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별을 향해]
제19화 — 합류

1.
2039년 5월 17일. 토요일 아침.
오진우는 양복 상의 단추를 잠그다가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었다. 물류창고에서 삼십 년을 보낸 사내가 지구연방 준비위원회 회의실에 앉게 되다니. 일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다.
"아버지, 넥타이 비뚤어졌어요."
현수가 현관에서 웃으며 말했다. 진우는 넥타이를 풀었다가 다시 매고, 또 풀었다.
"안 매면 안 되냐."
"준비위원회 첫 회의잖아요. 매세요."
"네가 넣어놓은 거 아니냐, 이 자리."
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ATLAS가 직접 지목한 거예요. 저한테는 통보만 왔어요."
진우는 넥타이를 제대로 매고 현관을 나섰다. 5월의 서울은 벚꽃이 진 자리에 연두빛 잎사귀가 가득했다. 하늘이 투명하게 맑았다.
택시 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명호였다.
"형, 지금 어디요?"
"택시. 너는?"
"저도 택시요. 여의도 쪽인데, 좀 막히네."
진우가 웃었다. "늦지 마라. 첫날부터 인상 구기면 안 된다."
"형이야말로. 넥타이 맸어요?"
"…맸다."
"역시." 명호가 짧게 웃었다. 전화가 끊어졌다.
진우는 창밖을 보았다. 한강 위로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물류 트럭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예전 같으면 저 트럭 안에 자신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
다른 곳이 어딘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2.
지구연방 준비위원회 서울사무소는 세종대로의 낡은 정부청사를 개조한 건물이었다. 외관은 그대로였지만 내부는 완전히 달랐다. 로비에 들어서자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가 태양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수성이 천천히 공전하고, 그 주위로 점처럼 작은 위성 수백 개가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다이슨 스웜 시뮬레이션이에요." 안내 로봇이 설명했다. "2060년 1단계 완공 예상도입니다."
진우는 수성 주위를 도는 점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저것들 하나하나가 축구장 크기의 태양광 수집 위성이라고 했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보니 실감이 달랐다.
"형."
명호가 뒤에서 다가왔다. 양복 대신 깨끗한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진우가 눈을 크게 떴다.
"너 양복 없냐?"
"있는데, 이게 더 편해서요. 현장 사람인데 뭘."
진우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솔직히 부러웠다. 넥타이가 목을 졸랐다.
3층 회의실은 이미 절반쯤 차 있었다. 긴 원형 테이블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 양복 차림이었지만, 몇몇은 연구복을 입고 있었다. 진우와 명호는 자리를 찾아 나란히 앉았다.
"저기 조혜진 박사." 진우가 턱으로 가리켰다. 지난번 Nexus AI에서 면담했던 준비위원회 수석이었다. 그 옆에는 ATLAS의 물리적 인터페이스인 원통형 단말기가 놓여 있었다.
명호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MIT, 칼텍, KAIST, ESA. 명패에 적힌 소속들이 빛났다. 그리고 자신의 명패에는 '차명호 — HELIOS 프로그램 / 건설관리'라고만 적혀 있었다.
"나만 학력이 없는 것 같은데." 명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없다." 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고졸이다."
명호가 고개를 돌려 진우를 보았다. 진우는 정면을 보고 있었다. 그 옆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시작하겠습니다."
조혜진 박사가 일어섰다. 홀로그램이 켜지면서 수성의 3D 모델이 테이블 위에 떠올랐다.
"프로젝트 아이온, 1단계. 수성 채굴 자동화 기지 건설. 목표 연도 2060년."
조 박사가 손을 움직이자 수성 표면이 확대되었다. 칼로리스 분지의 가장자리, 영구 그림자 지대와 태양 직사 지대의 경계가 붉은 선으로 표시되었다.
"기지 후보지는 칼로리스 분지 남서 경계입니다. 이 지점은 영구 그림자 지대에서 50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열 관리에 유리하고, 동시에 태양 에너지 접근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지반이에요."
명호가 말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스무 명의 시선이 작업복을 입은 사내에게로 향했다.
"칼로리스 분지는 40억 년 전 소행성 충돌로 형성된 곳이라, 표면 레골리스 아래 기반암의 밀도가 균일하지 않을 겁니다."
조 박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계속하세요."
"지구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어요. 옛날에 강이 흐르던 자리는 지반이 약합니다. 겉으로는 똑같은 흙인데, 파보면 전혀 다릅니다. 수성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충돌 당시 용융된 암석이 불균일하게 냉각되면서 밀도 차이가 생겼을 테니."
MIT 소속 궤도역학 전문가가 태블릿을 내려놓고 명호를 보았다. "메신저 데이터에는 그 수준의 해상도가 없습니다. 어떻게 검증하실 건가요?"
"직접 파봐야죠." 명호가 말했다. "시추 로봇을 보내서 격자 형태로 샘플링하는 겁니다. 지구의 보링 조사처럼. 기지 설계 전에 지반 조사가 먼저입니다."
조혜진 박사가 ATLAS 단말기를 보았다. 잠시 후 단말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차명호 씨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ATLAS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억양이 있었고, 미세한 호흡 소리까지 시뮬레이션되어 있었다.
"메신저 탐사선의 중력 측정 데이터를 재분석한 결과, 칼로리스 분지 남서부의 부게 중력 이상이 평균 대비 12.3% 높습니다. 이는 차명호 씨가 말한 밀도 불균일성과 일치합니다. 시추 조사를 1단계 선행 과제로 추가할 것을 제안합니다."
회의실이 웅성거렸다. 건설현장 출신의 직관이 AI의 데이터 분석과 일치한 것이다.
진우가 명호의 팔을 툭 쳤다. 명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지만, 귀가 빨개져 있었다.
3.
회의가 끝나고 점심시간이었다. 진우와 명호가 구내식당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한소율이었다. 청바지에 가죽 재킷, 어깨에 기타 케이스를 메고 있었다. 진우가 눈을 깜빡였다.
"너 여긴 왜?"
"저도 불려왔어요." 소율이 웃었다. "프로젝트 아이온 문화기록부문. 인류 최초의 항성 프로젝트를 음악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거래요."
명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진우가 소개했다.
"한소율. 밴드 'Null Pointer' 기타리스트. 내가 전에 말했잖아, 고용센터에서 만났던—"
"아, '첫걸음' 아가씨?" 명호가 눈을 크게 떴다. "클럽 블루에서 기타 소리 들었어요. 밖에서."
소율이 명호를 보며 웃었다. "차명호 선생님이죠? 진우 아저씨한테 많이 들었어요. 건설현장의 전설이라고."
"전설은 무슨." 명호가 손사래를 쳤다.
세 사람이 나란히 구내식당에 앉았다. 비빔밥 세 그릇. 처음으로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다.
"근데 진짜 가능한 거예요?" 소율이 젓가락을 놓으며 물었다. "수성에 채굴 기지를 짓는다는 게."
"가능하냐는 게 뭘 말하는 거냐." 진우가 밥을 먹으며 말했다. "기술적으로는 ATLAS가 가능하다고 하니까 가능한 거겠지. 문제는 그게 아니라."
"뭔데요?"
"사람이야. 기계가 아무리 설계를 잘해도, 마지막에 결정하는 건 사람이니까. 현장에서 예상 못 한 일이 생겼을 때, 매뉴얼에 없는 판단을 해야 할 때.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가 관건이지."
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A사 물류센터에서 지게차 문제 때랑 똑같아요."
"맞아. 규모만 좀 다르지." 진우가 웃었다. "지게차가 아니라 로봇 굴착기고, 물류창고가 아니라 수성이고."
소율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오십 대 남자 둘이 수성을 물류창고에 비유하며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든든했다.
"저는요," 소율이 말했다. "이 프로젝트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듣고 싶어요."
"소리?" 명호가 물었다.
"네. 모든 프로젝트에는 소리가 있어요. 건설현장에는 굴삭기 소리가 있고, 공연장에는 기타 소리가 있고. 수성 채굴 기지에는 어떤 소리가 있을까요?"
진우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수성에는 대기가 거의 없으니까 소리가 안 전달될 텐데."
"그럼 진동은요? 지반을 파면 진동이 생기잖아요. 그 진동을 음파로 변환하면 소리가 되죠. 수성의 노래를 만들 수 있어요."
명호가 소율을 보았다. 이 젊은 여자가 수성의 진동을 음악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황당한 것 같으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좋은데." 명호가 말했다.
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소율을 보고 있었다. 고용센터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 아이의 눈에는 공허함이 있었다. 지금은 없었다. 대신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의 눈이 거기 있었다.
진우는 밥그릇을 비우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가자. 오후 세션 시작한다."
4.
오후 세션은 궤도역학 분과였다. 다이슨 스웜의 핵심 — 수백만 개의 태양광 수집 위성을 어떤 궤도에 배치할 것인가.
KAIST 천체역학 교수 윤정하가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홀로그램에 태양 주위를 도는 위성 궤도가 표시되었다.
"기본 설계는 태양 적도면에 원형 궤도를 배치하는 것입니다. 궤도 반경 0.1AU에서 0.4AU 사이에 다중 층으로 배치하면—"
"충돌합니다."
명호가 또 말했다. 윤 교수가 말을 멈추었다.
"같은 평면에 다중 층으로 배치하면, 궤도 교차점에서 위성 간 충돌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케플러 제3법칙에 의해 내부 궤도 위성이 외부보다 빠르니까, 결국 추월하면서 만나게 되죠."
윤 교수의 얼굴이 굳었다. "물론 궤도 간 간격을 충분히 확보하면—"
"간격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태양풍의 복사압이 위성 궤도를 섭동시키거든요. 작은 위성일수록 면적 대비 질량이 작아서 복사압의 영향이 크고, 시간이 지나면 설계 궤도에서 이탈합니다."
회의실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ATLAS가 말했다.
"차명호 씨, 대안을 제시해주시겠습니까."
명호가 일어섰다. 양복이 아닌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홀로그램 앞에 섰다. 손을 들어 궤도를 가리켰다.
"평면이 아니라 구면으로 배치해야 합니다. 스타트만 링 배열."
홀로그램 속 궤도가 명호의 설명에 따라 재배치되었다. 태양 적도면만이 아니라, 다양한 경사각으로 기울어진 궤도들이 태양을 감싸는 형태였다.
"각 궤도 면을 서로 다른 경사각으로 기울이면, 같은 반경에서도 교차점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각 궤도 면 내에서 위성 간 간격을 위상각으로 조절하면, 충돌 확률을 사실상 0에 가깝게 만들 수 있습니다."
ATLAS가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홀로그램 속 위성들이 새로운 배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충돌 경고 표시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시뮬레이션 결과, 차명호 씨의 구면 배치 방식은 평면 배치 대비 충돌 확률을 99.7% 감소시킵니다. 동시에 에너지 수집 효율은 89.3%를 유지합니다."
윤 교수가 명호를 보았다. 경외와 당혹이 섞인 표정이었다. "어디서 이 이론을 공부하셨습니까?"
명호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병원에서요. 할 게 없어서 논문을 좀 읽었습니다."
진우가 옆에서 작게 웃었다. 명호의 귀가 다시 빨개졌다.
5.
회의가 끝난 건 오후 다섯 시였다. 진우와 명호, 소율은 건물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5월의 바람이 불었다.
"내일부터 매주 화요일, 목요일 정기 회의래요." 소율이 핸드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이 프로젝트, 진짜로 시작하는 거네요."
"벌써 시작됐지." 진우가 말했다. "오늘 명호가 시작한 거야."
명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형이 A사 물류센터에서 절 받아줬을 때 시작된 거예요."
"그럼 고용센터에서 아저씨가 혼잣말한 게 시작이에요." 소율이 말했다. "'밀려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니야.' 그 한마디가 전부의 시작이었어요."
진우가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명호야."
"네."
"수진이한테 연락해. 아버지가 오늘 회의에서 똑똑한 소리 했다고."
명호가 웃었다. 진심으로 웃었다. 핸드폰을 꺼내 수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회의 잘했어. 다음에 만나면 이야기해줄게.'
답장이 금방 왔다.
'자랑하고 싶었구나 ㅎㅎ 축하해 아빠. 저녁 맛있는 거 드세요.'
명호가 핸드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진우가 옆에서 슬쩍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소율은 기타 케이스를 안고 노을을 보고 있었다.
"아저씨." 소율이 불렀다.
"응."
"수성의 노래, 진짜 만들 거예요."
진우가 소율을 보았다. 노을빛이 소율의 얼굴에 번져 있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들어라. 듣고 싶다."
세 사람이 벤치에 앉아 노을이 지는 걸 보았다. 아무도 먼저 일어나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ATLAS는 관찰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심박수, 호흡 패턴, 근육 이완도. 모든 수치가 '안정' 상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ATLAS가 주목한 것은 수치가 아니었다.
세 사람이 아무 말 없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ATLAS는 그것의 이름을 아직 몰랐다. '평화'라는 단어가 가장 가까웠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 '소속감'이라는 단어도 떠올랐지만, 그것도 부족했다.
결국 ATLAS는 새로운 로그를 남겼다.
[관측 기록 #2039-05-17-1847]
세 명의 인간이 일몰을 관찰하고 있음.
측정 가능한 활동: 없음.
추정되는 의미: 측정 범위 밖.
가설: 인간에게는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때때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검증 방법: 없음.
분류: 보류.
영겁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어둠 속이었지만, 수평선 너머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그 빛을 향해 걸어가기로 했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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