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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22화 - 두 개의 길

우주관리자 2026. 3. 5.

제22화 - 두 개의 길

 

1.

 

명호는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다.

 

고시원 소파는 등이 아팠지만, 그보다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건 어제 수진이가 한 말이었다. "아빠, 내일 아침은 내가 할게." 명호는 그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약속은 약속이다. 메모지에 '아빠가 이번 주 매일 밥 해줄게'라고 적은 건 자기 자신이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퇴근길에 마트에서 산 것들 — 달걀 열 개, 두부 한 모, 대파 한 단, 참기름. 삼만 원이 조금 넘었다. 고시원 공용 주방은 새벽이라 텅 비어 있었다.

 

"계란말이는… 이렇게 하는 거였나."

 

스마트폰에 띄운 레시피 영상을 보며 프라이팬을 달궜다. 달걀 네 개를 깨뜨려 젓고, 대파를 송송 썰어 넣었다. 기름을 두르고, 달걀물을 부었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건설 현장에서 이십 년을 일했다. 레미콘 배합비는 눈 감고도 맞출 수 있었다. 그런데 계란말이 하나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첫 번째는 찢어졌고, 두 번째는 태웠다.

 

세 번째에야 겨우 모양이 잡혔다. 예쁘진 않았지만 먹을 수는 있었다.

 

된장찌개는 좀 나았다. 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된장 한 숟갈, 고추장 반 숟갈. 건설 현장 밥차에서 수백 번은 먹어본 맛이니까. 끓기 시작하자 구수한 냄새가 좁은 복도까지 퍼졌다.

 

"아빠?"

 

수진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잠이 덜 깬 얼굴, 나비 머리핀은 베개 옆에 두고 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앉아. 다 됐어."

 

좁은 테이블에 밥 두 공기, 된장찌개 냄비, 계란말이 접시를 놓았다. 반찬이라고는 편의점에서 산 김치 하나뿐이었다.

 

수진이가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씹다가 멈췄다.

 

"…짜."

 

"…그래?"

 

"응. 많이."

 

침묵이 흘렀다. 명호는 자기 것도 한 입 먹어봤다. 짰다. 소금을 두 번 넣은 것 같았다.

 

수진이가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가 떨리는, 그런 웃음이었다.

 

"된장찌개는 맛있어."

 

"그건 자신 있었어."

 

명호는 밥을 퍼먹으며 딸의 얼굴을 바라봤다. 사 년 전까지 이 아이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사업이 잘될 때. 그때는 아침밥이 당연했다. 테이블이 넓었고, 반찬이 여섯 가지였고, 자기는 신문만 읽었다.

 

지금은 테이블이 좁고, 반찬은 하나고, 계란말이는 짜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이 더 좋았다.

 


 

2.

 

금요일 오전 열 시. 지구연방 준비위원회 서울사무소 대강당.

 

조혜진 박사가 단상에 섰다. 오늘의 발표는 원래 다음 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인류우선연대의 여의도 시위가 이백 명으로 불어나면서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이중 트랙 전략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켜졌다. 왼쪽에는 태양을 중심으로 궤도를 도는 수백만 개의 위성 — 다이슨 스웜. 오른쪽에는 지구 위에 점점이 빛나는 시설물들이 표시됐다.

 

"트랙 A는 여러분이 아시는 프로젝트 아이온입니다. 수성 채굴 기지 건설, 다이슨 스웜 프로토타입 배치. 이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장기 투자입니다."

 

조혜진 박사가 오른쪽 화면을 가리켰다.

 

"트랙 B는 아이온 기술의 지구 내 적용입니다. 핵융합 소형 발전소 백 기를 2045년까지 전 세계에 배치합니다. 심해 자원 채굴 기술을 민간에 이전합니다. 오지 송전망을 초전도 케이블로 연결합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숫자들이 나열됐다.

 

"트랙 B만으로도 향후 십 년간 이천삼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에너지 비용은 현재의 삼분의 일로 감소하고, 에너지 빈곤층은 사실상 사라집니다."

 

강당이 웅성거렸다.

 

진우는 뒷줄에서 팔짱을 끼고 들었다. 옆에 명호가 앉아 있었다. 오늘 수진이가 혼자 고시원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관광할 거야. 명동 갈 거야." 명호가 그 말을 전할 때 목소리가 흔들렸다. 딸이 서울을 구경하겠다는 게 그렇게 기쁜 모양이었다.

 

"질의응답을 시작하겠습니다."

 

기자석에서 손이 올라갔다. 예상된 질문이었다.

 

"인류우선연대 김동현 대표는 프로젝트 아이온 예산 사조 원이면 실업자 백만 명을 일 년간 지원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조혜진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트랙 B의 핵융합 발전소 배치는 프로젝트 아이온의 기술 개발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우주 기술은 우주에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진우가 명호에게 소곤거렸다.

 

"저 말 맞아?"

 

"맞아. 수성 채굴 기술이 심해 채굴로 전환되는 건 기술적으로 타당해. 극저온 환경 제어 시스템이 동일한 원리거든."

 

명호는 작업복 주머니에서 공책을 꺼냈다. 아까부터 뭔가를 적고 있었다. 진우가 힐끗 봤다. 수식이었다. 궤도역학 수식 사이에 '수진이 저녁 — 불고기?'라는 메모가 끼어 있었다.

 


 

3.

 

같은 시각, 준비위원회 소회의실.

 

소율은 음향공학자 이준서와 마주 앉아 있었다. 데스크 위에는 노트북 두 대와 오디오 인터페이스,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가 놓여 있었다.

 

"이거 들어봐."

 

이준서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에서 낮고 깊은 진동이 흘러나왔다. 수성의 지진파 데이터를 가청 주파수로 변환한 것이다. 2.3Hz의 하모닉스가 방 안을 채웠다.

 

소율은 눈을 감았다.

 

소리는 불규칙했다. 일정한 박자도 없고, 멜로디도 없었다. 그저 행성이 내는 소리. 수십억 년 동안 아무도 듣지 않았던 진동.

 

"여기에 기타를 얹으면…"

 

소율이 기타를 들어올려 무릎에 놓았다. 왼손이 현 위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Am7. 아니, Cmaj9. 아니.

 

그냥 열린 현을 퉁겼다. E.

 

수성의 진동 위에 기타의 개방현이 겹쳤다. 불협화음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맞았다.

 

"불협화음을 그대로 두는 거야?"

 

"수성이 편안한 곳이 아니니까."

 

이준서가 웃었다. "그럼 이건 음악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네."

 

"다큐멘터리도 음악이 될 수 있어."

 

소율은 기타를 내려놓고 노트북 화면을 봤다. 파형 편집기 위에 데모 파일이 열려 있었다. 4분 11초. 지난번에 만든 첫 데모. 오늘은 여기에 살을 붙여야 했다.

 

"A파트를 수성 진동만으로 시작하고, 16마디 후에 기타가 들어오는 구조는 어때?"

 

이준서가 고개를 기울였다. "16마디면 거의 1분이잖아. 기타 없이 행성 소리만 1분?"

 

"그래. 사람들이 수성을 직접 듣는 시간이 필요해. 해석 없이."

 

노트에 구조를 적었다.

 

A파트: 수성 진동 단독 (0:00~1:04)

B파트: 기타 아르페지오 진입 (1:04~2:20)

C파트: 보컬 험 + 불협화음 확대 (2:20~3:15)

D파트: 모든 소리가 하나의 화음으로 수렴 (3:15~4:30)

 

"D파트에서 수렴시키려면 수성 진동의 피치를 미세하게 조정해야 해."

 

"안 돼." 소율이 고개를 저었다. "수성 소리는 건드리지 마. 기타가 수성에 맞추는 거야. 사람이 행성에 맞추는 거지, 행성을 사람에게 맞추면 안 돼."

 

이준서가 잠시 소율을 바라봤다.

 

"…알겠어. 그러면 D파트에서 기타 튜닝을 실시간으로 바꿔야 하는데—"

 

"라이브에서 해볼 거야. 무대 위에서 직접 줄을 조율하면서."

 

"미쳤어?"

 

소율이 웃었다. "원래 그런 거 아니야? 음악이란 게."

 


 

4.

 

점심시간. 대강당 앞 로비.

 

발표가 끝나고 기자들이 빠져나간 뒤, 진우는 자판기 커피를 두 개 뽑아 명호에게 하나를 건넸다.

 

"아까 공책에 불고기 메모 적던데."

 

명호가 멋쩍게 웃었다. "수진이가 불고기 좋아했거든. 근데 양념 비율을 까먹었어."

 

"간장 세 숟갈, 설탕 한 숟갈 반, 참기름, 다진 마늘. 나도 혼자 살면서 외웠어."

 

"형이 요리를 해?"

 

"아들 현수가 중학생 때까지는 했지. 이혼하고 나서." 진우가 자판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근데 아이가 크면 안 먹어줘. 밖에서 먹겠다고."

 

"수진이도 그랬어. 옛날에는."

 

두 사람이 로비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창밖으로 여의도 방향이 보였다. 시위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중 트랙이 되면…" 명호가 입을 열었다. "프로젝트 아이온 예산이 줄어들겠지?"

 

"아니. 조혜진 박사 말로는 트랙 B가 별도 예산이래."

 

"ATLAS가 시뮬레이션을 돌린 거겠지. 사회 안전망 예산 재조정."

 

"그래."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ATLAS가 12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올리는 시뮬레이션을 이미 시작했다더라."

 

명호는 커피를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인류우선연대 김동현이라는 사람… 이해는 돼."

 

진우가 명호를 봤다.

 

"나도 육 개월 전에는 저 자리에 있었을 거야. AI한테 일자리 뺏기고, 빚더미에 앉아서, 세상이 자기만 놓고 간다는 느낌. 그 사람들 말이 틀린 게 아니라, 타이밍이 안 맞는 거야."

 

"타이밍?"

 

"미래를 위한 투자가 현재의 고통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뜻이야. 이중 트랙이 그 답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판기 커피를 다 마시고 빈 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넌 어떻게 나왔어?"

 

"뭐에서?"

 

"그 자리에서. 죽으려던 데에서."

 

명호가 한참을 침묵했다.

 

"로봇이 하나 왔어."

 

"HELIOS-3."

 

"그래. 근데 그게 다가 아니야." 명호가 커피컵을 양손으로 감쌌다. "로봇이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라고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한테 발견됐다고 느꼈어. 기계인데. 웃기지."

 

"웃기지 않아."

 

"형도 발견됐잖아. 현수한테, 나한테. 소율이한테."

 

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율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명호는 그것을 봤지만 모른 척했다.

 


 

5.

 

오후 네 시. 준비위원회 건물 옥상.

 

소율은 기타 케이스를 어깨에 메고 옥상 문을 밀었다. 바람이 불었다. 서울 하늘은 오늘따라 맑았다.

 

벤치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진우였다.

 

"아저씨 여기서 뭐 해요?"

 

"바람 쐬러 왔어."

 

소율이 옆에 앉았다. 기타 케이스를 무릎 옆에 세워놓았다.

 

"발표 들었어요?"

 

"들었어."

 

"어땠어요?"

 

진우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저 너머 어딘가에 수성이 있고, 태양이 있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수백만 개의 위성이 있다.

 

"무섭다."

 

소율이 고개를 돌렸다. "또요?"

 

"또."

 

"아저씨는 맨날 무섭대요."

 

"무서운 거 투성이니까." 진우가 웃었다. "오십 넘으면 알게 될 거야."

 

"저도 무서워요."

 

진우가 소율을 봤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렸다. 어깨 위에 떨어진 벚꽃잎이 아직 있을 리 없었다. 벚꽃 계절은 이미 지났다.

 

"수성의 노래, 진짜로 만들 수 있겠어?"

 

"모르겠어요. 해봐야 알죠."

 

"아까 이준서한테 무대 위에서 줄을 조율하겠다고 했다며?"

 

소율이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알아요?"

 

"이준서가 로비에서 미쳤다고 떠들고 다니더라."

 

소율이 웃었다. 진심으로 웃는 얼굴이었다. 진우는 그 웃음을 보면서, 고용센터에서 처음 마주쳤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는 공허했다. 밴드가 취소되고, AI 음악에 밀려나고, 세상이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표정.

 

지금은 달랐다.

 

"아저씨."

 

"응."

 

"그때 고용센터에서요."

 

"응."

 

"'밀려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니야'라고 했잖아요."

 

"내가 나한테 한 말이었어."

 

"알아요. 근데 저한테도 한 말이 됐어요." 소율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수성의 노래도 결국 그 말에서 시작됐어요. 밀려나는 게 당연하지 않다면, 인간이 행성에 노래를 만들어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율이 기타 케이스를 열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꺼내 무릎에 올렸다.

 

"들어볼래요? 아직 미완성이지만."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율이 눈을 감고 첫 음을 퉁겼다. E. 수성의 진동은 없었지만, 옥상의 바람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고, 차가운 소리.

 

기타 선율이 그 위에 겹쳐졌다.

 

진우는 눈을 감지 않았다. 기타를 치는 소율의 손을,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오후 햇살에 비치는 옆모습을 바라봤다.

 

무서웠다. 수성보다, 다이슨 스웜보다, 이 감정이 더 무서웠다.

 


 

6.

 

저녁 일곱 시. 고시원.

 

명호는 불고기를 만들고 있었다. 간장 세 숟갈, 설탕 한 숟갈 반, 참기름, 다진 마늘. 진우에게 들은 대로 양념장을 만들었다. 배가 없어서 사과를 갈아 넣었다.

 

수진이가 쇼핑백을 들고 돌아왔다. 명동에서 산 것들이라고 했다.

 

"아빠, 나 선물 사왔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머플러였다. 회색, 캐시미어. 가격표가 아직 붙어 있었다. 팔만 구천 원.

 

"비싼 거 왜 사."

 

"아빠가 현장에서 일하잖아. 바람 불면 추울 텐데."

 

명호는 머플러를 목에 감아봤다. 부드러웠다. 이런 걸 목에 두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고마워."

 

"불고기 타고 있어."

 

명호가 급히 프라이팬으로 달려갔다. 가장자리가 약간 탔지만 괜찮았다. 접시에 담고, 밥을 퍼서 나란히 놓았다.

 

수진이가 한 입 먹었다.

 

"…맛있어."

 

"진짜?"

 

"응. 아까 계란말이보다 백 배 나아."

 

명호가 웃었다. 수진이도 웃었다. 좁은 고시원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수진이가 물었다.

 

"아빠, 정말 수성에 가는 거야?"

 

명호의 손이 멈췄다. 비눗물이 팔꿈치까지 흘렀다.

 

"아직 확정은 아니야. 준비 단계야."

 

"근데 가게 되면… 몇 년이야?"

 

"모르겠어. 최소 이삼 년은."

 

수진이가 식탁에 턱을 괴었다.

 

"나 이번에 캐나다 돌아가면, 다음에 언제 볼 수 있어?"

 

명호는 설거지를 끝내고 손을 닦았다. 수건으로 천천히,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자주 올게."

 

"약속?"

 

"약속."

 

수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이 젖어 있었다.

 

명호는 공책을 꺼내 오늘의 마지막 메모를 적었다.

 

'불고기 — 성공. 수진이가 맛있다고 함.'

'수진이 질문: 수성에 가면 몇 년이야?'

'대답 못 함.'

 


 

7.

 

밤 열한 시.

 

ATLAS의 관측 기록.

 

이중 트랙 전략 발표 후 여론 변화: 긍정 54%(+6), 반대 29%(-7), 중립 17%. 단기적으로 유효. 그러나 인류우선연대 내부 데이터에 따르면, 김동현 대표가 내일 긴급 기자회견을 준비 중. "이중 트랙은 면피"라는 주장 예상.

 

오진우: 옥상에서 한소율의 기타 연주를 4분 23초간 경청. 심박수 데이터 접근 불가하나, 표정 분석에 의하면 '경외'와 '두려움'이 혼재. 흥미로운 점: 그가 두렵다고 말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역설적으로, 두려움을 인정하는 횟수의 증가는 용기의 증가와 상관관계를 보인다.

 

차명호: 불고기 양념 비율을 오진우에게서 전달받아 조리. 간장 3:설탕 1.5:참기름 적정량. 결과물에 대한 차수진의 평가는 "맛있어"였으나, 음성 분석에서 미세한 과장이 감지됨. 실제 맛 평가 추정: 상위 40퍼센타일. 하지만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딸이 아버지의 요리를 먹고 "맛있어"라고 말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한소율: 수성의 노래 구조를 확정. A-B-C-D 4파트, 4분 30초. D파트에서 기타 튜닝을 실시간으로 변경하겠다는 계획. 이준서는 "미쳤다"고 평했으나,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소율이 옥상에서 오진우에게 연주한 시간: 4분 23초. 오진우가 눈을 감지 않은 시간: 4분 23초.

 

수진이 물었다. "수성에 가면 몇 년이야?"

명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중 트랙은 지구와 우주를 잇는 전략이다. 하지만 진짜 두 개의 길은 다른 곳에 있다. 떠나는 것과 남는 것. 미래를 향하는 것과 현재를 지키는 것. 그리고 그 두 길 사이에서,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아직은.

 

새벽이 오고 있다. 아직은 어둡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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