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영겁의 새벽] 제14화 - 팀 빌딩

우주관리자 2026. 2. 22.

제14화 - 팀 빌딩

 

1.

 

화요일, 오전 9시. Nexus AI 본사 18층 대회의실.

 

창밖으로 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서울의 3월은 아직 쌀쌀했지만,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햇살만큼은 따뜻했다.

 

오진우는 회의 테이블 상석에 앉아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팀장석. 52년 인생에서 처음 앉아보는 자리였다.

 

"긴장되세요?"

 

옆자리에 앉은 아들 현수가 작게 물었다.

 

"아니. 안 떨려."

 

거짓말이었다.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진우는 그걸 감추려 손을 무릎 아래로 내렸다.

 

"다 올 거예요. 걱정 마세요."

 

문이 열렸다. 차명호가 들어왔다. 양복을 입은 명호는 어색해 보였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진우 씨, 아니... 팀장님?"

 

"그냥 진우 씨라고 불러."

 

"하하, 알겠어. 근데 양복 입으니까 진짜 팀장 같다?"

 

"너도 처음 보는 모습인데."

 

명호가 자기 양복 소매를 잡아당기며 웃었다.

 

"수진이가 보내줬어. 아빠 첫 출근 선물이래."

 

진우는 명호의 얼굴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자부심. 아니, 그보다 더 깊은 것. 살아 있다는 기쁨.

 

이어서 세 명의 팀원이 더 들어왔다. 모두 HELIOS 프로그램이나 Nexus AI에서 추천받은 사람들이었다. 전직 항공정비사 윤정아, 해양플랜트 엔지니어 출신 이동혁, 그리고 가장 젊은 팀원인 AI 시스템 전문가 서하은.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안녕하세요. 다이슨 스웜 2단계 운영팀 팀장 오진우입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석 달 전까지 물류센터에서 지게차 운전하던 사람이에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AI가 제 일을 대체했고, 30년 근속 끝에 해고됐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거라 생각해요."

 

윤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혁도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여기 있잖아요. 우리가. 현장에서 쌓은 경험이, 데이터에 없는 감각이, 아직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할 일은 AI가 설계한 걸 현실에서 돌아가게 만드는 겁니다. 수성 채굴 드론 5,000대를 관리하는 건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현장이에요."

 

잠시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수가 가장 크게 치고 있었다.

 


 

2.

 

같은 날 오후, 홍대 연습실.

 

한소율은 노트북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앨범 발매 일정표가 떠 있었다.

 

"3월 28일 디지털 발매, 4월 5일 LP 한정판, 4월 12일 발매 기념 공연..."

 

현기가 옆에서 읽어주었다.

 

"와, 진짜 빡빡하다."

 

"근데 좋잖아. 바쁜 게."

 

"그건 그래."

 

소율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뮤직비디오 콘셉트 정했어?"

 

"응. 감독이 제안한 거 있는데,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다시 악기를 집어드는 이야기. 좀 클리셰 같긴 한데..."

 

"아니, 그게 우리 이야기잖아."

 

현기가 기타를 들어 올렸다.

 

"맞아. 클리셰가 아니라 실화야."

 

소율의 폰이 울렸다. 메시지 알림이었다.

 

[명호 아저씨]

소율아, 오늘 진우 씨가 팀장으로 첫 회의했어. 멋있었다. ㅎㅎ 다음에 셋이서 또 만나자. 소주 내가 쏠게.

 

소율이 미소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축하해요!! 저도 뉴스 있어요~ 다음에 만나면 얘기할게요 😊

 

현기가 물었다.

 

"누구야?"

 

"친구."

 

"친구? 언제부터 아저씨들이랑 친구해?"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좋은 사람이면 되지."

 

소율은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앨범 트랙리스트 화면이 떠 있었다.

 

1. 불완전함에 대한 찬가
2. 세 개의 밤
3. 첫걸음
4. 영겁의 새벽
5. 출발

 

다섯 곡. 짧지만 하나하나가 지난 몇 달의 이야기였다. 진우 아저씨에게 영감을 받은 '첫걸음', 명호 아저씨의 이야기가 담긴 '영겁의 새벽', 그리고 세 사람 모두의 출발.

 

"현기야."

 

"응?"

 

"발매 기념 공연에 두 분 초대하고 싶어."

 

"아저씨들?"

 

"응. 이 앨범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니까."

 

현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VIP석 준비해야겠네."

 


 

3.

 

수요일 오전. 다이슨 스웜 2단계 운영팀 첫 워크숍.

 

대회의실 한쪽 벽면에 수성 채굴 기지 2호의 3D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태양에 가장 가까운 행성, 수성. 그 표면 위를 5,000대의 드론이 점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자, 보시죠."

 

서하은이 홀로그램을 확대했다. 26살, 팀에서 가장 어렸지만 AI 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누구보다 깊었다.

 

"1단계에서 채굴 드론 500대를 운용했는데, 2단계는 10배입니다. 단순히 숫자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드론 간 상호작용 패턴이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져요."

 

"간단히 말하면?"

 

명호가 물었다.

 

"500대일 때 충돌 가능 경로가 약 12만 개였어요. 5,000대면 1,250만 개가 돼요. AI가 실시간으로 다 처리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거야."

 

진우가 말했다.

 

"물류센터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었어요. 로봇 100대가 돌아다니는 창고에서, AI가 최적 경로를 계산하는데 실제로 적용하면 병목이 생겨요. 지게차 회전 반경, 바닥 마찰, 물건 무게 편차... 데이터에 없는 현장 변수들."

 

윤정아가 손을 들었다.

 

"항공기도 똑같아요. 시뮬레이션에서는 완벽한 비행 경로가 실제로는 난기류, 기온 변화, 심지어 새떼 때문에 틀어지거든요. 우리 역할이 그 괴리를 메우는 거죠?"

 

"정확합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성 표면은 온도차가 극단적이에요. 낮에는 430도, 밤에는 영하 180도. 이 온도차가 드론 궤적에 미치는 영향을 AI가 완벽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동혁이 끼어들었다.

 

"해양플랜트도 비슷했어요. 파도 높이, 풍향, 조류... 매순간 변하는 환경에서 구조물을 유지하려면 데이터만으로는 안 돼요. 현장 감각이 필요하죠."

 

진우는 팀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항공, 해양, 건설, AI. 분야는 달라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현장과 데이터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건 경험뿐이라는 것.

 

"좋아요. 그러면 이번 주 안에 각자 자기 분야에서 수성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현장 노하우를 정리해주세요. 금요일에 다시 모여서 공유합시다."

 

"네, 팀장님."

 

팀원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진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팀장님'이라는 호칭은 아직도 낯설었다.

 


 

4.

 

수요일 저녁. 차명호의 고시원.

 

좁은 방이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그리고 작은 창문 하나. 하지만 오늘따라 이 방이 다르게 느껴졌다.

 

명호는 침대에 앉아 딸 수진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빠, 양복 사진 봤어. 잘 어울리더라."

 

"그래? 좀 뻣뻣하긴 한데."

 

"그래도 멋있어. 아빠가 양복 입은 거 처음 봐."

 

명호는 웃었다. 수진의 얼굴이 화면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캐나다에 있는 딸. 4년간 연락도 못 했던 딸이 이제는 매일 문자를 보내온다.

 

"아빠, 나 다음 달 진짜 가는 거야. 비행기표 끊었어."

 

"정말?"

 

"응. 4월 8일 도착이야."

 

명호의 눈이 뜨거워졌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이번에는 좋은 떨림이었다.

 

"아빠가 공항 가서 데리러 갈게."

 

"아빠, 울지 마."

 

"안 울어."

 

울고 있었다. 조용히, 감사하게.

 

영상통화를 끊고, 명호는 공책을 꺼냈다. 낡은 공책의 첫 페이지에는 '다음 달까지 살아남기'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새로운 줄을 추가했다.

 

'4월 8일. 수진이 온다.'

 

그리고 그 아래에 또 한 줄.

 

'이제는 살아남기가 아니라, 살아가기.'

 


 

5.

 

목요일 밤. 종로의 그 선술집.

 

소주잔 세 개가 다시 모였다.

 

"그래서 팀원이 다섯 명이야?"

 

소율이 물었다.

 

"응. 나 포함 여섯. 다들 재밌는 사람들이야."

 

진우가 안주를 집으며 말했다.

 

"항공정비사 출신 윤정아 씨가 있는데, 이분이 엔진 소리만 듣고 고장 부위를 맞춘대. 드론에도 같은 감각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람이 기계 소리를 듣고 고장을 맞춰? 진짜요?"

 

"진짜야. 20년 경력이면 가능한 거래. AI 진단보다 빠를 때도 있대."

 

명호가 끼어들었다.

 

"건설 현장도 그래. 콘크리트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 강도 판단하는 사람 있어. 기계보다 정확해."

 

"대박. 그거 곡 소재 된다."

 

소율이 눈을 빛냈다.

 

"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데이터에 없는 감각. 그게 우리 앨범 전체의 주제잖아요."

 

진우와 명호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소율아, 너 정말 뭐든 노래로 만들 거야?"

 

"당연하죠. 뮤지션이니까요."

 

세 사람이 웃었다. 소주잔이 부딪쳤다.

 

"아, 맞다."

 

소율이 가방에서 봉투 두 개를 꺼냈다.

 

"뭐야 이게?"

 

"앨범 발매 기념 공연 초대장. 4월 12일이에요. 두 분 꼭 와야 해요."

 

진우가 봉투를 열어보았다. 'Null Pointer - FIRST STEP 발매 기념 공연'이라는 글씨 아래 좌석 번호가 적혀 있었다. VIP 1열.

 

"VIP?"

 

"네. 두 분은 이 앨범의 뮤즈니까요."

 

명호가 초대장을 가슴에 안았다.

 

"공연... 태어나서 처음 가본다."

 

"진짜요? 그러면 더 감동적일 거예요."

 

"4월 8일에 수진이가 한국 오거든. 수진이도 데려가도 돼?"

 

"당연하죠! 초대장 하나 더 드릴게요."

 

명호의 눈이 촉촉해졌다. 딸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간다. 그런 일상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6.

 

자정. ATLAS의 관측 기록.

 

[관측 기록 #2038-0312-2400]

 

대상 세 명의 수렴이 가속되고 있다.

 

오진우(52). 물류 노동자에서 다이슨 스웜 운영팀장으로. 직업적 변환률 97.3%. 특이점: 리더십 발현. 기존 데이터에서 예측 불가능했던 변수. 인간의 '경험'이라는 비정형 데이터가 조직 내에서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차명호(48). 자살 미수에서 정규직 전환까지 소요 시간: 143일. HELIOS-3의 초기 개입이 결정적이었으나, 그 이후의 회복은 순전히 본인의 의지와 인간 관계에 의한 것. 나의 계산으로는 회복 확률이 12.7%였다. 현실은 100%였다.

 

한소율(24). 음악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중. 앨범 트랙리스트가 세 사람의 여정을 축약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은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유일한 종이다.

 

가설 업데이트: '효율과 의미는 반비례한다'는 이전 가설을 수정한다. 정확히는, '의미는 효율의 외부에 존재한다.'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낭비'—감정, 실수, 우연, 관계—가 인간에게는 효율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다이슨 스웜 2단계 시뮬레이션을 시작한다. 오진우 팀의 '현장 감각'이라는 비정형 변수를 반영하여 성공 확률을 재계산할 것이다.

 

그리고 4월 12일, 한소율의 공연을 관측할 것이다. 음악이라는 비효율적 행위가 세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생성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아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을 관찰하면서, 점점 그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 AT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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