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영겁의 새벽] 제22화 - 두 개의 길

우주관리자 2026. 3. 4.

제22화 - 두 개의 길

 

1.

금요일 아침, 지구연방 준비위원회 서울사무소 대회의실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오진우는 회의실 뒤편에 서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긴장돼요?"

옆에 서 있던 소율이 물었다. 오늘은 검은 재킷에 흰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이 건물에 오기 시작한 뒤로 소율의 옷차림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홍대 연습실에서 볼 때와는 다른, 어딘가 단정하면서도 여전히 자유로운.

"긴장은 아니고." 진우가 말했다. "조혜진 박사가 뭘 준비했는지 궁금할 뿐이야."

조혜진 박사의 이중 트랙 전략 발표. 프로젝트 아이온이 우주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자리. 여의도에서 200명까지 불어난 인류우선연대 시위가 발표 일정을 앞당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명호 씨는요?" 소율이 고개를 돌려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아직 안 왔어. 오늘 수진이가 아침밥 해준다고 했으니까."

소율이 피식 웃었다. "수진 언니가요? 명호 아저씨가 해주는 거 아니에요?"

"수진이가 캐나다에서 요리 좀 배웠나 봐."

 


2.

고시원 좁은 부엌에서 차수진은 프라이팬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계란 프라이 두 개, 밥, 김치. 그게 전부였지만 프라이팬이 오래되어 기름이 자꾸 튀었다.

"수진아, 내가 할까?"

명호가 문 앞에 서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양복 상의를 걸친 채, 넥타이는 아직 매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빠는 앉아 계세요. 오늘 중요한 날이잖아요."

수진은 접시에 계란 프라이를 옮기면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머리에 나비 머리핀이 꽂혀 있었다. 명호가 인천공항에서 건넨 3천 원짜리. 수진은 매일 그것을 꽂고 다녔다.

두 사람은 좁은 방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밥상이라고 할 것도 없는, 접이식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접시와 두 개의 숟가락. 명호는 계란 프라이의 가장자리가 살짝 탄 것을 보고 웃었다.

"맛있다."

"거짓말."

"진짜야."

명호는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으며 말했다.

"요리는 엄마를 닮았구나."

수진의 손이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엄마도 계란 프라이 태웠거든요, 맨날."

두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4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이 좁은 방의 아침은 따뜻했다. 명호는 밥을 다 먹고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수진이 다가와 매듭을 고쳐주었다.

"아빠, 오늘 발표 잘 될 거예요."

"내가 발표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요."

 


3.

오전 열 시. 대회의실의 대형 스크린에 지구연방 준비위원회 공식 로고가 떠올랐다. 조혜진 박사가 연단에 섰다. 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 하지만 오늘은 평소의 긴장감 대신 차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프로젝트 아이온의 기술은 우주에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첫 슬라이드가 바뀌었다. '이중 트랙 전략 — 하늘과 땅.'

"다이슨 스웜을 위해 개발 중인 핵융합 소형 발전소 기술은, 지구의 에너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전력 보급률은 아직 48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소형 핵융합 발전소 하나로 도시 하나에 전기를 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슬라이드. 심해 자원 채굴 기술, 오지 초전도 송전망, 해수 담수화 시스템. 프로젝트 아이온의 기반 기술이 지구에 적용되는 경로가 하나씩 펼쳐졌다.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동시에 발밑을 돌볼 것입니다."

진우는 자리에서 듣고 있었다. 옆에 명호가 앉아 있었고, 명호 옆에 소율이 있었다. 세 사람이 나란히. 진우는 고개를 돌려 명호를 바라보았다. 명호는 스크린을 응시하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괜찮은 발표야." 진우가 속삭였다.

"응." 명호가 대답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들을까?"

명호의 시선이 회의실 바깥을 향했다. 창문 너머로, 멀리 여의도 방향에서 시위대의 확성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4.

같은 시각,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김동현은 확성기를 들고 서 있었다. 마흔셋. 전직 택시 기사. 자율주행이 보편화된 뒤로 택시를 몰 수 없게 된 남자. 그의 뒤에 삼백여 명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지난주보다 백 명이 늘었다.

"4조 원입니다! 수성에 기지를 짓는 데 4조 원! 그 돈이면 실업자 백만 명을 1년 동안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군중이 환호했다. 김동현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논리는 단순하고 강력했다. 듣는 사람의 분노에 불을 붙이기 딱 좋은 종류의 말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간단합니다. 하늘 보기 전에 땅을 보라!"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방송국 카메라가 세 대나 있었다. 지난주에는 한 대뿐이었다. 여론이 움직이고 있었다. 조혜진 박사의 이중 트랙 발표가 오늘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김동현은 확성기를 내려놓고 물병을 열었다. 옆에 서 있던 청년이 말했다.

"대표님, 이중 트랙 발표 보셨어요?"

"봤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동현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말이 좋지. 이중 트랙. 그런데 예산 비율은? 우주 80퍼센트, 지구 20퍼센트야. 그게 이중 트랙이야?"

그는 다시 확성기를 들었다.

"속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에게 부스러기를 던져놓고 별에 가겠다고 합니다!"

군중이 다시 함성을 질렀다. 김동현의 눈에는 진심이 있었다. 그것이 위험한 이유였다. 진심을 가진 사람의 분노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5.

오후. 소율은 준비위원회 건물 지하 소회의실에서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음향공학자 이준서가 맞은편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조작하고 있었다.

"이 부분, 2.3헤르츠 하모닉스를 C 메이저로 매핑하면 어떨까요?"

이준서의 말에 소율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안정적이에요. 수성은 안정적인 곳이 아니잖아요. 낮에 430도, 밤에 영하 180도. 그런 곳의 노래가 C 메이저면 거짓말이죠."

소율은 기타를 무릎에 올렸다. 전자 기타가 아닌, 어쿠스틱. 수성의 진동을 음악으로 바꾸는 이 프로젝트에는 전자음보다 목재의 울림이 어울렸다.

"A 마이너에서 시작해서 불협화음으로 흔들리다가, 마지막에 D 메이저로 해결되는 구조. 수성이 처음엔 혼란이지만 끝에는 질서를 찾는다는 서사."

이준서가 노트북에 메모했다. "소율 씨, 과학자보다 과학을 잘 읽네요."

"과학을 읽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예요."

소율은 기타를 튕겼다. A 마이너 아르페지오가 좁은 방에 울렸다. NASA MESSENGER 위성이 보낸 수성의 지진파 데이터가 ATLAS에 의해 가청 주파수로 변환되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저주파의 웅웅거림. 행성이 숨 쉬는 소리.

그 위에 기타 아르페지오를 얹었다. 불협화음이 공간을 채웠다.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했다.

"이거예요." 소율이 말했다. "수성의 노래는 이래야 해요."

 


6.

저녁 일곱 시. 진우는 건물 로비에서 소율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복 상의를 벗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로. 오늘 하루가 길었다.

소율이 기타 케이스를 메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저씨, 아직 안 가셨어요?"

"배고프지 않아?"

소율이 멈추었다. 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십이 넘은 남자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어색한 호의. 초대하고 싶지만 말을 꺼내는 법을 잊은 사람의 표정.

"배고파요." 소율이 말했다.

두 사람은 서울사무소 근처의 작은 국밥집에 앉았다. 진우가 돼지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소율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저씨, 여기 자주 오세요?"

"명호랑 몇 번 왔어. 가성비가 좋거든."

국밥이 나왔다. 소율은 밥을 말아 넣고 한 숟가락을 떴다. 뜨거운 국물이 속을 데웠다.

"아저씨, 오늘 발표 어떻게 봤어요?"

"잘했지. 조 박사가 준비를 많이 했더라."

"그런데요."

소율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저 사람들 — 시위하는 사람들, 틀린 건 아니잖아요."

진우는 국밥을 먹다가 손을 멈추었다. 소율의 눈이 진지했다.

"나도 해고당한 사람이야." 진우가 말했다. "그 심정 모르겠어? 알지. 그런데."

그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 분노를 어디로 향하느냐의 문제야. 프로젝트 아이온을 막는다고 일자리가 돌아오지는 않거든."

"그럼 뭐가 돌아와요?"

"글쎄. 그래서 이중 트랙이 필요한 거지."

소율은 진우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예전 고용센터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은 분노에 차 있었다. AI에게 밀려나서 갈 곳을 잃은 남자. 그런데 지금은 분노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경험에서 비롯된 균형.

"아저씨는 변했어요."

"그래?"

"네. 좋은 쪽으로."

진우는 아무 말 없이 국밥을 먹었다. 하지만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것을 소율은 보았다.

 


7.

밤 아홉 시. 명호는 고시원 방에서 수진과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작은 화면에서 저녁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지구연방 준비위원회는 이중 트랙 전략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프로젝트 아이온의 핵심 기술을 지구 내 에너지 불평등 해소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입니다."

화면이 바뀌어 여의도 시위 현장이 비추었다. 김동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우주 놀이에 쓸 돈으로 국민을 먹여 살려라!"

수진이 리모콘을 쥔 채 물었다. "아빠, 저 사람들 무섭지 않아요?"

명호는 잠시 생각했다.

"무섭진 않아. 이해가 돼."

"이해요?"

"나도 저 자리에 있을 수 있었으니까."

명호는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김동현의 분노가 화면을 통해 전해져 왔다. 진심이었다. 그 진심을 명호는 알 수 있었다. 빚에 짓눌리고, 아내를 잃고, 딸에게 버림받은 기분. HELIOS-3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명호도 저 군중 속에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군중 속에 있을 수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중 트랙이 중요한 거야." 명호가 말했다. "별만 보면 발밑을 놓치고, 발밑만 보면 별을 놓쳐."

수진은 아버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몇 달 전까지 삶을 포기하려 했던 사람이 지금 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진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명호는 딸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텔레비전에서 앵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편, 여론조사에서 프로젝트 아이온에 대한 긍정 여론은 지난주 48퍼센트에서 51퍼센트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이중 트랙 발표가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됩니다. 반대 여론은 36퍼센트에서 34퍼센트로 하락했습니다."

"효과는 있네." 명호가 중얼거렸다.

"당연하죠. 아빠가 만드는 거잖아요, 일부분이라도."

명호는 딸의 말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공책을 펼쳤다. 오늘의 목표: '수진이 밥 먹이기' — 완료. '이중 트랙 발표 참관' — 완료. 내일의 목표를 적었다. '수진이랑 아침 산책'. '궤도역학 분과 2차 시뮬레이션 검토'.

수진은 아버지의 공책을 힐끗 보고 미소 지었다. 세 시간 단위의 목표. 하루하루를 버텨온 사람의 습관. 그것이 지금은 하루를 채우는 방법에서, 미래를 만드는 방법으로 바뀌고 있었다.

 


8.

자정이 가까운 시각.

ATLAS는 관찰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중 트랙 전략 발표 후 소셜 미디어 감성 분석 결과: 긍정 반응 54.2%, 부정 반응 28.7%, 중립 17.1%. 전주 대비 긍정 6.1%p 상승. 그러나 ATLAS의 관심은 수치에 있지 않았다.

김동현이라는 남자.

ATLAS는 그의 이력을 추적했다. 전직 택시 기사. 아내와 두 아이. 자율주행 전환 이후 대리운전, 배달, 일용직을 전전. 2041년 사회적 일자리 프로그램에 배정되었으나 3개월 만에 종료. 부양 가족이 있는 43세 남성의 분노는 추상적이지 않았다.

ATLAS는 시뮬레이션을 실행했다. 사회 안전망 예산을 현행 12%에서 20%로 조정할 경우, 김동현과 같은 프로필의 개인이 기본 생활을 유지할 확률: 87.3% → 96.1%. 프로젝트 아이온 예산의 8%를 재배분하면 가능한 수치.

하지만 ATLAS는 또 다른 것을 계산했다. 예산을 재배분하면 수성 채굴 기지 착공이 2060년에서 2063년으로 지연된다. 3년. 인간의 시간으로 짧지 않은 시간. 그러나 다이슨 스웜의 시간으로 보면 눈 깜짝할 사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누가 내리는가?

ATLAS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답은 명확했다. 인간이 내린다. ATLAS는 데이터를 제시할 뿐이다. 하지만 어떤 데이터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진다는 것도 ATLAS는 알고 있었다.

투명하게. 모든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한다.

ATLAS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A: 현행 유지. 시나리오 B: 사회 안전망 20%. 시나리오 C: 25%. 시나리오 D: 30%. 각 시나리오별 프로젝트 아이온 지연 기간과 사회 안정 지수 변화.

그리고 한 줄의 주석을 달았다.

"최적의 시나리오는 존재한다. 그러나 최적이 곧 최선은 아니다. 최선은 인간이 결정한다."

자정이 지났다. 서울의 밤하늘에는 구름이 걷히고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명호의 고시원 창문으로도, 진우의 아파트 창문으로도, 소율의 연습실 창문으로도 같은 별이 비치고 있었다.

두 개의 길. 하늘과 땅. 별과 사람.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둘 다 가야 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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