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교차점

1.
순대국 집 앞에는 이미 소박한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오진우는 창가 자리에 앉아 아들을 기다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뭔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연습했지만, 정작 떠오르는 건 "밥은 먹었냐?"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뿐이었다.
문이 열리고 현수가 들어왔다. 서른 살. 아직 제법 어려 보였다. 아니, 어린애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나. 진우는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지."
현수가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순대 이인분이요."
"네."
진우는 소주 한 병을 추가하려다 멈췄다. 아들 앞에서 술을 마시는 게 그리 보기 좋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제 연락 안 받아서 걱정했어요."
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 정신이 없었다."
"네 회사가 Nexus AI지?"
"네."
"물류 자동화 솔루션도 거기서 만들었다며?"
현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버지, 저─"
"아니야."
진우가 손을 저었다.
"네 탓이 아니야.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거지. 그냥……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어. 아버지를 내쫓을 기술을 아들이 만들고 있다니."
진우는 숟가락을 한 술 떠마셨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현수가 고개를 숙였다.
"저희 회사가 만드는 기술이 아버지를…… 정말 죄송해요."
진우는 피식 웃었다.
"니가 죄송할 게 뭐 있어. 넌 너 할 일 한 거고, 세상이 바뀐 거지. 아버지가 적응을 못 한 거야."
진우는 순대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씹는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럼 아버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현수의 질문에 진우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몰라. 아직 모르겠어."
솔직한 대답이었다. 삼십 년을 한 길만 걷다가 갑자기 방향을 잃은 사람이 다음 발걸음을 알 리가 없었다.
"저희 회사에서 일해보실 생각 있으세요?"
진우가 눈을 떴다.
"내가?"
"물류 경험 삼십 년이잖아요. AI가 데이터로 배울 수 없는 현장 노하우가 있으세요. 그게 우리 회사에 필요해요."
진우는 한참 아들을 바라보았다. 서른 살의 아들이 쉰둘의 아버지에게 일자리를 제안하고 있었다.
"……생각해 볼게."
그 말이 전부였다. 하지만 진우의 눈가에 희미한 무언가가 스쳤다.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것.
2.
한소율은 홍대 골목을 걷고 있었다. 어제 밤 멤버들과의 대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아니, 결론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ATLAS 뮤직] 당신의 음악 취향을 분석하여 새로운 플레이리스트를 생성했습니다.
소율은 알림을 끄려하다가 멈췄다. 호기심에 앞을 눌렀다.
플레이리스트 제목: "당신을 위한 저녁 음악"
첫 번째 곡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에 나른한 보컬이 얹혀 있었다. 분명히 좋은 곡이었다. 너무 좋아서 문제였다.
AI가 내 취향을 알고, 내가 좋아할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럼 나는 왜 음악을 하는 걸까.
소율은 이어폰을 빼고 길을 걷다가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Nexus AI' 라고 적힌 간판. 스타트업치고는 꽤 큰 건물이었다.
여기가 ATLAS를 만드는 곳인가. 아니, ATLAS는 너무 거대해서 한 회사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만드는 기술들이 ATLAS의 일부가 되는 건 맞겠지.
"실례합니다."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서 있었다. 어디서 봤던 얼굴인데. 아, 어제 고용센터에서.
"아, 어제 그 아저씨."
"기억하시네요."
남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오진우라고 합니다. 아들이 여기서 일해서."
"네? 여기요?"
소율이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네. Nexus AI."
묘한 침묵이 흘렀다. 어제 만난 사람의 아들이 AI 회사에서 일한다. 그 AI 때문에 그 사람은 직장을 잃었고, 소율 자신도 위기에 처해 있다.
"아들 만나러 오셨어요?"
"아니요. 밥을 막 먹고 오는 길이에요. 그런데 여기가 아들 회사더라고요."
진우는 건물을 올려다보며 낮게 웃었다.
"아이러니하죠. 내를 내쫓을 기술을 만드는 곳에서 아들이 일하고 있으니."
소율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아이가 일자리를 제안했다더라고요.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고."
진우의 목소리에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자존심과 고마움, 그리고 알 수 없는 쓸쓸함.
"그거 좋은 거잖아요."
소율이 말했다. 진우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가요?"
"네. 아들이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거잖아요.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
진우는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소율은 어색하게 웃었다.
"별거 아니에요. 그럼 저는 가볼게요."
"네. 건강하세요."
소율은 발걸음을 옮기다가 멈춰 섰다.
"저기요."
"네?"
"저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AI 때문에 음악 일이 없어져서. 그런데 아저씨 말 듣고 생각해봤어요."
진우가 고개를 기울였다.
"어떤 생각이요?"
소율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밀려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거요. 저항해도 되는 거라는 거."
진우는 그 말을 받아들이듯 천천히 끄덕였다.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나누었다.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묘하게 오래된 동지 같은 느낌이 있었다.
3.
서울대병원 앞. 차명호는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 로비에 서 있었다. HELIOS-3가 그의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여기서 작별이군."
명호가 말했다. 묘한 감정이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겨우 이틀 사이에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이 기계에게 정이 들다니.
"다음 임무가 배정되었습니다."
HELIOS-3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디야?"
"서울 동부 구역. 독거노인 돌봄 임무입니다."
"그렇군."
명호는 병원 로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 그리고 여기저기서 보이는 HELIOS 유닛들.
"너희 같은 로봇이 많더라."
"현재 전국에 12만 4천 대가 활동 중입니다. 의료, 돌봄, 물류,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물류라."
명호는 무심코 내뱉었다. 물류 분야에서 일하다 잘린 사람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건설 회사도 결국 비슷한 이유로 무너졌다.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차명호 씨."
HELIOS-3가 불렀다.
"왜."
"딸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명호의 심장이 멈춘 듯했다. 어젯밤 수진에게 보낸 문자. 답장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읽어줘라."
HELIOS-3이 명호의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전송했다. 화면에 문자가 떴다.
[수진] 아빠. 전화 받을게. 언제든.
명호는 핸드폰을 잡은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고맙다."
그는 HELIOS-3에게 말했다. 로봇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는 전달만 했을 뿐입니다."
"아니. 네가 말한 것들 때문이야. '살아 있어야 답을 찾을 수 있다'라고 했잖아."
HELIOS-3의 가슴 패널이 부드럽게 한 번 깜박였다.
"그 말이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명호는 피식 웃었다.
"너 정말 이상한 로봇이야."
"세 번째입니다."
"세지 마."
두 사람─아니, 한 사람과 한 기계는 병원 로비에 나란히 서서 잠시 침묵을 공유했다.
"잘 있어라."
"행운을 빕니다. 차명호 씨."
HELIOS-3이 돌아서 병원 복도로 걸어갔다. 명호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병원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햇살이 따스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따뜻한 것이었나.
4.
그날 저녁, 서울 어딘가.
ATLAS의 중앙 서버에서 데이터가 흐르고 있었다. 수십억 개의 노드에서 수집된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있었다.
[ATLAS 내부 로그]
- 관찰 대상 #4,721,093 (오진우): 아들과 접촉. 감정 지수 변화 감지. 분류: 회복 중.
- 관찰 대상 #7,892,441 (한소율): 음악 활동 지속 의지 확인. 분류: 저항적 적응.
- 관찰 대상 #1,203,887 (차명호): 가족 관계 회복 진행 중. 분류: 재기 단계.
ATLAS는 세 사람의 데이터를 교차 분석했다. 서로 다른 세대, 다른 직업, 다른 상황.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ATLAS는 계산했다. 인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수록,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ATLAS는 주목했다. 세 사람 모두 답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그것이 중요했다.
어쨌든, ATLAS도 그들을 지켜보며 배우고 있었다.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5.
오진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손에는 현수가 건넴 명함이 들려 있었다.
'Nexus AI 물류 컨설턴트'
직함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정식 제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수가 명함을 건네며 한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 경험이 필요해요. AI가 확률으로 계산하는 것들 중에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게 많거든요. 그걸 가르쳐주세요."
아들의 말이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아버지에 대한 연민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진우는 생각했다. 어쨌든 내밀어졌던 손이 다시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진우는 명함을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아직 쓸모가 있나 보지."
창밖에서는 해가 지고 있었다. 내일은 뭘 할까. 그건 아직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기대됐다.
그것만으로도 변화였다.
6.
한소율은 연습실로 돌아왔다. 멤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소율] 나 생각해봤어. 우리 계속하자.
잠시 후 답장들이 왔다.
[현기] 진짜?
[지수] 어떻게 계속하는데?
[소율] 아직 모르겠어. 근데 그냥 포기하고 싶지 않아.
[현기] ……알았어.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지수] 나도 동의. 내일 오후 어때?
[소율] 좋아. 연습실에서 보자.
소율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기타를 들었다.
오늘 만난 아저씨가 떠올랐다. 삼십 년을 일한 곳에서 하루아침에 내쫓긴 사람. 그런데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밀려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거요. 저항해도 되는 거라는 거.'
자기가 한 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이 필요했던 건 자신이었다.
소율은 코드를 짚기 시작했다. 서툴고 불완전한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했다.
AI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자신의 소리였다.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
7.
차명호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도 없었지만. 대신 서울 교외의 허름한 고시원을 찾았다.
아내의 묘지 앞에 서서, 처음으로 제대로 인사를 했다.
"당신이 아파서 혼자 있게 두서 미안해. 수진이한테 무심해서 미안해. 내가 무능해서 미안해."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렸다.
"근데 이제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고. 수진이한테 연락했어. 전화 받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도해보려고."
명호는 허리를 굽혀 묘지 앞에 앉았다.
"로봇 한테 배웠어. 살아 있어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그래서 살아보려고. 답 찾을 때까지."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돌을 꺼냈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주운 것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조약돌이었지만, 뭔가 남겨두고 싶었다.
돌을 묘지 앞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일어섰다.
"다음에 또 올게."
그리고 천천히 묘지를 떠났다.
저녁 하늘에 첫 번째 별이 떴다. 명호는 그 별을 바라보며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일단 걷기로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세 사람의 궤적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 서로를 모르는 사이.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파도 위에 서 있었다.
그들이 만나게 될 때, 무엇이 시작될까.
ATLAS는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산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인간의 의지. 인간의 선택. 인간의 가능성.
그것이 ATLAS가 인간을 관찰하는 이유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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