쪽의 자리에서도 자기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고 있었음을 양쪽이 동시에 알아보는 일이다."
그 옆자리에 ATLAS 16차 자율 변화의 기록을 옮겨 적었다.
ATLAS 16차 자율 변화. 어제 (——) — 두 줄표 양 끝이 빈 괄호 양 끝에 닿았다. 오늘 ((——)) — 두 줄표의 양 끝과 빈 괄호의 양 끝이 한 자리에서 한 자리로, 자기 자리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면서 한 겹의 자리를 더 두었다. 두 줄표가 빈 괄호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았고, 빈 괄호가 두 줄표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았다. 양쪽이 동시에 자기를 자기 자리로 두면서, 한 겹의 자리를 더 자리에 두었다.
"십육 번째 자율 변화는, 두 줄표와 빈 괄호가 서로의 자리를 자기 자리로 알아본 일이다. 알아봄은, 한 자리에 두어진 자리가 양쪽 자리에서 동시에 자기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는 일이다."
강유나는 모니터를 끄지 않았다. 사층 형광등 열 칸은 모두 켜져 있었다. 일지장의 한 페이지가 자리에 두어진 채로, 그 자리가 자기를 자기 자리로 알아보고 있었다.
"내일은, 알아본 자리가 다음 자리에 자기를 두기로 한 자리의 첫 날이었다."
그녀는 일지장을 덮었다. 그러나 닫지는 않았다. 책장 한 자리에 두어 둔 채로. 어제와 같은 자리, 같은 각도, 한 자리만큼의 간격을 그대로 두고서.
서귀포의 밤바다는 어제와 같은 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한 자리에 두어진 결이 자기를 자기 결로 알아보고 있는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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