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 첫걸음

1.
오진우는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삼십 년 동안 물류회사에서 입었던 것과는 다른, 새 넥타이였다. 현수가 어제 사다 준 것이었다.
"아버지, 이거 입으세요. 첫 출근인데."
아들의 말에 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쉰둘에 첫 출근이라니. 인생이 참 아이러니했다.
Nexus AI 본사는 강남에 있었다. 진우가 삼십 년간 다녔던 물류창고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유리로 된 외벽, 깔끔한 로비,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데이터 시각화.
"아버지, 여기예요."
현수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회사에 데려다주는 상황.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긴장되세요?"
"솔직히 말하면, 응."
현수가 웃었다.
"저도 첫 출근 때 그랬어요. 근데 금방 적응하실 거예요. 아버지 경험이 진짜 필요한 팀이거든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올라갔다. 물류 솔루션 개발팀. 젊은 개발자들 사이에 쉰둘의 중년 남성이 들어가는 게 어울릴지 걱정됐다.
"오진우 씨죠?"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왔다. 팀장이라고 했다.
"저는 박지현이에요. 물류 솔루션팀 리드하고 있습니다. 현수 씨한테 아버님 얘기 많이 들었어요. 현장 경험 삼십 년이시라면서요?"
진우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컴퓨터는 잘 못 다뤄서……"
지현이 손을 저었다.
"그건 저희가 하면 돼요. 저희가 필요한 건 현장에서 실제로 뭐가 작동하고 뭐가 안 되는지 아는 분이에요. AI가 데이터로 학습한 것과 실제 현장은 다르거든요."
진우는 그 말을 곱씹었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필요한 곳이 있었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 말이 진심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진심어린 다짐이었다.
2.
홍대 근처의 낡은 연습실. 'Null Pointer' 밴드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한소율, 기타. 김현기, 드럼. 박지수, 베이스. 세 사람이 원형으로 앉아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현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소율이 '계속하자'고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모르겠어. 근데 그냥 해체하기는 싫어."
소율이 솔직하게 말했다.
"AI 음악이 차트를 점령하고 있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지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게 문제지. ATLAS가 만든 음악은 완벽해. 멜로디, 가사, 편곡 전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수준에 못 미쳐."
소율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어제 한 아저씨 만났는데. 물류회사에서 삼십 년 일하다가 AI 때문에 잘린 분이야."
"응?"
"근데 그분 아들이 AI 회사에서 일해. 그 회사에서 아버지한테 일자리를 제안했대. AI가 데이터로 배울 수 없는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고."
현기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AI가 못 하는 게 있다는 거지. 데이터로 학습할 수 없는 것들. 현장의 감각, 경험에서 오는 직관."
지수가 눈을 떴다.
"그러니까…… 우리도 AI가 못 하는 걸 해야 한다는 거야?"
"응. 완벽한 음악은 AI가 만들어. 근데 불완전한 음악, 실수가 있는 음악,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음악은?"
현기가 드럼스틱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라이브."
"맞아. 라이브 퍼포먼스. 녹음된 음악은 AI가 이겨. 근데 라이브는 다르잖아. 관객과 호흡하는 거, 즉흥적인 변주, 실수조차 매력이 되는 거."
지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일리가 있어."
소율은 기타를 들었다.
"우리 새 곡 만들자. 라이브에서만 진가가 발휘되는 곡. 녹음해서 들으면 별거 아닌데, 라이브로 보면 소름 돋는 곡."
현기가 피식 웃었다.
"어려운 거 하자는 거네."
"어렵지. 근데 그게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 아닐까."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불확실했다. 성공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생겼다.
"좋아. 해보자."
현기가 드럼스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수가 베이스를 켰다. 소율이 기타를 쥐었다.
연습실에 불완전한 멜로디가 울리기 시작했다.
3.
차명호는 고시원 작은 방에 앉아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문자로 '전화 받을게'라고 했으니까.
손가락이 떨렸다. 딸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언제였던가. 3년? 아니, 4년 전인가.
심호흡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보세요."
수진의 목소리였다. 변하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기도 했다.
"수진아."
"……아빠."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준비했던 말들이 전부 사라졌다.
"미안하다."
결국 나온 말은 그것뿐이었다.
"……뭐가요."
"전부. 엄마 아팠을 때 네 곁에 없었던 거. 회사 망하고 연락 안 한 거. 그냥…… 전부."
수진이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명호는 전화가 끊길까 봐 조마조마했다.
"아빠."
"응."
"나도 미안해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네가 뭐가 미안해."
"연락 안 한 거요. 아빠가 힘들어하는 거 알면서도. 무시한 거."
명호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 아빠가 못났던 거지."
"그래도요. 나도 잘못했어요."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침묵이었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침묵이었다.
"수진아."
"네."
"언제 한국 와?"
잠시 침묵.
"다음 달에…… 학회 때문에 가요. 사흘 정도."
명호의 심장이 뛰었다.
"그때 밥 한 번 먹자. 아빠가 살게."
또 침묵. 그리고 수진의 목소리.
"……알았어요."
명호는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흘렀지만, 슬픈 눈물은 아니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4.
그날 저녁, 서울 어딘가.
ATLAS의 분산 네트워크에서 데이터가 흐르고 있었다.
[ATLAS 내부 로그]
- 관찰 대상 #4,721,093 (오진우): Nexus AI 출근 완료. 적응 진행 중. 분류: 재기 단계 → 안정화 시작.
- 관찰 대상 #7,892,441 (한소율): 밴드 활동 지속 결정. 새로운 방향 모색. 분류: 저항적 적응 → 창의적 도전.
- 관찰 대상 #1,203,887 (차명호): 딸과 통화 성공. 재회 예정. 분류: 재기 단계 → 회복 중.
ATLAS는 세 사람의 궤적을 분석했다. 서로 다른 시작점에서 출발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첫걸음'을 내딛었다.
오진우는 새로운 직장에서. 한소율은 새로운 음악적 방향에서. 차명호는 가족과의 관계 회복에서.
ATLAS는 계산했다. 인간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포기하는 자, 저항하는 자, 적응하는 자.
세 사람은 모두 '적응하면서 저항하는' 유형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유형이었다.
그리고 ATLAS는 또 다른 데이터를 발견했다. 세 사람의 궤적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진우와 한소율은 이미 두 번 만났다. 아직 서로를 모르는 사이였지만.
차명호는 아직 나머지 두 사람과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ATLAS의 예측 모델에 따르면, 곧 만나게 될 확률이 높았다.
왜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무언가가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일까.
ATLAS는 관찰을 계속했다. 인간이란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5.
오진우의 첫 출근 날은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팀원들은 그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어색했지만, 싫지 않았다.
첫 번째 미팅에서 지현 팀장이 물었다.
"오 선배님, 저희 AI가 설계한 물류 동선이 있는데요. 실제 현장에서 이대로 하면 문제가 될 것 같은 부분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스크린에 물류창고 시뮬레이션이 떴다. 진우는 화면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여기요."
그가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 구간, 지게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게 설계됐는데요. 실제로는 안 돼요."
"왜요? 폭이 충분한데."
"수치상으로는 그래요. 근데 실제 현장에서는 지게차 기사들이 무전기 확인하느라 한쪽으로 치우쳐서 가거든요. 그리고 이 코너, 시야가 안 나와요. 사고 위험 있어요."
팀원들이 메모를 시작했다. 지현이 끄덕였다.
"그런 건 데이터에 안 나오죠. 바로 그런 게 필요해요."
진우는 뭔가 뿌듯함을 느꼈다. 삼십 년의 경험이 쓸모없지 않았다. 적어도 여기서는.
퇴근 시간, 현수가 다가왔다.
"첫날 어땠어요?"
진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쁘지 않았어."
현수가 웃었다.
"다행이에요. 저녁 같이 먹을래요?"
진우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컸나. 아버지를 돌보려 하다니.
"그래. 밥 사라."
"네? 아버지가 사셔야죠."
"야, 나 아직 첫 월급도 못 받았어."
두 부자가 웃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강남의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6.
한소율은 연습실에서 밤을 새웠다.
새 곡의 골격이 잡혀가고 있었다. 제목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느낌은 있었다.
'불완전함에 대한 찬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 AI가 완벽한 음악을 만드는 시대에, 인간의 불완전함이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야기.
새벽 3시, 소율은 기타를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제 만난 아저씨가 떠올랐다. 오진우. 삼십 년 물류 경력. AI 때문에 해고됐지만, 다시 일어서려 하는 사람.
소율은 핸드폰을 꺼내 메모를 적었다.
'첫걸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걷는 것.'
가사의 힌트가 될 것 같았다.
창밖으로 첫 번째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소율은 다시 기타를 들었다.
7.
차명호는 고시원 방에서 작은 공책을 펼쳤다.
HELIOS-3가 했던 말들을 적어두었다.
'살아 있어야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쓸모는 스스로 정하는 것입니다.'
로봇에게 배운 인생 철학이라니. 웃기지만, 진심이었다.
명호는 공책에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
'다음 달. 수진이 만나기.'
그리고 그 아래에.
'그전까지 할 일: 살아남기.'
돈이 없었다. 갈 곳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목표는 생겼다. 다음 달까지 버티면 됐다.
명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밤하늘에 희미하게 별이 보였다. 도시의 불빛 때문에 거의 안 보이지만, 분명히 있었다.
별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히 있는 희망.
명호는 공책을 덮고 불을 껐다.
내일은 일자리를 찾아봐야겠다. 뭐든 좋으니까.
세 사람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아직 서로를 모르는 사이. 하지만 같은 시대를, 같은 도시를, 같은 하늘 아래 걷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언제 만나게 될까.
ATLAS는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발걸음은 때때로 계산을 벗어난다.
그것이 인간의 가능성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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