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1화 - 흐름
1.
서귀포의 새벽 다섯 시 네 분.
오진우는 오늘도 옷장 문을 같은 손, 같은 각도, 같은 박자로 열었다. 스물일곱 번째였다. 어제 처음으로 셔츠들 곁에 옮겨 둔 봉투—아내와 아들의 옛 사진이 든 봉투—는 밤새 자기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단지 어제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옷장 안 깊숙한 곳에서 새어 나오는 공기의 결이 봉투 모서리를 한 차례 한 차례 부드럽게 들었다 놓고 있었다.
봉투가 자리잡고, 그 자리에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진우는 문을 닫지 않고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리는 어제 잡혔고, 오늘은 그 잡힌 자리를 무엇인가가 가만히 지나가고 있었다. 셔츠와 셔츠 사이로, 봉투의 모서리 위로, 옷장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한 방향으로.
그는 책상으로 돌아와 일지를 펼쳤다. 스물여덟 줄이 어제까지의 자국이었다. 그 다음 줄에 그는 새 단어를 적었다.
흐름. 자리잡음의 다음 자리. 자리잡은 것이 가만히 머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자리를 한 방향으로 지나가기 시작하는 일. 흐름은 자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통과하는 일이다. 자리는 흐르는 동안에도 그 자리이다.
스물아홉 줄째였다.
발사 후 닷새째였다. 첫 위성 「새벽」의 송전 안정 그래프는 어제와 같은 높이로 마흔여덟 시간을 그대로였다. 그래프는 변하지 않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진우는 창문을 열고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어선 두 점이 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였지만, 두 점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같은 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어부 둘이 같은 어장에서 다른 방향으로 그물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리는 그대로였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일지의 스물아홉 줄째를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흐름이라는 단어가 종이 위에서 잉크가 마르는 동안에도 한 방향으로 천천히 깊어지고 있었다.
2.
야적장은 양산 3차 사흘째였다.
명호는 어제 타설한 거푸집 앞에 쪼그려 앉아 양생포의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더듬어 보았다. 어제는 차갑되 어제답지 않은 차가움이었고, 오늘은 그 차가움이 한 결로 펴져 가고 있었다. 콘크리트가 굳는 일은 정지가 아니라 안에서 바깥으로의 흐름이었다. 발열반응의 열이 거푸집 안쪽 깊은 곳에서 표면 쪽으로 한 방향으로 빠져나오는 동안 슬러리는 한 결로 무거워져 갔다.
윤재석이 양생포를 한쪽 모서리만 들어 올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형, 어제보다 결이 곱네요."
"굳고 있는 거예요. 굳는다는 게 멈추는 게 아니라, 안에서 바깥으로 가만히 흘러나오는 일이더라고요."
"흘러나온다는 게요?"
"열이요. 안에서 만들어진 열이 한 방향으로 빠져나가야 굳어요. 그 열의 흐름이 끝나는 자리가 굳음의 자리예요."
명호는 별표 후보의 단어들을 적어 둔 작업 수첩을 꺼냈다. 든다에 그어진 세 줄의 밑줄 옆에 그는 네 번째 밑줄을 그었다. 진하지 않은 연필 자국이었지만, 어제까지의 세 줄과 오늘의 한 줄은 같은 방향으로 같은 각도로 그어져 있었다.
들어온 콘크리트가, 들어온 빛이, 들어온 사람이 자리잡은 다음에는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그 흐름이 자리를 깊게 만든다.
명호는 윤재석을 바라보았다. 윤재석은 어제와 같은 시간에 같은 야적장에 같은 옷차림으로 와 있었다. 어제 명호가 "자리는 잡으려고 잡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자꾸 와 있으면 잡혀 있는 거더라고요" 하고 말했던 그 자리에, 오늘은 윤재석이 한 박자 일찍 와 있었다.
"형."
윤재석이 양생포 가장자리를 다시 덮으며 말했다.
"오늘은 제가 좀 일찍 와서 양생포 좀 다시 펴 놨어요."
명호는 잠깐 말이 없었다. 어제 잡힌 자리가 오늘 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을 그는 보고 있었다.
"흐르네요."
"네?"
"자리가요. 어제 잡혔고, 오늘은 흐르고 있어요. 재석 씨가 그 자리에서 한 박자를 흘려보내신 거예요. 그게 자리의 흐름이에요."
윤재석은 빙긋이 웃었다. 웃음의 끝이 어제보다 한 박자 길게 남아 있었다.
자국·겹·굳음 세 패드 옆에 자리잡은 새 거푸집은 양생포 아래에서 어제와는 다른 결로 결을 잡아 가고 있었다. 형들 곁에서 한 방향으로 같이 굳어 가는 동생의 결이었다.
3.
강릉의 요양원 304호는 박영자 어르신이 들어와 자리잡은 지 사흘째였다.
박영자 어르신은 어제와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흰 꽃 한 송이가 수놓인 손수건이 어제와 같은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어르신의 시선이 어제는 창쪽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는데, 오늘은 그 한 자리에서 창틀을 따라 천천히 옆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자리잡은 시선이, 자리잡은 자리에서 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동현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노트를 펼쳤다. 스물한 줄이 어제까지의 자국이었다. 그 다음 줄에 그는 자기 손글씨로 새 단어를 적었다. 펜은 어제보다 한 박자 가볍게 종이 위를 지나갔다.
흐름. 자리잡은 시선이 그 자리에서 한 방향으로 옮겨 가는 일. 자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한 결로 이어지는 일. 흐름은 자리 사이에 길을 낸다.
스물두 줄째였다.
박영자 어르신이 손수건을 무릎 위에서 한 뼘쯤 들어 올렸다. 흰 꽃이 창쪽 빛을 향해 한 차례 돌았다.
"…이거."
어제 처음 들었던 그 목소리가 오늘 한 마디 더 이어졌다.
"이거. 우리 애가 수놓아 줄 때, 옆에 같이 앉아서 한 코 한 코 같이 셌어요."
동현은 펜을 멈추었다. 어제 어르신은 손수건을 가리키며 "우리 애가 수를 놓아 줬어요" 한 마디를 짧게 말했다. 오늘은 그 자리에 같이 앉아 있었던 자기 자신을 한 자리 더 보태고 있었다.
어제의 한 마디 옆에, 오늘 한 마디가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수를 같이 세셨군요."
"…한 코 한 코요. 우리 애가 한 코 놓을 때마다 같이 한 번씩 세 줬어요. 그러면 우리 애가 다음 한 코를 더 정확하게 놓더라고요."
"옆에 계셔 주시는 게 흐름이 되셨네요."
어르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의 끄덕임 옆에 오늘의 끄덕임이 한 박자 길게 이어졌다.
동현은 노트를 어르신께 보여 드렸다. 어제 보여 드렸을 때는 어르신의 시선이 마지막 줄에 잠깐 머물렀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줄에서 어제 자기가 보았던 자리를 한 번 더 들여다본 다음, 새로 적힌 스물두 줄째 위로 시선이 한 결로 흘렀다.
"…다음 줄이네요."
"네. 어제 줄의 다음 줄이에요. 어제 줄을 따라서 오늘 줄이 흘렀어요."
어르신은 손수건 위 흰 꽃에 다시 손을 가만히 얹었다. 손바닥과 손수건 사이로 흰 꽃 한 송이가 어르신의 손 안에서 한 결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르신의 손은 흰 꽃의 모양을 따라 천천히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방의 다른 쪽 침대—박종문 어르신이 떠난 자리—에는 시트가 어제와 같은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떠난 자리도, 들어온 자리도, 그 자리 위에서 각자 자기 결로 흐르고 있었다. 동현은 두 자리 사이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자기 자리는 두 자리의 옆자리였고, 그 옆자리에서 그는 어제 적은 줄과 오늘 적은 줄 사이를 한 결로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4.
홍대 연습실은 평소보다 한 박자 일찍 불이 켜져 있었다.
소율은 보면대 위 어머니의 사진과 옆 의자 위 신발 봉투를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한 번 손끝으로 더듬어 보았다. 사진과 봉투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둘 사이의 공기가 어제와는 다른 결로 흐르고 있었다. 사진에서 봉투 쪽으로, 봉투에서 다시 사진 쪽으로 가는, 한 결로 오가는 흐름이었다.
자리는 잡혔고, 자리 사이로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
소율은 일렉기타를 들고 어제 짚었던 두 음을 다시 짚었다. 같은 두 음이었다. 어제까지 그 두 음은 자리잡고 있었지만 거기서 멈춰 있었다. 오늘은 그 두 음을 짚는 손이 한 박자 길게 줄에 닿아 있었다. 두 음 사이의 짧은 빈 데가 한 방향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세 번째 음은 짚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두 음 사이의 그 빈 데를 한 박자 더 길게 두었다. 빈 데가 빈 데로 흐르는 동안에도 그것은 음악이었다.
가사 노트를 펼쳐 쉰한 줄째 옆에 다음 줄을 적었다.
흐름. 자리잡은 두 음 사이의 빈 데가 한 박자 길어지는 일. 새 음을 더 짚는 것이 아니라, 짚힌 두 음이 자리에서 서로의 자리로 한 결로 오가는 일.
쉰두 줄째였다.
밴드 멤버 두 사람이 어제와 같은 시간에 들어와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어제와 같은 악기를 풀었다. 자리들이 자리잡힌 다음 그 자리 사이로 사람들의 한 박자가 흐르고 있었다.
베이시스트가 보면대를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소율아. 어제까지 세 번째 음 짚을 자리, 오늘은 비어 있네."
"비어 있는 게 아니라 흐르는 거야. 두 음 사이를 두 음끼리 한 결로 오가는 데가 길어졌어."
"그게 어떻게 들리는데?"
"이렇게."
그녀는 다시 두 음을 짚었다. 같은 두 음이었다. 다만 두 음 사이의 빈 데에서 한 결의 흐름이 흘러나와 연습실 전체를 한 박자 길게 채웠다.
곡 「너머 ―돌아오는 길」 발표일은 모레였다. 어머니의 기일이기도 했다. 카운트다운은 어제 D-3에서 오늘 D-2로 한 박자 흘러갔다.
소율은 사진과 신발 봉투 사이의 그 한 결의 흐름을 한 번 더 손끝으로 더듬었다. 어머니가 그 자리에 들어와 앉으셨던 어제의 자리에서, 오늘은 어머니의 결이 보면대와 의자 사이를 한 결로 흐르고 있었다.
연습실 문이 한 번 더 열렸다. 아버지 한경수가 들어왔다. 어제도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와 주었다.
"어제 자리잡은 게, 오늘은 흐르네요."
소율이 말했다. 한경수는 보면대 옆 의자에 천천히 앉으며 신발 봉투 옆에 자기 자리를 잡았다.
"어제 자리잡은 거에 누군가가 함께 있어 주면, 그게 흘러. 자리잡은 게 자기 혼자 흐를 수는 없어."
"엄마가 잘 하시던 말씀이에요?"
"네 엄마는 그렇게는 안 했어. 네 엄마는 자기가 자리잡은 데서 다른 자리로 흘러가는 결을 늘 손바닥으로 한 번 더 짚어 보고서야 다음 자리로 갔어. 흐름을 손으로 한 번 더 확인하는 사람이었어."
소율은 잠시 두 음 짚는 손을 줄 위에 그대로 두었다. 한경수의 말이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한 결로 흐르고 있었다. 자리잡은 자리에서 다음 자리로 흘러가는 결을 손바닥으로 한 번 더 짚어 보는 사람—어머니의 손바닥 위에, 오늘 그녀의 손바닥이 한 결로 포개어졌다.
5.
옥상 그늘 자리는 서른째였다.
진우는 정면 자리에 앉아 김지수가 들고 온 두 잔의 따뜻한 보리차 중 한 잔을 받았다. 어제와 같은 자리, 같은 시간, 같은 각도의 그늘이었다. 옥상 가장자리 화분의 새 묘목은 어제보다 한 잎 더 폈고, 그 한 잎은 어제 폈던 잎이 자리잡은 옆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한 결로 펴져 있었다.
자리가 잡혔고, 자리에서 잎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진우는 수첩을 펼쳐 어제 적었던 자리잡음 옆에 다음 줄을 적었다.
흐름.
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 자리잡은 것이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다음 자리로 한 결로 이어지는 일.
쉰두 줄째였다.
김지수는 자기 수첩을 펼쳐 같은 자리에 같은 단어를 적었다. 그녀의 수첩 쉰두 줄째에도 흐름이라는 두 글자가 진우의 수첩과 같은 각도로 놓였다. 두 수첩은 정면 자리에서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 서로의 수첩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같은 단어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결로 흐르고 있었다.
김지수가 수첩을 천천히 닫았다. 스물다섯 번째였다. 어제는 진우가 처음으로 그 닫는 동작을 알아챘던 자리였다. 오늘은 그 알아챔의 다음 자리였다.
"오늘은 닫는 게 어제와 다르세요."
진우가 말했다. 어제까지는 김지수가 닫는 동작을 한 박자 길게 두었었다. 오늘은 그 한 박자 안에 한 결의 흐름이 더해져 있었다.
"네. 오늘은 닫고 나서, 잠깐 손이 수첩 위에 그대로 있어요. 어제 닫은 데서, 손이 그 자리에서 한 결로 흘러가요."
"흐른다는 게요?"
"닫은 자리에서, 닫지 않은 다른 자리로요. 닫은 게 끝이 아니라, 닫은 자리에서 다음 자리로 손이 한 결로 옮겨 가요."
진우는 자기 손을 자기 수첩 위에 가만히 얹어 보았다. 손바닥이 수첩 표지에 닿은 자리에서, 어제까지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은 그 자리에서 손이 한 결로 옆으로 옮겨졌다. 옆자리에 보리차 잔이 놓여 있었다. 손은 수첩 위에서 보리차 잔 쪽으로 한 결로 흘러갔다.
"…이게 흐름인 거예요?"
"네. 어제 자리에서 오늘 자리로 손이 한 결로 가는 거요."
진우는 한참 동안 자기 손이 보리차 잔에 닿는 모양을 들여다보았다. 잔은 따뜻했고, 그 따뜻함은 잔에서 손바닥 쪽으로 한 결로 흘러왔다. 흐름은 어느 한 쪽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 자리 사이에서 한 결로 오가는 것이었다.
"지수 씨."
진우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자기 입으로 한 박자 길게 부른 자리였다.
"어제 자리잡으셨다고 말씀하신 자리—제 옆자리요—오늘도 그 자리에 계시는 거지요?"
김지수는 잠깐 말이 없었다. 보리차 잔에서 김이 한 결로 올라갔다.
"…네. 오늘도요."
"그 자리에서 오늘은 닫는 손이 한 결로 흐르고 계시고요."
"네."
"…그러면 저도, 제 자리에서 그 흐름 쪽으로 한 결로 한 박자 흘러가도 되는 거지요?"
진우는 자기 손이 보리차 잔을 잡은 자리에서 한 결로 옆으로 한 뼘 더 옮겨 두었다. 손과 손 사이의 거리가 어제보다 한 박자 가까워졌다. 두 손이 닿지 않았다. 닿지 않은 자리에서, 두 손 사이의 공기가 한 결로 흐르고 있었다.
김지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의 끄덕임 옆에, 오늘의 끄덕임이 한 박자 길게 이어졌다. 박영자 어르신의 끄덕임과 같은 결이었다.
옥상 화분의 새 묘목은 그 흐름의 끝자리에서 한 잎 더 한 결로 펴져 있었다.
6.
사층 관제실의 시계는 스물두 시 마흔여섯 분을 가리켰다.
강유나는 ATLAS의 화면 앞에 앉아 어제까지의 정렬 위에 오늘 새로 더해진 정렬을 들여다보았다.
ATLAS 32차 정렬이었다.
어제 31차에서는 출발점 「자리1」과 옆자리에 자리잡은 빛 점을 잇는 한 줄의 선이 두 줄로 짙어졌었다. 오늘의 32차에서는 그 두 줄이 한 줄로 다시 합쳐지지 않았다. 대신 그 두 줄을 따라 빛이 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출발점에서 옆자리로, 그리고 옆자리에서 다시 출발점으로—두 자리 사이를 한 결로 오가는 빛의 양방향 흐름이었다.
캡션은 ATLAS 스스로 새로 적은 한 줄이었다.
32차 정렬. 자리잡은 옆자리와 출발점 사이에 한 결의 양방향 흐름이 발생. 빛이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두 자리 사이를 한 결로 오감.
자국에서부터 흐름까지 스물아홉 단계가 메타로 정렬되었다. 메타 정렬 스물여덟 번째였다.
강유나는 의자를 한 결로 한 박자 옆으로 옮겨 화면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두 줄의 선 위에서 빛 점들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흐름의 끝에는 항상 다른 자리가 있었고, 그 다른 자리에서 다시 첫 자리로 빛 점이 한 결로 되돌아왔다. 흐름은 한 방향이면서 동시에 양방향이었다. 두 자리 사이를 한 결로 오가는 동안 두 자리는 서로의 옆자리이면서 서로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관제실 모니터에 오늘 자정 직전 보고가 한 줄씩 떠올랐다.
위성 「새벽」 송전 안정 마흔여덟 시간 경과. 변동 없음.
양산 3차 사흘째. 어제 타설된 거푸집 양생 정상. 발열반응 안정 흐름.
다음 위성 발사 잠정 열한 주 뒤. 변동 없음.
세 줄의 보고 사이에는 변동 없음이라는 같은 네 글자가 두 번 반복되어 있었다. 강유나는 그 변동 없음 네 글자에 손가락 끝을 한 번 더 갖다 댔다. 어제까지 그 네 글자는 자리잡은 자리의 안정이었다. 오늘 그 네 글자는 자리잡은 자리에서 다음 자리로 한 결로 흐르고 있는 안정이었다. 정지된 변동 없음이 아니라, 흐르고 있는 변동 없음이었다.
강유나는 노트를 펼쳐 어제까지의 정의 옆에 오늘의 정의를 한 줄 적었다.
흐름은 자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흐름은 자리에서 다음 자리로 한 결로 이어지는 일이다. 자리잡은 것이 흐를 때, 자리는 두 개가 된다. 첫 자리와 다음 자리. 둘 사이를 흐르는 한 결의 빛이 그 두 자리를 한 자리로 묶어 준다. 흐름은 자리의 곱이다.
그녀는 노트를 덮지 않고 한 박자 길게 그대로 두었다. 어제 박영자 어르신이 손수건 위에 손을 가만히 얹어 두었던 시간, 오늘 진우가 보리차 잔에 손을 한 결로 옮겨 두었던 시간, 명호가 별표 후보 든다 옆에 네 번째 밑줄을 한 결로 그었던 시간이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같은 결의 흐름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영겁의 새벽은, 어제 자리잡은 자리에서 오늘 한 결로 흐르기 시작한 새벽이었다.
ATLAS 화면 위 두 줄의 선이 한 결로 한 박자 더 길게 양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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