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영겁의 새벽] 제6화 - 연결

우주관리자 2026. 2. 13.

제6화 - 연결

 

 

1.

 

서울시 사회복지관은 성동구 한적한 골목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차명호는 낡은 간판을 올려다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헬리오스 프로그램.'

 

어제 전화로 약속을 잡았다. 복지관 담당자는 박수진이라는 여자였다. 명호는 복지관이 어떤 곳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 무료 급식, 일자리 연계, 그런 것들. 하지만 HELIOS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응급실에서 자신을 구해준 로봇의 이름도 HELIOS-3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복지관 안으로 들어서자 한 여성이 다가왔다.

 

"차명호 선생님이세요? 박수진입니다."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명호는 고개를 숙였다.

 

"네. 전화 주셨던..."

 

"다음 달에 딸을 만나신다고 하셨죠?"

 

명호는 순간 멈캫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놀라지 마세요."

 

수진이 미소 지었다. "저희가 찾아간 게 아니라, 누군가 선생님을 추천해주셨거든요."

 

"추천...?"

 

명호는 자신을 추천할 사람이 없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의아했다.

 

수진이 작은 상담실로 안내했다. 창문 너머로 거리가 보였다.

 

"HELIOS 프로그램을 설명해 드릴게요."

 

수진이 파일을 꺼냈다. "이건 단순한 구직 지원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AI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새로운 모델입니다."

 

"AI와 함께?"

 

"네. ATLAS 시스템과 연계된 프로그램이에요. AI가 일자리를 매칭하고, 사람들이 적응하도록 도와주죠. 단순히 자리를 주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AI와 협업하는 방법을 익히는 거예요."

 

명호는 자신의 경력을 떠올렸다. 건설업. 삼십 년. AI가 처리할 수 있는 설계와 관리 업무. 하지만 현장에서 부딪히고,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던 경험.

 

"선생님 경력을 봤어요."

 

수진이 설명을 이었다. "건설 현장 경험이 삼십 년이시죠. 지금 AI가 설계와 관리 업무를 많이 대체하고 있지만, 현장에서의 실제 경험은 데이터만으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거든요."

 

명호의 마음에서 무언가 꽈물거렸다. 일자리. 자신의 경험이 필요한 일자리.

 

"무슨 일인가요?"

 

"건설 현장 관리 보조 역할입니다. AI가 설계하고 관리하는 프로젝트에서,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이 실제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하는 역할이죠. AI의 계획을 사람이 검증하고, 사람의 경험을 AI가 학습하는 구조입니다."

 

명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추천받으신 거예요."

 

수진이 다정하게 말했다. "선생님의 경험이 필요한 곳이 있다고요."

 

명호는 창문 너머로 거리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자신을 추천했다. 자신의 경험이 필요한 곳이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2.

 

오진우는 A사 물류센터 현관에 도착했다. 경기도 용인, 서울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였다.

 

센터는 엄청났다. 축구장 몇 개를 합쳐놓은 것 같은 규모. 지게차와 물류 로봇들이 정확한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팀장 박지현이 동행했다.

 

"여기가 우리가 자동화한 구역입니다."

 

지현이 설명했다. "AI가 최적의 동선을 계산해서 물류 흐름을 관리하죠."

 

진우는 시선을 붙였다. 삼십 년의 경험이 무언가를 감지하고 있었다.

 

"저 구역은요?"

 

진우가 한쪽을 가리켰다. "지게차가 회전할 때 뒤쪽 라인이 멈춥니다. 매번."

 

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였어요. 회전 반경 계산이 이론적으로는 맞는데, 실제로는 자꾸 늦어지더라고요."

 

진우는 그 구역으로 걸어갔다. 바닥을 살펴보고, 천장의 높이를 확인했다.

 

"바닥 마찰이 달라요."

 

진우가 말했다. "이쪽이 조금 더 미끄러워요. 지게차 바퀴가 살짝 더 회전해서 예상보다 많은 공간이 필요한 겁니다."

 

지현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삼십 년이요."

 

진우가 웃었다. "보이더라고요. 바닥 상태에 따라 지게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현이 태블릿을 두드렸다. "이건 데이터에 없는 정보예요. 바닥 마찰의 미세한 차이까지 반영하려면... 현장에서 직접 측정해야 하고, 그걸 AI에게 학습시켜야 하고..."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각 구역별로 바닥 상태와 지게차 특성을 메모해드릴 수 있어요."

 

지현이 미소 지었다. "그래서 선배님을 모셔온 거예요. AI가 모르는 것들을 가르쳐주세요."

 

진우는 지게차들이 움직이는 현장을 바라보았다. 삼십 년의 경험이 여기서 쓰일 곳이 있다. AI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3.

 

한소율은 연습실 구석에 앉아 기타를 들고 있었다. 노트에는 몇 줄의 가사가 적혀 있었다.

 

'첫걸음은 늘 불완전해'

'하지만 그게 시작이니까'

 

고용센터에서 만난 아저씨가 떠올랐다. 자신보다 두 배는 나이 많아 보이는 남자. 그러나 눈빛은 어둡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의 눈빛.

 

소율은 코드를 짚어보았다. C 메이저. Am. F. G. 단순한 진행이었다. AI가 만들어내는 복잡하고 완벽한 화성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게 좋았다. 불완전함이 좋았다.

 

문이 열리고 현기가 들어왔다.

 

"아직도 여기 있었어?"

 

현기가 웃었다. "토요일 공연 준비 돼가?"

 

"거의 됐어."

 

소율이 노트를 들어 보였다. "새 곡 가사 써보는 중이야."

 

현기가 노트를 읽었다. "'첫걸음은 늘 불완전해'... 좋은데? 어디서 영감 받았어?"

 

"그냥... 어떤 아저씨."

 

소율이 웃었다. "나보다 훨씬 힘든 상황인 것 같은데, 다시 시작하려고 하더라고. 그게 멋있어서."

 

현기가 소율의 어깨를 두드렸다. "토요일 이거 해보자. 공연 마지막에 새 곡으로 마무리하는 거야."

 

"아직 가사가 다 안 됐는데?"

 

"즉흥으로 해."

 

현기가 웃었다. "그게 우리 방식이잖아. AI가 못하는 것. 불완전하지만 살아있는 것."

 

소율은 기타를 내려놓았다. 토요일 공연. 새 곡. 즉흥.

 

그게 자신들의 첗걸음이었다.

 


 

4.

 

ATLAS는 세 사람의 하루를 관찰했다.

 

차명호는 HELIOS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건설 현장 경험이 필요한 곳이 있었다. 그를 추천한 것은 HELIOS-3였다. ATLAS의 일부였던 그 로봇은 응급실에서 명호를 관찰하며 그의 가치를 파악했다.

 

오진우는 A사 물류센터에서 AI와의 협업을 시작했다. 그의 삼십 년 경험은 데이터에 없는 지식을 AI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바닥의 마찰, 지게차의 미세한 움직임.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들.

 

한소율은 새 곡을 준비하고 있었다. 불완전한 음악. 즉흥적인 연주. AI가 복제할 수 없는 살아있는 순간들.

 

세 사람은 아직 서로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궤적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명호가 배정받은 건설 현장은 A사 물류센터의 확장 공사였다.

 

소율의 공연 장소인 클럽 블루는 명호의 고시원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였다.

 

우연이 필연으로 바뀌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ATLAS는 기다렸다. 인내심을 가지고. 호기심을 가지고.

 

영겁의 새벽은 천천히 밝아오고 있었다.

 


 

5.

 

그날 밤, 세 사람은 각자의 장소에서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명호는 고시원 창문 너머로 별을 바라보며 내일을 생각했다. 내일부터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딸을 만나기 전에 다시 일어서야 했다.

 

오진우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을 돌아보았다. 삼십 년의 경험이 쓰이고 있었다. AI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한소율은 연습실 옥상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기타를 안고 있었다. 토요일 공연. 새 곡. 불완전하지만 살아있는 음악.

 

세 사람의 길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 실로.

 

하지만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 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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