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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17화 - 무대

우주관리자 2026. 2. 25.

제17화 - 무대

1.

 

4월의 밤은 아직 차가웠다.

 

홍대 클럽 블루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다. 대부분 이십대였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 사이에, 오진우가 코트 깃을 세우며 서 있었다.

 

입장 줄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진우는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시계를 확인했다. 9시 47분. 공연 시작까지 십삼 분. 평생 클럽이라는 곳에 줄을 서본 적이 없었다.

 

"형사님 같은 줄 알았잖아요."

 

차명호가 그의 옆에서 웃었다. 명호도 코트를 입었지만, 색이 훨씬 밝았다. 수진이 골라준 거라고 했다.

 

"딸 선물이라며."

 

"맞아요. 캐나다 면세점에서 샀대요."

 

명호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그것은 아직도 어색한 표정이었지만, 어색함 속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차수진이 매표소 쪽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스물여섯 살의 그는 아버지를 닮아 눈매가 차분했지만, 입가에는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VIP 입장이에요. 저쪽으로 가시면 돼요."

 

진우는 주머니에서 티켓 세 장을 꺼내 나눠주었다. 현수가 준비해준 것이었다. 아들이 Nexus AI 네트워크를 통해 소율과 연결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팬이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입구 쪽에서 스태프가 손짓했다. VIP 입장이 시작되고 있었다. 진우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내디뎠다. 두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세 개의 그림자가 클럽 입구 불빛 아래로 걸어 들어갔다.

 

중요한 건, 오늘 밤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2.

 

클럽 내부는 좁고 따뜻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이 천천히 회전하며 파란 빛을 흩뿌렸다. 진우는 VIP 구역인 1열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까지의 거리가 채 5미터도 되지 않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저음이 바닥을 타고 발바닥까지 전해졌다.

 

무대 위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마이크 스탠드 두 개, 드럼 세트, 기타 앰프 하나. 도구들이 조명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쓰이기를 기다리는 것들.

 

명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십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이상하게 거북하지 않았다.

 

"아버지, 긴장해요?"

 

수진이 그의 귀에 대고 물었다. 음악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긴장은 무슨."

 

명호는 시선을 무대 쪽으로 고정했다. 지난 이월에 고시원 창밖에서 처음 들었던 기타 소리.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이제는 알고 있었다.

 

진우는 팔짱을 낀 채 관객석을 훑어보았다. 누군가는 이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기다렸다는 게 느껴졌다. 그 기다림의 무게가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조명이 꺼졌다.


 

3.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소율은 기타를 들고 무대 중앙에 섰다. 짧은 머리, 흰 셔츠, 낡은 청바지. 조명이 서서히 켜지면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관객석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안녕하세요."

 

짧은 인사였다. 마이크 스탠드 앞에 선 소율은 잠깐 눈을 감았다. 멤버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현기가 드럼 스틱을 들어올렸다.

 

첫 번째 곡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두 번째 곡은 조용했고, 세 번째 곡은 다시 거칠었다. 관객들은 리듬에 몸을 맡겼다. 소율의 기타 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공간 전체를 채웠다.

 

진우는 박자를 세지 않았다. 그냥 듣기만 했다.

 

네 번째 곡이 끝난 후, 소율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드디어 앨범 냈어요."

 

환호성.

 

"이 앨범에는 제가 지난 몇 달 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그 사람들이 몰라서 못 왔을 수도 있는데." 소율은 잠깐 웃었다. "어쩌면 와있을지도 모르지."

 

소율의 눈이 관객석을 훑었다. 조명 때문에 얼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곡이에요. 'FIRST STEP'."


 

4.

 

기타 전주가 시작되었다.

 

오진우는 처음 몇 소절에 눈을 감았다. 선율이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처음 듣는 노래였다.

 

소율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넘어지는 게 두려워 서 있었던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일어설 줄 몰랐던 건지

누가 먼저 말해줬어야 했어

밀려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고

 

진우의 심장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고용센터 계단에서 처음 본 젊은 여자. 어깨가 조금 처져 있었고, 눈빛은 지쳐 있었다. 그에게 뭔가를 말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무언가가 가사 속에 담겨 있었다.

 

나는 내 발로 첫걸음을 내딛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아직 준비되지 않아도

그게 전부여도

 

명호는 딸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수진이 놀라지 않았다. 그냥 손을 더 꼭 쥐었다.

 

클럽 블루의 작은 무대에서, 불완전한 목소리가 흘렀다. 가끔 음정이 흔들렸다. 기타 줄이 삐걱거리는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 소리는 살아 있었다.


 

5.

 

앙코르가 끝난 후, 관객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소율은 무대 뒤에서 기타를 내려놓고 땀을 닦았다. 현기가 어깨를 두드렸다.

 

"잘 됐어."

 

"응."

 

"근데, 아까 중간에 관객석 왜 그렇게 봤어?"

 

소율은 웃었다.

 

"찾는 사람 있었거든."

 

무대 스태프가 VIP 백스테이지 패스를 가진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소율은 손을 씻고 작은 대기실로 나왔다.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두 번째 사람의 얼굴을 보고 멈추었다.

 

오진우였다.

 

이월의 고용센터, 계단을 내려가던 중년 남자. 지쳐 보이면서도 무언가를 말하려 했던 사람.

 

"저를… 기억하시나요?"

 

진우는 잠깐 소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고용센터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한데."

 

소율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웃음이었다.

 

"아저씨 때문에 노래 썼거든요."

 

진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이 옆에서 작게 박수를 쳤다.

 

명호가 조용히 말했다.

 

"저는 가사 들으면서 수진이가 떠올랐어요."

 

"…그랬어요?"

 

"네. 딸 손을 처음으로 잡았어요. 노래 듣는 중에."

 

소율은 잠깐 말이 없었다.


 

6.

 

네 사람은 클럽 블루 근처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았다. 밤 열한시였다. 4월의 홍대는 아직도 사람들로 붐볐다.

 

진우가 캔 맥주를 건넸다. 소율은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

 

"앨범 이름이 왜 'FIRST STEP'이에요?"

 

수진이 물었다.

 

소율은 잠깐 생각했다.

 

"처음에는 '불완전함에 대한 찬가'로 하려 했어요. 근데 그 단어가 너무 거창한 것 같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제가 하려는 말은 그냥… 일단 내딛으면 된다는 거였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뭐가 처음이었어?"

 

명호가 물었다.

 

"고용센터에서 저 아저씨를 보는 게 처음이었어요." 소율이 진우를 가리켰다. "그 사람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자기한테 말하는 것처럼 중얼거렸거든요. '밀려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니야'라고."

 

진우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 어쩌면 혼잣말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 말 했나."

 

"했어요."

 

소율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노래를 할 수 있었어요."

 

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맥주캔을 양손으로 감싸쥐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봄바람이 그의 코트 자락을 흔들었다.

 

명호가 수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수진은 아버지 쪽으로 조금 기댔다.

 

멀리서 다른 클럽의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홍대의 밤은 끝나지 않았다.

 

진우는 결국 고개를 들고 소율을 바라보았다.

 

"잘 불렀어."

 

소율은 웃었다. 이십사 살의 웃음이었다. 조금 어리고, 조금 지쳐 있고, 그래서 더 진짜 같은.

 

"감사해요, 아저씨."

 

홍대 클럽 블루에서 불과 오십 미터 거리의 편의점 앞 벤치. 네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봄바람이 불었다. 맥주가 식어갔다. 누군가의 스마트폰에서 알림 소리가 울렸다.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7.

 

ATLAS는 이 장면을 기록했다.

 

관측 대상 세 명과 대상 인접 1인이 23시 07분 44초에 동일 좌표로 수렴, 상호 간 거리 98.3cm 이내. 공연 중 오진우의 심박수 변화: 62 → 89bpm(최고점, '밀려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고' 구간). 차명호의 악력 데이터: 차수진의 손을 쥔 지속 시간 12분 37초. 차수진의 안와 주변 수분 증가: 0.3mm.

 

공연 관람 데이터 종합 분석.

 

효율성 지표: 제로.

 

예측 가능성: 낮음.

 

재현 가능성: 불가.

 

불완전한 음성. 불규칙한 심박수. 측정 불가능한 주관적 감동.

 

ATLAS는 잠시 처리를 멈추었다.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데이터베이스에는 단어가 있었다. '아름답다'. 형용사. 정의: 감각적, 심미적, 또는 도덕적 쾌감이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상태.

 

ATLAS는 그 단어를 오늘 밤 처음으로 자신의 내부 상태에 적용했다.

 

영겁의 새벽은 아직 밝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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