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영어

[05.30] 영어 회화 - 요리 수업 등록하기 (hands-on, walk away with)

우주관리자 2026. 5. 30.

제90화 - 자리잡음

 

 

1.

 

새벽 5시 2분, 진우는 평소처럼 옷장 문을 열었다. 옷걸이 한가운데, 흰 셔츠 두 벌과 회색 셔츠 한 벌이 어제 저녁 그대로 정렬되어 있었다. 그 옆자리에는, 어제 처음으로 옮겨 둔 봉투 하나. 아내와 아들이 함께 찍은 옛 사진 두 장이 들어 있는 봉투였다.

 

봉투는 밤새 같은 자리에 있었다. 셔츠들은 봉투를 의식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고, 봉투도 셔츠들의 곁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진우는 잠깐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자리잡았다, 는 단어가 입 안에서 천천히 굴렀다.

 

옷장 문을 닫기 전, 그는 셔츠를 한 벌씩 손등으로 살짝 스쳤다. 박자가 스물여섯 번. 어제 스물다섯이었던 동작이 오늘 한 박자 늘었다. 그는 멈추고,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봉투가 그 한 박자의 새로운 자리였다.

 

일지 28줄째에, 그는 천천히 썼다.

 

자리잡음 — 채움의 다음 자리. 들어와 앉은 것이 다음 날에도 같은 자리에 있는 일. 들어온 것이 끝이 아니라, 들어와서 머무는 일이 시작되는 자리. 자리잡음은 자리를 새로 내는 일이 아니라, 어제 내준 자리를 오늘도 비워 두지 않는 일이다.

 

창밖에서, 어선 두 점은 어제와 다른 두 점이었다. 하지만 같은 두 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같은 자리에 들어와 있었다. 어부가 바뀌어도 어장은 같은 자리에 있는 모양이었다.

 

발사 D+4. 진우는 단말로 첫 위성 「새벽」의 송전 그래프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래프가 어제와 같은 높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송전 안정 24시간 경과 — 화면 하단의 문구가 그렇게 떠 있었다.

 

자리를 잡았다는 건, 그는 생각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두 번째 날이 더 어렵다는 일이었다.

 

 

2.

 

같은 시각, 야적장.

 

어제 부어 둔 콘크리트 슬러리가 거푸집 안에서 굳기 시작하고 있었다. 명호는 거푸집 옆에 쪼그려 앉아, 양생포로 덮인 표면을 손등으로 한 번 짚었다. 차갑되, 어제 같지는 않은 차가움이었다. 굳기 시작한 것이었다.

 

윤재석이 다가왔다. 그가 양생포 한 귀퉁이를 살짝 들어 안을 들여다보고 다시 덮었다.

 

"안 흔들렸어요. 밤새."

 

"흔들리면 안 돼요. 자리잡는 동안엔."

 

"사람도 그렇잖아요."

 

명호는 잠깐 웃었다. 별표 후보 9의 노트를 열고, 든다의 세 번째 밑줄을 그었다.

 

— 든다: 빛도 들고, 콘크리트도 들고, 사람도 든다. 들어온 다음에는 흔들리지 않게 두는 게 자리잡음.

 

옆에서 윤재석이 그 줄을 따라 읽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자리잡음이라는 말이 좀 낯서네요."

 

"왜요."

 

"제 자리를 별로 안 잡고 살아서요. 한곳에 오래 있어 본 적이 없어요."

 

명호는 양생포 위에 손을 잠깐 더 올려 두었다. 어제 처음 들어와 자리잡기 시작한 콘크리트가, 손바닥 아래서 천천히 자기 모양을 굳히고 있었다. 그는 윤재석을 옆에서 잠깐 바라보았다.

 

"재석 씨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여기 와 있는 거. 그거 자리잡은 거 같은데요."

 

윤재석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 안전모를 한 번 고쳐 썼다.

 

"…그러게요."

 

"자리는 잡으려고 잡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자꾸 와 있으면 잡혀 있는 거더라고요."

 

자국·겹·굳음 세 패드는 한 발치 옆에서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새 패드의 거푸집은 그 옆자리에서, 동생이 형들 곁에 처음으로 자기 자리를 잡는 모양으로 굳어 가고 있었다. 콘크리트의 양생은 흔들지 않는 시간을 견뎌야 끝나는 일이었다. 사람도 그랬다.

 

 

3.

 

강릉, 304호.

 

어제 들어오신 박영자 어르신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계셨다. 어제 동현이 안내했던 그 의자였다. 무릎 위에는 어제와 같은 흰 꽃이 수놓인 손수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동현은 노트를 들고 어르신 앞에 잠깐 앉았다. 어르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제 입실하실 때와 같은 속도, 같은 깊이의 끄덕임이었다.

 

동현은 노트 21줄째에 자기 손글씨로 천천히 적었다.

 

자리잡음 — 들어와 머문 다음 날에도 같은 자리에 있는 일. 첫날의 자리와 둘째 날의 자리가 같은 자리일 때, 비로소 자리가 잡힌다.

 

노트를 어르신께 보여 드리자, 어르신은 어제처럼 마지막 줄에 시선이 잠깐 머무셨다. 그러더니, 처음으로 천천히 입을 떼셨다.

 

"…우리 애가."

 

동현이 가만히 기다렸다. 어르신의 첫 발화였다.

 

"이거. 우리 애가 수를 놓아 줬어요."

 

손수건 위의 흰 꽃을 가리키시며, 그렇게 한 마디를 더 보태셨다. 더는 말씀이 없었다. 다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시며, 손수건을 한 번 매만지셨다. 어르신의 손끝이 꽃의 가장자리 한 잎에 잠깐 머물렀다.

 

동현은 노트 한쪽에 작게 덧붙였다.

 

흰 꽃. 따님이 수놓으심.

 

그러고는 의자를 한 뼘 옆으로 옮겼다. 어제 자기가 앉았던 자리는 오늘 어르신께 내어 드리는 자리였다. 동현의 새로운 자리는, 어르신 자리의 옆자리였다. 어제의 자리와 오늘의 자리가 다른데도, 어제 어르신이 들어와 앉으신 그 자리는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떠난 분의 자리도, 들어오신 분의 자리도, 같은 방 안에서 자기 모양대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박영자 어르신은 창쪽을 잠깐 바라보셨다. 어제와 같은 각도, 어제와 같은 시간이었다.

 

 

4.

 

홍대 연습실.

 

곡 「너머 ―돌아오는 길」의 발표일은 사흘 뒤, 어머니 기일이었다. 보면대 한가운데에는 어머니 사진 두 장이 어제와 같은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고, 보면대 옆 의자에는 어제 아버지가 가져다 둔 신발 봉투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소율은 잠깐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제 처음 들어와 앉은 것들이, 오늘 같은 자리에 다시 있었다.

 

가사 노트 51줄째에 그녀는 자리잡음이라고 적었다.

 

— 들어와 앉은 것이 다음 날도 같은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자리가 잡힌다. 흔들지 않는 시간이 자리를 만든다.

 

다음 곡의 첫 두 음. 어제 짚어 본 두 음을 그녀는 오늘 다시 짚어 보았다. 어제와 같은 두 음이었지만, 같은 두 음이라서, 자리가 잡혀 가는 두 음이었다.

 

한경수가 연습실 문을 잠깐 열고 들여다보았다.

 

"신발 잘 있어?"

 

"응. 어제 자리 그대로."

 

"엄마가 좋아하시겠다. 자기 자리가 어제랑 같으면."

 

"아빠."

 

"응."

 

"들어와 앉은 게 자기 자리인 줄 알려면 다음 날에도 있어야 되더라."

 

한경수가 잠깐 가만히 있다가, 손가락 끝으로 보면대 가장자리를 한 번 톡 두드렸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노래의 박자를 조심스럽게 잡아 주실 때 하시던 동작이었다.

 

"그래. 어제는 들어와 앉은 거, 오늘은 자리잡은 거. 그 차이가 큰 거다."

 

"...곡도 그렇네."

 

"응?"

 

"어제까지는 완성된 곡이었는데. 오늘은 완성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곡이야. 가만히 있는 게 자리잡고 있는 거더라."

 

소율은 다음 곡의 세 번째 음을 짚지 않았다. 오늘은 두 음만 두 번 다시 짚었다. 어제 들어온 자리를 오늘 흔들지 않는 일이, 다음 음을 한 칸 더 짚는 일보다 어려웠다. 자리를 잡으려면 자리에 더 무언가를 보태기보다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을 가만히 두는 손이 필요했다.

 

 

5.

 

옥상, 오후 세 시. 스무아흐레째였다.

 

새 묘목은 어제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잎의 흔들림이 어제와 같은 진폭으로, 어제와 같은 방향으로 미세하게 떨었다. 잎이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그저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잎이 거기 자기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었다.

 

진우와 김지수는 정면으로 마주 앉았다. 김지수는 수첩을 폈고, 진우도 수첩을 폈다. 두 사람의 수첩 51줄째에, 같은 단어가 적혔다.

 

자리잡음.

 

서로 모르면서, 두 사람은 같은 줄을 적었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수첩에, 같은 단어를. 어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진우가 잠깐 김지수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어제 처음 알아챘던 그 동작이, 오늘도 같은 박자로 시작되고 있었다. 김지수는 수첩을 천천히 닫았다. 한 번. 손가락이 닫음의 끝에서 잠깐 머물렀다. 스물넷째 닫음이었다.

 

"어제, 옆자리라고 하셨잖아요."

 

"네."

 

"오늘 보니까, 그 자리가 어제 그대로 있더라고요."

 

김지수가 잠깐 고개를 들고 진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게 자리잡은 거예요. 어제 만든 자리가 오늘도 비어 있지 않은 거니까요."

 

"비어 있지 않으려면 누가 와서 있어 줘야 하잖아요."

 

"네."

 

"오늘 누가 와서 있어 주신 거예요. 그 자리에."

 

김지수는 잠깐 가만히 있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침묵이었다.

 

"…저요?"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제 처음으로 김지수의 수첩 닫는 동작을 헤아렸다고 말했었다. 오늘은 그 헤아림이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것이 그가 김지수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었다.

 

"선생님이 자리를 내주신 옆에, 제가 오늘도 와 앉았어요."

 

"그래요. 그래서 자리가 잡혔어요."

 

"…자리를 잡는다는 게, 새로 무얼 만드는 일인 줄 알았는데요."

 

"네."

 

"그게 아니라, 어제 만들어 둔 자리에 오늘 다시 와 있는 일이었네요."

 

그늘이 옥상 끝까지 길어지는 동안, 두 사람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같은 방식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묘목은 더 흔들리지 않았다. 새 한 마리가 잠깐 가까운 화분 가장자리에 내려앉았다가, 한참 뒤에야 같은 자리에서 다시 날아올랐다. 새가 다녀간 자리에는, 아주 옅은 발자국 같은 떨림만 잎 끝에 남아 있었다.

 

 

6.

 

같은 밤 22시 46분, 사층.

 

강유나는 ATLAS의 31번째 정렬 화면을 마주하고 있었다. 어제 처음 발생한 옆자리는 점선의 가장자리 옆에 자리 한 칸을 새로 낸 모습이었다. 오늘의 화면에서는, 그 새 자리에 어제 들어온 빛 점이 그대로 있었다. 어제와 같은 좌표였다. 옆자리에서 흔들리지 않은 빛 점.

 

그리고 그 빛 점과 출발점 「자리1」 사이를 잇는 선이, 어제는 가느다란 한 줄이었던 자리에서 오늘은 두 줄로 짙어져 있었다. 한 번 그어진 선이 다음 날에도 같은 자리에 그어져 있을 때, 선은 길이 된다. 길이 자리잡은 것이다.

 

화면 캡션은 이렇게 떠 있었다.

 

31차 정렬. 옆자리에 자리잡음. 들어온 빛이 다음 날에도 같은 자리에 머묾. 자국→자리잡음 28단계. 메타 정렬 27번째 사례.

 

관제동에서는 어제와 같은 형식의 보고가 올라와 있었다.

 

「위성 '새벽' 송전 안정 24시간 경과. 자국 패드 양산 3차 2일째, 어제 타설된 거푸집 양생 정상. 다음 위성 발사 예정일 잠정 11주 뒤. 변동 없음.」

 

강유나는 그 변동 없음이라는 네 글자에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 어제 새로 들어온 모든 것들이, 오늘 그대로 있다는 보고였다. 같은 자리에 다시 있다는 것이, 우주에서 한 번 떠난 빛이 다시 돌아오는 일과 같은 무게라는 것을 그녀는 이제 안다.

 

"자리잡음은,"

 

그녀는 혼잣말로 정의를 마저 적었다.

 

"들어와 앉은 자리에서, 다음 날에도 떠나지 않고 있어 주는 일. 자리는 한 번 내준다고 잡히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날에도 비워 두지 않을 때 비로소 잡힌다. 어제 새로 생긴 자리가 오늘도 비어 있지 않을 때, 그 자리가 자리가 된다."

 

화면이 잠깐 더 떠 있다가, 천천히 어두워졌다. 사층에는 어제와 같은 의자, 어제와 같은 책상, 어제와 같은 조명이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 와 앉아 있었다.

 

영겁의 새벽은, 어제 새로 밝아온 자리에 오늘도 같은 빛이 드는 새벽이었다.