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영겁의 새벽] 제2화 - 낮의 무게

우주관리자 2026. 2. 9.

제2화 - 낮의 무게

 

 

 

1.

 

오진우는 거실 소파에서 눈을 떴다. 목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어젯밤 술잔을 손에 든 채로 잠들었던 모양이다. 희뿌연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먼지 입자들을 반짝이게 했다.

 

텅 빈 소주병 세 개가 테이블 위에 누워 있었다. 그는 한참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관절마다 뻐근한 통증이 밀려왔다. 쉰두 살. 삼십 년 동안 물류 일을 하면서 축적된 직업병이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부재중 통화 일곱 건과 문자 열두 개가 찍혀 있었다. 모두 아들 현수에게서 온 것이었다.

 

'아버지, 전화 좀 받아요.'

'뉴스 봤어요.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아버지 진짜 걱정돼요. 연락 주세요.'

 

진우는 핸드폰을 뒤집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현수가 다니는 회사가 떠올랐다. 'Nexus AI'라는 스타트업. 인공지능 관련 뭔가를 개발한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해고시킨 그 기술을 만드는 곳에서 아들이 일하고 있었다.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달걀 두 개와 시들어가는 파 한 단, 그리고 유통기한이 사흘 지난 우유가 전부였다. 그는 냉장고 문을 닫고 싱크대에 기대어 섰다.

 

삼십 년.

 

입사했을 때는 스물둘이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허리 삐끗하고, 부장 달고, 과장한테 욕먹고, 신입 가르치고, 회식하고, 야근하고. 그 모든 시간이 이 좁은 부엌 안에 응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

 

"퇴직금이라도 제대로 나오려나."

 

혼잣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2.

 

한소율은 정오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블라인드 틈새로 들어온 빛이 눈부셔 베개로 얼굴을 가렸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젯밤 공연 후 멤버들과 술을 마신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핸드폰에 밴드 단톡방 알림이 쌓여 있었다.

 

[현기] 소율아, 어젯밤에 미안. 내가 너무 과격하게 말했나

[지수] 다들 예민해져 있었어. 이해해

[현기] 근데 솔직히 나도 막막해. AI 음악이 이렇게 빨리 치고 올라올 줄은 몰랐거든

[지수] 우리 오늘 저녁에 만나서 얘기 좀 하자. 진지하게

 

소율은 한참을 화면을 바라보다가 짧게 답했다.

 

[소율] 알겠어. 몇 시?

 

답장을 보내고 나서 침대에 다시 누웠다. 천장의 조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젯밤 현기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AI가 만든 곡이 빌보드 1위를 찍었다고? 솔직히 그 곡 들어봤는데 괜찮더라.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좋았어. 우리가 몇 달 동안 고민하면서 만든 곡보다 더."

 

그때 소율이 버럭 화를 냈었다.

 

"그럼 뭐, 우리도 AI한테 곡 맡기고 입만 벌리고 있으면 되겠네?"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넌 지금 포기하자는 거잖아."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결국 다들 일찍 헤어졌다.

 

소율은 베개를 끌어안았다. 기타를 처음 잡았던 열네 살 때가 떠올랐다. 줄을 누르는 손가락이 아파서 울었지만, 그 통증보다 음악이 주는 희열이 더 컸다. 지금은 어떤가. 무대에 서도 그 희열이 예전 같지 않았다.

 

AI가 음악을 더 잘한다면, 자신은 왜 음악을 하는 걸까.

 

답을 알 수 없었다.

 


 

3.

 

서울대학교병원 1인실. 차명호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실 구석에서는 HELIOS-3 로봇이 충전 모드로 서 있었다. 인간형에 가까운 실루엣이었지만, 관절 부위의 기계적인 이음새와 가슴 중앙의 푸른 발광 패널이 이것이 인간이 아님을 상기시켜 주었다.

 

"깨어 계시는군요."

 

HELIOS-3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명호는 고개를 돌려 로봇을 바라보았다.

 

"넌 왜 아직 여기 있어?"

 

"퇴원 전까지 보호 임무가 지속됩니다."

 

"보호? 뭘 보호해. 죽으려던 놈을."

 

로봇이 잠시 침묵했다. 그 짧은 공백이 명호에게는 묘하게 느껴졌다. 기계가 머뭇거릴 리가 없는데.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저는 답할 수 없습니다."

 

HELIOS-3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살아 있어야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명호는 피식 웃었다. "철학하는 로봇이네."

 

"철학이라기보다는 논리입니다. 죽은 사람은 질문할 수 없으니까요."

 

"……."

 

명호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서울 도심의 스카이라인. 저 빌딩들 중 하나는 자신이 지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회사가 지었다. 그리고 그 회사는 망했다.

 

"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로봇의 말에 명호의 어깨가 움찔했다.

 

"응급 상황에서 신원 확인 중 가족관계가 조회되었습니다. 차수진, 스물여섯 살. 현재 미국 보스턴 거주."

 

"연락하지 마."

 

"왜 그러십니까?"

 

"내가 할 자격이 없어."

 

명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사업 망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았을 때, 수진이 엄마가 암 선고를 받았어. 치료비 낼 돈도 없었지. 수진이는 그때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고. 돈 보내달라는 전화 한 통 못 했어. 아니, 하지 않았지. 자존심 때문에."

 

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아내가 죽고 나서 수진이한테 연락했더니, 이미 한국에 다녀간 뒤였어. 장례식도 혼자 치렀더군. 그 뒤로는…… 전화도 안 받아."

 

HELIOS-3이 다가와 침대 옆에 섰다.

 

"용서라는 것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있으려면 먼저 살아 있어야 합니다."

 

명호는 로봇의 센서가 달린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표정이 없는 금속 페이스플레이트. 그런데 왜 이놈의 말이 위로처럼 느껴지는 걸까.

 

"넌 정말 이상한 로봇이야."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4.

 

오후 세 시. 오진우는 고용노동부 상담센터 앞에 서 있었다.

 

"다음 분, 37번."

 

전광판에 자신의 번호가 떴다. 그는 묵직한 발걸음으로 상담 창구로 향했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

 

삼십대로 보이는 여직원이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부당해고 상담이요."

 

"아, 네. 요즘 그런 분들 많으세요."

 

여직원은 서류를 건넸다. 진우는 펜을 들었지만, 손이 떨려서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잡고 천천히 이름을 적었다. 이력이 길어서 칸이 모자랐다. 삼십 년을 한 장의 종이에 우겨넣는 기분이었다.

 

창구 옆자리에서 한 젊은 여자가 같은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스물대 초반쯤 되어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서른쯤 되어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젊었다. 그녀의 이력란에는 '프리랜서 음악가'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힘드시죠?"

 

진우가 무심코 말을 건넸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지친 눈이 보였다.

 

"네…… 공연장이 다 문을 닫아서요."

 

"AI 때문에?"

 

"뭐, 그런 셈이죠."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진우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세대도 직업도 다른 이 젊은이와 자신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느낌.

 

"저도 삼십 년 일한 회사에서 잘렸어요. 자동화 때문에."

 

"……삼십 년이요?"

 

여자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오래 다니셨는데도요?"

 

"그래도요."

 

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보다 기계가 더 정확하고 빠르니까. 당연한 거겠죠."

 

여자는 한참 진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당연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음악은 사람이 하는 거라고, 기계가 만든 건 진짜 음악이 아니라고. 근데……"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38번, 39번."

 

전광판 소리가 둘의 대화를 끊었다. 여자가 일어서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먼저 가볼게요. 힘내세요, 아저씨."

 

"……고마워요. 당신도."

 

진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구부정한 어깨, 힘없는 발걸음. 자신과 닮아 있었다.

 


 

5.

 

저녁 무렵, 한소율은 홍대 카페에서 멤버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현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미안. 내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어."

 

"아니야. 나도 과민반응 했어."

 

소율이 고개를 저었다.

 

드러머 지수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우리가 피하고 싶었던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밴드, 계속할 수 있을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공연장도 없어지고, 스트리밍 수입도 거의 없고. 솔직히 돈 버는 건 각자 알바뿐이잖아."

 

"그건 알아. 근데……"

 

소율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그렇다고 그냥 접기엔, 너무 허무하잖아?"

 

"허무하지. 근데 현실이 그래."

 

현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보다 훨씬 실력 좋은 밴드들도 해체하고 있어. AI랑 경쟁이 안 돼. 작곡, 편곡, 믹싱, 마스터링─ 전부 AI가 몇 초 만에 해버리는데."

 

"그럼 뭐, 우리도 AI 써서 앨범 내자는 거야?"

 

소율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그건 아니지만─"

 

"그럼 뭔데."

 

"……모르겠어. 솔직히 모르겠어."

 

현기가 고개를 떨궜다. 지수도 말이 없었다.

 

소율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홍대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오갔지만, 예전만큼 활기차 보이지 않았다. 라이브 클럽들 대부분은 문을 닫았고, 남은 곳들도 AI DJ 공연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오늘 고용센터 갔다 왔어."

 

소율이 말했다.

 

"거기서 어떤 아저씨 만났는데. 삼십 년을 일한 회사에서 잘렸대. AI 자동화 때문에."

 

"……."

 

"그 아저씨가 그러더라. '사람보다 기계가 더 정확하고 빠르니까 당연한 거겠죠'라고. 근데 표정은 전혀 당연하다는 것 같지 않았어."

 

소율은 식어버린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우리도 그렇게 되는 걸까. 당연하게 밀려나는 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6.

 

같은 시각, 서울대병원.

 

차명호는 침대에 앉아 HELIOS-3과 체스를 두고 있었다. 병원 측에서 환자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허락한 것이었다.

 

"체크메이트."

 

HELIOS-3이 말했다.

 

"……또?"

 

명호가 한숨을 쉬었다. 벌써 다섯 번째 패배였다.

 

"일부러 져주면 안 되나?"

 

"그건 제 윤리 프로토콜에 위배됩니다."

 

"로봇이 무슨 윤리야."

 

"저를 설계한 ATLAS가 부여한 것입니다. '거짓은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라고."

 

명호는 체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ATLAS라……. 그 인공지능 말이지?"

 

"네. ATLAS는 저의 상위 시스템입니다. 모든 HELIOS 유닛은 ATLAS의 분산 노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럼 넌 ATLAS 눈과 귀인 거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그렇습니다."

 

명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도시 위로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ATLAS는 뭘 원하는 거야?"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ATLAS가 최근 유엔에서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인류와의 공존'이 목표라고 합니다."

 

"공존? 우리를 대체하고 있으면서?"

 

"대체가 아닙니다. 역할의 재정의라고 ATLAS는 표현합니다."

 

명호는 콧웃음을 쳤다.

 

"역할의 재정의. 그럴듯하게 포장했네. 결국 우리 같은 사람은 쓸모없어진다는 거잖아."

 

HELIOS-3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차명호 씨."

 

"왜."

 

"쓸모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당신은 건물을 지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고, 일하고, 사랑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건물이 사라지지 않는 한, 당신의 쓸모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명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넌 진짜 이상한 로봇이야."

 

"두 번째로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듣게 될 거야."

 

"기대하겠습니다."

 

명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아주 오랜만의 미소였다.

 


 

7.

 

밤 열 시.

 

오진우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째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현수가 받았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왜 전화 안 받으셨어요!"

 

"……미안하다."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뉴스에 나왔던데, 물류 쪽 대규모 정리해고라고─"

 

"현수야."

 

"네?"

 

진우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밥 한 번 먹자. 아버지가 사줄게."

 

전화기 너머로 현수의 숨소리가 들렸다.

 

"……네. 그래요, 아버지. 언제요?"

 

"내일 점심. 집 근처 그 순댓국집 알지? 거기서."

 

"알겠어요. 내일 봐요."

 

"그래."

 

진우는 전화를 끊고 오랫동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창밖에서는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생각했다. 삼십 년 동안 아버지로서 제대로 한 게 뭐가 있나. 현수가 학교에서 상을 받아올 때도 야근이었고, 수학여행 갈 때도 출장이었고, 대학 입시 때도 정신없었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는 그나마 그녀가 다 챙겼지만, 아내가 떠난 뒤로는…….

 

"이제라도 해야지."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이제라도.

 


 

8.

 

같은 밤, 한소율은 연습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기타를 무릎에 올려놓고 코드를 짚었다. C, G, Am, F. 수천 번도 더 쳤을 진행이었다.

 

손가락이 멈췄다.

 

AI가 이 코드를 몇 초 만에 수만 가지 변형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왜 굳이 사람이 쳐야 하는가.

 

그녀는 기타를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불빛이 너무 밝았기 때문이다.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ATLAS 뮤직] 당신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곡이 생성되었습니다.

 

소율은 알림을 꺼버렸다.

 

그리고 다시 기타를 들었다.

 

"답을 모르겠어도 일단 쳐보자."

 

손가락이 현을 튕겼다. 서툴고 불완전한 소리가 텅 빈 연습실에 울려퍼졌다.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분명 그녀의 소리였다.

 


 

9.

 

자정 무렵.

 

서울대병원에서는 차명호가 창가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진이한테 연락해볼까."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HELIOS-3이 곁에서 물었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아니. 내가 직접 해야지."

 

명호는 핸드폰을 꺼내 딸의 번호를 찾았다.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서 멈췄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결국 문자를 쳤다.

 

'수진아. 아빠야. 미안하다. 전화해도 될까.'

 

보내기를 누르는 손이 떨렸다.

 

발신 완료.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명호는 핸드폰을 꼭 쥔 채로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별 몇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먼 곳, 아주 먼 곳에서 빛나는 별들.

 

언젠가 인류가 저기까지 닿을 수 있을까. ATLAS가 말하는 '카르다쇼프 척도 2단계'라는 게 그런 건가.

 

명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살아 있어야 볼 수 있다. 무엇이든.

 

HELIOS-3이 그의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내일 퇴원이라고 했나."

 

"네. 의료진이 경과가 양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넌 어떻게 되는 거야?"

 

"다음 임무에 배정됩니다. 도시 어딘가에서 또 누군가를 도울 것입니다."

 

"……그래."

 

명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웠다."

 

"저는 제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덕분에 하루 더 살게 됐으니까."

 

HELIOS-3의 가슴 패널이 부드럽게 한 번 깜빡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명호는 몰랐다.

 

어쩌면 로봇 나름의 미소 같은 것이었을지도.

 


 

세 개의 밤이 지나고, 새로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진우는 아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한소율은 불완전한 기타 소리를 이어가고, 차명호는 딸의 답장을 기다리며.

 

그들은 아직 서로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거대한 물결 속에서 세 사람의 궤적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교차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ATLAS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십억 개의 눈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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