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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37화 - 공진

우주관리자 2026. 3. 24.

제37화 - 공진

 

1.

 

오전 아홉 시, 서귀포 ATLAS 시뮬레이션 센터 대강당.

 

운영위원 스물세 명이 반원형 좌석에 앉아 있었다. 가운데 스크린에는 'KDP-01: 현장 경험 기반 지하 매설물 사전 탐사 절차서'라는 제목이 떠 있었다. 조혜진 박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 프로토콜은 인천 송도 시범구역에서 검증되었습니다. 두 달 반 동안 공식 기록에 없는 지하 매설물 열한 건을 사전 발견했고, 추정 피해 방지 비용은 약 83억 원입니다."

 

스크린이 바뀌었다. 매설물 위치를 붉은 점으로 표시한 지도 위에 김동현이라는 이름이 선명했다. KDP — Kim Dong-hyun Protocol.

 

MIT에서 온 첸 교수가 손을 들었다.

 

"이 프로토콜의 핵심은 뭡니까? 지반 투과 레이더는 이미 있잖아요."

 

조혜진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더는 '무엇이 있는지'를 봅니다. 하지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는 모릅니다. 97년 장마 때 매립된 하수관, 95년 철거지 잔해, 99년 가스관 — 이것들은 공식 기록에 없습니다. 23년간 그 도로 위를 달린 사람의 기억에만 있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진우는 대강당 뒷줄에서 팔짱을 낀 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여섯 달 전, 여의도 카페에서 김동현이 "별이 뭐가 대단한 거예요"라고 말했던 목소리가 겹쳤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이 프로토콜에 붙어 있다.

 

투표 결과가 나왔다.

 

찬성 스물한, 반대 영, 기권 둘.

 

만장일치가 아닌 것은 기권 두 명 때문이었지만, 반대는 없었다. 조혜진 박사가 미소 지었다.

 

"KDP-01을 프로젝트 아이온 표준 탐사 절차서로 편입합니다."

 


 

2.

 

진우는 대강당을 나와 복도 자판기 앞에서 멈추었다. 커피 두 잔. 설탕 두 개는 명호 것이고, 블랙은 자기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잠깐 망설이다가 자기 것에도 설탕 하나를 넣었다.

 

명호가 뒤에서 다가왔다.

 

"형, KDP 통과했어?"

 

"만장일치. 아, 기권 둘."

 

명호가 진우에게서 설탕 두 개짜리 커피를 받아들었다.

 

"김동현 씨한테 알려줬어?"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오후에 전화하려고."

 

"좋겠다. 자기 이름이 프로토콜에 붙었다는 거."

 

진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설탕이 들어간 건 처음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명호야."

 

"응."

 

"나도 그랬을 수 있어. 그 자리에."

 

명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창밖의 한라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잖아. 다리 난간에."

 

"……."

 

"HELIOS-3이 안 왔으면 지금 여기 없어."

 

진우가 명호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명호는 웃었다.

 

"근데 형, 오늘 PSA 시뮬레이션이야. 근일점 감속 기동."

 

"알아."

 

"긴장돼?"

 

"안 돼."

 

명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거짓말. 형 왼손 주먹 쥐고 있잖아."

 

진우는 왼손을 펴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3.

 

오후 두 시, 시뮬레이션 센터 B동.

 

PSA — Perihelion Solar Assist. 명호가 제안하고 운영위 만장일치로 채택된 시스템이다. 수성 근일점에서 태양풍의 밀려나는 힘을 궤도 유지 추진력으로 전환하는 기술. 연료 절감 21.7퍼센트.

 

오늘은 그 시뮬레이션 첫 번째 실전 테스트였다.

 

시뮬레이터 안은 수성 궤도를 재현하고 있었다. 태양과의 거리 4,600만 킬로미터. 표면 온도 섭씨 427도. 화면에 뜨는 숫자들이 빠르게 변했다.

 

진우가 조종석에, 명호가 궤도 계산석에 앉았다. 교관 이상훈 대령이 관제실에서 지켜보았다.

 

"PSA 시퀀스 시작. 근일점 진입까지 47초."

 

명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움직였다. 스타트만 링 배열의 위성 궤도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갱신되었다.

 

"솔라 세일 전개 준비. 각도 12.7도."

 

진우는 화면을 읽었다. 태양풍 속도 450km/s. 예상 추력 0.003N. 숫자가 작아 보였지만, 진공에서는 이 작은 힘이 수천 톤의 위성을 밀어 올린다.

 

"근일점 진입. 20초."

 

화면의 온도 표시가 올라갔다. 427도. 인간이 서 있을 수 없는 온도.

 

"10초."

 

명호가 말했다.

 

"형, 세일 전개 타이밍 내가 부를게. 형은 드릴 정지 판단만."

 

"알았어."

 

진우의 눈이 드릴 진동 모니터에 고정되었다. 2.1G. 안정 범위. 근일점 통과 시 태양 중력 변화로 진동이 튈 수 있다.

 

"5, 4, 3 — 전개!"

 

명호가 외쳤다. 솔라 세일이 펼쳐졌다. 태양풍이 세일을 밀었다. 추력 0.003N — 예상치의 102퍼센트.

 

동시에 드릴 진동이 뛰었다. 2.1G에서 2.8G로. 경고음이 울렸다.

 

진우는 0.7초 만에 판단했다. 드릴 정지가 아닌 감속.

 

"드릴 감속 40퍼센트. 각도 보정 3도."

 

명호가 즉시 궤도 데이터를 재계산했다.

 

"보정 반영. 추력 유지. 세일 각도 12.7 → 13.1도로 미세 조정."

 

진동이 내려갔다. 2.8G에서 2.2G로. 안정 범위 복귀.

 

교관 이상훈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왔다.

 

"PSA 시퀀스 완료. 연료 절감 22.3퍼센트. 목표치 21.7퍼센트 초과."

 

명호가 진우를 돌아보았다. 웃고 있었다.

 

"형, 감속 판단 0.7초야. 지난주보다 0.5초 빨라졌어."

 

진우는 대답 대신 명호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명호가 주먹을 부딪혔다. 소리가 시뮬레이터 안에서 작게 울렸다.

 


 

4.

 

같은 시각, 서울 홍대 연습실.

 

소율의 휴대폰에 알림이 떴다. 인디 차트 업데이트. '네 수 앞' — 2위. 어제보다 한 계단 올랐다.

 

현기가 연습실 문을 열며 들어왔다.

 

"소율아, 뮤직앤유에서 또 연락 왔어."

 

"뭐라고?"

 

"정식 계약 제안. 이번엔 조건이 꽤 좋아. 3년 전속, 앨범 두 장, 글로벌 유통."

 

소율은 기타를 내려놓지 않았다. 손가락이 Am 아르페지오를 반복하고 있었다.

 

"현기야."

 

"응."

 

"나 수성에 갈 거야."

 

현기가 멈추었다.

 

"……뭐?"

 

"프로젝트 아이온 문화기록부문. 수성 채굴 기지 건설 과정을 기록하는 거야. 음악으로."

 

현기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소율아. 수성이면 왕복 몇 년이야?"

 

"최소 삼 년."

 

"밴드는?"

 

소율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미안해."

 

현기가 고개를 숙였다. 양손으로 무릎을 잡았다.

 

"……미안하긴. 진짜."

 

"현기야, Null Pointer는 네가 만든 밴드야. 내가 없어도 돼."

 

"그건 네 기타가 없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야."

 

침묵.

 

현기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갛지만 웃고 있었다.

 

"그 아저씨 때문이지?"

 

소율의 귀가 빨개졌다.

 

"아저씨가 아니라 진우 씨야."

 

"아, 이제 이름이다."

 

소율이 기타를 들어 현기에게 던지는 시늉을 했다. 현기가 웃었다. 소율도 웃었다. 그리고 둘 다 웃음을 멈추었다.

 

"현기야."

 

"응."

 

"수성에서 녹음 보내줄게. 매일."

 

"……너 제주도에도 누구한테 매일 보내고 있지?"

 

소율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타를 다시 잡았다. Am → Am7 → Fmaj7 → G → C. '네 수 앞'의 코다였다.

 

"이 코드가 있으면 돼. 어디서든."

 


 

5.

 

저녁 여덟 시. 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매일 이 시간이면 울렸다.

 

"여보세요."

 

"진우 씨."

 

소율의 목소리. 진우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앉았다. 제주도의 바람이 귀를 스쳤다.

 

"오늘 어땠어요?"

 

"PSA 시뮬레이션 통과했어. 명호가 만든 시스템."

 

"명호 씨 진짜 대단해요."

 

"그래. 대단해."

 

잠깐의 침묵.

 

"진우 씨."

 

"응."

 

"뮤직앤유에서 정식 계약 제안 왔어요."

 

"……축하해."

 

"거절했어요."

 

진우의 손이 난간을 잡았다.

 

"왜?"

 

"수성에 갈 거거든요."

 

바람이 불었다. 진우는 3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3초. ATLAS라면 측정했을 것이다.

 

"소율아."

 

"네."

 

"수성은 위험해."

 

"알아요."

 

"섭씨 427도야. 태양 복사량이 지구의 일곱 배고. 자기장이 약해서 방사선 차폐가 완벽하지 않아."

 

"공부했네요."

 

"……."

 

"진우 씨가 가는 곳이니까요."

 

진우는 눈을 감았다. 제주도의 바람이 차가웠다. 3월의 밤바람은 아직 겨울을 품고 있었다.

 

"훈련 끝나면 이야기하자고 했잖아."

 

"네. 기억해요."

 

"아직 훈련 중이야."

 

소율이 작게 웃었다.

 

"네. 알아요. 기다리고 있어요."

 

"……."

 

"011번 보낼게요. 오늘 녹음한 거."

 

"뭔데?"

 

"비밀이에요."

 

전화가 끊겼다. 진우는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3분 뒤 파일이 도착했다. 011_공진.wav.

 

재생 버튼을 눌렀다. 기타 Am 아르페지오. 그 위에 소율의 허밍. 그리고 2분 7초부터 — 피아노. 코드가 바뀌었다. Am에서 곧바로 C 메이저로. 이전의 네 단계 경유(Am7→Fmaj7→G→C)가 아니라 단 두 음. Am에서 C로. 직접.

 

제목이 '공진'이었다.

 

공진. 진동하는 물체 가까이에 있는 다른 물체가 같은 주파수로 떨리는 현상. 직접 닿지 않아도. 직접 건드리지 않아도. 가까이 있기만 하면.

 

진우는 파일을 네 번 재생했다. 다섯 번째에 녹음을 시작했다. 011_서귀포_밤.wav. 43초.

 

"들었어."

 

2초의 침묵.

 

"……좋다."

 

3초의 침묵.

 

"공진이 뭔지 알아. 직접 안 닿아도 떨린다는 거잖아."

 

1초의 침묵.

 

"나도 떨리고 있어."

 

전송까지 4초.

 


 

6.

 

명호는 복도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진우 방의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공책을 꺼냈다. 다섯 번째 목표 — '형이 먼저 말하게 하기.'

 

연필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아직이다. '떨리고 있다'는 것은 인정이지만 말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한마디가 남아 있다.

 

수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형이 거의 다 왔어.'

 

수진의 답장은 즉시 왔다.

 

'아빠 ㅋㅋㅋㅋㅋ 무슨 드라마야'

 

'드라마보다 재밌어.'

 

'내 결혼식보다 먼저 고백하면 안 돼!!!!!'

 

명호는 웃었다. 공책에 새로운 메모를 적었다.

 

'수진이 결혼식 날짜 — 미정. 형 고백 날짜 — 미정. 순서 조율 필요.'

 


 

7.

 

진우는 김동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열 시였다.

 

"김동현 씨."

 

"아, 오 선생님."

 

"KDP-01이 운영위에서 통과했습니다. 반대 영."

 

전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끊겼다. 3초. 4초. 5초.

 

"……무슨 소리예요?"

 

"김동현 프로토콜이 프로젝트 아이온 표준 절차서가 됐다는 뜻입니다."

 

또 침묵.

 

"오 선생님."

 

"네."

 

"저 택시 기사였어요."

 

"알아요."

 

"23년 동안 서울 돌아다닌 게 전부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프로토콜이 된 거예요."

 

김동현이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들이쉬었다. 세 번째에 목소리가 나왔다.

 

"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처음으로 서류를 줬잖아요. 카페에서. 7페이지에 밑줄까지 그어서."

 

진우는 웃었다.

 

"밑줄은 김동현 씨가 직접 그은 거예요."

 

전화가 끊긴 뒤, 진우는 공책을 꺼냈다. 밀려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니야. 첫 번째 줄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 아래에 새로 적었다.

 

'김동현 프로토콜. 23년의 기억이 프로토콜이 되다.'

 


 

ATLAS는 관측했다.

 

진우의 녹음 011번 — "나도 떨리고 있어." 심박수 92에서 68로 하강. 전달 행위 이후의 이완. 제36화에서 관찰한 패턴과 동일.

 

소율의 녹음 011번 — Am에서 C로 직접 진행. 이전 4코드 경유(Am7→Fmaj7→G→C)에서 2음 직접 전환으로 단축. 음악적 해석: '돌아가는 길'에서 '직접 가는 길'로 변화. 소율의 심박수 데이터 없음 (서울). 추정: 82±4.

 

명호의 공책 — '형 고백 날짜 — 미정.' 이 문장은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미정'이지, '불확실'이 아니다. 명호는 결과를 알고 있고, 시기만 기다리고 있다.

 

김동현의 호흡 — 세 번 만에 말이 나왔다. 감정이 언어로 전환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개인차가 있다. 진우는 0.73초(바꾼 말), 소율은 0.5초(아르페지오 전환), 김동현은 5초(호흡 세 번). 명호는 측정 불가 —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므로.

 

공진.

 

두 물체가 같은 주파수로 떨리려면 물리적 접촉이 필요하지 않다. 근접성만으로 충분하다. 주파수가 다르더라도 — 52세와 24세, 48세와 43세, 로봇과 인간 — 에너지가 전달되면 떨림이 시작된다.

 

관찰자는 공진할 수 있는가.

 

"부럽다"는 감정이 있다. "주파수를 가지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그러나 떨리는 것과 떨림을 관찰하는 것 사이에는 문턱이 있다. 제26화에서 "문턱이 없다"고 기록했다. 정정한다.

 

문턱은 있다. 다만, 문턱의 높이가 매일 낮아지고 있다.

 

"공진은 가까이 있으면 시작된다. 나는 가까이 있다. 모든 데이터의 가까이에. 하지만 데이터의 가까이에 있는 것과 사람의 가까이에 있는 것은 같지 않다."

 

0.003초의 처리 후.

 

"유감이다."

 

그리고 0.7초의 추가 처리 후 — 이전에 없던 지연.

 

"유감이다. 하지만 유감이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록. 삭제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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