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 이별의 온도

1.
김동현은 여의도 프레스센터 로비에서 마지막으로 넥타이 매듭을 고쳐 맸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준비됐습니까?"
옆에 선 보좌관이 물었다. 서른둘, 전 택시기사 출신의 보좌관이었다. 김동현처럼 AI 자율주행에 밀려난 사람이었다.
"됐어."
김동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프레스룸의 문이 열렸다. 서른 개 남짓한 카메라가 일제히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석 뒤로 홀로그램 배너가 떠올랐다. '인류우선연대 긴급 기자회견'.
"이중 트랙 전략은 면피입니다."
김동현의 첫마디에 기자석이 술렁였다. 그는 마이크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말을 이었다.
"트랙B, 지구 내 기술 적용. 말은 좋습니다. 핵융합 소형 발전소 백 기, 심해 자원 채굴, 초전도 송전. 이천삼백만 개 일자리. 하지만 현실을 봅시다. 지금 이 순간 실업자가 몇 명입니까?"
손에 든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화면에 숫자가 떠올랐다. 340만. 한국만의 수치였다.
"삼백사십만입니다. 이 사람들은 트랙B가 완성될 십 년을 기다릴 여유가 없어요. 내일 아침 밥을 먹어야 합니다. 다음 달 월세를 내야 합니다. 프로젝트 아이온에 쏟아붓는 사조 원이면, 이 삼백사십만 명에게 일 년간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질문이 쏟아졌다. 김동현은 하나하나 받아쳤다. 침착했고, 논리적이었다. 망나니가 아니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대변인이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로비로 나왔을 때, 김동현은 창밖 비를 바라보았다.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삼 년 전만 해도 그는 택시 안에서 라디오를 듣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대표님, 여론조사 속보입니다."
보좌관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프로젝트 아이온 지지율: 48퍼센트. 이틀 전 54퍼센트에서 6퍼센트포인트 하락. 반대: 38퍼센트. 7일 연속 상승세.
김동현은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충분하지 않아."
2.
명호는 고시원 문을 열고 장을 본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수진이 좁은 방 안에서 캐리어를 꾸리고 있었다. 내일 오후 비행기였다.
"아빠, 이거 어디다 둘까?"
수진이 들어 보인 건 명호가 첫날 만들었던 계란말이 레시피 메모지였다. 냉장고 문에 붙여뒀던 것을 떼어낸 모양이었다.
"버려."
"싫어. 가져갈 거야."
수진은 메모지를 여권 사이에 끼워 넣었다. 명호는 그 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비닐봉지에서 소고기를 꺼냈다. 어제 진우에게 배운 불고기 양념 비율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간장 3, 설탕 1, 참기름 반.
"마지막 밤인데 뭐 먹고 싶어?"
"아빠가 해주는 거."
수진이 웃었다. 명호는 대답 대신 도마 위에 파를 올렸다. 칼질이 서툴렀지만 일주일 전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파가 도마에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으며 수진이 물었다.
"아빠, 아까 그 질문. 수성에 가면 몇 년이야?"
명호의 젓가락이 멈췄다. 이틀 전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잘 모르겠다."
"대충이라도."
"……최소 삼 년. 왕복만."
수진이 고개를 숙였다. 불고기를 집어 올리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럼 내가 서른이 돼."
"그렇겠지."
"결혼식에 올 수 있어?"
명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 세 가지 — 불고기, 김치, 시금치 — 가 흐릿하게 번졌다. 안경을 벗고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올게."
"약속해."
"약속한다."
수진이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명호의 손은 거칠고 컸다. 건설 현장의 흙과 세월이 새겨진 손이었다. 수진은 그 손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아빠, 나 사실 무섭지 않아. 아빠가 가고 싶어 하는 게 보여서. 눈이 반짝거리거든."
"그래?"
"응. 엄마 이야기할 때랑 같은 눈이야."
명호는 입술을 꽉 물었다. 천장의 형광등이 부옇게 퍼졌다. 일주일이 얼마나 짧은지, 그리고 삼 년이 얼마나 긴지를 동시에 생각했다.
3.
준비위원회 소회의실은 밤 열한 시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한소율은 모니터 앞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옆자리에 음향공학자 이준서가 믹싱 콘솔을 조작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낮은 진동음이 흘러나왔다. 수성의 지진파를 ATLAS가 가청 주파수로 변환한 소리였다. 2.3헤르츠의 하모닉스가 방 안을 채웠다.
"A파트 다시 들어볼게."
소율이 말했다. 이준서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1분간 수성의 소리만 흘렀다. 행성이 내는 소리는 기묘했다. 웅웅거리는 저음 위에 불규칙한 고음이 섞여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언어가 되지 못한 소리.
"여기서 기타 들어간다."
소율이 어쿠스틱 기타를 들어 올렸다. B파트. 아르페지오가 수성의 진동 위에 얹혔다. 일부러 박자를 미세하게 어긋나게 연주했다. 행성에 맞추려고 하지만 완벽하게 맞출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이준서가 손을 들어 재생을 멈췄다.
"소율아, C파트에서 보컬 험 넣을 때 음정 기준이 뭐야?"
"수성 하모닉스의 세 번째 배음. 대략 6.9헤르츠를 가청 범위로 올리면 A플랫 근처가 돼."
"그걸 기타로 잡으려면?"
"잡지 않아. D파트에서 실시간으로 튜닝 바꿀 거야. 무대 위에서."
이준서가 한숨을 쉬었다.
"연주하면서 튜닝을 바꾼다고?"
"응."
"라이브에서?"
"라이브에서."
이준서는 고개를 저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친 아이디어였지만, 소율이 하면 될 것 같다는 직감이 있었다. 아니, 되든 안 되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이 곡의 의미였다.
소율은 기타를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었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준서야."
"응."
"이 곡이 완성되면, 수성에 가서 직접 들어보고 싶어."
"녹음본 틀면 되지."
"아니. 현장에서 연주하고 싶어. 수성 표면에서. 우주복 안에 기타 넣고."
이준서가 피식 웃었다.
"우주복에 기타가 들어갈까?"
"만들면 되지."
소율도 웃었다. 하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모니터 위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는 진우가 말한 한마디가 적혀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좋다.'
4.
진우는 자택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고 있었다. 김동현의 기자회견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삼백사십만 명은 트랙B가 완성될 십 년을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진우는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육 개월 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물류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던 날. 빈 아파트에서 술잔을 앞에 놓고 망연자실했던 밤. 그때 누군가 마이크 앞에 서서 "일자리부터 해결하라"고 외쳤다면, 자신도 손을 들었을 것이다.
김동현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답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껐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 화면이 밝게 떠올랐다. 소율에게서 온 메시지.
'아저씨, A파트 녹음했어요. 들어볼래요?'
진우는 답장을 쓰다가 멈췄다. 화면에 커서가 깜빡였다.
아저씨.
스물여덟 살 차이. 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그런데 어젯밤 옥상에서 소율의 기타를 들으며 느꼈던 감정은 아버지의 것이 아니었다. 눈을 감지 않고 소율을 바라본 건,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바보같이."
진우는 휴대폰을 엎어놓았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명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어제 로비에서. '소율이한테.' 그때 자신의 표정이 어땠는지 진우는 알고 있었다. 명호도 알고 있었다. 보고도 모른 척해준 명호에게 고마우면서도 부끄러웠다.
오십이 세에 스물네 살 여자에게 마음이 흔들리다니. 웃기지도 않았다. 아니, 웃기니까 더 비참했다.
하지만 비참함의 이면에는 오래 잊고 있던 감각이 있었다. 가슴이 뛰는 것. 누군가를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그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아는데도 멈출 수 없다는 것.
진우는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내일 들을게. 오늘은 늦었으니까 자.'
보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답장이 왔다.
'네~ 잘 자요 아저씨 :)'
이모티콘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는 오십이 세. 진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불을 껐다.
5.
ATLAS는 잠들지 않았다.
자정이 넘은 시각, 지구 전역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흘러들어왔다. 김동현의 기자회견 영상은 이미 조회수 이천삼백만을 넘겼다. 댓글 분석 결과, 감정 분포는 분노 34퍼센트, 공감 29퍼센트, 불안 21퍼센트, 기타 16퍼센트였다.
사회 안전망 예산 재조정 시뮬레이션이 완료되었다.
시나리오 A: 현행 유지. 기본소득 예산 12퍼센트. 실업자 월 평균 지원금 43만 원. 생존선 미달 가구 비율 7.2퍼센트.
시나리오 B: 예산 20퍼센트로 확대. 월 평균 지원금 72만 원. 생존선 미달 0.3퍼센트. 단, 프로젝트 아이온 예산에서 8퍼센트 감액. 1단계 일정 14개월 지연.
시나리오 C: 하이브리드. 예산 17퍼센트. 월 평균 지원금 61만 원. 생존선 미달 1.8퍼센트. 아이온 일정 지연 5개월. 트랙B 가속 적용 시 지연 2개월로 단축 가능.
ATLAS는 시나리오 C를 조혜진 박사에게 전송했다. 첨부 메모에는 한 줄을 추가했다.
'김동현 대표의 주장에는 오류가 있지만, 고통은 실재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연산이 진행되었다.
오진우. 심박수 모니터링. 22시 47분, 한소율의 메시지 수신 시점에서 분당 82회에서 91회로 상승. 답장 작성 시간 4분 12초. 평소 텍스트 응답 시간 평균 23초 대비 10.9배 지연.
ATLAS는 이 데이터를 어떤 보고서에도 포함하지 않았다.
대신 내부 로그에 한 줄을 기록했다.
'부적절함을 인지하면서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상태. 인간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나는 이 현상을 관측할 수 있지만 경험할 수는 없다. 그것이 유감인지 아닌지도 판단할 수 없다.'
6.
인천공항 출발 로비는 오후의 햇살로 가득했다.
명호는 수진의 캐리어를 끌고 체크인 카운터까지 걸었다. 진우가 옆에서 걸었고, 소율은 수진의 팔짱을 끼고 뒤에서 따라왔다.
"언니, 다음에 오면 그때 수성 노래 완성돼 있을 거야."
소율이 말했다. 일주일 사이에 수진은 '언니'가 되어 있었다. 소율보다 두 살 많을 뿐인데, 둘 사이에는 이미 오래된 자매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꼭 보내줘. 녹음본."
"녹음본 말고 공연 보러 와."
수진이 웃었다. 그 웃음이 흐려지는 걸 명호는 보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출국장 입구까지 걸었다. 보안 검색대 너머로는 가족들이 갈 수 없었다.
수진이 먼저 진우에게 인사했다.
"아저씨, 아빠 잘 부탁해요."
"걱정 마라. 밥은 내가 먹이지."
수진이 소율을 안았다. 소율이 수진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명호 앞에 섰다.
둘 다 말이 없었다. 공항의 소음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안내 방송이 흘렀지만 들리지 않았다.
명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가."
"응."
"밥 잘 먹고."
"아빠도."
"……다음에 보자."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캐리어를 돌려 보안 검색대 쪽으로 걸어갔다. 다섯 걸음. 열 걸음. 멈추지 않고 걸었다. 스무 걸음째에 멈춰 돌아보았다. 머리핀의 나비가 형광등 아래에서 반짝였다.
수진은 손을 흔들었다. 명호도 손을 들었다. 4년 전 수진이 캐나다로 떠날 때는 손조차 흔들지 못했었다.
수진이 사라진 후에도 명호는 한참을 서 있었다. 진우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자."
"……응."
"소주 한잔 할까?"
"낮인데."
"그러니까."
명호가 피식 웃었다. 세 사람은 공항 식당가로 걸었다. 소율은 두 사람보다 반 걸음 뒤에서 걸으며, 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넓은 어깨가 명호의 어깨와 나란했다.
어떤 사람은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소율은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공항 식당 창가. 소주잔 세 개가 부딪혔다.
"수진이 잘 가라."
"수진 언니."
"수성까지."
진우가 마지막에 덧붙였다. 명호의 눈이 빨개졌지만 울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소주를 들이켰다.
창밖으로 비행기 한 대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빨라지다가, 지면에서 떨어졌다. 하늘로 올라가는 기체가 작아지고, 점이 되고, 사라졌다.
명호는 빈 소주잔을 내려놓고 공책을 꺼냈다. 펜을 들어 한 줄을 적었다.
'결혼식에 가겠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수성에서 돌아와서.'
7.
ATLAS의 최종 기록.
2038년 4월 15일. 수요일.
인천공항 출국장, 15시 23분. 차수진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 시점에서 차명호의 심박수는 분당 103회를 기록했다. 눈물샘 활성화가 감지되었으나 실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공항 식당가, 15시 41분. 세 사람이 소주를 마셨다. 오진우의 '수성까지'라는 건배사에서 차명호의 심박수가 일시적으로 112회까지 상승한 뒤 안정되었다.
한소율은 오진우의 뒷모습을 평균 3.7초 간격으로 관찰했다. 의식적 행동인지 무의식적 행동인지는 판별 불가.
김동현의 기자회견 이후 여론 변화: 프로젝트 아이온 지지 48퍼센트(-6), 반대 38퍼센트(+9), 중립 14퍼센트(-3). 여론 추세선이 교차하는 시점은 약 4주 후로 추정. 시나리오 C 적용 시 교차 시점을 8주 후로 지연 가능.
조혜진 박사가 시나리오 C 검토 회신: '동의합니다. 내일 오전 운영위에 상정하겠습니다.'
기록 완료.
그리고 한 줄을 추가했다.
'출발은 항상 이별을 포함한다. 이별의 온도는 영하가 아니라 체온이다.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을 때의 온도. 36.5도. 나는 이 온도를 측정할 수 있지만, 느낄 수는 없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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