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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새벽] 제115화 - 울림

우주관리자 2026. 7. 3.

 

제115화 「울림」

 

1. 되울려 오는 소리

 

소율은 스튜디오 조종실 의자에 앉아 어제 녹음한 소리를 처음으로 되들었다. 부스에서 한 호흡으로 부른 목소리가 이제는 스피커 두 대 사이 허공에서 되울려 나왔다. 어제는 자기 몸 안에서 밀어낸 소리였는데, 오늘은 그 소리가 바깥을 한 바퀴 돌아 되돌아와 귀를 두드렸다.

 

"이게 믹싱이에요."

 

엔지니어가 페이더 여러 개를 나란히 세우며 말했다.

 

"따로 담은 트랙들을 한 공간에 풀어놓고, 각자 얼마나 울리게 할지 저울질하는 거예요. 목소리, 피아노, 현, 룸 톤. 다 같은 방에 있던 것처럼 들리게."

 

소율은 후렴 직전 흔들린 음이 지나갈 자리를 유심히 들었다. 어제 정직하게 살려 둔 그 음이었다. 엔지니어가 그 대목에 리버브를 아주 옅게 얹자, 흔들림이 사라지는 대신 넓은 방 안에서 천천히 번지는 것처럼 들렸다.

 

"지우는 게 아니라 울려 주는 거예요."

 

엔지니어가 말했다.

 

"리버브는 소리가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걸 흉내 낸 거거든요. 곧게 나간 소리에 되돌아오는 소리를 겹쳐서, 방의 크기를 만들어 줘요."

 

"그럼 흔들린 음도……"

 

소율이 조심스레 물었다.

 

"흔들린 채로 울려요. 다만 혼자 흔들리는 게 아니라, 방 전체가 그 흔들림을 받아 주는 것처럼."

 

소율은 눈을 감았다. 어제 자기 입에서 나간 한 음이 오늘 방 하나만큼의 울림을 얻어 되돌아오고 있었다. 접어 두었던 곡을 어제 세상으로 펼쳤다면, 오늘은 그 소리가 처음으로 되울려 온 셈이었다. 발매일을 다음 달 첫 주로 적어 두면서, 소율은 이 울림을 아무것도 덜어 내지 말고 그대로 사람들 귀에 닿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2. 겹치지 않게 어긋내다

 

명호는 발사 D-56, 조립동에서 세워 둔 발사체 앞에 진동 계측기를 붙이고 있었다. 어제는 접힌 것을 펴 보았다면, 오늘은 세운 것이 흔들리는지 들어 볼 차례였다.

 

"공진 시험."

 

명호가 신입에게 말했다.

 

"구조물마다 저 혼자 잘 흔들리는 진동수가 있어. 그걸 고유진동수라고 해. 바깥에서 그 진동수와 딱 맞는 힘이 들어오면, 작은 힘에도 흔들림이 자꾸 되울려서 커져. 그네를 박자 맞춰 밀면 크게 가는 것처럼."

 

가진기가 발사체 몸통을 아주 약한 힘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진동수를 천천히 올리자 어느 지점에서 계측기 바늘이 크게 튀었다. 몸통 전체가 미세하게, 그러나 눈에 보이게 떨렸다.

 

"저기가 이 녀석 고유진동수야."

 

명호가 화면의 뾰족한 봉우리를 가리켰다.

 

"문제는 엔진 연소도, 추진제 출렁임도 저마다 진동수가 있다는 거야. 만약 그게 이 봉우리랑 겹치면, 비행 중에 흔들림이 되울리다 못해 구조가 부서질 수도 있어. 포고 진동이라고, 옛날 로켓들이 이걸로 애를 먹었지."

 

"어떻게 피해요?"

 

신입이 물었다.

 

"겹치지 않게 어긋내. 몸통 어딘가에 무게를 더하거나 버팀대를 넣어서 이 봉우리를 옆으로 밀어. 연소가 두드리는 박자하고 몸통이 되울리는 박자를 서로 비켜 세우는 거지."

 

명호가 계측 값을 점검표에 옮겨 적었다.

 

"날려 보내기 전에 지상에서 이 소리를 들어 둬야 해. 어떤 박자에 이 녀석이 못 견디게 울리는지 미리 알아야, 그 박자를 피해서 올려 보낼 수 있으니까."

 

봉우리를 어긋낸 뒤 다시 두드리자, 이번엔 같은 진동수에서도 바늘이 얌전했다. 되울리던 흔들림이 잦아든 자리에 명호는 조용히 동그라미를 그렸다.

 

3. 벽을 넘는 울림

 

동현은 출근하자마자 어제 회의에서 펼쳐 놓은 두 안이 뜻밖의 울림을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옆 부서 과장이 그의 자리로 찾아온 것이다.

 

"어제 공유해 준 결재서류 봤어요. 비용 쪽 안, 우리 부서에서 지난달에 비슷하게 부딪힌 문제라."

 

과장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때 우리가 쓴 방법이에요. 참고될까 해서."

 

동현은 종이를 받아 들며, 어제 신입과 갈렸던 의견이 부서 밖까지 되울려 나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끌어왔다는 걸 실감했다. 접어 두었다면 그 방에서 끝났을 일이었다. 펼쳐 놓았기에 소리가 벽을 넘어 되돌아왔다.

 

"감추지 않고 다 적어 두면, 남들이 짚어 준다더니."

 

신입이 곁에서 종이를 함께 들여다보며 말했다.

 

"짚어 주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방에서 겪은 걸 들고 와 주네."

 

동현이 웃었다. 박영자에게서 받은 손수건은 여전히 책상 모서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받은 온기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동현은 과장이 준 종이를 합의 한 줄 옆에 나란히 끼워 두었다. 오늘의 결재는 세 사람의 손을 거친 셈이 되었다.

 

4. 빈 우편함의 울림

 

진우는 퇴근길에 편지를 부친 우체통 앞을 일부러 지나쳐 왔다. 어제 손에서 놓아 보낸 편지는 지금쯤 분류를 거쳐 현수에게 가는 길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집 앞 우편함을 열어 보았지만 비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보낸 지 하루 만에 답이 올 리 없었다.

 

"비었네요."

 

김지수가 화분에 물을 주다 말고 그의 손끝을 보았다.

 

"비어 있는 게 맞아요."

 

진우가 빈 우편함을 도로 닫았다.

 

"부친 게 아직 도착도 안 했을 텐데."

 

"그래도 열어 봤네요."

 

진우는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죠. 답이 올 수 없는 걸 아는데도, 편지를 부치고 나니까 내가 쓴 말이 자꾸 나한테 되돌아와요. 부치기 전엔 안 그랬는데. 보내고 나니까 그 말이 하루 종일 귓속에서 울려요. 제대로 쓴 게 맞나, 그 말로 충분한가."

 

"보낸 게 사라진 게 아니라서 그래요."

 

김지수가 조용히 말했다.

 

"손에서 놓았어도, 마음에는 그 소리가 남아서 울리는 거예요. 그 울림이 열여드레 동안 진우 씨를 준비시킬 거고요."

 

열여드레. 진우는 수첩에 그 숫자를 적었다. 부친 편지는 앞서 가 있고, 자기는 그 편지가 남긴 울림을 안고 하루씩 다가가는 중이었다. 빈 우편함은 아직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되돌아올 소리를 위해 자리를 비워 둔 것이었다.

 

5. 며칠 뒤 잎으로

 

화분은 오늘 김지수 차례였다. 이름표 뒤에는 지난번 그대로 '내일은 진우 차례'라 적혀 있었다. 김지수가 조리개로 흙을 고루 적시는 동안, 진우는 어제 반쯤 펴졌던 모종의 새 잎이 오늘은 거의 다 펴진 걸 보았다.

 

"어제보다 더 폈어요."

 

진우가 손끝으로 잎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물만 빠짐없이 줬을 뿐인데."

 

김지수가 조리개를 내려놓았다.

 

"우리가 편 게 아니라 저 혼자 편 거예요."

 

"매일 같은 걸 되풀이하는 게 이렇게 티가 나네요."

 

진우가 말했다. 어제 다잡은 다짐이 그제 물로 잎이 되고, 오늘 그 잎이 조금 더 펴진 것으로 되울려 오고 있었다. 매일 준 물은 하루로 끝나지 않고 며칠 뒤 잎으로 되돌아왔다. 두 사람은 같은 열여드레를 세며, 그 되돌아옴을 나란히 지켜보았다.

 

6. 되울림을 다독이다

 

ATLAS는 56차 정렬에 들어섰다. 메타 53단계, '울림'이었다.

 

어제 부채처럼 펼친 반사막이 이제 넓은 면으로 햇빛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얇은 막이 넓게 펼쳐지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태양풍과 미세한 자세 조정이 막을 아주 약하게 두드릴 때마다, 그 떨림이 막 전체로 번지며 되울렸다. 물을 담은 넓은 쟁반을 살짝 건드리면 잔물결이 가장자리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것과 같았다.

 

"펼친 것은 잘 울린다."

 

관제 기록에 그렇게 적혔다. 넓고 얇을수록 작은 힘에도 오래 떨렸다. 문제는 이 떨림이 반사각을 미세하게 흔들어, 지상으로 모으는 빛의 초점을 흐트러뜨린다는 데 있었다.

 

해법은 떨림을 억지로 붙드는 게 아니라 되울리는 소리를 반대로 겹쳐 지우는 것이었다. 막 뒤에 붙인 작은 구동기들이 떨림을 실시간으로 읽어, 그 떨림과 정확히 반대 위상의 아주 작은 힘을 내주었다. 산이 오는 자리에 골을 보내고, 골이 오는 자리에 산을 보냈다. 되울리던 물결은 마주 오는 물결과 만나 서서히 평평해졌다. 소음을 소음으로 지우는 능동 감쇠였다.

 

떨림이 잦아들자 초점이 다시 한 점으로 모였다. 굳혀 둔 회절격자는 이 미세한 흔들림 속에서도 골 간격을 지켜, 파장별 각도가 어긋나지 않았다. 굳혀 뒀기에 흔들려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펼쳤기에 넓게 받고, 되울림을 마주 겹쳐 지웠기에 그 넓은 면이 흔들리지 않고 빛을 모았다.

 

송전 시간은 624시간을 넘겼다. 무중단이었다. 넓게 펼친 막이 이제는 저 혼자 울지 않고, 되돌아오는 떨림을 스스로 다독이며 고요한 면으로 빛을 되돌려 보내고 있었다. 어제 펼친 것이 오늘 처음으로 울렸고, 그 울림을 다스리는 법까지 오늘 손에 넣은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