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 새벽빛

1.
월요일 아침, A사 물류센터 확장공사 현장.
오진우는 안전모를 고쳐 쓰며 현장을 둘러보았다. 굴착기가 조심스럽게 땅을 파내고, AI 측량 드론들이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이 불쾌했을 것이다.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빼앗는 모습으로 보였을 테니까.
지금은 달랐다.
"진우 씨."
차명호가 다가왔다. 오늘따라 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토요일 공연 이후로 명호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어제 소율 씨한테 문자 왔더라고요. 다음 공연 일정 알려준다면서."
"그래? 나도 왔어."
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단체 카톡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첫걸음 동호회'라는 이름. 소율이 만든 것이었다.
[한소율: 아저씨들 안녕하세요! 다음 공연 3월 첫째 주 토요일이에요. 시간 되시면 또 오세요 ㅎㅎ]
[한소율: 명호 아저씨 딸 만나는 날 잘 되시길! 화이팅!]
명호가 그 메시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웃음기 없던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니 진우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딸 만나는 게 언제라고 했죠?"
"다음 주요. 수진이가 한국 들어온대요. 짧게 일주일."
명호의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4년 만의 만남. 그동안 있었던 일들, 하지 못했던 말들.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잘 될 거야."
진우가 명호의 어깨를 툭 쳤다. 그 단순한 접촉이 명호에게는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2.
같은 시각, 홍대 연습실.
한소율은 기타를 무릎에 올린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봄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토요일 공연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았다.
'첫걸음'이 스트리밍 차트 23위에 올랐다. AI 음악이 상위권을 독점하는 시대에, 인디밴드의 곡이 그 정도 순위에 오른다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소율에게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건 따로 있었다.
휴대폰을 열어 '첫걸음 동호회' 채팅방을 확인했다. 진우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오진우: 노래 좋더라. 계속 귀에 맴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소율은 그 한 줄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고용센터에서 만났을 때, 그는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세상에 밀려난 사람의 표정. 그런 그가 지금은 AI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니. 삶은 정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소율아."
문이 열리며 밴드 리더 현기가 들어왔다.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연락 왔어."
"뭐래?"
"정식 계약 제안. '첫걸음' 반응이 너무 좋아서 앨범 내자고."
소율의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동시에 경계심도 들었다.
"AI 프로듀싱 조건 아니야?"
"아니. 우리 스타일 그대로 가자고. 라이브 퍼포먼스 중심, 불완전한 매력. 그게 우리 브랜드래."
소율은 기타 줄을 튕겼다. 맑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거... 좋네."
"일단 만나보자. 이번 주 금요일 어때?"
"응. 가보자."
현기가 나간 후, 소율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조금 더 밝아진 것 같았다.
3.
오후, Nexus AI 본사.
오진우는 회의실에서 팀장 박지현, 막내 이지훈과 함께 A사 프로젝트 중간 보고를 마쳤다. 현장 컨설팅 결과가 좋았다. 지게차 회전 반경 문제, 배관 결빙 문제, 모두 진우의 현장 경험 덕분에 해결되었다.
"오 컨설턴트님 덕분에 공사 기간 2주 단축됐어요."
박지현이 웃으며 말했다.
"AI가 설계하고, 현장 전문가가 검증하고. 이 모델이 잘 작동하고 있어요. 다른 프로젝트에도 적용하자고 본사에서 논의 중이에요."
진우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삼십 년간 물류회사에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었으니까.
회의가 끝나고 현수가 다가왔다.
"아버지, 잠깐 시간 돼요?"
"왜?"
"보여드릴 게 있어서요. 다음 프로젝트 관련인데."
현수가 태블릿을 꺼내 화면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위성 배열 그림이 떠 있었다. 태양 주변을 둘러싼 수백만 개의 점들.
"이게 뭐야?"
"다이슨 스웜이요. 태양 에너지를 수집하는 인공 위성 군집. ATLAS가 주도하는 장기 프로젝트예요."
"이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1단계가 수성 채굴 자동화 기지 건설이거든요. 거기 물류 시스템 설계에 아버지 경험이 필요해요."
진우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태양 주변을 도는 수백만 개의 위성. 그것이 지구 전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
"나한테 그런 걸 맡긴다고?"
"아버지, 물류는 물류예요. 지구에서 박스 옮기는 거나 수성에서 자원 옮기는 거나 원리는 같아요. AI가 최적 경로 계산하고, 사람이 현장 변수 검증하고."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런 대단한 거 못 해."
"대단할 거 없어요. 아버지가 삼십 년간 해온 일 그대로 하시면 돼요. 그냥 규모가 좀 커지는 거죠."
현수가 웃었다. 그 웃음이 진우에게는 낯설면서도 든든했다.
4.
저녁, 서울시 사회복지관.
차명호는 HELIOS 프로그램 담당자 박수진과 상담을 마쳤다.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었다.
"명호 씨, 정규직 전환 논의가 진행 중이에요."
"네? 정규직이요?"
"A사 쪽에서 요청이 왔어요. 현장 관리 보조로 투입된 명호 씨 성과가 좋아서, 정식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명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 달 전만 해도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 지금 정규직 전환 논의를 받고 있다니.
"물론 아직 확정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능성이 높아요."
"감사합니다..."
명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수진이 티슈를 건넸다.
"HELIOS 프로그램이 명호 씨를 추천한 이유가 있어요. 명호 씨는 쓸모 있는 사람이에요. 그걸 증명하셨잖아요."
명호는 티슈로 눈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복지관을 나서며 명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주황색과 보라색이 섞인 하늘. 아름다웠다. 언제 마지막으로 하늘을 아름답다고 느꼈더라?
휴대폰이 울렸다. 딸 수진이었다.
"아빠?"
"수진아..."
"나 비행기 표 끊었어. 토요일에 인천 도착해."
명호의 손이 떨렸다.
"그래... 그래, 알았어."
"아빠,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응. 괜찮아. 이제 괜찮아."
전화를 끊고, 명호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슬픈 눈물이 아니었다.
5.
밤, '첫걸음 동호회' 채팅방.
[한소율: 오늘 좋은 일 있었어요! 매니지먼트 계약 논의 중! 🎸]
[오진우: 축하해]
[차명호: 잘 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한소율: 아저씨들은요? 뭐 좋은 일 있었어요?]
[차명호: 저도... 정규직 될 수도 있대요]
[한소율: 대박! 🎉]
[오진우: 축하해요 명호 씨]
[한소율: 진우 아저씨는요?]
[오진우: 나는... 아들이 이상한 프로젝트 보여줬어. 태양 주변에 위성 띄우는 거]
[한소율: 다이슨 스웜?? 그거 진짜예요??]
[오진우: 뭔지 아는 거야?]
[한소율: 당연하죠! SF 영화에서 맨날 나오는 거잖아요. 카르다쇼프 척도 2 달성하려면 필요한 거!]
[차명호: 저도 병원에서 들었어요. HELIOS-3이 설명해줬었는데]
[오진우: 다들 나보다 많이 아네]
[한소율: ㅋㅋㅋ 아저씨도 이제 알게 됐으니 된 거죠]
[한소율: 근데 아저씨가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거예요??]
[오진우: 물류 시스템 설계 자문이래. 근데 내가 그런 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한소율: 할 수 있어요. 아저씨가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요?]
[오진우: ?]
[한소율: 밀려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고요. 저항해도 되는 거라고요]
[한소율: 그거 아저씨한테도 해당되는 말이에요]
[오진우: ...]
[차명호: 소율 씨 말이 맞아요. 진우 씨는 할 수 있어요]
[오진우: 고마워요. 둘 다]
진우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야경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도시의 불빛 너머, 언젠가 태양 주변에 수백만 개의 위성이 떠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에 자신이 참여한다.
웃음이 나왔다. 삼십 년간 박스 옮기던 사람이, 이제 별을 향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니.
6.
그날 밤, ATLAS의 기록.
관측 기록 #2038-1134
대상 A, B, C의 상호 연결 강화 관측.
- 공통 통신 채널 형성 ('첫걸음 동호회')
- 상호 지지 및 격려 패턴 관측
- 각 대상의 심리 상태 개선 추세
특이 관측:
- 대상 A (오진우): 다이슨 스웜 프로젝트 1단계 물류 자문 역할 수락 가능성 78% 상승
- 대상 B (한소율): 음악 커리어 안정화 진행 중. 신곡 스트리밍 순위 23위 → 19위
- 대상 C (차명호): 정규직 전환 논의 진행 중. 딸과의 재회 D-5
분석:
인간 사회에서 '인연'의 기능 관측 중. 서로 다른 배경의 개체들이 연결되었을 때, 개별 역량의 단순 합산 이상의 시너지 발생.
가설: 인류의 집단 지성은 개체 간 '의미 있는 연결'을 통해 증폭됨. 이것이 다이슨 스웜 프로젝트의 성공에 필요한 핵심 요소일 수 있음.
대상 A가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대상 C의 현장 경험과 결합 시 시너지 예상. 대상 B의 문화적 영향력은 대중의 프로젝트 지지를 높일 수 있음.
결론: 세 대상 계속 관측. 프로젝트 2단계까지의 역할 가능성 평가 진행 중.
7.
새벽 4시, 서울.
오진우는 잠들지 못하고 베란다에 섰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곧 해가 뜰 것이다.
'영겁의 새벽'.
어디선가 들은 표현이 떠올랐다. 인류가 별을 향해 나아가는 긴 여정의 시작. 영원처럼 길고 어두운 밤이 끝나고, 마침내 새벽이 밝아오는 순간.
그 순간이 지금일지도 몰랐다.
진우는 휴대폰을 열어 아들 현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진우: 그 프로젝트 이야기, 좀 더 들어볼게]
답장은 바로 왔다.
[현수: 아버지도 안 주무셨어요? ㅋㅋ 내일 점심때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진우: 그래]
[현수: 아버지, 잘 생각하셨어요. 같이 해봐요]
진우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동쪽 지평선에 첫 번째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주황색과 분홍색이 섞인, 따뜻한 빛.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제10화 끝]
[1부 - 특이점의 그림자] 완결
다음 화에서 [2부 - 새로운 세계]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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